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을 때다. 어느 해 겨울인가, 딸네 집에 다니러 왔다가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아미쉬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문명을 거부하고 그들이 믿는 종교에만 몰입하며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옛날 그들의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마차를 타고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철저하게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 공동체를 보고 오는 날, 나는 어렸을 적 불렀던 이원수 선생의 동요 ‘겨울나무’를 부르고 있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노래처럼 고독하고 쓸쓸하게 사는 아미쉬 마을의 사람들이 바로 그 겨울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저지로 옮겨와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많은 나무와 친구를 하며 살면서 나무를 고립과 은둔의 상징으로만 생각한 것이 잘못인 걸 깨닫는다. 뉴저지는 차를 운전하고 다니거나, 공원과 산책로를 걷거나, 눈에 들어오는 주변 곳곳이 울울창창 나무다. 봄은 없이 여름으로, 때론 초겨울 날씨 같은 황당한 기상이변 속에서도 나무들은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처럼 일제히 연초록색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좀처럼 세상을 따라가지 않던 큰 나무들도 교복에는 동참한다. 이곳 뉴저지 중부지역에는 낙엽 활엽수들이 많은데 뉴저지의 스테이트 트리인 붉은 참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단풍나무, 밤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개나리와 벚나무, 매화, 목련 나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 피우기에 한창이었다. 주 전체면적의 40%가 산림 지대인 뉴저지는 나무와 숲을 보호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다각적인 산림보호정책을 쓰고 있다. 특히 어느 동네에선 한 집이 3에이커, 5에이커씩 가진 넓은 사유지를 행여 용도 전환 할까 봐 ‘산림 유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과 기술, 자금까지도 지원하며 산림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나무를 키우고 보호하는 일을 사람을 키우는 일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가 있어 땅이 살고, 땅이 있어 사람이 사는 공존의 세상이다. 인근의 한 수목원에서는 ‘더 빅 트리 투어(The Big Tree Tour)’ 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뉴저지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와 보존 상태가 좋은 나무를 둘러보는 것이다. 특별히 큰 나무가 탄소 저장능력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잘 대응하며 산사태 예방과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그늘을 드리워 도심을 냉각시키는 등, 작은 나무에 비해 역할을 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한때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큰 나무, 큰 산, 큰 그릇, 큰 인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큰 인재를 육성하자는 목표를 내건 적이 있었다. 큰 나무의 생태학적인 장점만이 아니라 그 나무가 가진 공생과 협력의 품성, 그 큰마음이 배울 만하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요 ‘겨울나무’도 2절의 가사가 1절보다 더 뜻이 깊다.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낯선 길이라 조심스럽다며 3년 동안 운전을 쉬고 있던 아내가 이제 운전대를 잡았다. 모처럼 옆자리에 앉아 나무들이 도열한 산길을 여유롭게 지나다니면서 몇십년, 어쩌면 백 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나무들을 보며 경외심마저 느낀다. 그 큰 나무들은 지금 넓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 얘기를 바람결에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은 큰 나라다. 2차 대전 이후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 질서를 선도해온 선한 나라였다. 큰 나라의 지도자는 동맹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협량보다는 공공재적 가치와 신의를 지킬 수 있어야 하며 정권의 유지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대륙횡단 할 때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보고 온 4명의 큰 바위 얼굴들이 새삼 떠오른다. 큰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서 있으며,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고 있다. 스스로 큰 나무가 되지 못한 대신 내게는 인생에서 본받고 싶었던 큰 나무 같은 어른이 몇 분 계셨다. 그런데 세월이 무상해 한분 두분 떠나시고 만다. 아, 세월이, 세월이…. 김용현 언론인산골 이야기 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매화 이곳 뉴저지
2026.04.27. 21:07
종아리를 감아 흐르는 선선한 바람이 아직 여름을 가로막고 있는 오후, 뜰에는 어느새 순에서 자라 부챗살처럼 하늘을 향한 가지들이 무성하다. 위를 향한 가지는 볼수록 대견하다. 햇빛을 향한 가지들의 몸부림이 아래로만 잡아당기는 중력을 떨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력은 나무가 뿌리를 땅에 내리는 소중한 힘이다. 그러나 그곳에 매몰되면 나무는 자랄 수 없다. 나무는 바꿀 수 없는 중력이 아니라 나아갈 수 있는 햇빛을 바라본다. 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인가. 우리 역시 인생의 중력 속에 산다. 고통과 상처, 그리고 눈물과 한숨이 그들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잡아당긴다. 멈추게 하고 아픈 상처만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들 역시 외면할 수 없다. 뿌리를 내리는 힘은 바로 이 중력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붙잡혀버리면 자랄 수 없다. 나무가 햇빛을 향해 중력을 떨쳐 내듯, 우리도 하늘을 향해 몸과 마음을 펼쳐야 한다. 새순을 내고 위를 향해 가지를 뻗듯,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빛을 구하는 것이다. 잎을 펼치고 양분을 만들며 잎과 순을 자라게 한다. 그렇게 나무는 무성해지고 줄기는 굵어진다. 그런데 더할 수 없이 건강하게 위로만 자란 가지들이 곤란해지는 때가 있다. 위로만 힘을 받으며 훌쩍 혼자 올라가는 가지들은 그늘을 만든다. 성장이 또 다른 성장을 가리는 것이다. 게다가 아쉽게도 이렇게 웃자란 가지에는 꽃이 달리지 않고, 열매도 없기에 보람이 없는 가지, 곧 도장지라고 불린다. 꽃을 달고 열매를 맺으려면 농부는 가지를 누인다. 힘을 빼는 것이다. 그렇게 힘이 빠지면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위로만 올라가며 굵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누워야 한다. 