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때 묻어 구르는 사랑이란 한마디 말로 감히 이 마음 어찌 전 하겠소 삼일도 안가 시들어버릴 붉은 장미 한 다발로 이 깊은 정 어이 대신 하겠소 한평생 당신 쪽으로만 흐르고 있는 이 강물 눈감아도 훤히 보이지 않소 당신이 끓인 국이 싱거워도 맛있다 말하거든 그게 내 사랑인 줄 받아주오 당신 입원실 누워 있을 때 천정만 보며 서성이거든 가슴 속에 내 눈물 흐르는 줄 아시오 옛날엔 장미꽃 초콜릿 없이 황소처럼 눈으로 바라만 봐도 산골 물 돌을 보듯 서로를 알며 눈치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소 해묵은 장처럼 폭 익은 사랑 함부로 어찌 말할 수 있겠소 뼛속 깊이 간직한 채 언젠가 조용히 떠나는 거지. 강언덕 / 시인시 밸런타인데이 장미꽃 초콜릿 당신 입원실 어이 대신
2024.03.07. 17:16
그 얼굴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목숨이 살아난다 그 눈동자 나를 보는 순간 서로 영혼과 영혼이 마주쳐 인연이 맺힌다 껴안고 쳐다보면 너의 눈에 비치는 나의 눈 불꽃 번쩍이는 정이 넘치어 마음 안에 자리 찾은 깊은 자국 아무 때고 찾아들고 제멋대로 떠나는 사이 눈빛 반짝이다 고개 돌려도 눈물 자국 따라 끝까지 함께 가는 사이 최용완 / 시인시 얼굴 눈물 자국 사이 눈빛
2024.03.07. 17:15
네거리에서 만난다 신호등이 눈을 바꾼다 제 갈 길이 바쁘다 놓아 버린 끈처럼 누군가 뒤에서 재촉한다 흘러가는 매연을 따라간다 얽히고설킨 채로 이방인들의 등에 떠밀려 잊어버린 끈처럼 그리곤 네거리 삼거리에서 헤맨다 목적지가 증발한다 마중 나온 로봇(Robot)이 반길 때 자동문이 열린다 또 다른 끈이 기다린다 새로운 친구의 손에 지문이 없다 장일하 / 시인시 네거리 삼거리
2024.03.07. 17:13
지난 밤 천둥과 비바람으로 봄 오는 길목 격한 봄맞이 후 이곳저곳 담장 밑, 보도블록 사이, 화단에 땅이란 땅에 불쑥불쑥 솟아오른 생명들 외진 곳, 그늘에도 들리나요 와 --- 땅을 뚫고 올라오는 저 초록 함성이 이향이 / 시인시 초록 함성 초록 함성 보도블록 사이
2024.02.29. 19:33
나무들의 봄맞이는 눈밭에서 시작된다 제 안에 빛 들이는 먼동의 설렘 뿌리 깊은 기다림에 불이 붙으면 밤이 깊어도 어둡지가 않다 눈 감아도 떠오르는 빛 울림으로 저도 모르게 봄 길을 연다 유병옥 / 시인시 봄맞이 나무
2024.02.29. 19:32
꽃의 나이는 한 살 봄마다 한 살 보송한 솜털 초롱한 눈매 벙긋 벌린 입의 꽃 아가들 모여 앉아 까르륵 웃어대면 세상은 꽃잔치 사방팔방 봄잔치 꽃의 나이는 한 살 올해도 한 살 황박지현 / 시인시 나이 꽃잔치 사방팔방
2024.02.29. 19:32
모래 산은 잘 갈아놓은 칼날처럼 날이 서 있다 한나절 그득한 하늘이 에워싸고 있는 꼭대기를 향해 걷는 힘든 걸음은 거친 숨을 잠시 멈추기 위해 불쑥불쑥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한다 견고하리라 싶어 모서리를 밟고 서면 허망하게 푹 꺼져버린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인 것 같이 왜 이곳이, 죽음의 계곡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을까, 인생은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외길인데 왜 살인적 더위의 이곳을 지름길이라 선택했을까, 바람 부는 날 가쌍까상 메마른 모래 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튜바는 아.파.라, 아.파.라, 무명의 탈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제 아픔 서러움의 진물인지 아직도 아.파.