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새벽녘이면 할아버지 방에서 설친 잠 기침 잦아들고 곧이어 곤한 잠결에 곰방대 재 터는 소리 그 기척에 부시시한 눈을 뜨는 식구들 어머니는 선잠 뒤로하고 아직도 어둠이 졸고 있는 부엌으로 그림자처럼 들어선다 이젠 새벽잠이 없어진 내가 건조해진 목이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한다 잠든 시구들 깨울세라 곰방대 대신 나는 얼른 가습기의 눈금을 올린다 빠른 탄식으로 시름의 세월이 흩어지고 있다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시름 세월 곰방대 대신
2025.04.03. 22:20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시간의 흐름에 거슬러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우리의 몸이 우선 그러하다. 한동안 성장을 위해서 달려가던 육체는 이제 어느 시점을 지나면 성장을 멈추고 낡아가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노화로 통칭하는 이 과정이 언제 정확히 시작되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시작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천천히 망가지면서 여러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변화하는 것은 우리의 몸만이 아니다. 생각과 마음 정신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아마도 생각건대 몸의 조건과 상태가 하락하기 시작하는 시점보다는 훨씬 늦은 때에 우리의 생각은 진화를 멈추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어쩌면 육체와는 달리 정신은 끝없이 전진하고 전진할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이를 조금 먹은, 그러니까 이제는 상당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생각일 수 있다. 정신도 퇴락한다. 한동안 굳건했던 저 푸르른 마음도 아주 천천히 밀도가 떨어지며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하강이건 상승이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생각 또한 변한다. 물론 이는 때로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망아지처럼 아무 곳으로나 뛰어다니던 옛 시절의 마음과 생각에 그대로 변함없이 머무른다면 그 또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나이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변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가장 흔히 듣는 대답 중 하나는 경험의 양이 늘어가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더욱 포용하는 정신이 되고 더욱 허용하는 정신이 된다는 대답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이는 생각보다 드문 예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대체 어떻게 변해 나가는가. 우리 손님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은 젊었을 때 입은 옷이 해어져 새 옷을 사 입었으면 좋겠는데 다 낡아빠진 옷을 가지고 와서 수선을 부탁한다. 수선하는 비용이 새로 사는 옷보다 많은데도 고집을 피우며 고쳐달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옷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새 옷보다 이 옷을 고집한다. 왜라고 다그치듯 묻는다. 아주 부담 없이 편하고 입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란다. 몇 달 뒤에는 또 다른 곳이 찢어져 가지고 왔다. 아무 말 없이 고쳐준다. 한두 손님이 그런 수선을 원하지만 보통은 새로운 스타일 옷을 사 입는다. 고집통 손님들을 보면 유행이나 시대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에 큰 흥미를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신발이 떨어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고치면 발이 편하고 쪼이는 느낌이 없어 좋을 것 같아 구두 수선집을 찾았다. 우리 가게 근처에는 오랫동안 구두 수선을 해온 사람이 있었는데 은퇴한 뒤로는 가게 문이 닫혔다. 다른 사람이 가게를 인수할까 기다렸는데 열지 않았다. 친구 가게 근처에 구두 수선하는 곳이 있다기에 부탁을 해서 고쳤는데 발이 편하고 익숙해서 너무 좋다. 새 신발보다 부드럽고 볼이 늘어나 아프지 않아 편하다. 사람의 생각하는 의도가 변해야 이것저것 입어도 보고 신어도 본다. 꼭 그것에만 집착해 있으면 변화가 없다. 그저 편하고 귀찮다는 생각이다. 음식도 자꾸 새로운 것을 맛봐야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식당을 가도 먹었던 것에 눈도장이 먼저 가니 그 순간부터 맛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도 메뉴판 들여다보고 또 봐도 새로운 음식보다 그전 맛에 길들어 먹었던 것으로 주문하게 된다. 머리에 저장해 있는 생각이 변하지 않고 움직일 줄 모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세월 생각 구두 수선집 마음 정신 한동안 성장
2024.12.03. 17:32
옛날은 화살 지금은 총알 옛날엔 아날로그 지금은 디지털 옛날엔 진짜 화폐 지금은 가짜 화폐 옛날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 지금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랑 옛날은 그리움 지금은 외로움 옛날은 지나갔지만 지금은 오지 않았다 가을 창가 귀뚜라미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랑을 노래하네 너와 나의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이강민 / 뉴저지글마당 세월 가짜 화폐 가을 창가 진짜 화폐
2024.10.03. 21:08
