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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센터 보조금 확충 총력

오렌지카운티 한미시니어센터(회장 김가등, 이하 센터)가 보조금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랜 기간 센터를 후원해온 독지가와 한인 단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통로를 이용해 보조금을 받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   센터는 지난 24일 이사회에서 희소식을 발표했다. 내달 초 한미재단(이사장 존 임, 이하 KAF)으로부터 1만 달러 보조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다. 센터 측은 지난 5월 KAF 웹사이트를 통해 보조금을 신청했다.     피터 이 센터 사무국장은 “지붕 수리와 강의실 확장 공사 자금을 신청했다. 3년치 세금보고 서류를 포함해 여러 서류를 준비해 제출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말했다.   센터는 일본계 시니어 지원단체인 케이로(KEIRO)에도 5000달러 그랜트를 신청해 놓았다. LA 리틀 도쿄 지역에 있는 KEIRO는 LA, 오렌지, 벤투라 카운티의 일본계 시니어 지원 활동을 펴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KEIRO가 일본어와 일본 문화 전파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센터에 일본어 강좌를 개설하는 걸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성사되면 센터 회원들이 일본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센터 측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랜트 신청에 나선다. 내년 2분기엔 UC어바인 메디컬 센터에 회원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위한 그랜트를, 3분기엔 OC교통국을 통해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는 EMSD(Enhanced Mobility for Seniors and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Program) 프로그램 관련 그랜트를 각각 신청하기로 했다. OCTA 지원으로 셔틀 버스를 운행 중인 센터는 EMSD 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신청할 방침이다.   김가등 회장은 “EMSD 프로그램을 제공하려면 관련 워크숍에서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통국이 제시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극적으로 그랜트를 신청하는 것이 곧 회원 복지를 강화하고 센터의 장래를 밝게 하는 길이란 생각으로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인 단체들이 그랜트 신청에 소극적인 편인데, 우리가 모범을 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사회에서 센터 측은 지난 9월 비가 새던 지붕 수리 공사를 마쳤고 센터 외부 펜스를 확장해 주차장과 연결되는 부분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조영철, 김은옥씨를 2026년도 이사로 위촉했다. 임상환 기자일본 시니어센터 오렌지카운티 한미시니어센터 보조금 확충 그랜트 신청

2025.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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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출판사, 일본서 ‘태극의 바람’ 프로젝트 공식 출정

대한민국경제실록을 발행해온 실록출판사가 오는 2026년 3월, 일본 전역을 무대로 한 대규모 민간 문화교류 프로젝트 ‘The Great Wind of Korea(이하 태극의 바람)’을 공식 출정한다고 29일 밝혔다. ‘태극의 바람’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오직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비정부·비정치적 민간외교 활동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본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부채 1만 개를 일본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직접 전달하며, 한국의 문화적 자긍심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규모 민간외교 문화 캠페인이다.   실록출판사 이준동 대표는 “태극부채 한 장이 언어와 국경의 벽을 넘어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며 “정치적 주장이나 역사적 해석이 아닌, 오직 문화와 예의로 소통하는 순수한 교류의 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젝트의 모든 활동은 일본 현지 법령(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준수하며, 종교적 메시지나 정치적 논쟁을 배제한 순수한 민간 문화외교 활동으로 진행된다. 실록출판사는 이번 활동을 통해 국가 간 이해와 우호의 폭을 넓히고,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와 예의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실록출판사 관계자는 “’대한민국경제실록’으로 근현대사를 기록해온 출판사가 이제는 ‘기록을 넘어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라며 “민간이 주도하는 새로운 외교, 문화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국민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실록출판사는 이번 프로젝트의 후원사를 ‘문화외교의 동반자’로 정의하고,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후원 기업의 로고와 메시지는 부채, 안내 카드, 포스터, SNS 콘텐츠 등 모든 홍보물에 노출되며, 프로젝트의 여정은 한·영문 도서 ‘The Great Wind of Korea - 태극의 바람’으로 발간돼 교보문고와 아마존북스를 통해 전 세계 독자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강동현 기자 [email protected]일본 실록출판사 프로젝트 공식 실록출판사 이준동 실록출판사 관계자

