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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미·중 넘어 다중 균형 국가전략 펼쳐야

그간 국내 정치는 탄핵과 새 정부 출범으로 요동쳤지만, 주요국들은 대전환 시대에 걸맞게 자국의 국가전략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4월에 발표한 보고서(‘100일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행정부 첫 100일간 전개한 외교정책의 성과와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우선 외교정책’, ‘공정한 경제와 무역 관계 구축’ 등 6개 주제로 구성된 보고서는 “미국이 지출하는 모든 달러, 지원 프로그램, 대외 정책은 다음 셋 중 하나의 질문-보다 안전하고, 보다 강하고, 보다 풍요로운 미국을 위한 정책인가-에 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제일주의와 국익 우선주의의 정점이라 할 것이다. 미국, 이해관계 좇아 다각적 협력 중국, 중화패권 부활에 전력 쏟아 한국도 중동·남미로 외연 넓혀야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중국-라틴 아메리카 공동의 미래’ 및 ‘기후·환경 리더스’ 국제행사에서 밝힌 연설 내용은, 중국의 대외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와 뚜렷이 대비됨을 보여준다. 미국이 축소한 해외 원조와 개발 협력을 확대하고, 기후·환경·에너지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연대(Solidarity), 개발, 문명화, 평화, 인적 연결 등 5개 프로그램을 축으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협력 관계를 깊이 있게 구축할 것이며, 기후·환경 등 글로벌 공공재에 대해서는 다자주의, 국제협력, ‘정의로운’ 전환을 기조로 해결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제도 영역으로 진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첫 조치로 주목받았던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의 85%(800억 달러) 삭감과 기존 원조 사업들의 축소를 들어 미국의 리더십과 소프트파워가 약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일면 타당하나 미국의 국가 전략과 향후 지향점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원조 예산 삭감 그 자체만으로 미국의 영향력 쇠퇴의 징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에 담긴 국가만도 40여 개국 이상으로 중국·러시아·북한·이란에 대해서는 위협 및 적성국으로 분류해 선제적 억제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파나마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 철회, 이라크와는 이란 견제를 위해 3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협력 추진,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는 천연광물 공급망 확보 등, 대외 원조와 국제기구 분담금 축소로 발생한 가용 재원을 양자 중심의 선택적 경제·안보협력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당국이 발표하는 공식 문건들만 보면 마치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지향했던 자유주의 기반 다자주의와 해외 원조를 활용한 글로벌 책무성의 실천이라고 보일 만큼 유사성이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행간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중국 중심) 다자주의, (중국 국익) 국제개발 협력, (중국 문화 확산) 문명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국제 정세 속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과 같은 이분적 접근은 다중 균형 전략이 요구되는 현실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에 치우친 균형자론 역시 달성 불가한 전략이다. ‘한반도 천동설’(『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저)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담론과 일방의 시각에 치우쳐 우리의 전략적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에 최적의 대응 태세를 유지하되, 아·태 전략과 인·태 전략에 호응하는 국가전략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물론 남미·동유럽·중동을 아우르는 ‘안보와 평화를 위한 해양 국제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AI 시대 디지털 전환, 친환경 에너지, 분쟁 지역의 복구와 재건은 모두 한국이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온 분야로, 국제사회에서 기대와 요청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개발 협력이 국내 자원을 소진한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국내 산업과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경제-외교-국방 융합 전략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올해는 마침 국제개발 협력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제4차 국제개발 협력 기본계획과 중점협력국 선정이 이루어지는 해이다. 국제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 대응 전략을 수립할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자문위원

2025.07.07.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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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군함도 논의’ 무산, 한·일 과거사 첫 표대결 패배

