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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통신문] 가정폭력 생존자의 고백

Los Angeles

2025.10.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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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

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

10월은 ‘가정폭력 인식의 달(Domestic Violence Awareness Month)’이다.
 
이 기간은 폭력의 굴레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강인함을 기리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며, 침묵 속에 학대를 숨기도록 하는 통념에 맞서기 위해 마련됐다.  
 
한인사회에서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게 들린다. 어딘가 멀리서, 혹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폭력은 평범한 가정의 벽 뒤, 평범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인가정상담소(KFAM)에 도움을 요청한 여성이 자신의 사연을 공유했다. 그녀가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낸 사연은 KFAM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2017년 생일 날, 지인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밝은 미소와 따뜻한 말투는 한국에서 알던 소년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는 운명처럼 만났다고 믿었습니다.  
 
3년의 교제 끝에 결혼했습니다. 저는 비자 신분이었고 그는 미국 시민이었습니다. 결혼 후 내 인생이 새로 시작된 듯했지요. 처음 몇 달은 행복했습니다. 함께 집을 꾸미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가족을 키울 꿈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정했던 그의 말투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유리조각처럼 마음을 베었습니다. ‘내가 예민한 걸까, 더 잘해야지’ 그렇게 나 자신을 탓하며 참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한국에서 이주해 오셨습니다. 그때부터 제 세상은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매일 시어머니의 폭언이 이어졌고, 곧 밀치기와 뺨 때리기, 모욕으로 변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영주권을 얻기 위해 결혼했다고 비난했고, 남편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한때 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그는 등을 돌렸습니다. ‘영주권을 원하면 시키는 대로 하라’며 그는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완전히 고립됐습니다. 두려움과 수치심 사이에 갇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거울 속의 나조차 낯설었습니다. 그렇게 삶의 숨결이 멎어가던 중, KFAM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지 이민 신분 문제를 상담하러 갔지만, 그곳에서 저는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제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상담과 치료를 통해 다시 숨을 쉬고, 제 힘으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려움 없이 말하고, 제 가치를 보는 법도 배웠습니다. KFAM은 어둠 속 터널에서 비춰준 빛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누군가가 제 존재를 ‘봐주었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선 안전했습니다.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민 여성들이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사연이다. 언어 장벽, 문화적 낙인, 경제적 의존, 추방에 대한 두려움이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생존자들을 고립시킨다.
 
KFAM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매일 마주한다. 상담소는 매년 수백 명의 생존자에게 위기상담, 법률 지원, 긴급 주거, 장기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공포 속에서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안전과 신뢰, 공동체의 품 안에서 ‘자기회복’과 ‘자존감’으로 변모해간다.
 
이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가정폭력은 단지 물리적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통제’의 문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어도, 마음의 깊은 상흔을 남긴다. 폭력은 두려움 속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립 속에서 자란다. 임금 통장을 빼앗고, 이민 서류를 인질로 삼고, 상대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 바로 폭력이다.
 
폭력은 침묵 속에서 지속되고, 치유는 용기와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혼자가 아니다. 언어와 문화의 벽 너머로도, 당신을 도와줄 손길은 있다.
 
이달의 인식 캠페인이 단순한 ‘인식’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연대’,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상담:(213)338-0472/KFAM 24시간 핫라인

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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