2025.10.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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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서 햄버거까지…97세 위진록의 한 세기 인생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온 위진록(97)의 눈시울은 촉촉히 젖었다. 22살에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22년, 미국에서 53년, 인생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낸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한국전쟁이 사람의 생애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어요. 전쟁이란 것은 참 무서운 겁니다.”   그의 삶의 궤적은 한국현대사의 격변과 맞닿아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 공격 최초 보도. 석달 뒤 9월28일 유엔군과 국군의 서울 수복 최초 보도. 한국전쟁 중 일본 도쿄 유엔군총사령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휘하에서 한국전쟁 전황을 방송한 아나운서. 1972년 미국으로 이민 와 햄버거 가게를 10년 운영하며 지역 명사가 된 한인.     97세에 서간집 펴낸 사연   85세였던 2013년 10월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KBS 원로 아나운서 위진록의 고백적 기록'을 출간했다. 22살 청년이 한국전쟁 통에 도쿄로 파견됐고, 44살 장년이 되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 사연들을 자전적으로 서술했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몸소 겪으면서 만난 인연들에 관해 솔직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2018년 문학회 강연차 LA에 방문한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정순진 교수에게 이 책을 건네주었다.   “건네주신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모두 읽었습니다. 한번 손에 들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맞서 싸워온 선생님의 삶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져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야 말로 삶이 곧 책인 ‘사람책’이시네요.”   정 교수가 독후감을 손편지로 보내왔다. 오래간만에 보는 정성스럽게 쓴 독후감 손편지에 감동받아 곧바로 손편지로 답장을 보냈다. 손편지가 태평양을 건너자면 2주, 왕복하자면 거의 한 달이 걸린다. 이 번거로운 편지 주고 받기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200통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이를 엮어 '세월의 흔적: 8년간의 손편지에 담긴 인생 이야기'를 최근 출간했다. 출판기념회는 11월1일 LA 한인타운 한 호텔에서 열린다.   인터뷰를 요청하고 위 선생이 살고 있는 가디나 자택으로 찾아갔다. 귀는 다소 어두웠지만, 허리는 꼿꼿하고 목소리는 정정했다.   19세 최연소 KBS 아나운서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가난한 지방관리의 2남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관비로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양사범학교에 1940년 입학했다.     평양사범학교 시절 브라스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클래식 음악이 나중에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맡는 자양분이 된다. 장차 한국 현대국어학의 초석을 닦은 대표적 한글학자이자 어문학자가 되는 이숭녕 박사를 선생님으로 만난 것도 이 학교에서다. 5.16 군사정변의 주체 세력의 일원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이 된 옥창호를 동기생으로 만난 것도 평양사범학교다.     평양사범학교 3학년 때 기숙사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 퇴학을 당했다.     경성역(서울역) 역부로 일하는 동안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1947년 KBS 제1회 ‘방송극 연구생’ 모집에 합격해, 라디오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에서 아저씨 역을 맡아 한국 아동극의 한 장을 여는데 기여했다. 같은 해 9월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했다. 만 19세로 한 나라 국영방송의 최연소 아나운서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두 번 모두 평양사범학교 졸업 학력 기재로 응모자격을 얻었으며, 그것이 일생 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는 점을 자서전에 구구절절 고백해놨다.   1948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방 초도 순시 때 동행하며 뉴스를 보도했고, 1949년 7월5일 백범 김구 선생의 장례식 하관식을 중계 방송하는 등 격동기에 KBS 아나운서로 라디오 방송 일선에서 일했다.   그가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KBS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였다.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 괴로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이 건재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그날 아침 6시, 그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울려 퍼졌다. 당시 숙직실에서 자고 있던 중 육군본부의 긴급 방문을 받고 새벽에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날 방송이 바로 ‘6·25 제1보’로 기록됐습니다.”   사흘 뒤 서울이 함락되자 그는 한강 남쪽으로 피하지 않고 집 지하에 몸을 숨겼다. 북한군이 방송국 직원을 불러모아 자백서를 쓰게 했을 때도 그는 생존을 위해 고뇌했다.     “그날 북한군 방송에 협조했다면 나는 자유세계와는 인연이 끊겼을 겁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수복한 9월 28일, 그는 다시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황급히 떠난 북한군이 완전히 폭파시켜 버려 KBS 정동 라디오 방송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 길로 바로 당인리 송신소로 내달렸다. 마침 송신소에는 옛 동료들이 있었다. 마이크와 송신시설을 연결해 임시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제 자유를 찾았습니다!” 감격스러운 서울 수복 소식을 알리는 첫 방송을 내보냈다.   한국전쟁 발발과 서울 수복, 두 개의 역사적 소식을 전하는 마이크에는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맥아더 휘하서 라디오 아나운서   유엔연합군이 한창 북진을 하고 있던 1950년 11월 유엔군총사령부 심리작전국의 제안을 받고 일본 도쿄로 파견됐다. 목소리가 미국 CBS의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를 닮았다는 이유였다. “한 달이면 전쟁이 끝난다”는 말을 믿고 떠났지만, 전쟁은 3년을 끌었다.   그는 도쿄에서 VUNC(Voice of United Nations Command) 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일본 땅에서 한국군과 한국 국민을 위한 방송을 이어갔다.   1958년 오키나와로 VUNC 방송국을 옮긴 후에도 그는 클래식 해설 프로그램 ‘음악의 향연’을 제작해 한국의 KBS로 보냈다. 방송제작 시설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KBS는 ‘음악의 향연’을 밤늦은 시각에 고정적으로 방송했다. “그 프로그램을 듣고 작곡가가 되고, 대학교수가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던 1968년에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로 파견됐다.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을 인터뷰하고 함께 지낸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1969년에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방문을 받고 박정희 대통령 인터뷰 주선을 요청했다. 긍정적 답변을 받고 한국으로 출장을 갔지만, 박 대통령 인터뷰 일정에 대한 회신을 받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평양사범학교 동기였던 옥창호 장군에게 부탁했고,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연락해 육영수 여사까지 인터뷰 요청을 전달하는데 성공했으나, 인터뷰는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1972년 VUNC 방송국이 해체되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큰 결단을 내렸다. 미국 이민을 단행했다. 미군 산하기관에서 22년을 일한 덕에 특별이민 비자를 받았다.   “아이들이 미군 학교에서 영어로만 공부해서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KBS의 복귀 제안을 뒤로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미국 남가주에서 그는 또 한 번 도전을 시작했다. LA 지역 작은 한인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미국에 이민 왔으니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는 ‘그저 문득’ 엉뚱한 생각을 했다.   LA타임스에 난 광고를 보고 허모사 비치의 햄버거 가게를 6000달러에 인수했다. 가지고 간 전 재산이었다. 7월 말 무렵이었다. 여름방학이라 아이들이 햄버거 가게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8월 말까지는 하루 120달러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9월 들어서 문제가 생겼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자 손님이 뚝 끊겼다.   “하루 매상이 6달러밖에 안 될 때도 있었어요. 그때는 정말 막막했죠.”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가게 이름을 Wee's Kitchen으로 바꾸고, 아내와 함께 튀김과 불고기, 탕수육 같은 동양음식 메뉴를 개발해 팔기 시작했다. 당시 허모사 비치에는 동양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삼남매 명문대 보낸 햄버거집     때마침 동네신문 이지리더(Easy Reader)가 그의 사연을 기사로 소개했다.   “맥아더 사령관과 함께 일했던 한인 부부가 해변가에서 햄버거를 판다.” 이후 가게에는 손님이 몰려들었다.     사람을 쓰지 않고 아내와 단 둘이서 식당을 꾸려가느라 하루 종일 눈코 뜰새 없이 주방 일을 해야 했다. 도마질은 그의 전담이었다. 햄버거 패티 맛을 지키기 위해 고기를 기계로 썰지 않고 손으로 써는 걸 고집했다. 움푹 패인 도마를 버리고 새것을 산 것이 열 번이 넘는다.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동네 꼬마들은 “Yellow, Yellow!” “Leper, Leper!”라고 놀리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돌이나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몹쓸 인종차별을 웃음으로 버텼다.     햄버거 장사를 하면서 세 자녀를 모두 명문대에 입학시켰다. 큰 아들은 예일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둘째 딸은 하버드대와 UC버클리 로스쿨을 나왔다. 막내 아들은 UC샌디에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범상치 않은 햄버거 가게 한인 부부와 자녀들의 이야기는 지역에서 화제가 됐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우체부도, 은행 직원도, 슈퍼마켓 직원도 모두 “하이, 미스터 위!”라며 인사하는 타운의 명사가 됐다. 햄버거 장사 7년, 동양인을 멸시하며 돌을 던지던 동네 아이들이 “하이, 미스터 위!”라며 인사하던 날, 그는 그 인사를 제목으로 수필집을 펴냈다. 책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고, 방송인 봉두완의 추천으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햄버거 가게를 팔고 사우스베이에 '아세아 서점'을 열어 아시안 이민자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했다. 한 달에 한번 동네신문 [코리안뉴스]를 발행하면서 이민생활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수필을 연재했다. 또 라디오코리아에서 '미스터 위의 커먼센스' 프로그램을 맡아 일상의 지혜를 전했다. “내 프로그램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격동기 경험담과 남가주 이민살이,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여러 편의 수필집에 기록으로 남겼다. '하이! 미스터 위(1979)', '이민 10년 생(1984)‘, ’잃어버린 노래(1993)', '낙타의 속눈썹(1997)', '위진록의 커먼센스(1999)',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2011)', '고향이 어디십니까(2013)'등등.   라디오 방송활동과 수필집 출간으로 남가주 문학인들 사이에서 명사였고, 가주예술인 연합회 회장과 재미 방송인협회 고문도 역임했다.     2013년 출간한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출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 다시 새 책을 세상에 내놓을 줄은 그 자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정 교수와 주고받은 손편지였다. 어쩌면 그가 세상과 맺은 마지막 인연의 기록일지 모른다.     “우연은 신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는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인용하며 미소 지었다.   “그 우연을 붙들고 8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어요. 독자들이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97세의 노인은 여전히 펜을 놓지 않는다. 그의 삶은 마이크와 원고, 햄버거와 손편지로 이어진 한 편의 역사였다.   “나는 나대로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   “책 읽고 가슴 뭉클해져 편지 썼죠”   공동저자 정순진 교수   문학평론가 정순진(68) 전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세월의 흔적'의 공동저자다. 그는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은 편지를 주고받게 될 줄도, 그것이 책으로 엮이게 될 줄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8년 5월 재미수필가협회 초청 강연회에서 시작됐다. “강연에 참석하신 위 선생님께서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건네주셨습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책을 단숨에 읽고 가슴이 뭉클해져 감사 편지를 보냈지요. 그 편지에 답장이 오면서 8년간의 서신 왕래가 시작됐습니다.”   위진록에게 건네받은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읽으며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인간적 진실에 깊이 매료됐다고 했다.   “전쟁 중 아내가 밀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다 표류 끝에 대마도 구치소에 수감되는 이야기, 풀려난 뒤 일본인 신혼부부로 위장해 도피생활을 하게 된 사연,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종이학 천마리를 태우는 장면은 가슴이 저렸습니다. 몇십 년 전 일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8년째 손편지를 주고받아온 이유에 대해 그는 “서로 손편지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외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선생님은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외출이 줄어든 시기였고, 저는 병으로 조기 퇴직 후 자발적 은둔 중이었어요. 편지는 서로의 고립된 시간을 잇는 다리가 되었죠.”   사적인 편지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에 대해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기록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하며 안부를 묻는 거죠. 우리는 모두 생로병사의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니까요.”   정 교수는 “우리는 아마 살아 있는 한 계속 대화를 이어갈 겁니다. 편지가 오갈 수 없는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우리의 대화는 멈추지 않을 거예요”라며 말을 끝맺었다.   「 미주중앙일보는 PCI의 후원으로 이 책을 관심 있는 독자에게 1인 1부 선착순으로 무료 배포합니다. 신청은 e메일([email protected])로만 받으며, 성함 주소 전화번호를 꼭 기재하셔야 합니다. 접수 연락을 받으신 분은 본사(690 Wilshire Pl, LA, CA 90005)에서 수령하십시오. 배송비($20) 부담 조건으로 미국에 한해 우송도 해드립니다. 」     이무영 기자 [email protected]일본 북한 한국전쟁 전황 햄버거 가게 라디오 방송