누구나 동안을 선호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의한 노화는 모두에게 찾아온다. 완벽히 피할 수야 없겠지만 관리만 잘해줘도 얼마든지 피부의 노화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예방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노화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섬유아세포다. 섬유형 세포를 뽑아내는 '섬유 공장'이라고 불리는 섬유아세포는 세포 하나하나를 가느다란 섬유로 부드럽게 에워 쌓다 다시 굵은 다발로 이루어 콜라겐 섬유가 된다. 이러한 섬유아세포는 우리 피부의 콜라겐을 관장하며 피부 콜라겐의 80% 이상을 만들어 내는데, 노화된 피부에는 섬유아세포가 위축돼 있고 노후된 섬유아세포 수 역시 증가한다. 즉, 노화로 인해 그물망같이 되어있는 섬유아세포가 일을 못 하게 되면 피부가 처지고 주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기능성 화장품 대표주자 '셀리온'은 'E2F4' 라인을 통해 이 문제를 개선했다. 세포의 증식 및 성장 조절을 하며 E2F로 불리는 전사 인자에 E2F의 활성화를 극대화시키는 4종류 단백질을 접해 만든 것이 바로 E2F4이다. 여기에 세계 최초의 섬유아세포의 세포 증식 펩타이드로 개발된 'sh-Polypeptied 150'이란 성분을 듬뿍 넣어 섬유아세포 증식과 콜라겐 합성을 강력하게 촉진한다. E2F4 라인은 완벽한 피부 탄력, 그리고 이로 인한 주름개선을 집중적으로 케어하는 제품이다. 피부 콜라겐을 꽉 채우고 스킨 매트리스의 치밀도를 끌어올려 속살부터 차오르는 탱탱함을 느낄 수 있다. 피부가 젊어지는 효과가 검증된 E2F4 앰플 + 세럼(50ml) + 크림(50ml) 세트는 현재 핫딜에서 50% 할인된 가격인 230달러에 구매가 가능하다. 단품 구입 시에도 동일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 ▶문의:(213)368-2611핫딜 세월 주름
2024.05.29. 19:28
간밤에 쏟아진 폭우를 견디다 못해 세찬 바람 힘겨워 줄기를 하얗게 내보이며널브러진 노송 모진 세월 한 자리를 버티어온 울창한 소나무 시원한 그늘 솔향기 그만하고 하늘 아래 조용히 쓰러져 있는 아 애달프다 이 백 년 한을 아 빈자리 허전한 이 마음 김창길 목사·시인·뉴저지글마당 세월 노송모진 세월 그늘 솔향기
2024.05.17. 21:57
‘일에는 은퇴, 삶에는 데뷔’라는 말이 있다. 은퇴를 결정한 후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독서와 음악, 운동, 봉사, 여행, 그리고 스패니시 공부 등에 할당했다. 해가 저물기 전 하얀 뭉게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처럼 아름답게 인생의 황혼을 장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건강이 더 저물기 전에 약간 이른 은퇴를 결정한 이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내과 의사로 살았던 내 삶에 어떤 새로운 신비와 희열의 세계가 다가올지 기대했다. 그러나 은퇴 후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별다른 진전이나 성과 없이 그냥 바쁘기만 했던 것 같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농담이 실감 날 정도다. 과거 대학 재학 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만 갖고 의과대학 록밴드로 활동했었다. 당시 음악에 대한 기초는 부족했었다. 은퇴하고서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다.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연륜이 됐고 열심히 배우면 옛날보다 깊이 있고 음악다운 음악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진도와 성과는 더딜 뿐이었다. 음정, 음악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세월의 흐름 속에 퇴화 내지 감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세월의 무게라는 것이리라. 이를 깨닫는 순간 모든 계획과 기대를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넘게 해온 의사의 일을 완전히 접고 지낸 1 년간 내게는 어딘가 모르게 한 구석이 비어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이 있었다. 아쉬움일까? 과거의 추억과 회귀 본능의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했던 멕시코 의료 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현지에 의료 진료실을 완공했고, LA에서는 친한 의사의 진료실에서 한 달에 며칠씩 진료를 담당하기로 했다. 입대 시절로 되돌아 가기에는 늦은 노병이 되어 버렸지만 의학의 맥은 유지하고 싶은 본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의료계에 입대한 지 40년이 된 지금은 최고령 병사가 되었다. 이젠 머리도 하얗게 변했고 거동도 민첩하지 못하지만 퇴역 대신 현역 병사로 남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 사소한 일도 소중히 아끼게 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건강이 주어지는 한 멕시코와 LA에서의 진료를 계속할 것이다. 나의 주 업무는 ‘삶’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남은 시간을 사용하려 한다. 발전이나 성과에 대한 조바심 대신 세월의 무게에 맡기려 한다. 다만 배움은 멈추지 말고 활동도 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찬란한 저녁노을의 꿈을 향한 시작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또박또박 걷는다. 최청원 / 내과의사열린광장 은퇴 세월 의료 진료실 음정 음악 음악 운동
2024.01.28. 17:00
’나는 떠난다. / 청동의(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 하나의 소리가 되어. /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 청동의 벽에 / ‘역사’를 가두어 놓은 / 칠흑의 감방에서 / 나는 바람을 타고 /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 먹구름이 깔리면 /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 뇌성(雷聲)이 되어 /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박남수의 ‘종소리’ 시인의 종소리는 청동의 벽에 갇혀 있다. 종소리는 벽을 뚫고 세상에 울음으로 퍼져 나간다.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으로, ‘하나의 소리’가 되어 세상을 진동시킨다. 역사 속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해방시키는, 꼭지 터지는 천둥 소리가 되어 자유를 찾아 푸르름이 되고 웃음이 되고 새가 된다. 유년의 종소리는 즐거웠다. 시작을 재촉하는 종소리도 끝을 알리는 종소리도 모두 좋았다. 선생님이 교무실 앞에 달린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종을 치며 “얘들아” 하고 부르면 하던 재미있는 놀이를 멈추고 동무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교실로 달려 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1984년 이화여대 음대 김메리교수가 유일하게 작사 작곡한 동요다. 유년의 종소리는 청명한 울림으로 시작과 멈춤을 알리며 생의 곳곳을 스며 든다. 