열매는 그때 맺는다. 신앙의 현장에서도 성장을 위해 애쓰는 성도를 만난다. 소중한 가지들이다. 그러나 온 힘이 자기 성장에 몰려 있다면, 잎은 무성하고 가지는 굵어지고 힘은 넘치지만 꽃은 달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혹시 그늘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힘을 빼고 겸손을 담아야 한다. 열매는 그곳에 맺힌다. 나무의 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햇빛을 받아 만든 양분으로 잎, 줄기 그리고 뿌리가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양분의 꽤 많은 부분을 뿌리가 다시 땅으로 내보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나온 달콤한 양분은 땅을 먹이며 살리고 그 땅은 다시 나무를 붙든다. 우리 역시 이렇게 버리는 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햇빛으로 만든 양분을 땅에게 내어주듯,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야 한다. 오늘 당신이 세상에 흘려보낼 달콤한 양분은 무엇인가.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양분 나무 자기 성장
2026.04.20. 21:08
매년 이맘때가 되면 풍성한 과일 오렌지가 주렁주렁 노란 춤으로 바람에 일렁인다 다른 나무 잎은 다 떨어져 겨울잠 자는데 짙은 녹색 오렌지 나무 사시사철이 없는가 보다 그래도 다른 나무처럼 어느 봄날 사철 잎 속에서 꽃은 하얗게 피어나고 벌들은 그 향기 따러 달려온다 묵은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게 매달린 새 열매 뜨거운 여름 숨어지내더니... 먼저 달린 오디, 자두, 살구, 복숭아, 무화과, 석류 제치고 주먹 쥔 아기 손만큼 커간다 그리고 아침저녁 서늘한 가을바람 따라 여름내 준비해 둔 황금색 물감 열매마다 물들이고... 오렌지 나무도 기원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구 창조 셋째 날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그 후 많은 나라 여러 지역으로 다니면서 황금색 열매 맺는 오렌지 나무 지금도 그 셋째 날 창조의 신비를 말하고 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오렌지 나무 오렌지 나무 창조주 하나님 황금색 물감
2026.02.12. 18:16
코퀴틀람시가 주택 공급 확대와 도심 녹지 보존이라는 난제를 놓고 현금 대체 제도를 도입하는 강수를 뒀다. 주 정부의 강력한 주택 공급 정책으로 단독 주택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밀도 타운하우스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심에 나무를 심을 공간이 사실상 부족해진 데 따른 조치다. 시 당국은 개발 부지 내에 나무를 심을 공간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개발업체가 이를 현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지난 24일 시의회 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시유지에 새로운 나무를 심거나 사유지 주인이 나무를 심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 재원으로 활용된다. 타 지자체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이 제도는 개발 밀도 상승으로 식재 공간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내년 봄 공개될 도시 숲 관리 전략 초안에 따르면, 시는 기존에 세웠던 ‘도시 면적 중 나무가 덮고 있는 비율(수관 피복률)’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 계획이다. 현재 코퀴틀람의 도시 전체 면적 가운데 나무가 덮고 있는 비율은 52%이지만, 실제 개발 가능한 도심 지역만 놓고 보면 33%에 불과하다. 메트로 밴쿠버가 2020년에 발표한 자료와 비교하면 메이플 릿지와 웨스트 밴쿠버보다 낮고, 버나비와 포트 코퀴틀람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는 2050년까지 40%를 달성하겠다는 기존 목표 대신, 전략 기간 안에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새 목표를 세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현금 대체 프로그램 외에도 시유지에 다양한 수종과 크기의 나무 식재를 늘리고 43교육구와 협력해 학교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현재 버크 마운틴 지역 개발업체에만 적용되던 나무 대체 정책을 코퀴틀람 전역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실무진 차원에서 건의됐다. 지난 24일 회의에서는 현행 조례의 허점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사유지 소유주가 허가 없이 연간 두 그루의 나무를 베어낼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이 도심 숲 보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시의원들은 코퀴틀람이 타 도시에 비해 양호한 녹지 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감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우려하며 사유지 내 식재를 장려하는 정책 보완을 주문했다. 메트로 밴쿠버 광역 정부 차원에서도 주 정부의 주택 관련 법안이 나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곧 내놓을 예정이다. 밴쿠버 중앙일보고육지책 나무 나무 식재 가운데 나무 웨스트 밴쿠버
2025.11.27. 17:46
LA한인타운에서 절도범들이 나무를 타고 콘도 2층까지 침입, 귀중품을 훔쳐간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주택 절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피해가 발생한 유닛은 한인 최모씨 집으로 최씨는 “옆집도 세 달 전 동일한 수법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말해 타운 내 주택침입 절도 사건의 심각성을 반영했다. 최씨는 “당시 범인들은 우리 집 발코니를 거쳐 옆집으로 넘어갔다”며 “단지 구조를 잘 아는 동일범의 소행 같아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피해가 발생한 콘도 단지는 타운 마리포사와 1가 인근에 있다. 피해자 최씨에 따르면 범인들은 콘도 뒤편에 있는 나무를 타고 2층까지 올라왔다. 콘도 내부에 설치된 CCTV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히스패닉계 남성 3인조가 찍혔으며, 외부에 차량 한 대가 대기 중인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집안에 침입한 절도범들은 거실에만 설치된 CCTV부터 끄는 치밀함을 보였고, 이후 샤넬·루이비통 등 명품 가방과 롤렉스 시계, 결혼 예물 등 고가의 물품을 훔쳐 도주했다. 최씨는 피해액이 6만 달러가 넘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6일 오후 8시 30분 전후로 가족이 외출한 틈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귀가해 보니 옷장과 서랍이 모두 열려 있었고 가구로 현관문을 막고 있었다”며 “딸과 단둘이 사는데 절도범들이 언제 또 침입할지 몰라 무섭다”고 덧붙였다. 콘도 단지에 시큐리티 가드가 있지만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교대시간이라 자리가 비어 있다는 최씨는 “옆집도, 우리 집도 그 시간대를 노린 것을 보면 동일범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내놨다. 최씨는 사건 직후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는지 아직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보험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할 상황이다. 최씨는 “보험사 측에서 귀중품은 3개월 내 구매분만 보상 대상이라고 한다”며 “발코니 문 교체비 정도만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건 이후 거실과 방마다 보안업체와 연결된 CCTV를 설치했고, 발코니 쪽에는 쇠창살도 달 예정이다. 그런데 쇠창살 설치 비용이 3000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LA한인타운을 관할하는 LAPD 올림픽 경찰서 통계에 따르면, 주택 침입 절도는 올해 7월 13일~8월 9일 사이 34건에서 8월 10일~9월 6일 사이엔 49건, 9월 7일~10월 4일 사이엔 55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강한길 기자절도단 나무 절도단 나무 주택침입 절도 타운 콘도
