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가을은 여름을 작별하는 인디언 서머의 마지막 열기와 함께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올 여름을 보내면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 중의 하나가 피시 타코인 것 같다. 양상추, 토마토, 아보카도, 빨간 무를 곁들이고 신선한 토마토, 칠리, 각종 허브로 만든 상큼한 홈메이드 살사를 얹어 먹으면 영양도 골고루 갖춰진 손쉬운 메뉴가 될 것이다. 소스란 뜻의 멕시칸 살사는 냉장 상태에서 5∼6일 정도 보관할 수 있으며 아이들의 토티야 칩 소스로 이용하면 좋은 간식거리가 될 수 있다. 또 케이퍼나 다진 올리브를 넣어 팬 프라이한 가자미나 연어 구이와 곁들여 먹어도 좋다. ◇팬 프라이드 생선 타코 ▶재료: 가자미 살 1 1/2Lbs, 라임 주스 4Tbs, 올리브 오일 2Tbs, 다진 마늘 1Tbs, 큐민(Cumin) 1tsp, 파프리카 1tsp,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 법: 1.모든 양념을 한데 섞어 가재미 살에 문질러 냉장고에서 1∼2시간 재워 둔다. 2.기름을 약간 두른 팬에 생선의 양면을 4분 정도씩 잘 익힌 후 적당하게 토막을 내어둔다. ◇튀긴 생선 타코 ▶재료: 동태 살 1Lb, 카놀라(Canola) 기름 1Qt, 밀가루 1컵, 소금, 후추 약간, 맥주 1컵 ▶만드는 법: 1. 토티야는 6장씩 호일에 싸서 35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10분간 데워 둔다. 2. 동태 살을 1x2 인치 정도로 잘라서 소금, 후추로 간한다. 3. 밀가루에 맥주를 부어 가며 약간 되직한 튀김옷을 만든다. 4. 생선에 밀가루를 묻혀 여분의 가루를 털어내고 튀김옷을 골고루 묻혀 노릇노릇하게 튀겨낸다. ◇살사(Salsa) ▶재료: 플럼 토마토 4 개, 빨간 양파 작은 것 1개, 할라피뇨 고추 1개, 실란트로 2 Tbs, 파슬리 2Tbs, 라임 주스 2Tbs,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법: 1.토마토는 1/3인치로, 양파는 1/4인치로 다지고 할라피뇨 고추도 씨를 빼 다진다. 2. 다진 재료와 파슬리, 실란트로, 라임주스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그린 살사(Salsa Verde) ▶재료: 올리브유 2Tbs, 다진 양파 1/3컵, 할라피뇨 고추 1개, 토마티요(Tomatillos) 8개, 라임 주스 3Tbs, 꿀 2Tbs, 실란트로 1/4컵,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법: 1. 올리브유에 다진 양파와 고추를 넣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다가 잘 다진 토마띠요를 넣고 약 10분 정도 더 볶은 후 나머지 재료를 넣고 블랜더에 간다. ◇망고 살사(Mango Salsa) ▶재료: 플럼 토마토 1개, 망고 1개, 빨간 양파 작은 것 1 개, 할라피뇨 고추 1 개, 실란트로 1 Tbs, 라임 주스 2 Tbs,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법: 1.토마토와 망고는 1/3인치로, 양파는 1/4인치로 다지고 할라피뇨 고추도 씨를 빼 다진다. 2. 다진 재료와 실란트로, 라임주스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알고 갑시다> 토마티요(Tomatillos):멕시칸 그린 토마토라고도 불리우는 토마티요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한 과일류로 옅은 레몬, 사과, 허브 향을 지니고 있고 새큼한 맛을 강조할 때 생으로 먹기도 하나 요리를 함으로써 그 맛이 더욱 깊어지고 두꺼운 껍질도 부드럽게 된다.