2025.10.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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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음식에 배어 있는 일본어

생선회를 가리켜 ‘사시미’라 부르는 사람이 꽤 있다. ‘사시미(さしみ, 刺身)’는 생선회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횟집에 가면 이왕이면 밑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이 좋다. 이때 밑반찬을 ‘쓰키다시’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쓰키다시(つきだし)’는 일본 요리에서 본요리 전에 나오는 일종의 전채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곁들이 안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횟집에는 ‘스시’도 있다. ‘스시(すし)’는 소금·식초 등으로 간을 한 밥 위에 얇게 저민 생선·김·달걀 등을 얹거나 말아 만드는 일본 요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상황에 따라 ‘초밥’이나 ‘생선초밥’ 등으로 부르면 된다.   생선회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와사비’다. ‘와사비(わさび)’는 매운맛을 내는 일본의 대표적 향신료다. 국어원은 우리말 대체어로 ‘고추냉이’를 선정했다.   생선회를 먹은 다음에는 탕으로 마무리하는 게 깔끔하다. 이럴 때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지리탕’을 시킨다. 여기에서 ‘지리(ちり)’는 생선·두부·채소 등을 냄비에 넣어 맑게 끓인 국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국어원이 제시한 순화어는 ‘맑은탕’ ‘싱건탕’이다.   이 외에도 음식과 관련해 쓰이는 일본어나 일본식 표현이 적지 않다. 사라다(→샐러드), 락교(→염교), 아나고(→붕장어), 마구로(→다랑어), 소바(→메밀국수), 샤브샤브(→전골), 다시(→맛국물), 사라(→접시), 다대기(→다진 양념), 다마네기(→양파), 오뎅(→어묵), 와리바시(→나무젓가락) 등이 있다.우리말 바루기 일본 음식 우리말 대체어 곁들이 안주 이때 밑반찬

2025.10.16. 18:47

[우리말 바루기] 군대 내 일본식 용어

군대에 갔다 온 남자들은 그 시절 얘기를 자주 한다. 특히 남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선 더욱 그렇다. 그중엔 고생담이 대부분인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이가 바로 ‘고참’이다. 군의 특성상 하늘 같은 고참으로 인해 겪은 고생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고참’은 사회에서도 두루 쓰이는 말이지만 일본식 한자어(古參, こさん)란 것이 일반적 견해다. ‘선임자’로 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군대에 갔을 때 훈련소에서 주말에 ‘미싱하우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한 적이 있다. ‘미싱하우스’는 ‘물청소’를 뜻하는 일본어 ‘미즈나오시(みずなおし, 水直し)’에서 왔다는 것이 대체적 의견이다.   이처럼 군대 용어에는 일본식 한자어가 적지 않다. ‘총기 수입’이란 용어도 있다.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외국에서 총기를 들여오는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총기 분해 청소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서 ‘수입(手入)’은 ‘고치다, 손질하다’를 뜻하는 일본어 ‘데이레(手入れ, ていれ)’의 한자 표기를 우리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요즘은 ‘총기 손질’이란 말로 바꿔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기합(→벌주기), 구보(→달리기), 내무반(→생활관), 도수체조(→맨손체조), 사역(→잡무), 반합(→도시락), 단까(→들것), 관물대(→사물함), 불침번(→야간경계병), 모포(→담요), 화이바 (→헬멧), 불출(→지급) 등도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군대 내 일본식 용어는 일제 강점기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식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일본 군대 군대 용어 군대 경험 총기 수입

2025.09.30. 18:45

“중국인 때문에 주택가격 폭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주택 가격 폭등 원인이 중국인 등 외국인의 주택 대량 구매 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9일 미국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해 매매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인 부자들이 여전히 왕성히 구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국부동산중개인연합회(NAR) 자료에 따르면 작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외국인 구매 기존주택은 7만8100채로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해 2010년 이후 가장 크게 증가했다. 외국인 구매 건수 중 중국인이 15%로 가장 많았다.     중국인의 평균 주택매매가격 75만9600달러 전체 평균인 40만3100달러보다 훨씬 많아, 주로 고급주택 매매 현상이 뚜렷했다. 중국인 주택 구매는 주택가격 폭등세가 나타나고 있는 도심 지역에 집중됐다. 중국인은 주로 캘리포니아, 워싱턴, 뉴욕, 하와이, 애틀란타 등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올 캐쉬 거래’를 선호했다.     중국인 구매 건수의 70% 이상이 올 캐쉬 거래였다. 이같은 현상 탓에 정작 미국인들은 급등한 주택 가격 탓에 구매 기회를 잃고 있다. 최근 기존주택 평균매매가격은 42만2400달러로 4년 만에 40% 이상 상승했다. 펜데믹 이후 모기지 금리마저 급등해 최근 30년 고정 모기지가 6.5%에 이른다.     NRA는 “모기지 금리가 급등해 미국인 실수요자 부담이 가중된 반면, 외국 부유층이 대출 부담없이 올 캐쉬 거래로 주택을 사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서는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의 투자목적 부동산 구매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외국인 부동산 소유가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국가 안보를 해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주가 외국인 주택 구매를 적극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일본 중국 주택가격 폭등세 주택가격 안정 외국인 구매