시작과 끝은 아련한 반복으로 세월의 종을 울린다. 이젠 아무도 종을 쳐 주지 않는다. 언제 시작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느 쯤에서 길고 긴 방황을 끝을 접어야 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아득한 길 위에서 길을 찾으며 길을 잃고 길을 헤맨다. 또 다시 지난 해의 그 자리에 서있다. 달라지려고, 좀더 나아지려고 애를 썼지만 달라진 것 하나 없이 빈 손으로 바람 앞에 내가 서 있다. 작은 것들이 모여 무리를 이룬다. 태산도 원래는 평지였다. 하나 둘 모여 육지가 되고 바다가 되었다. 우주 기원의 가설인 빅뱅(Big Bang)에 의하면 태초에는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었다.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 Lemaitre)는 ‘최초에 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 후 폭발이 있었고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찼다’라고 주장한다. 찬란한 불꽃놀이와 엄청난 폭발, 앞이 안 보이는 혼돈 속에 탄생한 우주 속에 한 개의 점으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지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사는 우주의 주인공이다. 내가 없으면 그대 사랑도 허공을 맴돈다. 후회와 미련으로 지난 날을 닦달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세월의 끈을 푼다. 묶여 있던 것들을 떠나 보낸다. 그리움의 언덕에는 갈대가 서걱인다. 무겁고 힘든 것들의 매듭을 풀지 않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세월의 끝자락은 흔들린다. 달력의 마지막 장은 펄럭인다. 유년의 일기장, 빛 바랜 추억 속 얼굴, 작별 담은 그대 편지, 소복 입은 어머니의 무명치마는 바람 앞에 서면 펄럭였다. 마음의 끈 다잡아도 그리움의 빈 칸을 눈물로 채웠던 날들이 바람개비로 허공을 맴돈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면 된다. 슬픔은 삼키면 약이 된다. 고통은 용기가 되고 절망은 희망의 뿌리가 된다. 아픔은 진주처럼 영롱하고 그리움은 별이 된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잠시 멈추고 있을 뿐이다. 시행착오는 반복되고 세월이 연륜을 만든다. 인생 역전 드라마는 아직 방영되지 않았다. 누가 더 잘 사는지, 잘났는지 키 재기 하지 말고, 소중한 내 모습 그대로 세월의 끝자락에 내일의 꿈을 새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끝자락 세월 바람개비로 허공 우주 기원 천둥 소리
2023.12.26. 14:14
나이 들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가는 곳마다 불평 늘어놓고 파토 내는 사람, 나설 자리도 아닌데 앞장 서 고군분투 하는 사람, 혼자서 북치고 나팔 부는데 따르는 군중은 없는 사람. 반면에 낮아지고 작아 보이지만 가만히 있어도 작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사람, 자기 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이 값 대신 연륜과 경험으로 격려하고 다독여주며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달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한창시절에는 그런대로 잘 나가던 사람이 나이 들면서 해괴망측해져 과대망상에 빠져 설 자리 앉을 자리 구별 못할 지경에 이른 사람을 종종 본다. 근본적인 원인은 ‘젊을 때 한가락 했다’는 영웅심리의 뒷북치기로 과욕을 주체 못해 노욕에 이르게 된 까닭이다. 노욕(老慾)은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물욕, 정욕보다 더 추하다고 말한다. 노욕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때, 분수를 모르는 탐욕에서 출발한다. 공자는 ‘논어 계씨편’에서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를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을 못 찿으니 여색을 경계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멀리하고, 늙으면 기가 쇠약함으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국사람은 감투쓰기를 엄청 좋아한다. 감투가 성공의 월계관이 되기는커녕 낙인으로 찍혀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사람을 본다. 명칭이 유사한-혹은 같은 단체로 다른 이름인-단체장을 맡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던 분을 기억한다. 양쪽 다 지지하는 숫자 늘리려고 수십통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자기편 만들려고 정성 들여 이메일 보낸 분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위대한 성취나 직함보다 떠나기 전 가족들과 좀더 편안하고 다정한 시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노욕의 원천은 과거지향적인, 철 지난 영웅심리에서 출발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회상하며, 맨손으로 파리 잡던 시절을 멧돼지 잡는 영웅전기로 둔갑시킨다. 젊은 시절 꽤나 괜찮던 사람이 현재 상황이 흡족하지 못할 경우, 횡설수설 돈키호테식 무용담으로 주변을 피곤하게 한다.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노인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멈출 때와 돌아설 시간을 알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즐거웠던 그날을 돌이킬 수 있다면’라는 노래를 자주 즐겨 부르면 꼰대로 등록된다. ‘물레방아간 첫사랑’의 처녀는 이미 할머니가 됐다. 과거는 흘러갔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는 허공을 향해 부르짓는 메아리다. 잘난 체 있는 체 허세 부리지 말고 눈치 빠르게 커피값이라도 재빨리 계산하는 게 어른 대접 받는 묘수다. 현재에 충실하고, 자기 생각보다 경청하는 귀를 가지면 꼰대의 허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쉬어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고 했다. 수양버들은 꺾이지 않고 산들바람에도 나부낀다. 두 팔 길게 늘어트리고 미소 지으며 손짓한다. 가을 잎이 바람에 흩날린다고, 휘영청 늘어진 가지 버리고 떠나가지 않는다. 아름드리 큰 고목나무 아래 삼만이 아재가 대나무를 엮어 만든 평상에 누워 수없이 반짝이는 별을 셌다. 별을 헤는 유년의 밤은 아름다웠다. 가마솥처럼 찌는 여름날엔 나물 캐서 돌아온 옥이언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고목나무 아래 비스틈이 누운 광주리로 떨어졌다. 고목은 늙지 않는다. 오래 살고 있을 뿐이다. 기억하고 되새김 할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혼자 슬며시 웃는다. 기억의 바다에는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들이 줄지어 헤엄친다. 내일이 세상 끝이라 해도, 늘 푸른 나무로 사는 사람은 오늘 희망의 씨를 뿌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월 나무 고목나무 아래 아재가 대나무 횡설수설 돈키호테식