2001.10.06. 10:25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만성 조울증으로 시달리던 아버지는 기분이 울적할 때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소파에 앉아 있기가 일쑤였고, 어쩌다 기분이 좀 좋아진 날은 새총을 들고 새사냥을 나가시곤 했다. 새사냥을 나가신 날은 어김없이 몇 마리의 새를 잡아 큰소리로 웃으시며 자랑하시듯, 다섯살 짜리 나에게 만져보라 내보이시곤 했다. 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난 내방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곤 했지만, 그때 하도 놀라서 무서워서 였는지 아버지 손에 힘없이 죽어 있던 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20살초 반에 갓 결혼한 그녀가 상담실로 찾아 온 이유는 바로 그 '새' 때문이었다. 새가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다는 것. 새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새를 보면 마치 그 새가 자신을 공격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곳 밴쿠버에 살면서 새가 무서워 밖에 나갈 수도 없다니. 신혼생활에 남편과 함께 산책도 하고 싶고, 남편이 즐겨먹는 닭요리도 해주고 싶지만, 그녀의 새에 대한 두려움은 남편과의 다정한 산책과 남편을 위한 닭요리는 물론 새를 기르고 있는 친구집에의 방문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새와 관련된 모든 일상으로부터 그녀 자신을 가두어 놓고 말았다. 그녀의 새에 대한 두려움은 '비현실적인 것'이 였지만, 그녀의 새로 인한 일상생활의 장애는 '지극한 현실'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와 같이 특정한 대상이나 행동, 상황에 처했을 때 비현실적인 두려움과 불안증세가 생겨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대상이나 상황을 피해버리는 장애를 일반적으로 공포증(phobia) 이라고 한다. 공포증은 크게 단순공포증(혹은 특수공포증과) 사회공포증으로 나누어 진다. 단순공포증에는 개나 뱀, 쥐, 혹은 새들에 대한 공포증, 거미 등의 곤충에 대한 공포증, 갇혀 있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폐소공포증,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 비행기 여행공포증 등이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경우 이를 사회공포증이라 한다. 단순공포증의 경우 일반적으로 흔한 공포증으로 남성의 4%와 여성의 9%가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정상적인 공포증의 경우는 비록 두려움과 회피반응이 개인적 고통을 주지만,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새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적인 생활에 까지 큰 지장을 주는 경우 치료를 요하는 공포증에 해당된다. 무엇이 그녀를 새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방시킬 것인가? 새가 없는 세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새를 피해 계속 집에만 있을 수도 없고. 그녀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힘들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자신을 '새에 노출' 시킬 것을 권유하였다. 새를 피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산책을 하지 않고 집에 그냥 있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보호하에서라도 산책을 하고, 새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새가 나오는 영화도 보고. 새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새를 피해 그 적응력을 약화시키고 두려움을 키우기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인 새에 자신을 노출시켜 면역성을 키워감으로써 그녀는 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몇 개월동안 계속된 상담시간 동안 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함께 새들 앞을 지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새가 있는 그림도 함께 보고. 더 이상 상담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어느덧 새겁장이에서 새전문가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환경과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민생활. 때로 주변에서 문화공포증, 언어공포증, 사람공포증에 힘들어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본국 사람들을 만나게 될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잘하던 말도 막상 하려고 하면 식은땀만 나고, 그래서 가능한 영어로 말한 기회를 피하고, 문화 이질감으로 이곳에서의 이민생활이 그저 괴롭고 두려울 뿐이다. 문화, 언어, 사람을 피하고 그로 인해 두려워하기 보다 위에서 처럼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자신을 문화, 언어, 사람, 내가 두려워 하는 대상과 상황에 노출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겁쟁이에서 전문가로의 변신, 바로 두려움에 대한 도전의 대가일 것이다.
2001.10.03. 23:17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어떻게 하죠?" 상담실로 들어서자 마자 그는 상기된 얼굴표정으로 이렇게 첫마디를 열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으로. 차츰 그를 진정시키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나마 그가 이렇게 상담실을 찾아 온 것,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의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욕부진과 체증감소. 불면증. 불안 초조. 대인 기피증. 의욕상실. "나는 할 수 없다"는 자신감 상실과 부정적 사고. 자살에 대한 생각. 특히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 아침이 되면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습관적으로 오전수업을 빼먹게 되고. 오후가 되어 간신히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반복되는 우울한 아침과 무기력한 생활은 그에게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빼앗고 삶의 의미마저 잃어 버리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호소한 일련의 증세들은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세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를 그토록 우울하고 절망스럽게 만들고 삶의 의미조차 상실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지. 몇 차례 상담시간을 가지면서 그를 괴롭히는 있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의 원인이 바로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그의 지나친 부담감에서 시작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대학 3년생으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장남이었고, 그가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부모님의 희망대로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차츰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날 수 없다는 부담감. 