2025.09.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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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일본인 수용소에 수감 67% 한국인

연방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의 안보 위협을 이유로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한 시설에 수천 명의 한국인도 수감됐던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였음에도 실제로는 한국인 수용자 수가 7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하와이 지역 매체 ‘호놀룰루 시빌 비트’는 지난 5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하와이주 오아후 섬 중앙에 있는 호노울리울리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던 4000여 명 중 2700명이 한국인이었던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반면, 해당 수용소에 수감됐던 일본계 미국인은 불과 약 400명뿐이었다.   이는 최근 호노울리울리 강제수용소 터가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아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소장 이덕희), 하와이대학교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이덕희 소장은 5일 본지와 통화에서 “대부분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강제 노역을 했던 한국인들로 미국과의 전투 중 포로가 된 한국인들”이라며 “일부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가 붙잡힌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용소로 이송된 일부 한국인은 총상 또는 자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일본군에게 학대를 당한 흔적도 있었다. 수용소 내에서는 한국인과 일본계 수감자 사이 갈등이 격화돼 양측을 분리해야 했던 기록도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노울리울리 강제수용소의 한국인 수감 연구는 이 소장과 고(故) 최용호 하와이대 교수가 지난 2000년 처음 연구를 시작했다.   이 소장은 “당시 한국인 포로들이 호노울리울리 수용소에 수감됐었다는 사실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며 “최근 하와이대학 구술사센터의 메리 유 다니코 교수 등과 함께 당시 수감자 후손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등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현재 일본계 커뮤니티에서는 강제수용소 터를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 소장의 경우 해당 프로젝트의 준비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수용소 수감 사실에 대해 데이비드 서 하와이한인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노울리울리 수용소에 한국인들이 포로로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에드워드 슐츠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전 소장 역시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편, 호노울리울리 강제수용소 터는 현재 진주만 국립 기념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경준 기자일본 하와이 수용소 수감 한국인 수감자 이덕희 하와이한인이민연구소

2025.09.0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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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국 젊은 세대들의 일본관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마주 앉아 회담을 하고, ‘공동 언론 발표문’을 내놓았다. 기대했던 공동선언문이 아닌 언론 발표문이다. 한일정상회담 후 합의된 문서 형태로 결과가 발표된 것은 17년 만이라고 한다. 발표문의 골자는 이렇다.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은 일단 반갑고 기대도 되지만, 늘 하던 이야기의 되풀이라는 느낌이다. 반면에 조심스러운 시각도 여전한 것 같다. 과거사 문제나 일본 수산물 수입 완화 같은 민감한 사안들은 아예 빠져 있다. 답답하다.   이에 비해 젊은이들은 많이 다르다. 새 세대가 생각하는 한일관계는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다.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두 나라의 젊은 세대들의 몫이다. 미래지향적 새 질서를 위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실제로,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한일관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는 각종 여론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2030세대 3명 중 2명은 일본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과거사를 비판하는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때로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때로는 원칙주의자로 변신한다. 실용과 원칙을 오가는 두 얼굴, 2030세대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한국의 MZ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일본을 훨씬 더 좋아하는 현상은 통계로 확실하게 나타난다. 반일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일본 언론은 ‘예스 재팬 세대’라고 부른다. 일부 일본 전문가는 한국 MZ세대의 일본 사랑에 기성세대의 낡은 반감이 방해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형편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요즘 일본 젊은 세대는 ‘한국이 일본보다 멋진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혐한(嫌韓) 행위를 ‘뭔가 이상한 아저씨들’의 가치가 없는 짓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한류(韓流)가 20년 넘게 세대를 거쳐 이어지면서 혐한 분위기가 젊은 층에선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안 믿는 젊은 세대도 있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멋있는 나라인데 왜 이런 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나?”라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변화다.   현실이 이러하니 한일관계도 과거에만 머물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요하게 주목되는 것은 ‘한국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일본을 좋아해도 역사문제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즐길 건 마음껏 즐기되, 따질 건 또 깐깐하게 따진다. 때로는 기성세대보다 더 엄하다. 위안부나 강제징용으로 고통당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물은 청년세대 특유의 인권 감수성을 자극한다. 역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세대의 건강한 인식이다. 믿음직스럽다.   “기성세대의 일본관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과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열등감이 공존하는 자기분열적 성격을 띠었다면, 2030세대의 일본관에선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본은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다.”-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이런 식이라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고, 광복 100주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한국 한국 mz세대 과거사 문제 공동 언론

2025.08.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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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강연회 성료

 인권 옹호 단체인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대표 박신민)가 주최한 제13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기념 강연회 및 전시회가 지난 14일(목) 달라스 홀로코스트 및 인권 박물관(Dallas Holocaust and Human Rights Museum)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먼저, 강연회에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국학 교수 재직하다 은퇴한 바니 오(Bonnie Oh) 박사가 기조연설자로 초청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패널 토론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도 교환됐다. 달라스의 남감리대학(SMU) 인권 프로그램 국장이나 ‘달라스 인권’(Human Rights Dallas)의 공동 창립자인 릭 할퍼린(Rick Halperin)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로샨 저너(Rosian Zerner), 일본군 포로 수용소 생존자인 윌리암 마올렘(William Maolem) 박사, 그리고 바니 오 박사가 패널로 나섰다. 패널들은 앞으로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인권 말살 행위가 세계사에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진상 조사 및 기록, 그리고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행사에서는 달라스 보현사 지암 스님이 운명을 달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도가 있었고, 이다솔 씨의 시낭송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 및 역사 자료 전시회를 관람했고, 평화의 소녀상도 관람했다. 참석자들에게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표시인 나비 팔찌가 무료로 배포됐다. 박신민 대표는 “제13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이해 오늘 행사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를 잊지 않고 인권보호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이 날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것을 기념하며,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됐다.           〈토니 채 기자〉일본 위안부 강연회 성료 기념 강연회 달라스 인권