2025.10.15. 21:07
라메사 시가 비영리단체 트리 샌디에이고와 손 잡고 무료 나무 나눔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오는 10월 25일 오전 10시 라메사시 공공사업부(8152 Commercial Street, La Mesa)에서 진행되며 시 주민 100명에게 선착순으로 나무가 제공된다. 나무 수령 희망자는 구글 폼을 통해 사전에 신청해야 한다. ▶문의: (619) 463-6611 (라메사시)라메사시 나무 라메사시 나무 무료 나무 라메사시 공공사업부
2025.09.18. 20:50
LA한인타운내 카페의 역사를 떠올리면 마치 턴테이블 위 LP판에서 흘러나오던 ‘지직’하는 추억의 소음이 들리는 듯하다.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그 시절, 어두운 조명 아래 흘러나오던 음악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밤은 젊었고, 우리는 불안했지만 자유로웠다. 1980년대 말 타운 카페의 대표 주자는 전설의 ‘옥스포드 카페’다. 현재 솔에어 콘도 뒤편 메트로 버스 정류장이된 건물에서 성업하며 X세대들의 아지트로 불렸다. 비슷한 시기 한인타운의 카페들은 커뮤니티의 필요에 응답하며 저마다 색깔을 찾아갔다. 6가와 세라노 쇼핑센터의 ‘난다랑’이나 웨스턴 길의 ‘제임스딘’은 당시 서울의 유행을 그대로 옮겨온 공간들은 고국에 대한 향수와 선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무단으로 이름을 빌린 짝퉁 카페였지만 그땐 그랬다. 한국에서 잘나가던 업소 이름을 가져다 쓰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한국의 최신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만족감은 이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카페는 한인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며 그 용도를 확장했다. 크렌셔 길의 ‘두발로’는 넓은 주차장을 갖춘 단독 건물에서 커피와 경양식을 팔던 소박한 공간으로 시작했다. 풋풋한 소개팅과 첫 데이트의 명소였던 이곳은 주류 라이선스를 얻은 뒤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으로 바뀌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현재는 ‘EK 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두발로와 유사하게 경양식집으로 출발했던 윌셔 길의 ‘안전지대’는 주부들의 계모임 장소로 인기를 끌다가 야외 활어집으로, 현재는 ‘명동교자’로 완전히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90년대 한인타운의 경제적, 문화적 성장은 카페의 질적 도약으로 이어졌다. 올림픽 길의 ‘강서회관’ 사장이 개업했던 ‘카페 모네’는 한국 호텔 주방장을 초빙해 선보인 정통 경양식으로 격조 높은 미식 공간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켰다. 비슷한 시기 필자도 카페를 운영했다. 윌셔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할리우드의 전설이 깃든 ‘오리지널 브라운 더비’ 자리에 ‘카페 나무하나’를 개업했다. 클라크 게이블 등 전설적인 무비스타들이 찾았던 곳이다. 또 이 자리에서는 전 필리핀 대통령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가 필리핀 레스토랑 ‘비아 마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둥근 돔 형태의 건물은 마치 중절모를 연상케 했고, 내부 한가운데 진짜 나무 한 그루를 세워 ‘나무하나’라는 이름에 걸맞은 공간을 연출했다. 한쪽에서 속삭인 말이 반대편 테이블에서 들릴 정도로 신기한 구조였다. 얼마 후 길 건너 채프먼 플라자에 있던 필리핀 식당을 유학생 출신 지인이 인수해, 일본에서 유명한 ‘인터크루’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당시엔 교포들이 ‘나무하나’를, 유학생들이 ‘인터크루’를 찾으며 손님층이 자연스레 나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6가 세븐일레븐 건물(현 카페 블루)에는 서정적인 이름의 ‘마로니에’가, 멜로즈 길 언덕에는 ‘몽마르뜨’가 문을 열었다. 윌셔 라마다 호텔 자리에는 ‘모아모아’, 라브리아 길에는 중장년층을 위한 ‘카페 라브리아’, 베벌리와 버질에는 프라이빗한 다이닝룸을 갖춘 ‘카페 코코’ 등이 속속 등장하며 한인타운에 카페 전성시대를 열었다. 옥스포드길의 ‘카페 콘체르토’는 일식 체인 ‘옌’ 사장이 시작했으며, 이후 6가 재개발로 ‘카페 하우스’를 정리한 사장이 인수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 옆 ‘카페 메트로’로 시작했던 공간은 한국 톱모델 출신 재일교포 사장이 ‘앙주’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뒤, 현재의 ‘치킨수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최근 주택을 개조한 ‘카페 더반’이나 ‘카페 지베르니’의 등장은 또 다른 변화를 시사했다. 화려함보다는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이 공간들은, 이제 한인 커뮤니티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넘어 자신들의 진정한 ‘쉼터’를 필요로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나무 기억 옥스포드 카페 타운 카페 카페 모네
2025.08.24. 17:09
어드레스(set up)는 스윙을 위한 최초의 자세로 스윙 궤도는 물론 구질과 탄도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산실이다. 이 자세는 신체 조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본을 망각하면 스윙의 기본 틀을 벗어나 의도하는 스윙을 구사할 수 없다. 잘못된 어드레스는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잘못된 습관에서 생겨나지만 바른 자세를 갖고 있다 해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유지가 된다. 연습장이나 코스에서 슬라이스나 훅이 발생하면 대다수 골퍼는 스윙을 탓할 뿐 근본 원인인 어드레스에는 미온적이다. 상반신을 뻣뻣하게 세우는 유형의 골퍼는 자연히 양손이 몸과 가까워 슬라이스가 자주 유발되고 볼도 많이 떠 비거리손실도 크다. 반대로 상체를 지나치게 숙이면 당연히 양손이 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운스윙에서 힘을 분산시켜 단타의 원인도 있지만 악성 슬라이스와 훅도 동반한다. 따라서 양손과 몸 사이의 공간 확보, 즉 어떤 클럽을 잡더라도 몸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올바른 백스윙과 다운스윙 궤도를 만들 수 있다. 이같이 일정한 간격에 대해 확고한 답을 알고 있는 골퍼가 의외로 적다. 