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표현은 1931년 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 ‘미국의 서사(The Epic of America)’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부와 권력의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능력과 성취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라고 설명했다.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 세계에 약속했던 이상이었다.
20세기 동안 이 개념은 하나의 사회적 상징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든 이유도 바로 이 기회의 약속 때문이었다. 집을 사고, 자녀를 교육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자체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 오래된 서사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미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순이주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시민들이 유럽과 멕시코,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떠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현상을 일시적 유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동시에 생활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거비와 의료비, 교육비는 중산층에게도 큰 부담이 됐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도 집값과 렌트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반면 세계화와 디지털 기술은 삶의 공간을 바꿔 놓았다.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일터와 거주지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유럽이나 동남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높은 미국 임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 생활비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중산층이 등장했다.
삶의 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보행 중심의 도시 구조와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총기 사건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되는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 일상적 안정감이 더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요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 시민이 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미국 경제의 힘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와 금융 산업이 만들어낸 고임금과 원격 근무 환경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호조가 역설적으로 미국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아메리칸 드림은 무엇일까. 애덤스가 말했던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였다.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고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회였다. 지금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그 기본적인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삶의 비용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래를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그 핵심이다. 미국이 다시 매력적인 삶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안정성을 동시에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오래된 이야기의 방향은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