2025.08.21. 11:45

[문화산책]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다양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일본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일본을 넘어섰다고 우쭐대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친일파 논쟁, 문화재 반환처럼 겉으로 드러난 문제들 외에도 정신적 문화적 문제들이 대단히 많다. 광복 80년 사이에 일제가 남긴 쓰레기를 열심히 치웠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결정적인 갈등이 잔뜩 남아 있다.   이런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말 제대로 광복이 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지경이다.   정치나 사회, 외교적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능력은 없지만, 우리 정신에 깔려있는 문화적 정신적 앙금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 다른 것은 접어두고, 말과 글의 현실만 살펴봐도 일제 잔재가 아프게 드러난다. 자세히 볼수록 참담해진다.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의 77%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한숨을 내쉰다. 본디 우리말인 줄로 알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문화재(文化財)’를 ‘국가유산(國家遺産)’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문화재청장이 국가유산청장으로 바뀌었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일본에서 들여와 공식적으로 쓴 지 62년 만이라고 한다. 이유는 재화적 성격보다 국가적 정체성을 앞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말 쓰레기를 치우고 그 자리를 우리말로 채우는 노력이 끈질기게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쓰레기가 산더미다.   현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명도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외래어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 민주주의, 대통령, 개혁, 법률, 정의… 철학, 예술, 문학, 낭만 등… 모두 그렇다.   거기에다 아직도 버젓이 쓰이고 있는 일본말도 무척 많다. 각 분야의 전문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흔하게 쓰이고 있다. 일본말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세대들은 멋부리기로 일본말을 쓰기도 한다. ‘간지’ ‘야마’ 등등…. 이런 잘못을 지적하면 “영어는 괜찮은데 일본말은 왜 안 된다는 거냐?”라고 항변한다. 어처구니없다.   낱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나 말법, 문법에도 일본 잔재가 잔뜩 남아있다. 그 덕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말을 쉽게 배운다. 사고방식이나 문법의 구조가 같고, 한자어의 77%가 같으니 배우기 쉬울 수밖에 없다.   “아무려면 어떠냐? 지금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면 그만이지, 뭐가 문제라는 거냐? 까짓 일본놈들 뛰어넘어버리면 되지!” 이렇게 큰소리치며 인스턴트 라면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일본인이 처음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 라면이 일본 것을 깔아뭉개고 세계인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글쎄, 그럴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아무튼,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갈등과 매듭이 가로놓여있다. 반드시 통찰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도 많다. 지나친 민족주의, 피해자 관점의 일방적 반일감정, 친일파 논쟁에서 드러난 이분법 등등….   광복 8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일본 우리말 논쟁 문화재 정신적 문화적 문화적 정신적

2025.08.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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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차카 화산 분출로 뉴욕~인천 항공편 지연·우회

러시아 극동 캄차카반도에서 발생한 강진에 따른 화산 분화 영향으로 뉴욕발 인천행 항공편이 비정상 운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JFK공항을 출발, 인천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본 도쿄 하네다 혹은 나리타 공항을 경유했다. 출발 시각도 예정보다 지연됐으며, 9일 오후 출발 예정이던 KE082편은 예정된 출발시각보다 3시간 지연된 오후 4시26분에 출발했다.   다른 항공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8일부터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할 예정이던 항공편들이 일본 도쿄 나리타 혹은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경유했다.     뉴저지 뉴왁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에어프레미아항공의 경우, 9일과 10일 출발하는 항공편이 모두 LA를 경유했다. 항공 경로가 변경되면서 출발 시각도 3시간가량 지연됐다.     승객들은 출발 4~5시간 전에 갑작스럽게 다른 도시를 경유해 인천으로 향한다는 연락을 받고 매우 당황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인천공항에서 다른 국내선을 이용해 한국 내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경유 항공편으로 아시아 다른 국가로 향하는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갑작스레 항공편이 바뀌는 과정에서 짐이 분실된 사례도 이어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첫 번째 화산 폭발 당시와 달리 최근 폭발은 항공기가 지나가는 높은 고도에 영향을 미쳐 불가피하게 경로를 변경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항공기가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고려하고, 또한 조종사와 승무원의 최대 근무시간(16시간)을 고려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직항편이 아닌 다른 도시를 경유하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뉴욕 노선 외에 애틀랜타, 보스턴, 워싱턴DC, 토론토를 오가는 항공편도 현재 화산 분화 영향을 받는 노선들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승객에게도 최대한 공항에 오기 전 스케줄이 조정됐다는 점과 비정상 운항 안내를 하고 있다”며 “화산 분출 상황을 지속해서 주시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직항 운항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은별 기자 [email protected]일본 캄차카 뉴욕발 인천행 경유 항공편 화산 분출

2025.08.10. 18:56

일본군 위안부 진실 폭로 기록영화 상영

일본군 위안부 진실을 알리는 기록 영화 ‘마른 눈물’이 워싱턴 지역에 또 한번의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워싱턴지역 정신대문제 대책위원회(회장 이은기, 이하 정대위)는 지난 30년 동안 활동한 기록물을 담은 영화 상영회가 애난데일 한인타운 인근에 있는 코리안커뮤니티센터 강당에서 9일 열었다.   워싱턴 정대위 주관으로 열린 이 날 상영회에는 약 60여 명의 한인과 타인종이 모였다. 행사에는 이정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그리고 케런 키스-카마라 버지니아주 하원의원과 마크 김 전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상영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함은선 전 회장과 이정실 감독, 카마라 하원의원, 마크 김 전 하원의원 등이 단상에 올라 영화를 보기 위해 찾은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이정실 감독은 “미숙한 점은 있지만 30년 역사를 담은 영화를 완성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라며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약 1시간가량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필두로 연방 상.하의원들의 활동상, 그리고 워싱턴 정대위가 지난 30년 동안 전개해온 내용과 한인 시민단체가 펼친 활약들을 담고 그린 영화가 상영돼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한 김학순, 이영수, 길원옥 할머니들은 인터뷰를 통해 전쟁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군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가 끝난 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며, 놀라움과 슬픔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이정실 감독과 대화 시간을 가지면서, 10여 분 동안 질문을 쏟아냈다. 김성한 기자 [email protected]일본 위안부 영화 상영회 진실 폭로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2025.08.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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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진실이 지워지지 않게 함께 해주세요”

