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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부러움으로 드리는 기도

지난주, 우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조지 뮬러 박물관을 방문하여 그의 발자취와 사역이 남긴 지속적인 영향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기도하는 사람이자 고아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의 신앙, 유산 그리고 계속되는 사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조지 뮬러는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애슐리 다운고아원에서 평생 1만여명의 고아를 돌보고, 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전도지를 배포했다. 그의 사역은 가족지원센터 운영 및 교육 사업, 빈곤층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 교회와 단체 지원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35년 서른 명의 여자아이로 시작한 뮬러의 고아원 사역은 넓은 대지 내 다섯 동의 건물에 2000여명의 고아를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의식주 제공은 물론,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갈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은 감탄이 나올 만큼 단정하고 잘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받은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고 질적으로 높아서 고아들에게는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가 나이 들어 고아원을 떠날 때는 두 벌의 정장과 약간의 돈을 줬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고아원에 머물 수도 있었다. 고아원에서 고아들은 교사, 간호사, 가사 도우미 등의 직업 교육도 받았다. 5만 번이 넘는 기도 응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는 고아원을 위해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결과 그의 사역은 필요한 만큼 늘 채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식사는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건강을 고려해 준비되고 아이들의 신체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나들이하러 가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했다. 190년 전에 고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 못지않게 의복을 갖추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준비된 사회인으로 양육된 것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자세히 만나본 19세기의 고아 양육에 관한 기록은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하는 우리를 부럽게 했다. 사실 아이티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 부럽지 않은 일이 없다. 아이티에서 바로 옆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넘어가면 포장된 길과 울창한 숲이 부럽고, 허름한 시멘트 가옥조차 부럽다. 지난 주일예배에 파라과이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소개한 파라과이 빈민가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사역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면서도 사실은 부러웠다.   지금 아이티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고아원은 모두 갱들이 점령한 지역 안에 있다. 두 개 고아원은 갱들에게 쫓겨나 잠자리를 잃었고, 이 와중에 한 개 고아원은 렌트를 못 내 곧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꾸준히 송금하고, 현지에서 식량을 사 공급하고, 숨 막히는 삶을 위해 계속 지원금을 전달하지만,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던데, 다른 이들의 삶이 부러운 것은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이다. 아이티 고아들도 그렇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싶어서이다. 조지 뮬러 박물관에서 느낀 부러움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기도 하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안타까운 눈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남부럽지 않은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기도 애슐리 다운고아원 고아원 사역 아이티 고아들

2025.05.08. 18:12

“국민이 기도하면 신은 이뤄 주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일 오후 백악관 앞마당에서 국가기도의 날 (the National Day of Prayer)를 주관하고 국민들에게 다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1천여명이 참석한 기념행사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다시 국가기도의 날 기념행사를 치르게 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고 밝히고, “우리 미국이 다시 기독교적 신앙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다시 강하고 힘센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미국은 항상 신을 섬겨왔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일 수 있었다”며 “우리가 급진좌파를 사라지게 할 수 있도록 간구해도 모두 사라지기는 힘들겠지만, 신께는 우리를 보살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행정명령을 통해 정부 내의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모두 폐기할 것을 지시하는 등, 미국의 건국 정신 속에 녹아든 기독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기념 행사 직후 종교 자유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위원회를 백악관 직속에 두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저명한 방송진행자이자 심리학자인 필 맥그로우 박사를 연단에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맥그로우 박사는 “우리 미국은 공격을 받고 있으나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고 맞서싸워야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신의 가호 하에 미국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CBS에서 20년 넘게 ‘닥터 필’을 진행했던 맥그로우 박사는 미국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이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시 연단에 초대한 저명한 스포츠캐스터인 댄 페트릭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도의 전통을 다시 세워준 데 대해 고마움을 전한다”면서 “우리 국민은 천부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간구하는 가운데 모든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기도의 날은 1952년 연방의회 결의안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됐다.   이날은 기독교 신에 대한 기도와 명상을 장려할 목적으로 제정됐으나, 1970년대 이후 유명무실해졌다가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기도의 날을 선포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은 기도가 우리 국가를 인도하고 더욱 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겸손과 감사로 ‘신의 섭리의 보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를 보살피고 영감을 주는 기독교 신앙 종교적 자유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요한일서 5장14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국민 국가 기도 트럼프 대통령 우리 국민

2025.05.0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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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기도가 필요한 시간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에서.   그날 밤 지옥문이 열린 기분이다. 우리 앞에 느닷없는 정치와 역사의 퇴행극이 펼쳐졌다. 폭주한 망상가는 여전히 반성을 모른다. 정치 셈법에만 눈먼 정치인들도 너무 많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무리 중 한 여성은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굴리며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마마”라고 울부짖었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목사님’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아스팔트 목사님’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세상이 도저히 공존 불가능한 사람들로 동강 난 느낌이다. 하도 어이없는 풍경의 연속이라 차라리 눈과 입을 닫고 싶다는 이들도 많다.   마냥 희망찬 인사를 주고받기조차 꺼려지는 연초, 위태로운 마음을 다스리며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를 펼친다. 이문재 시인이 시처럼 읽히는 기도문들을 묶은 책이다. 모든 기도는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한다.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기도의 쓰임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우루과이 성당 벽 주 기도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만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기도 시간 우루과이 성당 아스팔트 목사님 신학자 아브라함

2025.01.22. 19:38

“인생 마지막 날처럼 기도하고, 사랑하길”

