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를 맞아 본지가 지난 1일부터 연재 중인 주요 한인 단체장들의 신년 인터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정과 포부가 담겨 있다. 로버트 안 LA한인회장을 비롯해 이현옥 LA 한인타운 시니어 & 커뮤니티 센터 회장, 빌 로빈슨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의장, 이창엽 올림픽경찰서후원회(OBA) 회장, 송정호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관장 등 각계 단체 리더들이 밝힌 청사진은 하나같이 고무적이다.
공공 안전 강화, 환경 개선, 세대 통합, 치안 인프라 확충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과제들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현실이 된다면, 한인타운의 위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베벌리힐스나 브렌트우드 같은 인근 부촌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명품 거주지로 거듭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LA는 올해 북중미 월드컵을 기점으로 오는 2028년 하계 올림픽까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국제무대의 중심이 된다. 이 시기에 한인 사회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단체장들 다짐은 단순한 지역 사업을 넘어 한인 사회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약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말이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로 증명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단체장이 화려한 수사로 임기를 시작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숱하게 목격해 왔다. “하겠다”, “추진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들은 매년 반복됐다. 그러나 그 결과를 체감한 경험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비극적 사례가 바로 한미박물관 건립 사업이다. 지난 2013년 LA시로부터 금싸라기 땅을 사실상 무상으로 50년 장기 임대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이 프로젝트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 아닌 ‘계획 중’이다.
디자인 변경에 따른 지연, 물가 상승에 따른 예산 부족 등 변명은 늘 화려했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할 장재민 이사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풀 한 포기 베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한인사회의 숙원 사업이 리더십의 부재와 무책임 속에 어떻게 고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선례다.
올해 포부를 밝힌 단체장들이 한미박물관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내뱉은 공공 안전 심포지엄의 지속성, CCTV 설치를 통한 치안 강화, 세대 통합의 열린 공간 조성 등은 모두 막대한 실행력과 예산, 그리고 정치적 협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결국 이들의 공약(公約)이 빈껍데기인 공약(空約)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힘은 한인 개개인의 ‘감시’에서 나온다. 리더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때 가장 무서워 해야 할 대상은 시의원이나 시장이 아닌, 바로 자신들을 지켜보는 한인들이어야 한다.
이제 한인들은 구경꾼에 머물러선 안 된다. 단체장들이 밝힌 계획이 실제 예산에 반영되는지, 유관 기관과의 공조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워치독(Watchdog)이 되어야 한다.
단체장들이 내뱉은 말은 한인 사회와의 엄중한 계약이다. 2026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이들이 약속한 ‘안전하고 품격 있는 한인타운’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리더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실행하는 리더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강한 비판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한인타운의 발전은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