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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빠진 오바마케어

Los Angeles

2025.11.16 17:00 2025.11.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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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지급 연장 상원 표결 합의에도
한쪽선 '개인에 현금 지급' 등 개혁 추진
보조금 연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바마케어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오바마케어 존속을 주장하는 시위대.

보조금 연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바마케어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오바마케어 존속을 주장하는 시위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임시 예산안에 서명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은 끝났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했던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지급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공화당은 오히려 건강보험 지원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정부가 개인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해 개인이 보험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이 방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토론에서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개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취임 10개월 정도가 지난 최근 트루스소셜에 오바마케어 보험료 보조금 대신 국민에게 돈을 직접 지급하는 제안을 올렸다.
 
보험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없애고 이를 개인의 건강저축계좌(HSA)에 현금으로 입금하는 방식에 대해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아직 공식 제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릭 스콧 상원의원은 "현재 법안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HSA는 고액공제형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의료비 지출을 위해 세금 없이 돈을 저축·인출할 수 있는 제도다. HSA는 고액공제보험에 가입해야 개설할 수 있으며 미사용 금액을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어 장기적 의료비 관리에 유리하다.  
 
공화당은 자유로운 개인 선택을 상징하는 정책으로 오랫동안 HSA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소득층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이 많다. 고소득자는 저축 여력이 있고 높은 세율만큼 세금 공제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저소득층은 계좌를 유지할 여력이 없어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어렵다. 오히려 인종이나 소득 간 격차가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좌로 옮기겠다고 한 금액도 현실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다.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2023년 보험사들이 받은 오바마케어 보조금은 약 920억 달러였다. 같은 해 국민이 본인 부담으로 낸 의료비는 5000억 달러다.
 
비영리 연구기관 KFF의 래리 레빗 보건정책 부회장은 "정부가 현금을 개인 계좌로 지급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질병 예외 조항이 있는 저가 보험으로 옮기게 되고 결국 병력이 있는 환자들이 보험에 남게 된다"며 "이 경우 오바마케어 시장은 사실상 '죽음의 나선'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젊고 건강한 소비자들이 보험을 아예 포기하거나 보장이 약한 저가형 단기 보험으로 옮길 경우, 보험사들이 시장에서 철수하고 리스크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 출신이자 보수 성향 싱크탱크 패러곤 헬스연구소 대표 브라이언 블레이즈는 "일부 공화당안은 오바마케어 가입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오바마케어 가입자 중 일부가 정부의 비용분담 보조금을 개인 저축계좌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제안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치인들이 의료비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지만 효과적인 제도 대신  비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반복 확인된 제도인 HSA를 밀어붙인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현금 직접 지급을 통한 의료개혁'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국민을 의료비 부담 속에 방치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카고대 로버트 캐스트너 교수는 "현금을 개인에게 지급해도 의료비용 상승 억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가격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보험사와 병원 간의 협상 구조가 비용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HSA 자금만으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예상한다. 건강한 사람과 부유층만 저축을 활용하게 되면 보험 리스크 분산이 무너진다. 젊고 건강한 인구가 빠져나가면 보험료는 급등하고 중장년층과 환자 중심의 고위험군 보험시장만 남게 된다. 이른바 역선택 현상으로 보험사는 보험료를 더 높게 책정하고 소비자는 큰 병이 생겼을 때만 보험에 가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현재도 높은 의료비 때문에 전국민의 약 9%가 무보험 상태다. 치료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정책을 꺼내든 시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실업률이 오르면서 고용 기반 보험에 의존하는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오바마케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이 이런 제안을 내놓은 배경에 오바마케어 약화나 대체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실패했던 오바마케어 폐지 시도가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한 것으로 해석한다.
 
민주당은 당장 현금 지급 방식에 회의적이다. 민주당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지금은 오바마케어 오픈 등록 기간이다.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1년 보조금 연장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내년도 오바마케어 가입을 위한 등록은 지난 1일 시작됐다. 일부 주에서는 단순한 보조금 연장조차 시스템 업데이트에 몇 주가 걸리기 때문에 시간상 대규모 개편안은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화당의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은 "저축계좌 모델은 좋은 접근"이라면서도 "올해 모든 것을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이미 소규모 사업체를 위한 오바마케어 교환(FSA) 시스템이 있는 만큼 이를 개인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방정부가 재개된 만큼 보조금 연장을 포함한 논의는 본격화할 전망이다. 존 튠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에 12월 둘째 주까지 표결을 약속했기 때문에 민주·공화 양당은 독립적인 법안이나 공동안으로 상정할 수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아직 의견이 정리되지 않았다. 릭 스콧 상원의원은 빌 캐시디 상원의원의 안과는 다른 형태의 건강저축계좌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 안은 상원 재정위원회로 넘어갈 예정이다.
 
민주당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저축계좌를 여러 정책 중 선택지로 포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대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크리스 밴 홀런 상원의원은 "계좌 제도는 오바마케어 세액공제 연장을 지연·방해하기 위한 전술일 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안유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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