       가든교회(담임목사 한태일) 창립 30주년 기념 부흥사경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18일부터 사흘간 개최된 부흥사경회에는 안양 일심교회 김홍석(사진) 담임목사가 강사로 나서 ‘하나님의 세가지 뜻(데살전5:16-1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23:1-6)’,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벧전4:4-11)’, ‘좋은 교회, 좋은 성도(빌4:1-7)’,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라 (눅15:25-32)’ 등을 주제로 예배를 인도했다.   김 목사는 “가든 교회가 이 지역 복음화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바라며 더욱 좋은 교회, 좋은 성도들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여호 와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니 우리를 늘 인도하실 것이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키고 안위하시며, 잔이 넘칠 정도로 복을 주실 것”이라면서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대접하고 봉사하며 살 것을 권면했다.   한편 이번 부흥사경회는 30년전 가든교회를 개척해 한길 인생을 걸어 온 한태일 목사의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를 앞두고 마련됐으며 2대 목사로 위임 받는 남지현 목사와 향후 30년의 열정과 비전을 다짐하는 시간이 됐다.   문의: 410-461-9621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인생 기도 인생 마지막 담임목사 한태일 원로목사 추대

2024.10.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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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가 계속된다면 부흥의 역사 다시 일어날 것”

       워싱턴한미국가조찬기도회(회장 정승욱, 이사장 서옥자)가 지난 19일, 메릴랜드 엘리컷시티 소재 벧엘교회(담임목사 백신종)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열아홉번째 정기 기도회를 개최하고 한반도와 전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정승욱 회장은 시편 34편 14-6절을 인용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라야 한다”면서 “우리는 또한 마태복음 5장9절 말씀처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은 단지 당사자 국민 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인의 고통으로 다가온다”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하나님만이 전쟁을 종식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코린티아 분(수도권 국가 기도의 날 의장) 박사가 “하나님이 역사해 전세계에 평화가 깃들고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으로 기도한 후, 벧엘교회의 김지우, 아이린 리 어린이가 구약(시편 34장14-16절), 신약(마태복음5장7-9절) 말씀을 봉독했다.   미국 및 한국 국가 제창에 이어 주미 대사관 조기중 총영사와 백악관 신앙기반 이웃 협업담당 토마스 보웬 상임고문이 각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축하 메세지를 대독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아루나 밀러 부지사, 크리스 반 홀렌 연방상원의원(민주, 메릴랜드), 마크 장 메릴랜드 하원의원, 류응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 목사 등이 대거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밀러 부지사는 “한인들이 40여 년전 이 교회를 개척하고 현재와 같은 성취를 얻어 전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회를 개최하는 것처럼, 작은 시작에서 비롯된 수백만명의 한인이 곳곳에서 커다란 성취를 이루게 됐다”면서 “메릴랜드는 최초의 유색인종 주지사와 최초의 아태계(AAPI) 부지사를 배출하는 등 오늘도 계속해서 소수계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며 정의와 평등, 나아가 더 큰 평화를 일궈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국가조찬기도회 고문인 류응렬목사는 “유대인들은 고난속에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며 기도했다”면서 “우리 민족도 기도했기 때문에 한국전쟁 등 많은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옥자 이사장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기조연설자 모스 탄 전 국제범죄 전권특명대사는 “신앙의 불모지였던 한반도에 미국 선교사들이 첫발을 디딘 후, 순교의 아픈 역사가 되풀이됐으나 암울한 시대에도 평양에서 대각성 부흥이 일었던 이유는 신자들의 간곡한 기도 때문이었다”면서 “우리의 기도가 계속된다면 김일성 3대 세습 정권이 무너지고 평양에서 다시한번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아시아의 기독교 성지로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정우용 목사(메릴랜드한인교회협의회 회장)의 봉헌기도 후, 벧엘한국학교 합창단의 특송무대가 펼쳐졌다. 이어 안지웅 목사(새소망교회) 주도로 진행된 합심기도 순서에서는 ‘한국 대통령과 북한을 위해(박 엘리사 목사-워싱턴교회협의회 회장)’, ‘미국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위해(송제오 목사-워싱턴기도연합회 대표)’, ‘세계선교와 박해 받는자들을 위해(아킨타요 엠마뉴엘 목사-GRA 미션스)’, 젊‘ 은세대와 미래 리더를 위해(윌리엄 글래스 박사-랭카스터 바이블 칼리지 교수)’ 통성으로 하나되어 기도했다. 이어서 박주용 박사가 공지사항을 전하고 다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찬송한 후, 백신종 목사의 축도로 기도회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한기덕 장로(북미주 KCBMC 제15대 회장)가 조찬감사기도를 드리고나서 교제의 시간을 이어갔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기도 정기 기도회 이날 기도회 담임목사 백신종

2024.10.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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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 삶'