또 드라이버와 숏아이언은 양손 간격이 각각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퍼팅 자세를 제외한 13개 클럽의 몸(허벅지)과 그립(양손)의 간격은 거의 그 간격이 동일해야 한다. 만약 클럽마다 간격을 달리해야 한다면 스윙자세는 아마 13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길이가 긴 우드라고 몸과의 간격을 멀리하고 숏아이언이라고 양손을 몸에 가깝게 두는 골퍼도 있다. 아울러 이에 대한 이론도 천차만별이다. 자세와 스윙은 단순해야 한다. 생각이 많고 준비 과정이 복잡하면 그만큼 정신집중이 어려워 그 반응은 샷으로 연장된다. 어드레스에서 상체를 앞으로 숙일 때 명심할 것은 고양이 등처럼 굽히지 말고 등판을 펴야 하며 엉덩이를 앞쪽으로 끌어들이면, 양 무릎에 체중이 쏠려 자연스러운 어드레스 자세는 물론 스윙에 치명적인 실수를 발생시키다. 즉, 무릎을 펴고 엉덩이를 뒤로 뺀 후, 엉덩이가 전방으로 딸려 들어오지 않도록 한 뒤 무릎을 살짝 굽혀야 한다. 이를 정확히 확인하려면 클럽을 잡지 않은 채 실제로 볼 앞에 어드레스를 해 보는 것이다. 이때 양손을 지면으로 늘어뜨리면 양 손가락의 끝은 양발의 엄지나 발등과 수직이 된다. 이렇게 늘어진 양손을 변형시키지 말고 합쳐진 위치는 드라이버나 숏아이언에 상관없이 ‘몸과의 간격’이 된다. 또 다른 주의 사항은 어드레스에서 턱 끝이 앞가슴을 향하지 않고 수직으로 양손을 향하도록 해야 백스윙에서 왼쪽 어깨가 턱에 걸리지 않고 유연한 스윙을 구사할 수 있다. ▶www.ThePar.com에서 본 칼럼과 동영상, 박윤숙 골프 클럽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박윤숙 / Stanton University 학장골프칼럼 나무 떡잎 다운스윙 궤도 양손 간격 어드레스 자세
2025.06.26. 21:02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다. 빨간 꽃, 노란 꽃, 파란 꽃, 분홍 꽃을 그렸다. 마지막에 칠한 보라색 꽃이 마음에 들어서, 내친김에 나무도 칠했다. 짝꿍이 그걸 보고 세상에 보라색 나무는 없다고 했다. 하긴 나도 본 기억이 없었다. 곧 줄반장이 숙제를 걷기 시작했고, 다른 색으로 덧칠할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제출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나의 보라색 나무를 가리키며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반 아이에게 그 말은 비꼬는 말로 들렸다. 방과 후, 그림을 아빠에게 보여주며 시무룩하게 친구들의 반응을 얘기했더니, “이 넓은 세상천지에 왜 보라색 나무가 없겠니.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빨간 나무도 있고 은행나무는 노랗기만 하다. 속상해 하지 마라. 조물주가 어딘가에 만들어 놨을 거다.”라고 하셨다. 그 보라색 나무를 LA에 와서 처음 봤다. 자카란다는 황홀한 보랏빛 꽃을 피운다. 많은 꽃이 핀 자카란다는 나무 한 그루가 다 보라색으로 보인다. 바로 내가 그렸던 그 보라색 나무다. 아빠가 맞았다. 조물주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내 말을 들어주고 가능성을 믿어주던 아빠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다. 그는 처음 두발자전거를 탈 때 뒤에서 밀어줬고, 팽이 치는 법과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고, 다 낡은 모기장으로 잠자리채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겨울이면 꽁꽁 언 논바닥 위에서 함께 만든 연을 날렸다. 한여름에는 동생과 나를 냇가로 데려가 돌 틈과 수풀을 뒤져 작은 물고기도 잡았다. 미꾸라지를 놓쳐도 신바람이 났다. 아버지. 그는 나의 커다란 우산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마음 놓고 들녘에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으러 다녔고, 털이 수북해서 만지기조차도 무서웠던 할미꽃도 단숨에 꺾었다. 따로 과외 공부를 시키거나 피아노 학원을 보낼 만큼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내 행복의 척도는 아마 아버지와 함께했던 감정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던 때와 형통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던 아빠가 있었기에, 그를 기억하기에, 힘들고 어려웠던 날을 버티며 지냈다. 그리고 그날들도 어김없이 냇물이 흐르듯이 떠내려갔다. 만약에 딸이 보라색 크레용으로 하늘을 칠한다면, 난 자신 있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말하련다. “이 넓은 세상천지에 왜 보라색 하늘이 없겠니. 노을이 질 때 하늘은 오렌지색으로 변하고, 눈 오기 전의 하늘은 어린 비둘기 털 같은 엷은 회색을 띠기도 하는데”라고.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보랏빛 하늘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보라색 나무 보라색 나무 보라색 하늘 보라색 크레용
2025.06.12. 18:32
한인타운청소년회관(관장 송정호·KYCC)이 지난해 A2O 엔터테인먼트 설립자이자 비저너리 리더를 맡은 이수만 프로듀서와 손잡고 출범한 ‘나무 심기 프로젝트’가 125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모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 KYCC는 지난달 28일 이번 프로젝트가 지난해 9월 이 프로듀서의 50만 달러 기부로 시작됐으며, 이후 KYCC 측이 후원자들로부터 75만5000달러 이상의 추가 후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나무 심기 행사가 지난달 23일 LA 한인타운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송정호 KYCC 관장을 비롯해 이수만 프로듀서, A2O 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 ‘A2O메이’ 등이 참석했다. 현재까지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통해 LA 전역에 1000그루 이상의 친환경 나무가 심어졌으며, 500명 이상의 지역 청소년 및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주요 식재 지역은 한인타운을 비롯해 사우스 LA, 피코유니언 등으로, LA시 내에서도 환경적 부담이 가장 큰 지역들이다. 이 프로듀서는 “나무를 심는 것은 다음 세대에 투자하는 일”이라며 “예술가로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하며, 그 시작은 우리가 사는 지역 사회”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게시판 이수만 나무 이수만 프로듀서 친환경 나무 나무 심기
