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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불교 수행에도 믿음이 필요할까

Los Angeles

2026.01.19 17:50 2026.01.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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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아요.”  
 
불교에 호감을 갖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현대인들에게 ‘믿음’은 불편함을 넘어 때로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바람처럼 불교는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불교 수행에서 믿음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는 단어일까.  
 
검은색 볼펜을 수건으로 가린 채 묻는다. “이 수건 안의 볼펜은 검은색입니다. 믿으십니까?” 누군가는 믿을 것이고, 누군가는 믿지 않을 것이다. 이유도 다양할 수 있다. 수건을 걷고 볼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다시 묻는다. “이 볼펜이 검은색인 것을 믿으십니까?” 어딘가 어색하다. 이미 확인된 사실에 대해 굳이 ‘믿는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 과학적·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생사와 무형한 마음을 다루는 종교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유다.  
 
우리 일상은 생각보다 믿음과 깊이 연관돼 있다. 식당을 고를 때, 미용실이나 병원을 정할 때 참고하는 후기와 입소문이 과연 100% 옳은 선택을 보증할 수 있을까. 결국 이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념이나 믿음에 일정 부분 의지할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믿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연과학도 예외는 아니다. 관찰로부터 일반화를 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틀과 가설이라는 일종의 믿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의 사정이 이럴진대, 생사나 마음 같은 추상적 내용을 다루는 불교 수행에서 믿음이 필요 없을 리 없다. 불교에서는 믿음으로 법의 바다에 들어가고, 지혜로 건넌다고 한다. 믿음이 없으면 수행을 시작할 수 없고, 지혜에 이르면 믿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대승 불교를 관통하는 기본 인식이다. 깨달음 이후에는 믿음이 필요 없지만,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믿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다.
 
‘나는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인다’는 현대인들의 인식 태도는 불법 수행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실제로는 적용되기 어렵다. 다섯 살 아이는 엄마가 주는 음식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 만약 “이 음식이 먹어도 괜찮은지 확실히 알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아이는 판단 능력을 갖추기 전에 굶어죽을 수도 있다. 일단 신뢰하고 먹어야 자랄 수 있고, 이후에야 판단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믿음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제거해야 할 오류라기보다 불가피한 인식 방식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삼세인과나 천지의 은혜 같은 가르침은 한두 번의 설명으로 내 것이 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한 깨달음 이후로 이들을 유예한다면, 믿음이 불법 수행의 출발점이라는 불교의 전제와 어긋날 뿐 아니라, 만약 그것들이 진리라면, 그 선택이 가져올 손해 역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무턱대고 믿으라는 말은 아니다. 맛집을 찾기 위해 경험자의 평가와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듯, 성자의 가르침 또한 이성과 논리로 최대한 점검해야 한다. 이를 ‘합리적 믿음’이라 하여 맹목적 믿음과 구분하지만, 그러한 믿음 역시 여전히 오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불교에서 믿음은 끊임없이 점검되어야 할 불완전한 것이지만, 인간 인식의 한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요청되는 수행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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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철 / Won Medit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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