1940년 무렵이었다. 내가 숭실중학 4학년을 끝내면서 평양 교육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평양에 하나뿐인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숭의여자중학교를 폐교했다. 민족주의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평양의 3숭(3崇) 폐교 사건으로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그 대안으로 일본인 학생이 다니는 학교를 제1 공립중학교, 한국 학생을 위한 평양고보를 제2 공립중학교, 숭실학교를 폐교한 대신 제3 공립중학교로 개편하면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이 함께 공부하게 했다. 기독교 민족주의 학생을 황국(皇國) 시민으로 개조하는 학교로 만들었다.   황국시민 양성에 몰두한 일제의 횡포     숭실학교에서 자란 우리를 1년 동안에 일본 국민으로 개조하려는 교육이 어떠했겠는가. 또 학생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과 혼란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부모와 사랑으로 한마음이 된 어린애가 증오심에 가득 찬 계모 밑에 사는 1년이었다. 100명 정도의 4학년 학생을 반으로 축소했기에 퇴학당하는 학생 없이 졸업한 것이 다행이었다.   학교 교문 안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할 수 없었고, 민족주의와 기독교 사상도 금지했다. 나 같은 학생까지 교무실에 끌려가 모든 선생이 보는 앞에서 담임 선생에게 이유 없는 구타를 당했다. 기독교 가정 출신이고 기독학생회 간부로 있었던 이력 때문이다. 내 친구들과 함께 졸업을 못 하게 되는가를 걱정했다.   그 1년 동안 나는 일생에서 최악의 교육을 경험했다. 민족을 사랑하는 전통을, 침략국인 일본 국민으로 바꾸려는 정치교육이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고 정치적 인간개조의 수단이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인간교육이 정치 목적의 수단이었다. 있을 수 없는 교육이었다. 일본 본토 안에서도 그런 교육은 없었으니까.   25세에 북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정치적 안정기가 회복되면서 나 같은 자유주의 지성인은 할 일도 없지만 북 정권에서 본다면 최악의 성분과 반동분자에 속한다. 고향에 조용히 머물면서 주변 농촌 젊은이를 위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목적으로 사립중학교를 설립했다. 뜻을 같이하는, 숭실학교에 함께 다녔던 대학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북한 정권의 특수층 세습 교육     그러나 교육환경이나 사회생활 여건으로 보아 공산정권은 일제강점기보다 더 심한 악조건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만 조용히 항일·친일을 떠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 치하에서는 종교적 신앙까지 지킬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자가 되거나 정권의 노예가 되는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우리가 뜻한 교육은 공산당원의 감시로 허용되지 않았다. 학생 일부는 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학교 운영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학교 이사장은 체포되어 수감됐고, 교장인 나도 신변 보장을 받을 수 없어 교육을 단념하고 탈북했다. 사립 교육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   그때 함께 고생하던 교사 전부가 서울에 와서 중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나중에 교장이 되었다. 공산정권은 자유주의자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어도, 종교인은 공산주의자가 되지 못한다고 단정했다. 소련·중공·북한에서는 종교가 사라졌고, 전통적인 종교 국가는 공산국가가 되지 않았다. 유럽과 미주만이 아니다. 인도와 중동도 그렇다. 사회주의까지는 되어도 종교는 공산국가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북한의 교육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교육다운 교육은 일제강점기 시대보다 더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공산주의 교육보다 김일성 왕가를 위한 정신교육으로 퇴락했다.   해방을 맞은 뒤 1년이 되면서 우리 마을 북쪽에는 ‘유가족 학교’가 설립됐다. 공산주의와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당원들의 가족을 위한 특수학교다. 그 학교 출신이 김일성대학과 김책공대로 진학해 공산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기반은 일찍부터 계획했다. 최고의 성분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 양성의 특수학교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세습적으로 계승하는 특수층 교육기관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공산국가에서는 사상의 자유나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다. 정치 목표와 이념이 절대적 신념과 같이 교육의 지상목표가 된다. 그곳에서 인간교육을 한다는 것은 빙판에 씨를 뿌리는 것 같은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공산국가엔 인문학이 살 수 없어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러시아는 100년 동안에 문화 후진국으로 추락했다. 중국은 2500년 동안의 문화 정신적 전통과 유산을 버리고 아시아의 대표적인 공산국가가 되었다. 북한은 유례없는 인간 상실의 사회로 변했다.   대한민국이 교육의 자유 국가로 출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자유는 선택과 다양한 정신문화의 창조와 함께 이루어진다. 교육을 기반 배경으로 민족 이상이 가능해진다. 지난 70년간의 국가 성장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세계무대에서 경제 10위권에 걸맞은 교육을 위해서는 개혁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정치나 경제의 수단 방법이 아니다. 사회 모든 분야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계속되는 인간성 회복과 선한 사회질서 창출이다. 선한 인간성의 완성이 인간적 가치와 사회의 출발과 목표가 되어야 한다. 최선의 교육이 역사와 사회의 원천과 희망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북한 기도 평양 교육계 공립중학교 한국 기독학생회 간부

2023.11.10. 17:00

"꿈 넘어 꿈을 향해 기도 하세요"

