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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Los Angeles

2025.08.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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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 일사회 회장

박철웅 일사회 회장

큰 딸아이 갓 백일이 지나, 우리 가족이 이민 왔다. 어느새 5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민 생활 중, 요즘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빠 나 미국 사람 아니야?”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넌 아직 한국 사람이야. 18살이 되어 시민권을 받으면 미국 사람이 되는 거지.”
 
당시 우리 부부는 시민권자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딸이 18세가 되기 전에 우리가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딸아이도 자동으로 시민권자가 되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당시 필자는 시민권 취득에 관심조차 없었다. 영주권으로 사업하는 데 걸림돌이 없었고, 세계 어느 곳에 다녀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결국 딸아이는 18세 되던 해에 시민권 시험을 치르고 미국 시민이 됐다. 부모의 안일함이 딸의 청소년 시절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다.
 
지난달 21일 한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던 김태흥 씨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는 5살에 가족과 함께 이민 왔다. 그는 텍사스 A&M 대학에서 생명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35년 이상 거주한 영주권자로, 정확한 구금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4년 전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한 혐의로 사회봉사형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추방의 위기에 몰렸다.
 
왜 이런 위기가 김태흥 씨에게 왔을까. 이전 같았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을 텐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이민정책 시행의 희생자가 된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의문이 있지만, 이 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으로 이민자의 인권이 도마 위에 올랐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영주권자, 특히 1.5세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랬듯이 간혹 이민자는 영주권만 있으면 미국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영주권자는 엄연히 외국인이며 이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민법은 시민권자와 달리 영주권자의 범죄 기록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마약, 폭행, 절도, 성범죄, 음주운전 등은 강력한 이민법 적용 대상이며, 청소년기에 저지른 사소한 전과라도 시민권 취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영구 추방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전과도 이민국 시스템 안에서는 영구 기록되어있고, 국경을 넘는 순간 드러날 수 있다.
 
1.5세들은 어린 시절에 미국에 와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을 미국인으로 여기기 쉽다. 자녀 때문에 이민 왔다는 부모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이러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가 영주권자 신분이라면, 시민권자와 전혀 다른 법적 지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교 성적도 중요하지만, 신분에 따라 적용되는 상식적인 법률은 숙지하고 자녀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제 ‘영주권이면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18세 이상의 자녀가 있다면 시민권 취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시민권 신청 전이라면 자녀의 행동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은 몰랐다고 해서 면책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부모는 청소년 영주권자들이 미국에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안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주어야 한다. 이민법은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영주권자는 외국인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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