2023.10.25. 6:53
제 73회 6.25 전쟁 참전 상기대회가 열렸다. 23일 워싱턴 한인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린 대회에는 150여명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가족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회 워싱턴지회 손경준 회장은 "8년 전에 475명이었던 워싱턴 지역 한인 참전 유공자 숫자는 5월말 현재 161명"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남은 유공자 대부분은 90대로 너싱홈 등에서 30여명이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며 각종 행사나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유공자들은 30여명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우리가 이런 상기대회에 참여할 날이 몇 년이나 더 남았겠냐"면서 "얼마 남지 않은 유공자들에 대한 한인 사회의 예우가 절실히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세월은 변해도 정신은 영원할 것이라는 점은 알아달라"고도 덧붙였다. 손경준 회장은 이 날 사단법인 우리민족교류협회(이영훈 총재)와 대한민국평화통일국민문화제 조직위원회(명예위원장 정의화)가 수여하는 한반도통일공헌대상 재외동포분야 상을 전달 받았다. 아울러 참전유공자회 장인규, 진기창 이사는 대한민국 참전 유공자회(손희원 회장) 표창장을 수여 받았다. 이날 참석한 내빈들 역시 격려사를 통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위해,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목숨 걸었던 참전 유공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더욱 건강히, 오래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격려사는 권세중 총영사, 무관부 이성진 해병대 대령, 재향군인회미동부지회 김인철 회장, 메릴랜드 행정법원 박충기 법원장, 워싱턴한인연합회 스티브 리 회장 등이 전했다. 끝으로 참석자들은 '6.25의 노래'와 '전우야 잘자라'를 합창했다. '전우야 잘 자라..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 만지니 떠 오른다. 내 가슴에 꽃 같이 별 같이...' 음향기기 사정으로 반주 없이 낮은 목소리로 부른 노병들의 합창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묵직히 울렸다. 박세용 기자 [email protected]세월 정신 참전유공자회 장인규 25참전 유공자회 한국전쟁 참전
2023.06.26. 7:43
햇볕이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는 한낮 나른한 오수를 즐기시는 아버님 햇볕의 열기는 더해갔지만 내 가슴은 서늘해졌다 많이 늙으셨구나 아들과 점심을 먹은 후 한 잔의 커피 향에 젖은 귓가로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어 주무세요 꿈결로 듣는 아들의 말에 어린 시절 주위의 사람들로 아버지를 똑 닮았네 듣던 그 말이 스쳐 잊고 지냈던 흐른 세월 지금 아버지 되어 돌아앉은 아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느덧, 물음도 갖기 전에 나도 늙었구나…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세월 시절 주위
2023.03.31. 18:05
제일 두려운 건 늙는 것보다 사는 것이 시들해지는 것이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무료해지고, 내일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지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생의 의미를 찾아 목적을 향해 질주하던 청춘 시절은 배가 고파도 욕망이 불타올랐다. 장애물은 혼신을 다해 뛰어넘었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가난을 꼬리표로 달고 살아도 남루하지 않았으며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이라서 달력의 새 장을 펼칠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청춘의 하늘은 진홍의 물감을 코발트 빛 하늘에 풀며 노랑나비처럼 산들거렸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진초록의 물감으로 대지를 물들일 때면 젊음도 사랑도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이었다. 오랜지색 물감이 수채화로 번지는 언덕에서 청실홍실로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무엇을 바라며 누구를 위해 못다 한 사연 접으려고 세월의 끝자락에서 펄럭이고 있는가. 동그라미는 세발자전거 바퀴처럼 잘 달린다. 굴렁쇠도 방향을 바꾸며 굴리면 잘 나간다. 굴렁쇠는 너른 길 보다는 좁은 길이 더 좋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굴리면 더 재미있다. 네모난 사각 통은 모서리가 걸림돌이 되지만 뒤집어엎을 용기만 있으면 장애물 경기처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무기력증은 피로, 수면장애, 우울증, 집중력 저하로 몸과 마음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지게 하고 살 맛을 떨어지게 한다. 종점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돌아가는 버스를 놓친다. 종점에선 서둘러 막차라도 타고 되돌아오면 된다. 희망의 샘터에 물이 마르면 다른 곳에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난다. 나만 외롭고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지면 주변을 돌아보라. 나보다 백배 천배 더 힘든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 품고 매일을 살아간다. 끝은 위험하다. 절벽, 낭떠러지,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편지 띄우고 싶을 땐 ‘나’를 위해 사랑과 우정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한여름 밤에 불태우던 욕망을 잠재워 주던 너, 절망의 늪에서 손 내밀어준 그대, 가을바람에 날려버린 못다 한 약속 지켜준 당신, 추억의 비눗방울 속에 동그랗게 새겨진 유년의 꿈이어도 좋겠다. 