    지난 27일 개막한 와싱톤중앙장로교회(담임목사 류응렬) 설립 50주년 감사 부흥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를 초청해 열린 부흥회는 ‘간절한 두 가지 간청’을 주제로 부흥회 포문을 열였다.     류응렬 목사는 “50년 동안 하나님의 사명을 이뤄올 수 있게 한데 대해 감사드리며, 개인의 삶과 가정, 교회 가운데 영광스런 주님 나라 위한 사명을 향해 달려가는 위대한 결단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류 목사는 “한국 교계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오늘까지 목회자들의 목사님으로 존경받는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며 이찬수 목사를 소개했다.     강단에 오른 이찬수 목사는 잠언 30:7-9절을 바탕으로 ‘아굴에게 배우는 기도'를 설교했다. 이 목사는 남은 삶, 큰 그림을 그리며 긴 호흡으로 하는 기도와 우선 순위를 정해 놓고 하는 기도,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 등 3가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먼저 기도드리고, 나의 기도를 구하며, 빚 받으러 온 것 마냥 기도하지 말것”을 당부했다. 그는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기도하라”고 말하며 “기도 응답이 잘 되지 않는건 때로는 ‘복 중의 복’일 때가 있다”면서 인생을 걸고 기도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이 목사는 "평생을 걸고 해야하는 인생의 기도는 ‘정직’한 영을 구하는 것과 탐욕을 억제해 어떤 형편이든지 ‘자족’을 꿈꾸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하는 기도”라면서 “하나님의 크신 일을 기대하며 신앙의 언어 화법을 사용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행하신 위대한 일을 자랑’하라”고 권면헸다.   더불어 “내 생애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음을 독백하며 ‘꿈 넘어 꿈’을 향해 기도하라”고 말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이 목사는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설립 50주년을 축하하며 “가장 영적인 것이 가장 상식적인 것”이며 “좋은 사람이 모인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좋은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면서 “그로인해 언어에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회복해 ‘나’ 중심이 아닌 주변을 돌아보는 ‘우리’ 중심의 교회가 되길 바란다”며 설교를 맺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부흥회 기도 하나님 기도 응답 서울분당우리교회 이찬수

2023.10.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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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

    워싱턴목회연구원(WMI, 원장 이택래 목사)의 9월 정기예배가 지난 5일 메시야장로교회(한세영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윤여천 목사는 누가복음 22장31-32절의 본문으로 ‘그래도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김범수 목사(워싱턴동산교회)가 ‘서머나 교회를 통해 본 종말론적 목회관’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오늘 날 현대교회가 어려운 경제와 사회환경가운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끝까지 변치않는 충성된 믿음을 지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워싱턴목회연구원은 2025년 목연 설립 40주년을 맞이해 목연 논고집 발간, 신학세미나, 목연회원 목사부부 합창발표회, 목회자 위로회, 선교지 방문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김범수 목사가 40주년 기념 준비위원장에, 부위원장에 허성무 목사, 자문으로 윤정태 목사가 임명되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워싱턴목회연구원 목연회원 목사부부 김범수 목사 허성무 목사

2023.09.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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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은혜로 두 살 됐어요”

    세상 속 믿음을 나누고 전하는 ‘만나24TV’가 설립 2주년 기념행사를 다양한 형태로 진행중인 가운데 지난 9일 워싱톤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감사예배 및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80여명이 참석해 만나24TV 설립 2주년을 축하했다. 행사는 1부 감사예배에서 이원희 목사(워싱턴교협 증경회장)가 ‘소금과 빛이 되자(마5장13절-16절)’를 주제로 설교했으며 2부 ‘문학의 밤’ 시간이 이어졌다.     통기타 연주와 함께한 추억의 노래(이행준 목사)로 시작해 시낭송(추성희,오영희), 성악(권기선), 시편 23편(배현수), 성악(권기선), 샌드 아트 바이블(영상), 가야금 연주(정소연), 토크쇼(황성철 목사) 등의 문화 공연 순서가 마련됐다.       박노경 대표는 “매일, 매주, 기도와 은혜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만나24TV 사역이었지만 그럼에도 지난 2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영상 제작을 해 나가고 있다”며 “매주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듯, 많은 이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한 분들을 만나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일하심을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전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은혜 황성철 목사 이원희 목사 통기타 연주

2023.09.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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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기도하는 손’의 뒤러

인간의 삶에 어디 양지만 있으랴. 서럽게 살던 젊은 시절에는 소망의 기도를 많이 하고, 먹고 살 만할 때는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하고, 인생의 황혼에 서서는 참회의 기도를 많이 한다. 그 가운데에도 인생에는 소망의 기도를 드릴 날이 그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그런 소망마저도 없는 사람이 많다.   믿음 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성화(聖畵) ‘기도하는 손’은 큰 감동을 준다. 그 가운데 헝가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신성로마제국)에 이민 가서 활동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기도하는 손’(Betende Hande)이 특히 유명하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바라보는 사도들의 손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림의 모티프에 대해 여러 일화가 있다.   뒤러에게는 평생 고락을 함께한 친구 프란츠 나이슈타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나이슈타인이 먼저 돈을 벌어 뒤러의 학비를 대고, 뒤러의 공부가 끝나면 뒤러가 번 돈으로 나이슈타인이 그림 공부를 하기로 약속했다.   친구가 보내준 학비로 공부한 뒤러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황실 화가가 될 정도로 성공했다. 뒤러가 빚을 갚으러 찾아갔을 때 나이슈타인은 목수(일설엔 식당 종업원)로 일하면서 뒤러의 성공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이미 오랜 잡일로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뒤러가 그 친구의 손을 그린 것이 바로 ‘기도하는 손’이다. 화구도 없이 푸른 잉크로 그린 단색 데생이다.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의 알베르티나 박물관에 보관돼 500년 동안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동양의 관포지교(管鮑之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습니까.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기도 그림 공부 친구 프란츠 황실 화가

2023.05.31. 16:34

[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삶'