 제13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달라스에서도 관련 행사가 열린다. 인권 옹호 단체인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대표 박신민)이 오는 8월14일(목) 달라스 홀로코스트 및 인권 박물관(Dallas Holocaust and Human Rights Museum)에서 위안부 기림 강연회를 갖는다. 이날 강연회에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국학 교수 재직하다 은퇴한 바니 오(Bonnie Oh) 박사가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패널 토론도 있을 예정이다. 달라스의 남감리대학(SMU) 인권 프로그램 국장이나 ‘달라스 인권’(Human Rights Dallas)의 공동 창립자인 릭 할퍼린(Rick Halperin) 교수가 사회를 맡고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로샨 저너(Rosian Zerner), 일본군 포로 수용소 생존자인 윌리암 마올렘(William Maolem) 박사, 그리고 바니 오 박사가 패널로 나선다. 이날 행사에서는 달라스 보현사 지암 스님이 기도를 하고, 이다솔 씨의 시낭송, 사진 전시회,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비롯해 나비 팔찌가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다. 달라스에서는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 주도로, 올해로 9년째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올해 행사는 달라스 한국문화재단, 달라스 인권, 달라스 홀로코스트 및 인권 박물관, 달라스 보현사, 남감리대학, 디멘드 디그니티(Demand Dignity) 등의 단체들이 후원한다. 박신민 대표는 “올해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 13회째를 맞게 됐다”며 “무엇보다 위안부에 대한 진실이 지워지지 않게 뜻 있는 달라스 한인들이 올해 행사에도 함께 해줬으면 한다”고 초대의 말을 전해왔다. 행사는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8시 30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행사가 열리는 달라스 홀로코스트 및 인권 박물관 주소는 300 N. Houston St., Dallas, TX 75202이며, 행사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박물관 웹사이트(www.dhhrm.org)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지난 해에는 코펠 시 코즈비 도서관(Cozby Library and Community Commons)에서 제8회 세계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가 열렸다. 도서관 1층 이벤트 홀에 마련된 기념 행사에는 위안부 희생자로서 처음 목소리를 냈던 고 김학순, 강덕경 할머니가 직접 그린 일본 위안부 만행과 희생자들의  아픔이 담긴 그림들이 전시되었고, 박신민 대표가 직접 만든 수제 가방과 나비 팬던트가 들어간 팔찌 등이 전시된 바 있다. 작년 행사에는 약 80명 정도의 한인을 포함 아시안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해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의 인권 유린 만행과 사과하지 않는 뻔뻔함, 위안부의 뜻과 우리가 이들의 억울함과 희생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등을 나눈 박신민 대표의 설명을 듣고 위안부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이 날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것을 기념하며,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제정됐다. 2012년 아시아 연대 회의에서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선포했고, 2017년에는 한국 정부가 피해자 명예 회복을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하는 날이다. 매년 8월 14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행사와 시민 연대 활동이 펼쳐진다. 또한, 유엔 등 국제기구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도 진행된다.   〈토니 채 기자〉일본 위안부 인권 달라스 달라스 인권 달라스 홀로코스트

2025.08.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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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잔마이 기무라 기요시 대표, 저렴하게 최고급 스시 제공

25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유명 스시 체인점 ‘스시잔마이’가 LA 한인타운에 국내 1호점을 열고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본지 8월 4일자 경제섹션 3면〉     매년 연초 대형 참치의 경매와 해체쇼로 기무라 기요시 스시잔마이 대표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지난달 말 소프트 오픈 행사에 그를 가까이서 보기위해 몰려든 식객들로 업소는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3년 동안의 준비 끝에 미국 첫 체인점 오픈의 목표를 이룬 기무라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함박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 진출 이유를 묻자 그는 “미국 내 스시와 사시미의 품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일본의 제대로된 스시를 LA에서 마음껏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근 홋카이도와 가고시마 지점 오픈을 위해 일본 남과 북을 오갔다는 그는 “50여개 지점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고 회사 규모를 소개했다.     회사 경영 철학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함 없이 “고급 스시를 중산층에게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스시잔마이가 탄생했다”며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치 경매와 해체쇼에 대해서 기무라 대표는 “돈보다는 가장 좋은 참치를 골라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경매에서 종종 제일 큰 액수를 제시하는 기업들이 있지만, 가장 좋은 참치를 고르는 것은 항상 나였다”며 “이런 능력을 일본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리틀도쿄나 할리우드 지역이 아닌 LA 한인타운에 1호점을 낸 것에 대해서 그는 “한인타운 내 장소를 구하기 위해 집중한 것은 다른 지역 보다는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다양한 민족과 세대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검증을 거치는 ‘정면승부’를 원했다”고 전했다.     메뉴 가격이 매우 높은 것은 아니지만 스시 한 점에 4~5달러면 가격 저항도 있다는 지적에 그는 “10명의 스시맨들이 일본에서 직접 건너와 일하고 있으며, 현재의 가주 물가와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다른 어떤 식당 보다 저렴한 수준이라고 믿는다”며 “이보다 싼 가격을 찾는다면 아마 음식의 질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스시잔마이가 제공하는 참치는 모두 일본 야마구치에서 직접 공수해온다.     매장 확대에 대해서 그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라는 신중론을 내세웠다.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더 많이 배우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1호점이 안정되는대로 확장에 나설 것이며 전국에 30여 개 체인점을 세우는 것은 앞으로 수년 동안 해나갈 과제”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일본 유명 스시점 미국 진출…참치 해체쇼 명성 '스시잔마이' 최인성 기자일본 스시잔마이 기요시 스시잔마이 최고급 스시 기요시 대표

2025.08.0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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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스시점 미국 진출…참치 해체쇼 명성 '스시잔마이'

일본에서 6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명 스시 체인점 스시잔마이(Sushizanmai)가 LA 한인타운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스시잔마이는 지난 2일 한인타운 한 복판인 채프먼 몰(6가+알렉산드리아 애비뉴)에 미국 첫 매장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한인 타운을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영업을 준비해온 스시잔마이 측은 내부 공사를 마치고, 지난달 30일과 31일 업계 관계자와 언론을 초대해 소프트 오픈 행사를 열었다. 메뉴는 에피타이저, 스시, 사시미, 디저트 등 50여 가지에 달하며, 다양한 사케와 주류 등도 눈길을 끌었다.       스시잔마이의 기무라 기요시 대표는 2일 열린 그랜드 오프닝 행사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포함해 일본에서 얻어온 인기와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손님들을 극진히 맞이할 것이며, 향후 다른 지역으로도 지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무라 대표는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 역정으로도 일본에서 유명하다.     그는 청년시절 사업에 실패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스시가게에서 영감을 얻어, 2001년 작은 업소를 열었다. 이후 사업을 확장했으며 이제는 참치 경매로 유명세를 치르며, ‘참지 대왕’이라는 별칭을 얻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실제 매년 초 새해의 상징과 축하의 의미로 일본에서 열리는 참치 경매쇼에서 500파운드 크기의 대형 참치를 가장 비싼 가격(200만 달러 이상)에 입찰 받아 직접 해체쇼를 선보이면서 입지전적인 사업가로의 명성을 얻었다.     스시잔마이 미국 첫 매장은 현재 20여개 테이블을 구비했으며, 20여 명의 스시 요리사와 종업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메뉴당 가격은 10~50달러로 다양하며, 단품 요리를 하나씩 주문해 부담없이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31일 업소를 찾은 김지현(글렌데일)씨는 “LA에서 수많은 전통과 퓨전 요리들이 있지만 일본에서 인기있는 체인점이 오픈해서 그런지 더 신선하고 푸짐한 음식을 맛봤다”며 “한인타운에서 일단 인정받으면 텍사스, 조지아 등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스시잔마이 측은 한인타운 인근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아시안들과 정갈한 일식을 즐기는 마니아들의 취향에 딱 맞는 식당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한인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최인성 기자일본 미국 참치 경매쇼 한인타운 인근 대형 참치

2025.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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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한인 1세 대선 투표율 63.5%