장남과 세형제의 맏형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 수년동안 누적되었던 이러한 부담감과 의무감은 '우울증'이라는 모습으로 폭발하여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줄곧 우등생으로 한번도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그에게 수개월동안 지속되고 있는 우울증과 이에 따른 학업부진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이어져, 악순환처럼 그의 우울한 아침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에게 진작부터 필요했던 것은 부모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지나친 부담,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초조함의 누적, 그리고 막형으로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의 수행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부모님과의 허심탄회한 대화였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기를 원하는지. 비가 많은 밴쿠버에는 유난히 우울증(Depression)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그 원인과 정도, 지속기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감기와 같이 일생에 한,두번 정도는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마음의 병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남성들 중에서 열 명중에 한 명, 여성들 중에서는 다섯 명중에 한명정도가 일생에 한번은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청소년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우울증이 청소년 자살의 주요원인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우울증은 이들의 학교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부모들과 자녀들간의 관계와 부모들간의 관계 등 주로 가정생활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대와 그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이 우울증으로 발전한 위의 대학생의 이야기는 '자녀교육'을 이민의 첫번째 이유로 꼽는 이민사회에서 결코 남의 이야기일수만은 없을 것이다. '자녀교육'이라는 명분과 본국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타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따른 부모들의 남다른 결심과 각오는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이어지고, 이러한 부모님의 기대가 자녀들의 심리적 부담과 이로 인한 마음의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언어를 어른들보다 쉽게 극복한다는 이유로 흔히들 부모들은 청소년기의 자녀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새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실제 이민가정에서 청소년들이 겪어내야 하는 고통의 몫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는 부모의 기대와 이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자 하는 데서 오는 초조함과 두려움은 어쩌면 이민 가정 내에서 청소년들이 겪어 내야 하는 마음의 고통중의 하나일 것이다. 종래는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좀처럼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든 이민생활이지만, 진정으로 '자녀들을 위한' 이민이 였다면, 그래도 자녀들과의 대화의 창을 열어 오늘 내 아들과 딸이 이국 땅에서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은 없는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의 기대가 오늘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녀들의 마음을 나눌 조금의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2001.09.12. 23:15
26년 동안 가슴속에 파묻었던 한이 한번에 터져 나온 것일까? 첫만남, 1시간으로 정해진 상담시간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토해내는 듯했다. 초점 잃은 눈빛, 온갖 삶의 고뇌를 담은 듯한 얼굴. 서럽게 쏟아 내는 눈물. 50대 중반의 그녀는 대학을 다니는 두 남매의 엄마이며, 이제는 그 질기고 질긴 남편과의 인연의 고리를 끊어 버리고 싶다고 했다. 신혼의 달콤함이 채 가시기도 전 시작된 남편으로부터의 구타와 폭력은 26년간 '결혼'이라는 끈과 두 아이의 엄마라는 고리로 그녀를 묶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삶을 체념하며 살게 만들었다. 이제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피폐는 물론 영혼의 공허함까지 느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처음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했을 때는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려니 생각했고, 구타 후에 더욱 다정하게 다가온 남편의 모습 때문에 한번의 실수이니 용서해야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구타는 계속되었고, 심한 욕설은 물론 성적 학대까지 감수해야 했는데, 그래도 그때마다 내가 사랑해 선택한 남편인데, 참고 견디자고 다짐했고,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인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내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오히려 남편의 구타와 폭력을 습관성이 되도록 부추겼고, 매주 금요일은 의례 '매맞는 날'로 정해지다시피 해서, 금요일만 되면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워 집 밖에서 울곤 했다는 것이다. 견디다 못해 몇 차례 집을 나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남편의 모습이 측은해서, '그래 나 아니면 이 사람, 누가 받아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아이들 생각해서..'라는 마음으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것. 그 뿐 아니라 가정으로 돌아와서는 나의 사랑과 희생이 부족한가 보다 하고 더욱 열심히 인내하고 희생하고, 남편의 요청대로 교회활동은 물론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오직 가정에 충성하다 보니 사회성과 독립성도 차츰 잃게 되고 집안에 갇혀 변변히 자신의 일상을 나눌 친구조차 만들 수 없었다 했다. 이와 같은 습관성 가정 내 폭력은 '폭력 사이클(Violence Cycle)'이라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긴장고조기, 위협기, 폭발기, 후회기, 약속기, 허니문기가 바로 그 사이클을 구성한다. 긴장고조기('나를 자꾸만 짜증나게 하고 있구만')란 구타자의 내적인 압력이 상승하고 축적되는 시기이며 그 다음 위협기('바보 같은 것이 나를 더 짜증나게 하는 구만')에서는 긴장고조기의 내적인 압력이 언어적인 위협이나 신체적이 위협으로 표출된다. 위협기에 이은 폭발기('너 한번 맞아 볼래')에서는 위협기에서의 언어적, 신체적 위협이 실제 폭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후회기('그때 좀 참지, 왜 나를 자극해서..')는 폭력 후에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는 시기로 일반적으로 구타자는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곤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의 약속기('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에서는 구타자가 폭력 후에 피해자의 반응을 보면서 피해자를 달래고 약속을 남발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구타자가 피해자에게 손이 발이 되게 비는 시기이다. 그리고 허니문기('사실 우리는 잘 지냈었는데 그지'), 이 시기에서 구타자는 부부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폭력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덮고 신혼초기처럼 평소보다 더 잘해주곤 한다. 이와 같은 가정 내 폭력의 사이클은 허니문기를 지나 다시 긴장고조기, 위협기, 폭발기, 후회기, 약속기, 그리고 다시 허니문기로 이어져 위와 같은 26년간의 습관성 폭력이 가능했던 것이다. 26년간의 그녀의 인내는 폭력사이클에서와 같이 오히려 남편의 폭력을 더욱 가중시키고 습관성으로 키운 꼴이 되었다. 