나의 정신적 불행은 일제강점기, 12살부터 시작되었다. 고향의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 다녔다. 부친이 주변 학교 중에서 칠골의 창덕소학교가 가깝고 좋겠다고 생각해 편입시험을 보러 갔다. 부친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는데, 5~6학년 담임이었던 윤태영 선생이 일본어를 전혀 배우지 못해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그때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교장 심 목사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애가 똑똑해 보이니까 붙여주라”고 했다. 그때부터 해방까지 13년 동안, 우리글과 일본어를 함께 배우며 살았다. 솔직히 생활은 우리말로 했지만 읽고 쓰는 데선 일본어 비중이 커졌다. 식민지 민족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런 과거 때문에 지금도 한글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30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저술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일찍부터 교회에 나갔고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내 정신과 사상의 기반이 당초 동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서양철학을 전공하여서 동양 및 한국 전통과는 조우할 기회가 적었다. 내 사상의 그릇에 동서양이란 대립하는 정신을 함께 담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자란 세대들의 불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들의 역사적 불운이었다. 서양 학문과 사상, 특히 철학을 전공한 학자나 교수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숙명이기도 했다. 문자로 표출되지 않는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요나 가곡을 제외하고는 한국 전통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대학강의를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신과 전통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괴심마저 들었다. 한국적인 것이 빈약한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갖게 된 분야가 회화를 중심으로 한 한국미술이었다. 사실 회화에 대한 예술의식 비슷한 것은 대학 시절에 키울 수 있었다. 대학생 때 도쿄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 도립미술관 지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어서 일본 회화는 물론 서양화가들의 전시회도 연중 열렸다. 식당 위층이 전시장이어서 일본화 대가들을 자주 감상하게 되었다. 그림 미술의 예술성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후 서울에서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통 화풍에서 벗어난 한국적인 그림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좀 더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다가 문인화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선비들이 학문이나 시를 쓰다가 취미 삼아 그린 그림들이다. 궁중화가나 전문화가 작품보다 한국인다운 느낌이 더 물씬하였다. 그리고 민화(民畵)를 접했다. 이것이 한국 특유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한 그림도 아닌 생활의 필요나 재미에서 탄생한 그림들이다. 그 수는 많지 않았으나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개성이 뚜렷하고, 창작열 뜨거운 작품들이다.   몇십 년 국전을 관람하면서 동양화나 서양화의 주류를 벗어난 한국적 회화가 태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국 회화의 장래가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림 감상의 기쁨이 배가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서울 골동품상 흔하게 볼 수 있는 옛날 도자기들도 우연히 살피게 되었다. 고려시대 작품들은 고급스럽고 예술성이 풍부하나 중국적인 전통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아한 색채와 상감이 중국 것을 능가하였지만 말이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주변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것’의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 본령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백자이다. 달항아리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일상용품 백자가 빚어졌다. 조선 초기의 다양한 백자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성을 품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도자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안복(眼福)을 많이 누렸다. 비로소 한국적인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성을 느끼는 듯했다. 이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도 도자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 경험을 돌아볼 때 가장 많은 종류의 도자기를 소장한 곳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박물관이다. 동서양 작품이 두루 모여 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 가도 한국적인 것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감 넘치는 도자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선 후기의 작품들은 생활미와 예술미, 그 둘의 조화미가 빼어나다.   생활미와 예술미 두루 갖춘 백자   가격도 부담이 적어 한두 점씩 사 모은 것이 이제 몇백점에 이르게 되었다. 인연 있는 중고등학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상당수 작품을 보내기도 하고, 나머지는 강원도 양구 근현대사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내 기념관인 ‘철학의 집’에 여러 점을 비치하기도 했다. 양구 박물관의 내 도자기 방에는 두 점의 문인화, 조지훈이 도자기를 예찬한 시도 걸려 있다. 규모는 작지만 지방박물관에서는 보기 드문 전시실이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개념은 과장된 표현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인간적인 것을 간직하면서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적인 것도 인간적인 것의 보편성에 들어가 있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 특수성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들이 우리 자신이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적 공통성을 지닌 예술성이다. 핵심은 예술인 자신들의 인간적 보편성을 갖는 창조정신이다. 그런 한국적 특수성이 모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죽음 기도 한국 전통음악 한국 화가들 한국 특유

2023.03.17. 19:58

애즈버리 대학생들이 지핀 기도 불씨

          켄터키주의 한 기독교 대학에서 시작한 평범한 아침 예배와 기도가 지역 사회를 넘어 미국과 일부 유럽에까지 전해지며 부흥전도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화제다.     애즈버리 대학은 켄터키주 윌모어에 위치해 있다.  이 대학에서는 지난 8일 ‘애즈버리 리바이벌’이라는 예배 모임이 결성됐다.  학생들의 평범한 아침 예배로, 매 학기 일정 횟수의 교회 출석이 필요한 학교의 방침으로 출발했다.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예배지만 모든 예배순서를 마친 후에도 학생들은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서 기도와 찬양을 이어갔다. 알렉산드라 프레스타(4학년 재학생)는 캠퍼스 신문 ‘콜리지언’과의 인터뷰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강당을 떠났으나, 다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들었다”면서 “예배는 멈추지 않았고, 강당은 예배와 간증, 기도, 찬양이 뒤섞였다”고 말했다. 그는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고 강당 바닥에서 잠을 청한 학생을 비롯해 밤새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학생들로 강당은 북적였다”고 말했다. 이어 “부흥회는 24시간 이어졌고 모두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캠퍼스 내 성령이 강력하게 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애즈버리 대학의 기도 부흥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지며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인근 대학에서 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흥 예배에 관한 문의와 가입이 빗발치며 하루 24시간 이어지는 부흥 소식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퍼졌다. 사립대 신학 교수인 톰 맥콜은 "일부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그 용어가 정치적 행동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애즈버리 대학의 예배와 기도 부흥은 전국에 영향을 미치며 오하이오 주 기독 대학들에서도 자발적 예배가 이뤄지고 있다.  세다빌 대학 토마스 화이트 총장은 “하나님이 애즈베리에서 일하시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이 곳에서 일하신다”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전국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부흥이 애즈버리대 캠퍼스를 강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 2월, 1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144시간 동안 예배와 기도를 이어 가며 대학은 1주일간 수업을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부흥은 3명의 애즈버리 학생이 자신들의 경험을 간증하면서 텍사스 포스워스의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을 포함해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대학생 기도 기도 부흥 간증 기도 부흥 예배