버티며 살 수 있는 온갖 희망이었음 좋겠다.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준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맘 속에 한 점이’ ?라이너스의 ‘연’ 중에서 튼튼한 실에 매달려도 연은 언제 바람에 몰려 추락할지 모른다. 나무에 걸리면 꼬리를 접는다. 연은 찢어지고 끊어져도 수리해 다시 쓸 수 있다. 연과 연결된 실을 감는 얼레만 튼튼하면 다시 만들어 하늘 높이 띄울 수 있다. 연 날리던 동무도 까르르 웃던 애들마저 떠난 마당에서 홀로 마음속 연을 띄운다. 영어 배울 때 가장 헷갈렸던 게 현재진행형과 미래진행형이다. 내일은 미래진행형이다.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허전한 세월의 끄트머리를 참고 견디면 한 해가 저무는 것이 아니라 첫날 새날이 다가온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끄트머리 세월 굴렁쇠도 방향 오랜지색 물감 그대 가을바람
2022.12.30. 19:25
제일 두려운 건 늙는 것보다 사는 것이 시들해지는 것이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무료해지고, 내일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지치며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생의 의미를 찿아 목적을 향해 질주하던 청춘 시절은 배가 고파도 욕망이 불타올랐다. 장애물은 혼신을 다해 뛰어넘었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가난을 꼬리표로 달고 살아도 남루하지 않았으며 내일은 또 다른 시작이라서 달력의 새 장을 펼칠 때마다 가슴이 설레였다. 청춘의 하늘은 진홍의 물감을 코발트빛 하늘에 풀며 노랑나비처럼 산들거렸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진초록의 물감으로 대지를 물들일 때면 젊음도 사랑도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이였다. 오렌지색 물감이 수채화로 번지는 언덕에서 청실홍실로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무엇을 바라며 누구를 위해 못다한 사연 접으려고 세월의 끝자락에서 펄럭이고 있는가. 동그라미는 세발 자전거 바퀴처럼 잘 달린다. 굴렁쇠도 방향을 바꾸며 굴리면 잘 나간다. 굴렁쇠는 너른 길보다는 좁은 길이 더 좋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굴리면 더 재미있다. 네모난 사각통은 모서리가 걸림돌이 되지만 뒤집어 엎을 용기만 있으면 장애물 경기처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무기력증은 피로, 수면장애, 우울증, 집중력 저하로 몸과 마음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지게 하고 살 맛을 떨어지게 한다. 종점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돌아가는 버스를 놓친다. 종점에선 서둘러 막차라도 타고 되돌아 오면 된다. 희망의 샘터에 물이 마르면 다른 곳에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난다. 나만 외롭고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지면 주변을 돌아보라. 나보다 백배 천배 더 힘든 사람들이 실낱 같은 희망 품고 매일을 살아간다. 끝은 위험하다. 절벽, 낭떠러지,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편지 띄우고 싶을 땐 ‘나’를 위해 사랑과 우정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한여름 밤에 불태우던 욕망을 잠재워 주던 너, 절망의 늪에서 손 내밀어준 그대, 가을 바람에 날려버린 못다한 약속 지켜준 당신, 추억의 비누방울 속에 동그랗게 새겨진 유년의 꿈이여도 좋겠다. 버티며 살 수 있는 온갖 희망이였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 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준다/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 하늘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한 점이 되어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맘 속에 한 점이’ –라이너스의 ‘연’ 중에서 튼튼한 실에 매달려도 연은 언제 바람에 몰려 추락할 지 모른다. 나무에 걸리면 꼬리를 접는다. 연은 찢어지고 끊어져도 수리해 다시 쓸 수 있다. 연과 연결된 실을 감는 얼레만 튼튼하면 다시 만들어 하늘 높이 띄울 수 있다. 연 날리던 동무도 까르르 웃던 애들마저 떠난 마당에서 홀로 마음 속 연을 띄운다. 영어 배울 때 가장 헷갈렸던 게 현재진행형과 미래진행형이다. 내일은 미래진행형이다. 오늘을 견디면 내일은 온다. 허전한 세월의 끄트머리를 참고 견디면 한 해가 저무는 것이 아니라 새 해 새 날이 다가온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끄트머리 세월 굴렁쇠도 방향 코발트빛 하늘 오렌지색 물감
2022.12.27. 15:31
12월은 특별한 음악이 필요한 시간이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12월의 노래는 반짝이는 불꽃 등불이 가득한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열한개의 세월 묶음을 뒤에 쌓아놓고 그 속에 달아 놓은 등불만큼 많은 이야기를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 담아낸다. 300여 백지 위에 남겨진 일기장은 꽃 피워낸 득의의 웃음과 넘어져 상처 입은 울음을 담는다. 빈손을 바라보는 씁쓸함과 한장의 지폐가 주는 안심과 잘 못 들어선 길에 섰던 낭패와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받던 위로와 위협하는 세태의 눈길에 위축되던 용기와 드디어 열린 성문으로 안도하던 표정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고 나며 채워지고 있다. 그때 왜 그렇게 조급했고 불안했고 거만했고 기분 좋았고 미안했고 으쓱했고 작아졌었는지 이유조차 까마득한 지나간 시간의 박제된 사진첩으로 남는다. 지금은 남모를 표정으로 한 장씩 꺼내 보는 그때의 시간을 계산하는 영수증이 한 묶음이다. 열두 번째 세월 속에서 뜬금없이 스며 나오는 이야기들이 조급해지는 시간을 꾸며주고 있다. 종점을 향하는 전차의 종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시간이다. 종점의 풍경이 차창 밖에서 흔들리는 때이다. 길었던 여정을 어떤 모양이든 마무리 하며 등짐을 내려놓는 자세가 되어 뒤를 돌아본다. 길게 내쉬는 숨소리에는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쉴 수 있는 곳에 도달한 안도의 숨결이 묻어난다. 