2025.06.05. 20:38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안도현의 〈나무 생각〉 중에서 산불의 피해가 워낙 커서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앞날이 아득하다. 그래도, 피해자 돕기에 마음이 모이고 이런저런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어 다행이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작은 힘이나마 모아야 할 때다. 이런 시절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일이 무슨 소용인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간절하게 찾으면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까? 그런 생각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고…. 산불로 많은 나무들이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나무들은 죽어서도 당당하게 서있다. 어쩌면 나무는 슬픔을 이겨내고 분노를 다스리는 슬기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나무를 닮고 싶다. 주어진 날을 묵묵히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나무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 나이 많이 드신 나무를 만나면 절하고 싶어진다. 긴 세월 살면서 묵묵히 지켜봐 오신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며 자연의 중심을 이루고 인간들을 지켜주는 거룩한 생명이다. 산과 숲을 지키는 영험한 나무, 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어머니품 같은 동수(洞守)나무… 거룩함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 우리 주위에 푸르게 서있는 나무뿐만이 아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살아서 인간을 보살피며 함께하는 고마운 존재다. 나무는 죽은 뒤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그래 왔다. 시멘트와 철제, 플라스틱 등이 일상화되기 전에는 나무가 우리 삶의 거의 전부를 지탱해주었다. 나무와 더불어 숨 쉬며 살았다. 이렇게 한평생을 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나무 상자에 담겨 땅에 묻혔다. 실제로 우리 삶은 집을 비롯해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무를 만난다. 기둥, 석가래, 대들보, 천장, 추녀, 처마, 마루, 대문, 문틀, 창틀, 담장, 울타리 등 집의 뼈대… 책상, 걸상, 옷장, 반다지, 식탁, 뒤주, 장작, 칼도마, 소쿠리, 함지박, 젓가락, 떡살 같은 살림살이… 수레나 배 같은 교통수단… 거문고, 가야금, 피리, 북 같은 악기들… 다양한 탈과 장승들… 육모방맹이, 몽둥이, 회초리, 형틀, 홍두깨, 말뚝… 온갖 연장, 자루… 대장경판, 나무로 깎은 불상, 목탑, 목탁, 목어 같은 종교용품… 붓, 캔버스 틀, 액자… 등등 모두 죽어서도 살아있는 나무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을 눕히는 관도 나무다.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변신은 목조건물, 목조각, 목공예품 같은 예술품들일 것이다. 일본에 남아있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이나 백제관음상 같은 삼국시대 불상을 대하면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을 그윽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나무의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 천년이 지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 대패질을 해보면 지금도 질 좋은 나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이 나무의 생명의 길이입니다.” -니시오카 쓰네가즈 〈나무에게 배운다〉중에서 이제 비가 내리고 봄이 오면 타죽은 나무 아래에서 아기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왁자지껄하며 노래할 것이다. 죽은 나무 등걸 아늑한 틈새에서 아기 나무들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너무 슬퍼 마세요, 우리가 대신할게요. 할 수 있어요. 따스한 햇살도 세월도 새소리도 모두 우리 편인걸요. 걱정마세요.”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흘러오고 흘러간다. 나무에게 배우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꿈이 너무 야무진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나무 나무 생각 아기 나무들 대장경판 나무
2025.02.06. 18:10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관장 송정호)이 USC, LA 위생국과 손잡고 LA 도심에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 2일 KYCC는 USC의 도심 나무 심기 프로그램(USC Urban Trees Initiative)의 일환으로 프로젝트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나무 심기는 오는 9일 오전 9시 USC 인근 유니버시티 파크(1451 W Dana St)에서 시작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유니버시티 파크 인근에 나무 24그루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 진행될 예정이다. KYCC 측은 LA 지역 내 가로수가 부족한 곳에 나무를 심어 녹지 공간을 확장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KYCC는 USC, LA 위생국과 협력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무 250그루를 순차적으로 심을 계획이다. 그동안 축적된 LA 지역 나무 현황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니버시티 파크, 엑스포 파크, 사우스 LA, 애덤스-놀먼디 등 지역에 나무를 심게 된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와 별개로 KYCC는 자체적으로 한인타운 내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현재(11월 4일 기준)까지 나무 502그루를 심었으며 앞으로 177그루를 추가로 심을 예정이다. 김경준 기자도심 나무 도심 나무 나무 심기 나무 502그루
2024.11.04. 18:47
리앤리 갤러리(관장 이 아녜스)가 목원 이지만의 첫 서각 개인전을 개최한다. 11월 2일부터 12일까지 ‘나무의 숨결을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약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이오아에 거주하는 작가는 작고하신 아버지의 유작품을 통해서 2014년 서각을 접하게 됐다. 매년 2회 한국을 방문하면서 인천에 있는 목우서각문화에서 서각을 공부했다. 서예는 글빛박혁남, 서각은 목우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꾸준히 사사받았다. 10년 동안 한국의 전통 서각은 물론 현대서각을 두루 섭렵했다. 2015년 코리아 아트 페스타전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미국 등 많은 아트페어와 해외전에 참여해 전통예술의 아름다움과 서각의 보급에 힘쓰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서예문인화 대전과 인천 서각 대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주소:3130 Wilshire Blvd. #502. LA ▶문의:(213)365-8285 이은영 기자 이은영 기자나무 숨결 나무 숨결 목우 정기호 코리아 아트
2024.10.27. 17:47
무슨 고백을 하고 돌아섰기에 저리도 와들와들 떨고 있을까 샛노랗게 들뜬 얼굴로 호숫가 수면을 울렁울렁 흔들어 놓고 햇살 깨문 사금파리 돌아눕듯 해반닥해반닥 눈 부셔라 언제였던가 너 때문에 바르르 떨었을 때는 살금살금 뒤따르다 멈춰선 너와 얼굴 부딪힌 때는 무시로 파닥이는 이 마음의 책갈피에 아스펜 잎 하나 끼워 넣는다 노랑이 가을이란 비숍 단풍길 떨어진 잎을 주워본다 푸르르던 날들 있었지 저 하늘이 온통 내 것인 날들 있었지 떨어진 잎새들이 그들 발등 위에 노랑으로 고요하다 가을이 점점 옅어지고 남은 잎도 다 떨어져 발목에 차면 앙상한 나뭇가지엔 흰 눈이 찾아들겠지 계절의 끝에 서 보면 알 것도 같아 너라는 바람도 나라는 잎새도 사시나무 떨듯 한다는 애처로운 문장도 한때의 떨림이었음을 홍유리 / 시인문예마당 아스펜 나무 아스펜 나무 호숫가 수면 비숍 단풍길
2024.10.17. 18:51