라, 불어댈까, 한 움큼 모래알갱이를 쥐었다가 손을 편다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는, 바람 따라 미라의 긴 머리채처럼 황금색 낙타 쌍봉을 향해 수시로 무늬와 형태를 바꾸며 이사 오고 이사 가고 흩어졌다가 시골 장터 무동을 어깨 위에 세우곤 덩더꿍 덩더꿍 풍물놀이 장단 맞추는 너, 나 그런 개념 없이 어울려 땅따먹기한다 그 속에 무슨 정이 있다고…아직까지 정이 있다며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무한 허공 목이 마르다, 천근만근 무거운 두 다리 함부로 신발 속과 온몸에 박혀 있는 모래를 툭툭 털어내면서 자동차 안에 있는 페트병 생수를 찾아 꿀꺽꿀꺽 마신다 서녘 하늘에서 가슴 더운 노을이 하강하여 먼 산은 눈시울 붉어지도록 내려앉는다 너덜거리는, 기억 속의 잔여울이 여울지어 붉은 황금빛 모래 산은 어느새 검은 긴 천을 두르고 하나씩 잠자리에 든다 *금관악기 중 최저음역을 내는 악기 강양욱 / 시인시 사막 소리 서녘 하늘 풍물놀이 장단 황금색 낙타
2024.02.08. 19:55
부어있는 엄지손가락 눌러 쥐고 하나둘 하나둘 허공을 휘젓는다 소리 없이 밀려드는 햇빛 눈부심이 싫다고 등지고 앉았던 일상 담장 밑으로 올망졸망 화분들 심어 놓고 긴긴해 부자처럼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부터인가 몸,곳곳에서 소리가 난다 돌배나무 마른 낙엽들까지 발밑으로 날아들어 굴곡진 삶의 이야기들 노래를 하지 담백한 물빛 사연도 아닌 것들을 동장군 설쳐대면 더욱더 소리 높인다 시름에 겹도록 들려오는 소프라노. 엄경춘 / 시인시 소리 이야기들 노래 긴긴해 부자 물빛 사연
2024.02.01. 19:16
첫눈은 아직 오지 않고 비만 내린다 춤추듯 잎이 떨어지고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별 나도 네 주위를 맴돌았다 내 눈물로 난 길은 적도(赤道) 그 사이 계절은 스물네 절기로 나뉘어 젊은 날 나이 숫자같이 빛났다 과거형 언어보다 현재 화법 구사를 좋아했던 나는 견고한 성(城)이고 싶었을까 연인을 쫓아가는 저 렌슬렛 기사를 사랑한 여인 샬롯 갈대 엮은 배는 그녀와 함께 부서졌지만 나는 훼손되지 않는 데드마스크 어쩔 수 없는 너는 멸(滅)하지 않는 내 아득한 풍경 우리 서로 포개져 누워 성벽을 에워싸는 들풀로 아예 길도 없어지고 잊혔으면. 박정해 / 시인시 과거형 언어 여인 샬롯 나이 숫자
2024.02.01. 19:15
이따금 구름산에 올라갔다. 보고 싶은 너는 보이지 않고 하늘만 흔들리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와 울기 전에 우리는 꼭 만나리라 세상은 메아리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니까 그렇지만 서둘지 마라 서두를수록 망가지는 게 인생살이란다 슬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흘린 땀 맛을 알아야 인생의 가치를 아는 거라고 외쳐 본다 너의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그런데 너는 끝내 보이지 않는구나! 아직도 너에게 전해 줄 마지막 사랑이 남아 있는데 김석인 / 시인시 그리움 이별 마지막 사랑
2024.01.18. 20:29
깊은 밤눈은 내려 고즈넉한 은빛세상 설레는 가슴 안고 어딘가로 닿고 싶어 숫눈길 걸어 다가온 하늘 높은 그리움 김수연 / 시인시
2024.01.18. 20:28
밤새 갑자기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 추위와 바람에 가을을 맘껏 뽐내던 뒤뜰 뽕나무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노란 잎들 눈물의 아쉬운 이별을 하네. 떨어져 구르고 밟히고 흩어지는 너 나는 너의 지난날의 모습 너는 나의 미래의 모습 그리고 너와 나, 우린 고요한 안식의 축복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해야 할 다정한 길동무 박명근 / 시인시 낙엽 뒤뜰 뽕나무 손님 추위
