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정부 수장들이 또다시 한인타운을 찾았다. 캐런 배스 LA시장과 짐 맥도널 LA경찰국(LAPD) 국장이 지난 9일 나란히 참석한 ‘한인타운 치안 간담회’는 한인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간담회가 끝난 뒤 남은 것은 익숙한 장면과 공허한 약속뿐이었다. “LAPD는 이민세관단속국(ICE) 단속에 협조하지 않는다.”, “노숙자와 불법 노점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 수년째 되풀이된 문장이 또 한 번 회의장을 채웠다.
맥도널 국장은 “LAPD는 1979년부터 ICE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절대 협조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수십 년째 반복되어온 원칙일 뿐이다. 주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문장 하나의 재확인이 아니라, 그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였다.
불체자 단속 소문이 돌 때마다 한인사회가 느끼는 불안은 여전하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선언만 되풀이되는 사이, 커뮤니티는 여전히 공포 속에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다. 원칙만 있고 실행은 없는 현실이다.
이번 간담회에서 거론된 의제 역시 낯설지 않다. 노숙자, 불법 노점상, 낙서 등.
매번 등장하지만, 결코 해결되지 않는 주제들이다. LA시와 LAPD가 같은 문제를 언급하는 사이, 거리의 현실은 오히려 악화됐다. 인도 위엔 여전히 노숙자 텐트가 줄지어 있고, 불법 노점은 늘었으며, 벽에는 낙서가 덧칠되고 있다.
“적극 대응하겠다”는 말은 회의록에 남았을 뿐, 현장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주민들이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 중 실제로 작동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배스 시장은 “한인 커뮤니티와 협력하겠다”며 이민자 권리 정보 한국어 제공과 법률 지원 프로그램(Represent LA)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대책이 아니라 기존 사업을 되풀이한 수준이다. 정책의 언어는 언제나 그럴듯하지만, 실행은 없다. 말은 부드럽고 사진은 보기 좋지만, 주민의 체감은 전무하다. LA시의 정책은 늘 계획 단계에서 멈추고, 한인타운의 현실은 늘 그 자리에 머문다.
문제는 간담회 형식에도 있다. 매번 열리는 이런 회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연출된 대화’의 무대다. 사전에 정해진 발언자들이 준비된 질문을 던지고, 관계자들은 원론적인 답변으로 시간을 채운다. 회의가 끝나면 언론용 사진 몇 장만 남고, 다음날이면 모든 것이 잊힌다. 게다가 현장을 찾았다며 ‘점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길거리에 나가 문제들을 직접 보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치안 현장 점검은 탁상행정에 머무를 뿐, 아무것도 점검되지 않았다.
한인타운 주민들은 이제 ‘말의 정치’에 지쳤다. “협력하겠다”, “지원하겠다”는 구호는 수없이 들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실행의 증거다. 회의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변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배스 시장과 맥도널 국장의 방문은 상징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문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왔다 갔다 한 행정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한인타운의 문제는 문서 속 정책 항목이 아니라, 매일 그 거리를 걸어야 하는 주민들의 생존 문제다.
같은 약속을 반복하고, 같은 대책을 재탕하는 간담회라면 차라리 열지 않는 것이 낫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말 만큼 무책임한 위로는 없다. 한인타운 치안 간담회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제 말이 아니라 변화의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회의는 또 한 번의 ‘도돌이표 정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