길고 긴 산행 끝에 어느 능선에 자리 잡은 대피소에 도달한 피곤하지만 험한 산길을 무사히 주파해 냈다는 자랑도 먼지 가득한 얼굴에 내려앉는다. 이제야 지나온 험한 길옆에서 시야 가득히 들어오던 아름다운 경치들이 살아난다. 발길을 격려하던 이름 모를 꽃들의 미소도 살아난다.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깨끗하게 흐르던 시냇물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하던 맑은 공기의 청량함이 신발 끈을 푸는 그 시간에 귀한 경험과 느낌으로 온몸을 감싼다. 흘렸던 땀방울을 새삼 대견하게 세어보며 안식에 든다. 등불을 높이 밝히고 싶은 시간 속에 있다. 낮시간 동안 무미건조한 색깔로 숨죽이던 거리가 밤시간이 찾아들면 오색 빛 화려한 장식들의 불빛으로 가득 찬다. 어두움이 길어지는 계절에 그 어둠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들이 등불을 밝히고 거리에 놓아둔다. 알 수 없는 세계로 사라져가는 과거라는 시간과의 헤어짐을 장식한다. 어둠 속을 가는 발걸음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차가운 바람이 있어 헤어짐을 얼게 하고시려운 손과 추워하는 몸이 따뜻한 털옷과 폭신한 장갑을 서둘러 꺼내 들게 한다. 열두 번째 세월이 차가운 하늘 아래 놓여있음은 괜찮은 모양새다. 따뜻한 바람과 피어나는 예쁜 꽃과 노래하는 새들에 둘러싸여 잘 가라 인사하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회색빛 하늘 아래 눈 쌓인 길 위에서 찬바람 맞으며 잘 가라 손 흔드는 정경이 어쩌면 헤어짐과 어울릴 듯 하다. 그 회색 하늘 아래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 켜 들고 헤어짐의 표상으로 삼는 것이 열두 번째 세월 속에 걸맞은 행사로 보인다. 세상에 많은 이야기가 끝에 도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나 연극도 끝이라는 휘장을 내리면서 다음 이야기의 머리꼭지를 넌지시 남겨 놓고 돌아선다. 열두 번째 세월은 그런 특별함을 지니는 시간이다. 길었든지 혹은 짧았든지 허락되었던 세월을 끝맺음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당신께 드린다며 낯선 문 앞에 세운다. 새로 열리는 길의 시작에 서 있는 기대와 희망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대문의 빗장이 스르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끝과 시작이라는 묘한 공간이고 시간이다. 두 얼굴의 안내자를 만나는 기분이다. 열두개의 보름달을 기억하며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자신의 두손을 바라보는 시간에 조금은 경건해진다. 남은 시간을 세어보고 어찌 채워갈까 바빠지는 마음을 다둑이며 마무리의 손길이 나선다. 나무 그늘에 잠시 쉬어 앉은 나그네의 심정이 되어 이것저것 길손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는 크고 작은 짐꾸러미를 정리하면 어느덧 어느 종착지에 서 있게 된다. 저쪽의 시작점이 다가오며 무표정으로 웃고 있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열두 세월 세월 묶음 낮시간 동안 회색빛 하늘
2022.12.12. 21:25
오랫만에 만난 친구 세상이야기 친구들 소식 건강이야기 꼬리를 물고 늦게까지 나눈 술잔 조금 과했나 집에 와 방문 여니 희미한 등불 아래 신문 읽는 머리 허연 여인 얼레,장모님 언제 오셨슈? 돋보기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허는 댁은 뉘슈? 서로 우두커니 한참 바라보다 앗다 세월 참 빠르구먼! 그래유 급행열차 탄 것 같아유. 강언덕 / 시인시 세월 세상이야기 친구들 건강이야기 꼬리 등불 아래
2022.12.01. 19:06
어느 시집에서 투욱 떨어지는 작은 엽서 ‘사랑의 시 만 모은 것이라고’ 몇 년 전 가버린 친구의 말 장미 흐드러진 언덕에서 다시 만나자는… 마지막 가는 그녀에게 써 보냈던 말 세월에 묻혀 잊었네 사랑이 이우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예이츠의 시에는 우리의 길이 예감 되었고 지우지 못한 너의 음성, 이 가을도 듣는다 어디쯤에서 마주할 수 없는 어디쯤에서……. * 아일랜드의 시인, 소설가 조찬구 / 시인·뉴저지글마당 세월 시인 소설가 길이 예감
2022.10.14. 16:45
철 이른 산포도 익어 가고 빠알간 석류 속살 드러내는 많은 먹거리와 각종 고운 색깔의 계절 새해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시나브로 다가온 눈부신 가을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하루 한주 한 달이 번개같이 달아나고 길게만 생각되던 한해도 한순간 같은 느낌 안개 속 알 수 없는 세월은 멈춤장치 고장난 탄환열차 분별없는 내 마음 왜 이리 서두나 머지않아 그 세월 아프게 그리워하게 될 텐데 박명근 / 시인시 세월 유감 세월 유감 석류 속살
2022.10.06. 19:11
친구가 한국을 다녀오면서 전복 껍데기 안쪽의 화려한 무늬로 만든 반지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내 검지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외출 때 예쁘게 멋을 내 보라고 한다. 반지 낀 손을 내려다보는데 눈살이 갑자기 찌푸려진다. 내 손이 곱지 않은 걸 알면서도 손등 주름에 왜 마음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시집 와서 50년 넘게 김치를 담그고 매일 밥을 해 먹었으니 손등의 살갗인들 당해 냈겠는가. 이게 보기 싫다고 짜증이 날 일인가. 마음을 바르게 고쳐 먹어야지. 그간 손은 지쳐있는 내 마음도 쓰다듬고 힘들 때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던가. 그렇다.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먹여 살리느라 애쓰며 지내 온 세월. 힘없고 귀 어둡고 눈이 잘 안 보이고 다리가 흔들리고 인지력은 떨어지며 남은 건 주름뿐이다. 꽃송이처럼 화려할 때는 좋아하고 힘이 있을 때만 좋아하면 되겠는가. 시들면 외면하고 힘이 사라지면 등을 돌리면 되겠는가. 얼마나 고마운 관계인가, 부부라는 것이. 인생은 맞추어 가며 살아야 행복해진다.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마음 상하는 일들은 과감히 잊어버려야 한다. 삶에서 부딪히거나 다툴 일이 생기면 굳이 자존심 내세우며 다투지 말고 먼저 피하는 것이 지혜다. 매일 맞이하는 날을 새롭고 행복한 날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옳다. 삶이 물안개처럼 우리를 감싼다. 삶에 대한 만족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삶과 현재의 삶이 무엇이 다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만족하는가가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어떤 동행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다. 