한·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근대산업시설(군함도 등) 문제를 놓고 국제 무대에서 사상 처음으로 표 대결을 벌였으나, 한국이 충분한 표를 얻지 못해 이를 정식 의제로 채택하지 못했다. 일본이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과 달리 강제징용 등 역사를 충분히 알리지 않는 가운데 이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한 기회를 얻지 못한 데다 과거사 갈등이 다시 불붙을 여지도 남긴 셈이다. 7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47차 세계유산위 회의에서 군함도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자는 한국의 요구를 일본이 끝까지 수용하지 않으면서 결국 표결이 이뤄졌다. 정부는 일본이 2015년 7월 세계유산 등재 이후 조선인 강제 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정식 의제화를 통해 부각하려 했다. 하지만 표결 결과 ‘군함도 문제를 정식 의제에서 빼고 가자’는 일본의 수정안에 대해 과반에 해당하는 7개 위원국이 찬성했다. 반대표는 3개국, 기권은 8개국, 무효표는 3개국이었다. 이날 표결에는 한·일을 포함한 21개 위원국이 참여했고, 비밀 투표로 진행됐다. 당초 이번 회의에서 군함도 문제는 정식 의제가 아닌 잠정 의제로만 포함됐다. 이에 한국은 군함도 관련 ‘해석 전략 이행에 대한 검토’를 올해 회의에서도 정식 의제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식 의제로 다루려면 21개 위원국의 컨센서스(표결 없는 만장일치)가 필요했지만, 일본이 반대하고 나서며 사실상 상황을 표결로 몰아갔다. 특히 한국이 제안한 수정안에 일본이 다시 수정안을 내는 등 양 측은 끝까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의제 설정을 놓고 유네스코에서 표결까지 가는 건 사상 처음이라 유네스코 측은 정회까지 하며 컨센서스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일본이 낸 더 최근의 수정안이 표결에 부쳐졌고,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일본의 행위가 정당하다기보다는 유네스코의 특성상 문제를 한·일 양국 간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 측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표 대결에서 패배하며 군함도의 실상과 일본의 약속 불이행 등을 조명할 국제적 기회를 잃은 건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례 없는 표결 강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한국이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일 우려마저 있다. 명분은 정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외교 한·일전’에서 우군 확보를 위한 치밀한 사전 작업 등 정부의 외교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를 보이는 중에도 표결까지 간 것이라 여파가 주목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표 대결로 윽박지르는 듯 한 일본의 태도에 여론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우려도 있다. 일본이 세계유산을 등재한 뒤 약속을 깨는 사례도 쌓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7월 또다른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한국의 찬성 표를 얻었지만, 이후 추도사 없는 ‘맹탕’ 추도식 등으로 비난을 샀다. 올해도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표결 직후 “사전 협의 과정에선 많은 위원국들이 (군함도) 이행 상황을 위원회 차원에서 점검해야 한다는 한국의 원칙에 공감을 표했다”면서도 “결과적으로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가 확보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현주([email protected])

2025.07.07.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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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의 시선] 영화 ‘국제시장2’가 기대되는 이유

대학가가 축제 분위기로 들뜬 지난 5월 말,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학생회가 주최한 주점 홍보 포스터가 논란이 됐다. ‘계엄, 때렸수다’라는 주점 이름, ‘이재명이나물삼겹살’ ‘윤석열라맛있는두부김치’ ‘속이 꽉 찬 계엄말이’ 등 메뉴명이 12·3 내란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현실 정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려 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계엄이 장난인가’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지킨 너희 선배들이 통곡할 일’ ‘정외과 학생들의 현실 인식이 저 정도라니 암울하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주의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대자보가 교내에 붙기도 했다. 계엄 희화화한 대학가 주점 논란 편향된 시각의 정치영화 잇따라 균형잡힌 시선의 영화 나왔으면 MZ세대의 재기발랄한 정치 풍자라 하기엔, 너무 선을 넘었다. 촌철살인의 메시지도 없을뿐더러, 대상 또한 부적절했다. 메뉴판엔 ‘좌파게티’도 포함돼 있었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베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일베 문화가 이렇게까지 젊은 층에 파고들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착잡했다. 일베는 진보 정치세력, 호남, 여성, 사회적 소수자(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를 혐오한다. 이들에 대한 혐오를 드립(즉흥적 농담)과 밈(온라인 유행 콘텐트)에 실어 나른다. 광주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등의 비극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건 그들의 전매특허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중력절’이라 부른다. 만우절이나 다름없는 놀잇감이다. 연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해진 한 전문직 남성도 그 날, SNS에 거꾸로 뒤집힌 썸네일 사진을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놀이가 젊은 층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극명히 보여준 사례다. “애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원조 홍어’라 부르고, 전두환은 ‘전땅크’로 추앙해요. 정말 말문이 막힙니다.” 최근에 만난 교사 지인의 한숨 섞인 토로다. 석열이형(윤석열 전 대통령), ×통령(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혐오 표현) 등의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단다. 과잠 입고 윤석열 지지 집회에 나가 ‘윤 어게인!’을 외치는 대학생들의 행동 또한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건 마찬가지다. 선플보다 악플이 더 선명히 기억되는 것처럼, 균형 갖춘 의견보다 단순하고 극단화한 선동이 더 각인 효과가 큰 법이다. 판단력이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청소년 애국전사 양성’이란 목표 하에 초등생들에게 그릇된 역사 인식과 가치관을 주입하려 했던 리박스쿨의 늘봄학교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시도였다. 정권 교체로 좌절됐기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일베라는 왜곡된 필터로 세상을 보고, 학교에서 편향된 역사를 배운 아이들이 미래의 유권자가 되는, 암울한 세상이 올 뻔했다. 얼마 전 한 원로 영화인의 부적절한 발언도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현대사를 조망한 다큐 ‘하보우만의 약속’을 연출한 이장호 감독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의 공만 너무 부각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공에 비하면 과는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맥락과 다양한 견해는 무시한 채 역사의 한쪽 면만 조명한 작품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그려 117만 관객을 모은 ‘건국전쟁’의 대척점에 선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이란 다큐도 곧 개봉한다. 극장이 역사관의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다. 균형 잡힌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와중에 영화 ‘국제시장2’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편의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함께 독일 광부로 파견됐던 아버지(이성민), 민주화운동을 목도하고 삶의 변화를 맞게 되는 서울대생 아들(강하늘)이 주인공이다. 1970년대부터 6월 민주항쟁, IMF 외환위기,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관통하는 스토리다. 제작사 관계자는 “산업화 세대인 아버지와 민주화 세대인 아들이 갈등하고 싸우다가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11년 전 ‘국제시장’ 개봉 때 우파 영화라는 비난을 받고 괴로워하던 윤제균 감독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역사가 산업화와 민주화, 두 개의 바퀴로 굴러왔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줄 속편이 됐으면 한다. 모든 걸 자율에 맡겨 키운 대학생 아들에게 딱 하나 당부했던 게 있다. “일베 게시물로 정치나 역사를 배우지 말라”는 것. 내년에 ‘국제시장2’가 개봉하면 아들과 함께 보러 갈 생각이다. 정현목([email protected])

