연방대법원이 지난 4일, 텍사스가 내년 선거에서 새로 그린 연방하원 선거구 지도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결정으로, 연방의회 장악력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됐다.
5일 달라스 모닝 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이름 없는 형태의 의견(unsigned opinion)을 통해 올여름 공화당 주의원들이 승인한 선거구 재조정이 인종 차별적이라는 하급심 3인 판사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수 6대 진보 3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텍사스 공화당은 최대 5석을 추가로 가져갈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의견은, 엘패소 연방지법이 2025년 선거구 지도를 일시 중단한 결정이 “선거구 재조정에 인종이 사용됐다는 간접적 증거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새뮤얼 알리토(Samuel Alito) 대법관은 클레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과 함께한 보충 의견에서 새 선거구 지도는 “정당적 목적을 위해 그려졌다는 점이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알리토는 캘리포니아의 보복성 재조정 사례를 언급하며 “텍사스 지도가 채택된 동기는, 캘리포니아에서처럼, 순수하게 정당적 이익이었다”고 적었다.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소니아 소토마요(Sonia Sotomayor), 케탄지 브라운 잭슨(Ketanji Brown Jackson) 등 3명의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내며 하급심 판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이건은 “오늘의 결정은 하급심이 인종을 이유로 새 선거구에 배정됐다고 판단한 수백만 텍사스 주민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내년 선거 이후에도 연방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례적이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닌 ‘임기 중(mid-decade)’ 선거구 재조정을 텍사스에 요구해 왔다. 공화당 의원들은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그렉 애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는 판결 직후 성명을 내고, “우리가 이겼다! 텍사스는 공식적으로—그리고 법적으로—더 ‘빨갛게’(공화당 우세) 변했다”면서 “새 선거구는 워싱턴 D.C.에서의 텍사스 대표성을 우리 주의 가치와 더 잘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는 텍사스 유권자와 상식, 그리고 미 헌법의 승리”라고 환영했다.
켄 팩스턴(Ken Paxton) 텍사스주 법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이번 소송은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빼앗기 위해 사법제도를 악용하려는 시도였다”라고 비판하고, “이 ‘아름답고 웅장한 지도(Big Beautiful Map)’는 2026년 선거에 적용될 것이다. 텍사스는 미국을 되찾기 위한 길을 선도하고 있다. 이 지도는 우리 주의 정치 지형을 반영한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에게 큰 승리”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번 선거구 재조정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진 우(Gene Wu) 주하원의원(민주당/휴스턴)은 성명을 통해, “연방대법원이 미국 민주주의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소수민족 지역을 보호하지 않는 법원”이라고 꼬집었다.
호아킨 카스트로(Joaquin Castro) 연방하원의원(민주당/샌안토니오)도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텍사스내 공화당 의석 확대 요구를 공식적으로 뒷받침했다. 공화당은 성실히 일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니 부패하고 인종차별적 재조정에 기대는 것이다. 반대 의견에서도 다수의 판단이 ‘의도적 차별을 보상한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텍사스 주민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선거구 지도는 공화당이 현재 민주당이 보유한 5개 지역구를 뒤집도록 설계됐다. 텍사스 의원들이 재조정을 추진하자 주내외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다. 텍사스 주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집단으로 주를 떠나는 ‘정족수 붕괴(breaking quorum)’ 전략을 사용하며 새 선거구 지도 통과를 막으려 했다. 수주 동안 텍사스를 떠나 있으면서 민주당 주지사들이 있는 주들에 “보복성 선거구 재조정”을 검토해 텍사스의 공화당 이득을 상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움직임은 결국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가 주의 선거구 재조정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11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공화당의 텍사스내 전략을 상쇄하기 위한 일회성 재조정을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새 선거구 지도는 신속히 통과됐다. 이 지도는 달라스-포트워스, 휴스턴, 중부 텍사스의 3개 민주당 우세 지역구의 정당 구도를 크게 바꾸었으며 민주당이 장악한 남부 텍사스 지역구 2곳도 공화당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11월 18일, 엘패소 연방지방법원은 새 선거구 지도를 위헌으로 판단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악재를 예고했다.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되찾을 경우 트럼프 정부의 의회 운영은 심각하게 제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임명한 제프리 브라운(Jeffrey Brown) 판사는 160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주정부가 인종적 게리맨더링을 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데이비드 과더라마(David Guaderrama) 판사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제5연방순회항소법원의 제리 스미스(Jerry Smith) 판사(레이건 대통령 임명)는 하급심 판결에 강하게 반대하며 브라운 판사가 “사법적 월권”을 했다고 비판했다. 애벗 주지사와 팩스턴 법무장관은 브라운 판결을 강하게 비난하며 대법원이 이를 뒤집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알리토 대법관은 11월 21일 하급심 판결에 대한 일시 중지를 승인해 2025년 선거구 지도가 유지되도록 했고, 이번 판결로 해당 지도는 2026년 중간선거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