존재가 귀하게 여겨져 사랑으로 대하게 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렇게 깊고 넓게 열린 자세로 마주하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못 된 내 마음이 손에게 사과한다. 여기까지 같이 와 준 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더러운 빨래 빨아주고, 주름진 옷 다림질해 주며, 떨어진 양말 꿰매 준 너, 손아, 고맙다. 두 개의 다른 프레임 위의 캔버스. 둘 다 아름답고 더럽혀지지 않기를 원한다. 서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에서 발견되기 원하는 것은 한쪽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 눈에는 반짝임의 의미가 있길 바란다. 어떤 그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색상같이, 그 어떤 향수와도 견줄 수 없는 꽃의 향기처럼. 반쯤 내민 포니테일 팜의 초록 얼굴이 대문을 열고 보니 꽃봉오리를 펼치려 분홍색으로 물들어간다. 언젠가는 마주할 힘든 시간을 눈앞에 그리며 나도 잘해야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스린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세월 손등 주름 전복 껍데기 검지 손가락
2022.06.09. 18:30
[尹정부 출범] 74년 '영욕의 세월' 뒤로 하고…靑, 역사 속으로 <이 기사는 2022년 05월 10일 00시 00분부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객사의 제작 편의를 위해 미리 송고하는 것으로, 그 이전에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엠바고 파기시 전적으로 귀사에 책임이 있습니다.> 김신조 사건에서 10·26까지…'권력의 심장' 정권명멸 지켜봐 문화재 등 볼거리…북악산 등산객 몰려 '시민공원' 기대감도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10일 오전 0시를 기해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그동안 70년 넘게 이어진 '권부의 심장'으로서 청와대의 역할도 그 수명을 다하게 됐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제 청와대는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 아닌 시민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권력의 명멸 바로 곁에서 지켜봐 현재의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을 청사 건물로 사용하면서 지금의 청와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83년 전인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는 이 곳에 건물을 짓고 총독관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짓고 관저 및 대통령 집무실로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 청와대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푸른 기와 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의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당시 4·19 혁명 분위기 속에 경무대가 지닌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이름을 바꿨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62년의 세월 동안 청와대는 곧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통했다. 특히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청와대는 주요 무대로 활용됐다. 우선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부요인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뒷산으로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무장대원들이 침투한 이른바 '김신조 루트'는 최근 북악산 개방 결정을 통해 일반 시민들도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됐다.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부지 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지는 '10·26 사태'가 벌어졌다. 다만 이처럼 최고권력의 바로 곁에 위치하다보니 국민들에게 청와대는 무언가 내밀하고 위압감있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여기에 국가원수에 대한 철저한 경호 등이 겹치며 대통령과 시민들의 접점은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정권이 반복될 때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 논란'에 휩싸여야만 했다. ◇ 문화재 등 볼거리 풍성…등산객 몰리는 '시민공원' 될까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런 '구중궁궐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와대를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으로 옮기는 '대공사'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청와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공원이 될 전망이다. 시민들이 청와대에 입장하면 그동안 대통령과 참모들이 사용했던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 녹지원, 상춘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동안 경호와 보안 문제로 잠겨 있었던 청와대 뒤편 대통문이 개방되면서 한양도성 성곽까지 연결되는 북악산 등산로도 새롭게 열리게 된다. 춘추관 뒷길에서 출발하는 청와대 동편 코스와 칠궁 뒷길로 시작하는 서편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등산 코스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되며, 봄을 맞아 다수의 관광객들이 새로 열리는 이 코스를 찾을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청와대 내의 다양한 문화유적도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1977호로 지정된 석불좌상이 있다. 지정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1913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에이 이를 서울 남산 총독관저가 있던 왜성대로 옮겨왔다. 