2024.01.18. 20:27
더욱 둥글게 하소서 이 모난 마음 가장 어려운 날 희망을 보게 하시고 넉넉한 날 어려운 이웃 보게 하시며 끝이라 생각될 때 새로운 시작 보게 하소서 올해는 더욱 비우게 하소서 무거운 마음의 짐 모두 내려놓고 적은 것에도 감사케 하소서 내 길만 고집하던 좁은 마음 버리고 다른 길도 볼 수 있게 하소서 남의 잘못은 늘 용서하고 작은 내 허물 질책게 하소서 마음엔 항상 햇볕이 들어 작은 내 부끄러움도 숨을 곳 없게 하소서 365일 새 아침마다 비좁은 마음에 둥근 해 솟아 밝게 맑게 온화하게 후회 없는 한 해 또 살게 하소서. 강언덕 / 시인시 새해 허물 질책게
2024.01.11. 18:37
멀리서 서성이고 있었네 변명은 옆자리 친구 무언가 이유가 존재했겠지 다가온 발걸음 하고 싶은 말 울리는 북소리 깨달음의 겉옷 혀에 바른 거짓의 립스틱 삶의 향수 후각을 녹이네 이유의 존재 가치 저울이 말할까 보이는 건 가려진 장님의 촉각 시간은 모든 해답의 손바닥 바위에 새겨진 금 간 손금 운명은 분명 이유가 있었네 나이의 계산 뺄셈은 사라지고 덧셈은 출렁다리 찾을 필요 없다 가까이 다가선 우정 혼자 볼 수 없다. 나의 민낯 거울이 이유를 대신하고 얼룩진 모습 발끝까지 이유를 남겨 놓은 채 변명은 짐을 꾸리고 있다 장일하 / 시인시 존재 가치 북소리 깨달음 옆자리 친구
2024.01.11. 18:36
출렁이던 밤바다에서 갑진년 아침 해를 잉태하다가 시지포스의 산을 구름 탄 듯 바다를 뚫고 하늘을 향해 장엄하게 치솟아 붉게 뛰어오르며 세상을 향해 포효한다. 땅과 물과 산이 모인 이곳 누가 살아가는 세상인가? 지축 위로 솟아오른 둥근 덩어리는 삼백육십오 일을 돌기 위해 그 자리를 깨우며 힘차게 넘실댄다. 드디어 2024년 새해 아침이 열렸다. 간절히 염원하는 지구의 평화와 땅 위에 희망과 웃음을 소원하는 우리들의 세상에 붉은 태양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서 한소끔 달아오르고 강한 입김은 거친 세상의 풍파 겪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벌·나비 나래 접은 밤마다 희디흰 박꽃처럼 저 혼자 아파하는 일은 없고 세상 사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해주시어, 동강동강 토막 쳐 울부짖는 전쟁과 재해가 멎게 해 주시고 서로서로 행복하게 손을 잡게 하시어 날아오르는 희망찬 하늘이 늘 함께하게 하소서. 유경순 / 시인시 새해 새해 아침 이의 마음속 지축 위로
2024.01.04. 18:41
우리가 잠깐 머물던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지난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네 그것은 살아있었다는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한번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노라고... 그 한해에 속에는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분노도 있었고 즐거움도, 행복도,보람도, 사랑도 있었네 그런 모습 속에서도 우린 서로 인연의 고리를 가지고 있지. 한 개의 고리가 끊어지면 다른 고리도 저절로 끊어지는 법, 고귀하고 귀중한 인연의 고리를 다시 한번 동여매어 보자.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오면 새해에는 ‘앗차’ 하지 말자 보통 때에는 모르고 있는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린 타인의 인격과 생각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앗차’ 실수를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에 다른 한 사람이 불행해진다. 창밖을 바라보자 현란하게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다 이젠 차가운 눈 속에 잠들고 내일을 꿈꾼다. 우리 새해에는 많은 생각을 하자. 지난해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멍에를 그냥 내려놓고 새로운 바다의 삶 속으로 훌훌 떠나보자. 새로운 해에는 사랑 안에서 ‘앗차’하는 실수를 하지 말자 그리고 못 본 척도 하지 말자! 석 송 / 시인시 질투도 분노 우리 새해 지난 시간