2023.02.2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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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버리 대학생들이 지핀 기도 불씨

        켄터키주의 한 기독교 대학에서 시작한 평범한 아침 예배와 기도가 지역 사회를 넘어 미국과 일부 유럽에까지 전해지며 부흥전도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화제다.   애즈버리 대학은 켄터키주 윌모어에 위치해 있다. 이 대학에서는 지난 8일 ‘애즈버리 리바이벌’이라는 예배 모임이 결성됐다.  학생들의 평범한 아침 예배로, 매 학기 일정 횟수의 교회 출석이 필요한 학교의 방침으로 출발했다.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예배지만 모든 예배순서를 마친 후에도 학생들은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서 기도와 찬양을 이어갔다.  알렉산드라 프레스타(4학년 재학생)는 캠퍼스 신문 ‘콜리지언’과의 인터뷰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강당을 떠났으나, 다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들었다”면서 “예배는 멈추지 않았고, 강당은 예배와 간증, 기도, 찬양이 뒤섞였다”고 말했다. 그는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고 강당 바닥에서 잠을 청한 학생을 비롯해 밤새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학생들로 강당은 북적였다”고 말했다. 이어 “부흥회는 24시간 이어졌고 모두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캠퍼스 내 성령이 강력하게 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애즈버리 대학의 기도 부흥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지며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인근 대학에서 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흥 예배에 관한 문의와 가입이 빗발치며 하루 24시간 이어지는 부흥 소식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퍼졌다. 사립대 신학 교수인 톰 맥콜은 "일부는 이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그 용어가 정치적 행동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애즈버리 대학의 예배와 기도 부흥은 전국에 영향을 미치며 오하이오 주 기독 대학들에서도 자발적 예배가 이뤄지고 있다.   세다빌 대학 토마스 화이트 총장은 “하나님이 애즈베리에서 일하시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이 곳에서 일하신다”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전국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부흥이 애즈버리대 캠퍼스를 강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 2월, 1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144시간 동안 예배와 기도를 이어 가며 대학은 1주일간 수업을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부흥은 3명의 애즈버리 학생이 자신들의 경험을 간증하면서 텍사스 포스워스의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대학을 포함해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대학생 기도 기도 부흥 간증 기도 부흥 예배

2023.02.23.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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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년 산책] 14살 때 죽음 앞두고 올린 기도, 평생 지킨 ‘기도하는 삶’

친구였던 안병욱 교수의 얘기가 생각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아름다웠던 사제 관계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과의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책자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마치 자기가 그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공감했다. 그래서 인류의 지혜와 교훈을 남겨 줄 수 있었다.   공자의 인품과 삶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성실(誠實)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자만큼 꾸밈없이 진실과 정직을 갖추고 산 사람이 없었을 것 같다. 그는 가난한 마음과 겸손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정신의 그릇 속에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원천을 간직하고 살았다.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위해 평생 정진(精進)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그런 자아의 성실성이 인간관계에서는 인(仁)의 미덕을 탄생시켰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평생 베풀어 주었다. 그래서 스승 중의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나도 그의 제자였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하고 행복했을까, 하는 자부심을 가졌을 것 같다.   “아침에 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   그러나 내가 공자를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가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영원한 것’에의 그리움이다. 『논어』 이인(里仁)편에서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朝聞道 夕死可矣)고 고백하고 있다. 공자시대의 영원한 것은 ‘하늘의 도’였다. 종교적인 진리였다. 그 하늘의 정신적 실재가 인간화한 것이 인(仁)이었고, 인애(仁愛)를 간직한 사람이 성실한 삶을 찾아 누리게 되어 있다. 개인의 성실함이 인간관계의 어진 마음으로 진화하며, 그 어질다의 근원이 하늘과 우주의 진리라고 믿었다.   서양의 중세기는 기독교 세계관의 시대였다. 그 안에서도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며 하느님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그 도는 내가 찾아서 발견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초월하는 실재’가 있어야 할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 도를 가르쳐 주는 정신적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자세로 살았다.   철학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종교적 신앙의 문제는 윤리적 한계를 넘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성실함의 한계를 넘어 실재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식보다 인륜적 삶의 가치를 포괄하면서 삶의 가치를 창출해 주는 더 높은 존재의 원천에서 주어진다는 논리다.   그것이 무엇인가. 철학의 동료들이 나에게 묻는 말이 그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도가 어떻게 종교적 신앙을 먼저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철학의 탐구적 본분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우리 세대의 선배였던 박종홍 교수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나는 철학적 진리의 여신 옷자락을 찾아 붙들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어도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신앙이 선행하면 진리의 여신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위한 성실성은 종교 신앙과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때는 세계 휴머니스트협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 회원들 속에는 유신론자가 없었다. 종교적 신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도가 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무신론 철학자의 저서도 읽었고 종교적 신앙이 없는 인생관과 세계관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내 종교적 신앙심을 더 승화시켜 주었을 뿐이다.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성실성의 선물이나 결실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성실성 플러스 경건성이었다.   경건성은 우리가 모두 지니고 있는 성실함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반(反) 비(非)성실함이 아니고, 성실을 내포하는 초(超)성실이다. 나에게 그런 신념을 갖게 해 준 철학자는 칸트였다. 그의 종교철학 제목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이다. 종교는 초이성적인 영역의 실재임을 암시해준다. 나는 칸트를 경건성을 지닌 철학자라고 느꼈다. ‘요청적 유신론’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경건성이 무엇인가. 나에게는 ‘기도하는 마음’이다. 내 인생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성실성을 갖춘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공자의 고백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도를 깨닫기 위해, 성실과 어진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편에 기도에 관한 얘기가 있다. 공자가 신병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자로(子路)가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얘기를 들은 공자가 내 건강을 위한 미신적인 기도는 원치 않으나 잘못을 뉘우치고 선을 실천하기 위해 신의 도움을 구한다는 뜻의 기도는 항상 드려왔다고 했다.   철학자 박종홍·김태길 교수의 귀의   공자에게만이 아니다. 친구인 김태길 교수도 기도드리는 말년을 지냈다. 박종홍 교수가 신앙인이 되고, 장례예배가 새문안장로교회에서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본 배종호 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들려준 병중의 사연과 신앙적 회심을 전해 들은 배 교수가 남긴 말이다. “그래, 박 교수도 갈 곳이 없었겠지”라고 했다.   그렇다. 종교적 신앙은 그런 체험에 뒤따르는 인생의 승화된 삶이다. 나는 14살 때 삶의 종말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저에게도 어른이 될 때까지 살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시면, 제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는 기도였다. 기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것이 신앙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철학의 진리는 선한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은 내 삶의 목표와 인간의 영구한 희망을 남겨 주었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기도 죽음 종교적 신앙심 종교 신앙 성실성 플러스

