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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안보 외교 현장, 한국만 없었다

Los Angeles

2025.12.14 16:50 2025.12.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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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사회부 기자

김경준 사회부 기자

지난 6일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서 레이건 국방포럼(RNDF)이 열렸다. 이 포럼은 미국 안보 현안의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명함이 오가고, 악수가 이어지며, 공식 문서에 담기기 전의 생각들이 가장 솔직하게 오가는 공간이다. 그런 무대에 미국 안보 라인 핵심 인사 700여 명이 집결했다. 그 한가운데에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을 필두로 댄 케인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 인도태평양사령관까지. 미국 군 지휘부의 정점이 총출동했다.  
 
여기에 록히드마틴·보잉·노스롭그루먼·RTX 등 미국 4대 방산업체 수장, 안두릴과 팔란티어 같은 신흥 방산기업 리더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까지.  
 
정치·군·산업 권력이 한 공간에 모였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에 의한 평화’ 철학을 기치로 한 포럼의 화두는 분명했다. 중국, 그리고 동맹이었다.
 
이 주제에서 한국·일본·대만은 빠질 수 없는 국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실행과 대중 견제의 최전선에 선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야마다 시게오 주미 일본대사와 주미 대만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미 대만경제문화대표부(TECRO)의 알렉산더 유이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유이 대표는 지난 7월 애스펀 안보 포럼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했다. 이들은 미 정부 고위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했고, 대학생 펠로들에게까지 직접 각국의 현안을 설명했다. ‘현장 외교’의 교과서 같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인사들은 없었다. 강경화 주미대사는 물론, 한국 정부 관계자 단 한 명도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애스펀 안보 포럼에 이어 두 번째 공백이다. 실수로 치부하기엔 시점이 너무 중요하다.  
 
한국은 막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했고, 한미 조선 협력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라는 굵직한 안보 현안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있다. 이런 국면에서 미국 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를 비운다는 건 외교적 무신경함에 가깝다.
 
아이러니는 기조연설에서 극명해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한국이 국방비를 증액해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모범 동맹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이 칭찬의 대상이 된 무대에, 정작 한국은 없었다. 그 결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과 MRO(유지·보수·정비)를 넘어 미 해군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싶다는 메시지는 정부 관계자가 아니라 취재 기자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 포럼 이후 리셉션에서 마이클 더피 국방부 획득·유지 담당 차관이 기자에게 한국 정부의 요구 조건들을 되묻는 장면은 외교 공백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주미대사관의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대사가 직접 얼굴을 비추는 판단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의 무게를 고려할 때, RNDF 같은 자리에 강경화 대사가 참석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 역시 외교 역량의 일부다.  
 
만약 “시미밸리는 워싱턴과 정반대에 있어 멀다”는 물리적 거리를 핑계로 댄다면, 설득력이 없다. 일본과 대만은 왔고, 참석자 상당수는 워싱턴에서 이동했다.
 
동맹은 성명서로 유지되지 않는다. 얼굴을 비추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쓰며, 관계를 축적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미국 안보의 중심 무대에 일본과 대만은 있었고, 한국만 없었다. 이 사실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를 놓친 대가는, 결국 한국이 치를 수 밖에 없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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