지난해 11월 열린 대통령 선거 당시 OC 한인 1세의 투표율이 63.5%를 기록했다.   USC 산하 포용적 민주주의센터(CID)는 최근 발표한 가주 2024년 총선거 보고서에서 한국어 투표용지를 신청한 유권자의 대선 투표율은 63.5%라고 밝혔다. 이들 유권자는 한인 이민 1세로 간주할 수 있다.   아시아계 언어로 작성된 투표용지를 신청한 유권자 그룹 중엔 베트남계의 투표율이 69.7%로 가장 높았다. 필리핀 공식 언어 중 하나인 타갈로그어는 65.5%로 그 뒤를 이었다.   일본어와 인도의 공용어인 힌디어 투표용지 신청 그룹은 모두 63.2% 투표율로 한국어보다 0.3%p 낮았다. 중국어와 태국어 투표용지 신청 유권자 투표율은 각각 62.8%와 62.4%를 기록했다. 크메르어를 사용하는 캄보디아계 유권자 투표율은 55.7%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영어, 스패니시 투표용지를 신청한 이들의 투표율은 각각 75.2%와 60.5%로 나타나 큰 격차를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투표용지의 언어와 상관없이 집계한 OC 전체 아시아계 유권자 투표율은 70%에 약간 못 미쳤다.   전체 등록유권자 가운데 실제 투표한 이를 기준으로 집계한 아시아계 투표율은 69.8%로 집계됐다. 라티노 투표율 64.5%보다는 높지만, 흑인(75.7%)보다 5.9%p, 백인(83.5%)보다 13.7%p 낮은 수치다. OC 전체 투표율 74.6%에 비해선 4.8%p 낮았다.   OC 유권자 투표율은 당적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공화당원의 투표율이 81.9%에 달했지만, 민주당 소속 유권자 투표율은 76%에 그쳤다. 기타 정당 소속 유권자 투표율은 68.2%, 무당파 유권자 투표율은 63.1%로 각각 집계됐다.   성별에 따른 투표율은 남성이 73.4%로 여성(76.7%)보다 낮았다. 연령대로 구분한 투표율은 65세 이상이 85.4%로 가장 높았고 25~34세가 60.7%로 가장 낮았다. 18~24세는 62.2%, 35~44세는 71.4%, 45~54세는 78%, 55~64세는 81.9%로 각각 집계됐다.   지난 대선에서 OC에선 총 188만4385명의 등록 유권자 가운데 140만5006명이 투표했다. 임상환 기자일본 투표율 유권자 투표율 대선 투표율 아시아계 투표율

2025.07.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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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레미아 글로벌 앱 출시…예약부터 체크인, 탑승까지

에어프레미아가 글로벌 고객 전용 모바일 앱을 공식 출시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개 언어를 지원하는 글로벌 모바일앱을 통해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실시간 항공권 예약부터 체크인, 모바일 탑승까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사용자 경험(UX)과 기능을 대폭 강화해 LA와 뉴욕 등 미주 노선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언어 장벽 없이 편리하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모바일앱의 안드로이드 버전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iOS는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다운 받을 수 있다.   에어프레미아 관계자는 “이번 글로벌 앱 출시는 미주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항공 서비스를 손안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앞으로도 미주 노선을 중심으로 디지털 혁신을 확대해 고객 만족도와 경쟁력을 함께 높이겠다”고 밝혔다.   에어프레미아는 현재 LA·뉴욕·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와 인천을 잇는 노선을 운영 중이다. 박낙희 기자일본 글로벌 체크인 탑승 글로벌 고객 체크인 모바일 박낙희 일본어 영어 에어프레미아 모바일앱 항공

2025.07.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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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센트럴 어바인점 오픈…26일 개점부터 인파 몰려

국내 최대 규모의 일본 수퍼마켓 체인 도쿄 센트럴이 어바인에 14번째 매장을 공식 오픈했다.     지난 26일 ‘도쿄 센트럴’이 새롭게 입점한 어바인 헤리지티 플라자는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를 앞두고 이른 8시부터 주민들의 대기 행렬이 이어지며 400여 명이 몰렸다.     이번 어바인점(14120 Culver Dr.)의 그랜드 오프닝은 최근 T&T 마켓 입점 소식으로 뜨거워진 어바인 아시아 식료품 시장 경쟁 속에서 업계와 지역 주민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고이치 토요 마루카이 코퍼레이션 대표, 아키라 마루야마 PPIH 외식사업부 대표, 제임스 파인 어바인 부시장, 멜린다 리 1지구 시의원이 참석해 도쿄 센트럴의 어바인점 개점을 축하했다.     남가주의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 어바인은 아시안 식료품 수요가 매우 높아 아시안 식품 시장의 전략적 요충지다.     H마트, 미츠와 마켓플레이스, 99랜치마켓 등 기존 강자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캐나다계 T&T 마켓 입점까지 예정돼 있어 경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1965년 설립된 마루카이 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도쿄 센트럴은 2013년 일본 돈키호테의 모회사 PPIH(파나 퍼시픽 인터내셔널 홀딩스)에 인수된 후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하와이 1개 매장 포함 국내 1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번 어바인점은 1만7368스퀘어피트 규모로 오렌지카운티 최대 매장 중 하나다.   고이치 토요 마루카이 코퍼레이션 대표는 이날 오프닝 행사에서 “어바인 지역은 일본 및 아시아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높은 수요를 가진 곳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장”이라며 “일본 특산 식품과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원스톱 쇼핑 공간”이라고 밝혔다.     도쿄 센트럴은 단순한 식품점이 아닌 정통 일본 식료품과 문화 체험 공간이라는 차별화된 콘셉트로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일본 본사의 강력한 공급망을 활용해 시즈오카현 등 일본 각지에서 직접 수입한 식료품과 특산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델리 스시, 다양한 벤토 박스, 프리미엄 햄.베이컨을 선보이는 ‘고쿠우마(Goku Uma) 소시지 시리즈’다. ‘고쿠우마’는 일본어로 ‘극도로 맛있는’이라는 의미로 도쿄 센트럴 및 마루카이 매장에서만 독점 판매된다. 또한 한정판 현지 일본 제품과 퓨전 스타일 상품을 캘리포니아 고객의 취향에 맞춰 선보이고 있다. 식품 외에도 일본식 테이블웨어, 다기 세트, 인기 뷰티 제품 등 일상에 일본의 품격과 편안함을 더할 수 있는 생필품도 마련되어 있다.     어바인점은 야채·과일 등 신선식품으로 시작해 매장 중앙에 스시와 사시미 등 씨푸드 코너를 배치했다. 장어 섹션, 스시바, 와규 코너, 일본 돈키호테에서 연간 1180만 개가 판매되는 베니 하루카 야키모, 파운드당 10.99달러의 일본 전통 음식 뷔페 바도 갖추고 있다.     이번 오프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자매 스시 레스토랑 와카 사쿠라(Waka Sakura)의 어바인 2호점 개점이다.   아키라 마루야마 PPIH 외식사업부 대표는 “가디나 1호점이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어바인에서도 동일한 품질과 맛을 선보일 것”이라며 “최고급 일본산 재료를 사용해 손수 빚어낸 전통 스시를 빠르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번 26~27일 이틀간 진행된 오프닝 행사에서는 선착순 100명 10달러 기프트카드 증정, 스핀더휠 경품 이벤트, 스시벤토팩 20% 할인 등 다양한 프로모션이 마련돼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토요 대표는 “고객 우선 철학을 기반으로, 정통 일본 문화를 음식 및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프리미엄 일본 식료품,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 와카사쿠라 레스토랑과의 시너지를 무기로 도쿄 센트럴은 어바인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   고이치 토요 마루카이 대표, 일본 특산품으로 차별화   소비자 취향 맞춘 식품 제공 직수입 재료 정통 스시 호응     -도쿄 센트럴 주력 제품은.   “일본 특산품을 주로 취급한다. 김치, 만두 등 인기 있는 한국 식품도 일부 판매하지만 H마트 같은 한국 식품 전문 매장, 중국 마켓 등이 있어 일본 식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점 상품이 있나.   “일본 자매 회사에서 운영하는 ‘조네츠’ 프라이빗 브랜드 제품뿐만 아니라 자체 도쿄 센트럴 프라이빗 브랜드 제품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캘리포니아 고객들의 퓨전 스타일 요리와 글로벌 라이프 스타일 취향에 맞춘 식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어바인시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우수한 교육 환경, 체계적인 도시 계획을 갖추고 있고 다양하고 문화적으로 활발한 지역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특성은 도쿄 센트럴이 자리 잡기에 최고의 입지 조건이다.”     -아시안 마켓들과 경쟁에 대한 우려는.   “모회사인 파나 퍼시픽 인터내셔널 홀딩스(PPIH)가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강점을 활용해 제품을 직접 수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아시아 식료품점과 차별화할 수 있다. 특히 시즈오카 현에서 직접 수입한 재료로 선보이는 정통 일본 스시가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향후 성장 계획과 목표는.   “현재 대부분 매장이 캘리포니아에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신규 매장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다른 주로의 확장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아시아 및 글로벌 식품에 대한 관심 증가와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큰 잠재력이 있다.”     -성장 전략은.     “고객 우선 철학을 바탕으로 정통 일본 제품과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브랜드의 핵심 콘셉트는 '먹고, 즐기고, 탐험하며, 일본을 당신의 식탁으로'이다. 고객들이 음식, 라이프스타일, 전통을 통해 일본 문화를 한 공간에서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다.” 글·사진=이은영 기자일본 어바인점 어바인점 개점 도쿄 센트럴 이번 어바인점