2022.12.30. 19:22

[글마당] 가을에 드리는 기도

산과 들녘에 이글이글 붉게 타오르는 단풍   지난 세월 싱그런 녹색 숲을 태워 버리고는   주님을 향하여 뜨겁게 달아오르는   아름다운 단풍이게 하소서   아 우렁찬 함성을 지르게 하소서       찬란한 그 수많은 잎사귀도 묵묵히 한 잎 두 잎 연이어   하늘 영광 높이 두시고   낮은 세상에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지금 땅 아래로 떨어지는 낙엽을 보게 하소서       밭에서 거둬드린 알곡 나무에 매달린 상큼한 과실   농부의 땀 흘린 수고와 풍족한 결실   얼씨구좋다절씨구좋다 지화자 좋구나   올해도 이민자에게 베푸신 놀라운 주님의 은혜   감사하자 감사하자 또 감사하자 풍성히 주신 주님께   가을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마감을 읽게 하소서       가을 길을 혼자 차분히 걷게 하소서.   마냥 당신을 찾아가는 본향이게 하소서   가을밤엔 당신과 마주하는 기도 드리게 하소서 김창길/ 목사·시인·뉴저지글마당 가을 기도 하늘 영광 알곡 나무 지난 세월

2022.10.21. 18:01

"기도하고 기도하니 모든 매듭 풀리더라"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열리는 한미국가조찬기도회 기조연설자로 초청된 김상복 목사를 14일 오후 버지니아 센터빌에서 만났다.   대한민국 기독교계의 대표적 지도자로 알려진 김상복 목사는 현재 할렐루야 교회 원로 목사이며 휏불 트리니티 신대원 대학교 명예 총장으로 목회와 미래 크리스찬 지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 목사는 현재 세계 성시화 운동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뉴저지 소재 갈보리 장로교와 인디아나 셰리단 미국인 교회에서 9년간 목회활동 후 볼티모어 벧엘장로교회를 개척, 11년간 재임했다.   김 목사는 “이번 한미국가조찬기도회의 주제가 ‘주님만 의지합니다(In God we trust)’"라고 소개하며 "이는 내 인생의 모토와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김상복 목사는 북한에 계셨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부모님은 이북에 계신데, 11살때 형과 누나를 따라 엉겁결에 남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래서 부모없이 고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 김 목사는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다. 사람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주님만을 믿었더니, 그가 나를 돌보셨다”고 회상했다. 이어서 김 목사는 “6.25 전까지는 북한에 교회가 3000개나 있었다. 그때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갖게 됐고, 남한에 와서는 중고등학교 때 새벽에 교회에 나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북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도 늘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미국에서 학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 목사는 1984년에 북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의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고민 끝에 1986년 북한을 찾았다.   북한에서 만난 어머니와 동생들은 "하나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너무나 잘 지내고 계셨다. 그는 "부모님 가족이 탈북 했고, 예수를 믿는 집안에다가,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자본주의자, 그리고 본래 고향이 부산이셨던 분들이라 숙청 1순위나 다름없었는데, 동생들 4명이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평양에서 안정되게 살고 있었다"며 "평생의 기도가 응답받는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도 나지 않고 환한 얼굴로 어머니와 포옹을 했다”는 김 목사의 얼굴은 행복함 그 자체로 피어났다.     36년만에 만난 어머니는 북한 체제하에서 신앙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혼자서 기도와 찬송을 이어오고 있었다. 김 목사는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에게 찬송가를 부르자고 했더니 똑똑하게 기억하고 계셨다”며 "교회가 없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 증인이 어머니"라고 했다.   끝으로 김 목사는 “인생은 수많은 매듭과 밧줄로 이어져있다. 기도하고 기도하니 모든 매듭들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으며,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응답 받을 때 주님과의 신뢰관계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주님과 신뢰관계가 생기면 마음속에 영적 라이프가 형성이 된다. 그러면 인생의 모든 매듭이 이해가 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매듭 가조찬기도회의 주제 가조찬기도회 기조연설자 볼티모어 벧엘장로교회