어떻게 나무가 술을 마시고 취한단 말인가. 10여년 전 알래스카 여행에서 보고 느꼈다. 랜드-기차-크루즈를 포함한 2주 일정이었다. 리버 크루즈는 좁은 알래스카 해협을 지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갑판에 나가 바다를 응시했다. 순간 큰 바위틈에 서서 심하게 흔들리는 나무를 보았다. 왜 나무는 바위에서 태어났을까. 추운 햇볕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영양분은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을까. 나무가 무척 불쌍하게 보였다. 나무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다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돌아와서 ‘술 취한 나무들’이란 시를 썼다. 너무 춥고, 외로워서 독주를 마셨어요. 용서해 주세요. 9월 22일, 일요일 아침 6시 50분경 바닷가 공원 산책을 나갔다. 해가 늦게 떠선지 어둠이 완전히 걷힌 것 같지 않았다. 공원 입구로 들어가는데 옆에 있는 크레일에서 한 젊은 남자가 나오고 있었다. 모자에서 푸른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어두운 숲속을 걸으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는 바다 가까이 가서 매트를 깔고 앉았다. 떠오르는 해를 보고 절을 하려는 무슬림인가? 바닷가 공원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동이 트고 공원이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사람들이 중국인 낚시꾼들이다. 요즘은 손바닥만 한 작은 고기가 잘 잡히는 것 같다. 10여명이 중국말로 떠들면서 낚싯줄을 던지고 고기가 물리기를 기다린다. 반나절에 작은 한 양동이는 잡는 것 같다. 이어서 개를 끌고 사람들이 나온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굿모닝, 나이스 데이 하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매일 빠른 걸음으로 땀을 흘리며 80분을 산책한다. 요즘 같이 낮 기온이 70도로 올라가는 날에는 노인들이 접는 의자를 갖고 나와 책을 읽고 오수를 즐긴다. 어떤 사람들은 점심을 가져와 하루 종일 지낸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어둠이 내리면 공원 관리인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공원에 정적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떠나면 자연과 다람쥐들이 공원을 온통 차지한다.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어제 산책에서 높은 전봇대 위에 새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낳은 둥지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어미 새가 떠난 것을 발견했다. 그 작은 부리로 어떻게 큰 가지를 물어다 집을 지었을까. 새끼들은 어미 품을 떠나고 집은 축이 허물어져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마 내년에는 더 높고, 견고한 집을 지을 것이다. 바닷가 공원에는 거위가 풀밭에 쳐들어오고 잘 훈련된 개를 풀어 거위를 쫓는 차가 온다. 가을이 오면서 거위 떼는 줄어들고 새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잔디를 덮는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로에 작은 사슴이 차에 치여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차를 세우고 유심히 보았다. 숲속에서 불빛을 보고 달려온 사슴이었을 것이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공원은 한적해질 것이다. 나 같이 아침 산책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은 추워도 온몸을 감싸고 80분을 걸을 것이고 개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노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눈이 내리고, 찬 바람이 불면 바닷가 공원은 인적이 뜸할 것이다. 마을 가까이 사는 나무들은 알래스카 바위틈에 있는 나무들만큼 외롭지는 않겠지. 독주를 마시고 바람에 흔들려 억지 춤을 추지도 않을 것이다. 어둡고 외로워서 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일 것이다.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나는 더욱 혼자가 될 것이다. 어둠이 싫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여명이 밝으면 바닷가 공원에 나가 새들이 잘 있는지 두리번거릴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나무 바닷가 공원 공원 관리인들 공원 입구
2024.09.25. 21:30
나무들의 봄맞이는 눈밭에서 시작된다 제 안에 빛 들이는 먼동의 설렘 뿌리 깊은 기다림에 불이 붙으면 밤이 깊어도 어둡지가 않다 눈 감아도 떠오르는 빛 울림으로 저도 모르게 봄 길을 연다 유병옥 / 시인시 봄맞이 나무
2024.02.29. 19:32
나는 나 자신을 작은 새에 종종 비유합니다. 허드슨 강가에 앉아 뉴저지를 바라봅니다. ‘아무리 날갯짓해도 저 넓은 강을 건너지는 못할 것 같다’며 건너다보기만 하는 작은 새 말입니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이 크게만 보입니다. 비디오 작품을 전시하는 어두컴컴한 커다란 갤러리에 들어서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출구를 향해 날개를 퍼덕거리다 밖으로 나옵니다. 대형 미술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거창하고 크고 많아서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종종거리다 나와 계단에 앉아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센트럴파크와 리버사이드 공원 주위만을 맴돌던 나는 어찌어찌하다가 차이나타운 캐널 스트리트까지 원정 갔습니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순간, 작은 새는 허드슨 강을 따라 내려오다 날갯짓을 멈추고 아늑한 공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작은 작품들이 3면의 벽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왔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아주 작은 작품들이었습니다. Alexa Grace 작가의 작업입니다. 작가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렉사 그레이스의 일러스트 조각은 부드러운 말투와 절제된 재치가 돋보이는 연약한 작품입니다. 각 작품은 작은 만화 캐릭터가 배우로 등장하는 작은 무대 세트와 같습니다.’ 작은 남자가 그 작은 공간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반겼습니다. 만약 커다란 남자가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오래 그곳에 머물지 못했을 것입니다. 갤러리 겸 본인의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짙은 회색 작은 상자 속 상자 그 안에 더 작은 상자 작업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다고도 할 수 있지만, 느낌은 전혀 다른 미니멀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분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미술품 보관 및 보호를 위한 상자 제작을 26년간 했습니다. 