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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겨울 폭풍

Los Angeles

2026.02.05 17:18 2026.02.0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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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멕시코의 국경 도시인 티후아나를 지나 두어 시간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항구 도시 엔시나다를 만나게 된다.  
 
항구 도시라지만 컨테이너 하역 시설, 크레인이 즐비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어항처럼 고기잡이배들이 잡아 온 생선을 판매하는 어시장이 있고 해산물 식당이 즐비한 모습도 아니다. 관광객 대상의 허름한 모텔, 식당, 선술집, 낚시 용품점 등이 있는 조그만 어촌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이곳은 미국의 강태공들이 규정이 까다로운 미국을 피해 낚싯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낚시꾼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낚시에 나섰다가 입질조차 받지 못하고 공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인근 어시장에서 커다란 민어를 단돈 10달러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이 훼손되고 아름답던 해변에는 천박한 거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거센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세월을 따라 이곳도 많이 변했다. 주민들의 순박한 미소를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30여분, 차로 달리면 나타나는 곳이 카보 푼타 밴드(Cabo Punta Band)로 외곽 지역에는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어 자생적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은 그 옛날 서울의 청계천 쪽방촌을 닮았다. 6·25 한국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에게 임시 주거지가 되어 주기도 했던 빈민가다. 청계천 개발을 위해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자 만든 곳이 경기도 성남시다.  
 
지금 청계천 쪽방촌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의 젊은 세대는 기억조차 못 하겠지만 청계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닮았다. 가난과 설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곳이었다. 하수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시절, 청계천은 지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리고 삶에 지친 사람들의 욕설과 다툼이 일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가난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칠기는 했어도 이웃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그림 같았던 곳 역시 청계천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계천은 비록 인위적인 구조물이긴 하지만 도심의 숨통을 터주는 명소로 변모했다.  그 옛날 쪽방촌의 기억은 이제 완벽하게 지워졌다.  
 
나무 한 그루 없고 흙 먼지 날리는 언덕에 형성된 작은 마을에 우리가 지원하는 교회가 있다. 그곳 교인들을 잊지 않고 작은 정성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어 성탄절에는 교회를 찾는다. 전해 줄 성탄절 선물이라야 학용품, 담요, 옷가지 그리고 그 날 함께 할 점심 정도지만 연례행사가 되었다. 우리는 굳이 선교라는 이름은 쓰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가진 작은 것들을 나눌 뿐이다. 때때로 그들의 어려운 형편이 전해지면 금전적 지원도 하지만 성탄절에 먼 길을 재촉하는 이유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까닭이다. 물론 그들의 반가운 미소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아오는 여정이 되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이런 행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혹 내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선뜻 남을 위해 내어주기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작은 선행도 때를 놓치면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선행 과정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열정을 느낄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을 때 주고,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면 된다.  
 
 일행이 멕시코 교회로 출발하기로 한 날 겨울 폭풍이 다가왔다. 새벽 5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폭우가 쏟아지니 걱정이 앞섰다. 나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에는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신 우비와 뜨거운 커피를 챙겨 먼 길 떠나는 이들을 배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많은 비로 도로에 물이 넘치고 건널목을 지날 때마다 커다란 파도가 차 양 옆에 생기며 차가 흔들렸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송병길 /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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