2022.10.1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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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기도와 정성에 감사할 따름..."

    페루 자원봉사 도중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현지에 고립된 북버지니아 한인 벤자민 정(43)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진 후, 각계에서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페루에서 버지니아로 생명보조장치 등 기구와 함께 이송하는데만 7만 5천 달러 이상이 필요한 가운데, 본보를 포함해 FOX5, NBC4 등 주류언론에 정 씨의 사연이 보도된 이후, 현재 고펀드미 공식 사이트에만 4만 4,212 달러가 모였다.   2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 씨의 아내 에밀리 벤데벤(39) 씨는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고 있으며 특히 한인 커뮤니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신문에 나온 번호를 보고 직접 전화해 준 분들도 있는데, 모두들 기도하고 있다고, 힘내라는 말을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와 함께 에밀리 씨는 "최근 간호사들이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욕창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욕창이 거의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해져 치료에만 15개 정도의 약을 쓰고 있어서 약 값도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그 부위에 살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갑자기 좋아지고 있어서 간호사들이 신기하다고 한다. 여러분의 기도 덕인 것 같다"고 정 씨의 치료상황을 전했다.     또한 그는 "하루라도 빨리 페루에 가고 싶다. 하지만 비자 문제도 있고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후원금을 더 모아야 한다"는 녹록치 않은 현실도 이야기 했다. "원칙적으로는 미국인이 페루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1년에 6개월이다. 그래서 내가 지난 7월에 페루를 출국해 내년 1월까지 입국하지 못한다. 그렇게까지 오래 남편을 혼자 둔다면 내가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긴급비자를 받기 위해 페루 영사관과 이야기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 한인타운인 버지니아 애난데일서 벤자민 정 종합보험사를 운영하던 정 씨는, 아내와 함께 고아원에서 봉사하기 위해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터지기 직전 페루로 향했다. 팬데믹 사태로 귀환이 늦어지며 현지 봉사에 헌신하던 정 씨 부부의 삶은, 지난 2월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로 산산조각 났다.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치료비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로 난관에 부딪힌 정씨 부부는 유일한 희망인 한인사회 등의 기부금을 통해 버지니아로 돌아갈 수 있는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 씨의 후원은 고펀드미(https://gofund.me/1c823225)를 통해 할 수 있다.     박세용 기자 [email protected]기도 감사 페루 자원봉사 북버지니아 한인 페루 영사관

2022.08.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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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의 기도

탈수와 폐렴의 고열에 시달리는   고통의 신음소리   방울 방울 혈관으로 스며드는     투명의 액체       창밖에 조용히 내리는 빗줄기   그 속을 뚫고 달리는 차량의 불빛       바라만 볼 뿐   아무 것도 할 수없는     무능의 순간들       조용히 기도 합니다   나의 남은 생의 길이가   누워있는 그의 생 보다 길다면   나의 남은 생의 반을     그에 생에 보태 주십시요   지금 할 수있는 단 하나의     기도입니다.       마음이 따듯해 지고   응답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안신영 / 시인시 기도 방울 방울

2022.08.18. 19:28

[문예마당] 나의 기도

  탈수와 폐렴의 고열에 시달리는 고통의 신음소리 방울 방울 혈관으로 스며드는   투명의 액체   창밖에 조용히 내리는 빗줄기 그 속을 뚫고 달리는 차량의 불빛   바라만 볼 뿐 아무 것도 할 수없는   무능의 순간들   조용히 기도 합니다 나의 남은 생의 길이가 누워있는 그의 생 보다 길다면 나의 남은 생의 반을   그에 생에 보태 주십시요 지금 할 수있는 단 하나의   기도입니다.   마음이 따듯해 지고 응답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안신영 - 1974년 도미 - 계간 문예운동 신인상 수상 - 재미 시인협회 회원 - 애틀랜타 문학회 전 회장  문예마당 기도 애틀랜타 문학회 재미 시인협회 계간 문예운동

2022.07.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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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합창으로 드리는 기도

화려한 꽃들의 속삭임을   바람에 흔들어 깨우면   따뜻한 마음이 솟아올라       순간의 교감에도   지친 삶 위에 단비로 내리는   소망으로 적신다       들숨이 하늘을 품으면   날숨이 산천을 물들여   님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손끝에 춤사위 실으니   신비로운 세상이 열린다       주저 없이 저무는 태양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   미세한 음정 모여서   무쇠도 녹이는 기도가 된다       새새 대대에   찬송과 영광 받으소서(다니 3, 52 )   아멘 박선원 / 시인·웨스트체스터글마당 합창 기도 찬송과 영광

2022.03.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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