임기가 끝나자, 미술품 전시, 창작,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 갤러리 겸 작업장인 공간을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그분과 헤어지면서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입니다. 내 이름 ‘수임’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예전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내가 그날은 그 작은 모든 것에 매료되었던지 “기억해 줘요. 내 이름은 swim, 수영하는 것 말이에요.” 양손으로 수영하는 시늉까지 곁들였습니다. “나 수영하는 것 좋아하는데. 이제는 하지 못해요.” 그분이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어머 이렇게 오랫동안 서서 이야기할 정도면 다리가 튼튼하지 않나요?” “아니 무릎을 구부릴 수는 없는, 그냥 한 그루의 나무 같은 다리예요.” “어머! 나는 한 마리의 작은 새로 나무인 당신의 가지에 종종 놀러 와 쉬었다 가도 괜찮겠어요?”라고, 툭 튕겨 나오려는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그는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우리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들어가겠다며 배웅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나무 비디오 작품 상자 작업 상자 제작
2024.02.09. 18:13
금방 하루해가 저물었다. 뉘엿뉘엿 흐린 하늘에도 분홍의 노을이 진다. 붉거나 보라의 것에서 풍기는 강렬함 보다는 꿈같은 아련함이 온 몸에 소복히 내려앉는다. 새들도 제 집으로 날아가 버리고 토끼도 제 보금자리를 찾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등을 기대야 하는 어둠이 오고 잠깐만에 세상은 고요 안에 스스로 잠겼다. 숨죽이고 견디다 보면 저 깊숙이 살아나는 것들이 보이고 지나쳤던 꿈들이 노래가 되어 가까이 들려온다. 나무의 꿈은 영글어 가는데…. 숲속에 걸터앉은 나무가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가지마다 제 몸무게만큼이나 눈송이를 안고 있어도 도무지 흔들리는 일이 없다. 살아 있으나 죽은 듯 전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숲으로 돌아가 누웠다. 별빛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깊이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혔다. 어둠 저편 언덕 너머에 동이 트고 있었다. 팔을 뻗어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되돌아왔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별빛이 스치고 간 한 밤의 짧은 미련도 사라진 시간.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한 마디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팔베개를 했다. 나무를 향해 누웠다. 나무는 잠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이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네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이고, 겨울 가지를 닮은 봄으로 뻗은 뿌리처럼 깊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시인, 화가) 눈 덮인 뒤란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모두 잠들은 이른 아침 하루가 깨어 나는 숲에서 건져 올린 사랑이라는 단어 사랑이 사랑이 되지 못하는 너를 잃고 나마저 잃은 세상에 새벽으로 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깨부터 기대오는 내 안 가득 당신입니다 총총걸음으로 구름길로 걸어야 하는 곳 한 평 남짓 발 뻗은 자리에도 가는 햇살로 녹이시고 흐르는 새벽으로 챙기시는 그대의 긴 손, 향기 장독대 장들이 느리게 익어가는 별빛 아래 희끗희끗 하얀 새치처럼 눈발이 날리고 나이 먹는 어리둥절 속에 사랑을 느리게 깨달아 갈 때 아픔이 무르익기 전 그대는 잠들어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손 나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을 꼭 닮은 그대의 손은 약손입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새벽 나무 둥지 새벽 커튼 단어 사랑
2024.02.05. 13:36
지난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간신히 버티고 있던 집 앞의 단풍나무 잎새들이 다 떨어져 버렸다.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들이 없어지자 나무의 몸통과 가지들이 앙상하게 드러났다. 화려했던 모습을 다 내려놓고 벌거벗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부쩍 늙어 보이는 것 같아 거울 보기가 싫다. 팽팽했던 얼굴 피부가 탄력을 잃고 주름도 부쩍 많아졌다. 흰머리가 섞인 푸석한 머릿결은 생기가 없다. 게다가 옛날 할머니 같은 헤어스타일로 더욱 노인처럼 보인다. 거울을 보고 나서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됐지?” 한숨을 푹 내쉬며 옆에 있는 남편에게 공연히 짜증을 내면, 남편은 말한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그대로 받아들여. 늙어서는 품위 있게 보이는 것이 최고야. 고상한 외양에만 신경 써.” 누구나 살아온 만큼 나이를 먹고 늙는다. 까맣게 윤기 흐르던 머릿결은 거칠어지고 희끗희끗해진다. 피부는 늘어지고 눈도 처지기 시작하면서 세월을 실감케 된다. 그때부터 대부분이 머리 염색 등 젊어 보이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최근 한국 방문에서 느낀 것은 젊은 여성들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연예인 등 자주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은 성형수술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연예인 가운데는 예전 TV에서 봤던 젊은 시절의 얼굴을 지금도 유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보톡스를 너무 맞아 내가 보기에는 얼굴이 망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이 든 사람은 젊게 보이려고, 젊은이는 더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한다. 요즘은 쌍꺼풀이나 코 수술 정도는 스스럼없이 공개하기도 한다. TV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가수는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두 번이나 했다고 밝혀 놀랐을 정도다. 참 용기가 대단하다. 지난여름 프랑스에서 열린 ‘칸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에선 회색빛 머리를 늘어뜨리고 등장한 여배우 앤디 맥다월(65)이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에 출연한 90년대 원조 로코 퀸이다. 60대가 되고 나서도 그녀에게는 ‘변함없는 미모’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그녀가 풍성한 갈색 마리가 아닌 흰머리가 섞인 반백의 모습으로 나타나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에 이제 지쳤어요. 더는 젊어지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어요. 사기극을 계속할 수 없어요. 나는 늙고 싶어요. 나이 들어가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싶어요.” 