진작에 그녀에게는 그녀 자신을 위해 그리고 구타자인 남편을 위해 폭력사이클의 고리를 어느 선에선가 끊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녀가 우선적으로 해야 했던 것은 바로 '남편의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는 일이였다. 이 폭력사이클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폭력에 대한 '부정(Denial)'이다. 즉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그녀가 사랑하고 남편으로 선택한 사람이 구타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구타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런 부정과 가정수호라는 지상과제, 그리고 엄청난 인내심이 남편의 26년간의 폭력을 가능하게 했고, 그녀의 영혼의 피폐를 가져온 것이다. 흔히들 가정 내 폭력은 단지 부부싸움으로 다른 이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며, 때릴 만 했으니 때린 것이고, 맞을 만 했으니 맞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외면하기 쉽다. 하지만 더 이상 가정 내 폭력은 부부싸움이 아니며 폭력행위, 범법 행위이다. 굳이 법적조치가 필요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습관적으로 지속된다면 폭력은 한 인간의 영혼을,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상담 첫 시간, 그녀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켄유 헬미? (Can you help me?)" 이는 단순히 누구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말이었다기 보다 숨겨진 남편의 폭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녀의 선언 같은 것이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남편의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외침, 도움의 손길에 대한 첫마디 외침이었던 것이다. 어떤 형태든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 폭력이든 폭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하는 한 어느 곳도 더 이상 지상 낙원일 수는 없다. 가정 내 폭력의 예외지역이 아닌 이곳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 삶 속에 이처럼 숨겨진 가정 내 폭력은 없는지. 혹시 내 삶 속에 이 폭력이 부끄러움과 수치, 그리고 사랑과 인내, 희생이라는 명목 하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주변에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혹시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고 "켄유 헬미?" 를 외치며 도움을 청해야 하는 시기일 것이다. "켄(유( 리(얼(리(헬(미? (Can you really help me?)" 이것은 바로 가정 내 폭력을 인정하고 그 고리를 끊어 버리고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첫 외침일 것이기 때문이다.
2001.09.11. 23:16
위의 말씀은 성서에 수없이 나오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상담심리학과정의 첫 과목이었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시간에 헝가리출신의 정신과 의사였던 교수님께서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다. "본 과목의 수업목표는 바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두려움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당히 두려워 할 것인가?' 을 배우는 겁니다. "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 또한 생소하기만 했던 상담심리학 대학원과정을 시작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가득 찼던 내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수님께서는 그런 나의 불안과 두려움이 '비정상적인 것(abnormal)'이 아니라 극히 '정상적인 것(normal)'이며, '어떤 두려움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일러주셨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상황에서 그 정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정상'이며, 그런 적당한 정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상황에서 그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비정상'이라는 말씀이었다. 상담심리학 공부를 진행하면서, 상담실습 중에 다양한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적당한 정도의 두려움을 넘어선 '지나친 두려움' 이 심각한 마음의 병의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과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대학 2년생의 남학생.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지나친 민감함으로 초조함과 불안을 호소했던 20대초반의 사회 초년생. 어린시절 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으로 새 공포증(Bird Phobia)로 시달리던 주부. 다른 이들의 이목과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20여년동안 계속되었던 남편의 폭력을 참으며 살았던 50대중반의 아주머니.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관심이 오히려 아들의 빗나감으로 이어져 힘든 시간을 보내던 30대중반의 미혼모. 이들은 모두 상담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지나친 두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지나친 두려움은 그 정도와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심리적 병'으로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은 무력감과 우울증으로, 타인들에 대한 지나친 민감함은 자기비하로, 어린시절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해 시작된 새에 대한 공포증은 사회생활 장애라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수해야 해야 했던 남편으로 부터의 폭력은 '정신적 피폐'와 '삶에 대한 무의미' 라는 모습으로, 미혼모의 아들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결국 아들의 탈선과 반항이라는 모습으로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심리적인 '지나친 두려움, 공포 혹은 걱정' 은 사람들의 정상적 혹은 비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의 단지 하나의 원인이며, 또한 '적당한'과 '지나친'의 말의 의미와 기준도 사람에 따라 각기 그 정도를 달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문제들의 상당부분이 혹시 이 '지나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는지. 또한 이 '지나친 두려움'이 혹시 어두웠던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 혹은 아직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두려움에서 오는 것은 아닐는지. 보다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보다 심리적으로 오늘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 '두려워하지 않기',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기', '적당히 두려워하기'의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할지 모르겠다. 또한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혹시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지나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한번 돌이켜볼 일이다.
2001.09.05. 2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