2025.07.2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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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에 빠지다] 한국에 ‘예술의 빚’을 진 일본

필자가 처음 서울을 여행했을 때, 한국인 친구들은 나를 국립중앙박물관에 데려갔다. 우리는 연대순으로 한국의 도자 예술을 둘러봤다. 삼국시대의 도자기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것은 일본의 스에키 토기와 매우 흡사하군. 한국인들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국시대 도자기의 제작 연대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된 작품들이 일본의 가장 오래된 5세기 스에키 토기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왜 일본이 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 또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 궁금했다.   필자는 불교를 포함한 많은 예술 및 문화적 전통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이는 필자의 조국인 미국이 가장 인기있는 문화 자산인 음악의 기원을 제대로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대부분의 미국인은 로큰롤이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리 리 루이스 같은 1950년대 음악가와 가수들이 만든 음악 스타일이라고 믿었다. 로큰롤이 흑인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이미 존재했으며, 1940년대에는 ‘리듬 앤 블루스’, 1930년대에는 ‘점프 블루스’, 그 이전에는 ‘부기우기’로 불렸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은 한술 더 떠 흑인 음악가들의 노래를 훔치고도 그들을 원작자로 인정하거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으며 그들의 공로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레드 제플린을 상대로 한 소송들은 승리해 이제 그 기록을 바로잡았고, 이 도용 행위에 대해 원작곡가들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했다.)   일본의 예술 전문가들은 자국의 한국에 대한 문화적 빚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더 폭넓은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1년 아키히토 일왕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한국 혈통을 밝혔을 때 일본에서는 큰 소동이 일었다. 많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오랫동안 일본 황실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일반 대중 대다수는 그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에 이는 논란이 되는 소식이었다.   아마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불교 조각상 일부가 한국의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가장 소중한 예술 작품 중 하나인 교토 고류지의 유명한 반가사유상(미륵보살상)은 실제로 한국에서 제작됐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했다.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한국의 장인들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 시절 도공들의 후손 중 일부는 여전히 일본에 살면서 가마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일본 도자기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한국은 요리에서부터 K팝, 한국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문화를 계속해서 수출하고 있다. 이제 매일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와 함께 일본의 한국에 대한 빚이 더 널리 인식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인식이 모든 세대의 일본 국민들이 오랫동안 한국 예술과 문화의 수혜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확장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는 역사를 정직하게 기술하고 이해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미국은 여전히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씨름하고 있다. 사실에 대한 무지가 바로 인종차별이라는 괴물을 키우는 것이다. 모든 시민의 기여에 대한 지식을 확산하는 것이 증오와 편견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이것이 필자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예술은 그 아름다움 외에도 항상 세상을 구하러 오고는 했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페이스북(Facebook.com/RobertWTurley)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일본 한국 한국인 친구들 한국 혈통 예술 작품

2025.07.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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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고 이옥선 할머니 추모제, 달라스에서 열려

 세계 위안부의 날(8월14일)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는 모임이 지난달 28일(토) 오전 9시30분 달라스에 소재한 베스 하우스 문화센터(Bath House Cultural Center)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위안부 피해자 및 인권 피해자 옹호 단체인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대표 박신민) 주최로 열렸다. 사진 전시, 헌화 및 기도, 시낭송, 기념사, 중국 상하이 일본 포로 수용소 생존자인 윌리암 모알렘 박사(Dr. William Moalem)의 하모니카 연주 등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흥무 전 달라스 한국노인회장 부부 등 한인들을 비롯해 다문화권 시민들이 참석해 고 이옥선 할머니의 넋을 기렸다. 고 이옥선 할머니는 달라스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고 이옥선 할머니는 지난 2016년 4월21일 코펠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바 있다. 고 이옥선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피해자가 된 건 내 나라가 약해서 되었고, 아직도 내 나라가 약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해 이 노후에도 어렵게 전 세계를 돌며 증언하며 도움을 부탁한다”며 “저와 모든 위안부 할머니들이 잊혀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게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 꼭 약자들을 위해 힘써달라”며 큰 여운을 남긴 바 있다. 한편, 고 이옥선 할머니는 올해 5월11일 향년 98세의 일기로 성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생활해오던 이 할머니는 지난해 3월부터 건강 문제로 요양병원에서 지내왔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6명으로 줄었다. 생존자들의 평균연령은 95.6살에 달한다.   1927년(호적 기록은 1928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 이옥선 할머니는 14살 때인 1942년 중국 위안소로 끌려가 피해를 겪었다. 당시 일본군 도검에 찔려 손과 발에 흉터가 남았고, 구타를 당한 후유증으로 청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에서 거주하다 2000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2년 미국 브라운대 강연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국외로 나가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렸다.     〈토니 채 기자〉일본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 달라스 한국노인회장 별세로 정부

2025.07.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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