그녀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염색을 중단했다고 한다. “외출이 줄며 원래 내 얼굴과 피부, 눈의 생김새 등을 볼 수 있었죠.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때 더 행복했고, 머리색이 회색빛이 되게 놔두고 나서 행복하게 내 나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또 “늙어가는 일에 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외모의 완성은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머리 모양에 따라 10년은 젊어 보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한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인상도 바뀐다. 내 머리 모양은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쪽찌던 시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비녀 대신 머리핀을 사용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LA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혼자 한국으로 혼자 귀국한 후부터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한국과 LA 두 집 살림하다 보니 남편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일하려고 해도 나이가 있는 데다 한국 경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지출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미장원 출입을 꺼렸던 게 30년이 훌쩍 넘었다. 내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나를 억지로 미장원에 데라고 가려 한 적도 있었다. 이젠 그 머리 모양이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하지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섞여 희끗희끗해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분위기와 인상이라고 생각한다. '멋’ 하면 젊은이의 전유물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머리가 반백인 노인의 기품은 젊은이들과는 다른 멋을 느끼게 된다. 노년의 멋이란 고상한 품격에서 나온다. 붉게 물든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서산의 노을은 황홀하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로 손꼽히는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니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만 하지 나이 듦을 인정할 생각을 못 한다. 영국의 작가 겸 교수인 루이스 월포트는 ‘You’re Looking Very Well'이라는 책에서 연령이 많은 사람이 행복지수도 높다고 밝혔다. 김형석 교수도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에서 “65세부터 황금기”라고 주장했다. 유대인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오랜 기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아리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는 “최고의 존재는 벌거벗은 존재” 라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적나라하게 내 늙음을 드러낼 용기가 없다. 짙은 눈화장으로 처진 눈을 보정하고 회색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쓴다. 또 한 해가 기우는 연말이다. 나뭇잎을 다 떨구고 의연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에서 내려놓음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 나의 참모습을 보여줘야겠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나무 의연 단풍나무 잎새들 얼굴 피부 남편 월급
2023.12.28. 18:46
가벼워진 후 뼈와 살을 추려 간간히 입은 마른 손을 하늘로 뻗는다 미풍에 속삭였던 잎들의 어휘 입안 가득 풀어낸 동그란 바람 그리고 견디어 냈던 푸른 생명들의 기억 짙은 민트향의 겨울로 간다 파이프 올겐의 물기 없는 파장 마른 손을 힘겹게 하늘로 뻗는다 모두가 벗어 버리고 있는 순간 강은 이제부터 봄을 향해 흐르고 옛 이야기도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닌 이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오늘로 살아간다 당신으로부터 시작돼 내게로 오는 그저 꽃 피우는 사랑이 되랴 그저 다가 오는 그리움 되랴 그저 흐르는 강물이 되랴 안다고 하는 것 울타리 너머의 상실한 마음 만든 이의 손길을 읽을 수 있다면 깊숙한 손잡음의 떨림이 있다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림자처럼 밟히는 나를 빚어내나니 마른 손으로 춤추게 하나니 비로소 열리는 귀, 보이는 눈, 들리는 노래 힘줄 선 근육의 사이 사이로 가을을 이별하는 사이 사이로 당신을 숨쉬는 사이 사이로 부디 행복하세요.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데, 말하고 싶어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데, 천개의 별이 뜨고 천개의 별이 지고 있답니다. 언덕 위 나무는 이제 앙상한 몸을 드러내었고 휑한 바람은 몇개 남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흔들어대고 있네요. 부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쓸쓸함을 이기려면 온 신경을 아래로 쏟아 내야 해요. 뿌리로 뻗어야 해요. 지난 봄의 꽃향기를 잊어야 해요.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풍성했던 초록의 기억을 묻어야 해요. 붉게 타올랐던 참을 수 없던 열정을 식혀야 해요. 그렇게 고요해져야 해요. 죽은 듯 숨조차 다듬어야 해요. 언덕 위 나무와 들풀의 손짓은 겨울의 깊은 호흡에 잠겨있어요. 누구도 노래하지 않고 춤추지 않는 날이 올 거에요. 찬 바람에 흰눈까지 온 대지를 덮을 거에요. 그러나 찬 눈을 꽃처럼 피어낼 나무가지들을 축복하려 해요. 그러니 부디 행복하셔야 해요. 모두 자신을 벗고 있는 와중에도 초라해지거나 춥지 않았으면 해요. 보이지 않지만 든든한 뿌리가 버티고 있으니까요. 봄으로 뻗어나가는 멈추지 않는 동력으로 동토의 찬 기운을 녹이는 봄의 전령으로 살아야 해요. 마지막 잡아본 손은 잎사귀를 다 떨군 앙상한 가지 같이 말라 있었어요. 나무의 마른가지처럼 그 손을 사랑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을 견디어내며 만들어진 사랑의 자국이라 명명된 그 손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에요. 창밖은 눈, 이제 가을은 옷깃을 여미고 겨울의 깊은 숲속으로 걸어 갔어요.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하는 나무들 사이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갔어요. 내 발도 걷고 있네요. 깊은 숲속으로, 보이지 않는 오두막으로, 두 팔 벌리고 맞이하는 당신에게로, 끝이 없는 하얀 발자국 남기며 사라지고 있어요. 숲 사이로 들려오는 겨울나무 소리. 당신을 숨쉬는 사이사이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나무 겨울나무 소리 겨울 나무 나무들 사이
2023.11.27.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