2023.12.28. 18:45
무릎이 아파와 두들기고 서 있는데 삐끗하셨나 봐요 조심하세요 한탄을 토하듯 구겨진 내 마음 위로하시나요 부아가 난다 씩씩하게 걷는 나를 보시지요 멀리 흐르는 구름, 강물은 종일 흘러도 아프다 소리 안 하는데 또다시 한숨이 발사되고 폭발한다 목마른 사하라 모래언덕 걷듯 쌕쌕 소리 잘 못 간수한 나를 추궁하시나 옆으로 옆으로 쏠려지는 발걸음 잠시 멈춘 그림자 바라본다 외로움이 습격해 온다 여기는 어디인가 흐려지는 시야 건너편 언덕으로 마지막 햇살이 찬란하다 밤을 재촉하는. 엄경춘 / 시인시 비애 사하라 모래언덕 건너편 언덕 마지막 햇살
2023.12.28. 18:44
누나, 내가 못 갈 것 같아 어깨 수술도 해야 하고 임플란트도… 옥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에서 피가 쭈르르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상한 마음에 웃음기를 잃었다 동생이 아프다는데 그건 묻지도 않고 내 생각만 했다 누나, 누나 내가 가야겠어 누나랑 통화하고 마음을 바꿨어 병원은 다녀와서 가려고 그때부터 남편은 화장실 리모델링 시작하고 난 괜히 집 앞을 쓸고 다녔다 떨어진 낙엽들을 마구마구 공중에 뿌리며 실실 웃었다 재만이가 나타났다 고향 공기를 흠뻑 싣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꼭 껴안고 오듯 큰 체격에 엄마 눈 코 입을 꼭꼭 심고 나타났다 그 옆에 예쁘고 착한 올케와 함께 어릴 적 다락방에 올라가 꿀 퍼먹다 잠든 재만이 천둥 번개 치는 날엔 재봉틀 발판 위로 기어들어간 재만이가 이순의 나이로 백발이 되어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동생 부부와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웃고 떠들고 설레었다 한 달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십일월 마지막 월요일 엘에이 공항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끌어안고 윽윽 울음을 삼켰다 한 남자는 민망해 두 발짝 뒤로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큭큭 삼켰던 울음이 쏟아졌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버려지지 않는 이 그리움 재만아~ 홍유리 / 시인시 동생 부부 누나 누나 화장실 리모델링
2023.12.21. 19:17
무성한 가시덤불 일렁이는 마음 깊은 곳을 열고 샐비어꽃으로 불타던 기억의 저편을 바라본다 멀어져가는 계절의 눈짓이 프리즘으로 들어오는 찰나 메마르고 야윈 입술에 진홍빛 생기를 불어놓고 하늘 끝으로 흘러간 구름들 다 물들이지 못한 이야기들 이 가을 곱게 다듬어볼까? 좀 더 가는 붓을 잡는다 권정순 / 시인시 화장 진홍빛 생기
2023.12.14. 19:36
님 아닌 남 난 몰랐다 그대 이름 외자인지 마음도 그럴까 볼 수 없다 분명코 남이지 너와 나의 만남은 어디일까 비쳐진 화면 그도 나처럼 나를 남이라 부르지 돌아서면 멀어진 발걸음 스스로 남이었다고 깨달음은 멀리서 도착했다 오늘도 바라본다 남을 분명코 남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장일하 / 시인시 그대 이름
2023.12.14.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