특히 데라우치 총독이 일본으로 이 불상을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당시 언론이 비판여론을 일으켜 보물을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근에는 청와대 내 정자인 오운정도 자리하고 있다. 오운정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에 함께 건립한 정자로, 이 현판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청와대 내부 서남쪽에는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의 위패를 모신 '칠궁'이 있다. 수궁(守宮)터는 과거 일제가 세웠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허물면서 옛 경복궁 후원의 모습을 재현해 조성한 곳이다. 이같은 유적을 중심으로 한 '역사탐방'이 북악산 등산코스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청와대가 역사와 자연이 함께하는 시민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게 윤석열 정부의 기대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尹정부 출범 영욕 세월 대통령 집무실 시민공원 기대감 청와대 부지
2022.05.09. 19:59
‘여보 사랑해요’ ‘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얼마 전 참석했던 장례식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가 담긴 꽃들로 가득했다. 그 꽃들 사이에 온화한 표정의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동료 목사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잃은 동료 목사를 위로하기 위해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이 영 어색했다. 목사이기에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찾기보다는 집례나 다른 순서를 맡을 때가 많았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하기에 장례식 내내 긴장하며 서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두리번대던 눈길이 장례식장 전면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TV에 멈춰 섰다. 찬송가 악보도 보여주고, 고인이 살아계실 때의 행적이 담긴 슬라이드 쇼도 나오는 TV였다. TV 화면은 집례자와 함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은 유가족이 울음을 애써 참느라 들썩대는 어깨의 흔들림이 TV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유가족들 바로 뒷줄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의 뒷모습도 TV로 보였다. 그중에 한 중년 사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사내의 뒤통수가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그것도 내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따라다녔다. ‘설마 저게 나겠어?’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데, 그 사내의 머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까딱거렸다. 내 뒤통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인지 TV 화면에 비친 내 뒤통수가 낯설기만 했다. 저게 남들이 보는 내 뒷모습일 텐데 나만 못 보고 살아왔다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TV 화면으로 보이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내 뒤통수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가만 보니 내 머리만 하얀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 앉은 이의 머리도 하얗고, 그 옆에 있는 이의 머리는 가운데가 횅했다. 앞모습만 바라보느라 놓쳐버린 세월의 흔적이 오랜만에 만나는 뒷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것은 뒷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걸어왔던 길에도 그 흔적이 쌓여 있을 것이다. TV 화면을 통해 비치는 뒷모습을 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을 떠나는 동료 목사의 아버지도 결국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갔다. 아내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요, 아들들에게는 하늘 같은 아버지였다.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따듯한 할아버지였고,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인 신앙인이었다. 그가 남긴 뒷모습이 멋지고, 그가 걸어왔던 길이 아름다웠던 만큼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아쉬웠을 것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 남을 뿐이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내 뒤통수를 보면서 이제는 뒷모습을 잘 관리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길을 걸어갈 때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야 할 때다. 내가 밟고 지나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따라가야 할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TV 화면에 비친 한 중년 사내의 뒤통수는 세월의 흔적을 잘 쌓으며 살라고 하면서 오늘도 하얗게 변해간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 광장 뒷모습 세월 장례식장 전면 그날 장례식장 아버지 천국
2022.04.13. 20:06
휘 휘 부는 바람 소리로 세월이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꾸 닳은 구두 뒷 죽으로 세월이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 세월이 늙고 있음을 알 수도 있다 때맞춰 피는 들꽃으로 세월이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별 사이로 다니는 방으로 세월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익중 / 화가·맨해튼글마당 세월
2022.02.04.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