2025.07.07.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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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방송3법 과방위도 강행 처리

학회와 시청자위원회도 공중파 방송 이사 추천권을 갖게 하는 내용의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7일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이날 통과된 방송3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3사의 이사 수를 확대하고, 그중 절반 이상의 추천권을 정치권 외부에 개방하는 것이다. ▶한국방송(KBS)의 이사 수를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교육방송(EBS) 이사 수를 각각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고 ▶늘어난 이사 수의 약 40%를 국회가 추천하고 ▶나머지 이사의 추천권은 방송사 임직원·시청자위원회·언론 관련 학회·유관 변호사 단체 등에 나눠주겠다는 내용이다. 현재는 공영방송 이사의 추천권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 있다. 방통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원 5명은 대통령과 여야가 나눠 지명·추천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회가 직접 이사 추천에 뛰어들게 된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공영방송을 국민께 돌려드리는 중대한 전환점 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국민의힘에선 일부 소속 위원이 표결 전 퇴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 명은 회의장에 남아 반대표를 던졌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전쟁이 끝난 후 전리품을 챙기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표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을 장악해 언론과 국민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밀실·졸속·위헌 방송3법을 전면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통령 관저에 여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불러 만찬했다. 한 참석자는 이 대통령이 “(방송 3법 처리가)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부합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나한.조수빈([email protected])

2025.07.07.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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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퍼스펙티브] 향후 5년간 AI 전환 프로젝트에 국가 미래 달렸다

국가 개조 수준의 AI 전략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위기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제조 경쟁력의 하락이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제조 국가다. 그런데 중국의 추격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의 기술 약진도 무섭지만, 저임금 공격이 더 강하다. 둘째는 인구 감소다.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는 초고령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는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난다. 셋째 위기는 실업 문제다. 실업률은 내려가지 않고 청년 실업자가 2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제조 경쟁력이 저하되는 가운데 실업률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실업률이 높으면 범죄가 늘고 사회는 불안해진다. AI 경쟁서 밀리면 후진국 전락, 사회 전반 바꾸는 혁신 필요 국방·교육은 외국 AI 의존 못해…독자적 AI 개발은 맞는 방향 대학은 AI 학과 정원 두 배로 늘리고 제조 현장과도 연계해야 서비스·건강관리 분야도 AI 적용하면 효율·일자리 증가 기대 새롭게 출발한 이재명 정부는 AI(인공지능) 강국 실현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100조원을 투자해서 국가 전체를 AI 국가로 바꾸고, 세계 3대 AI 국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매우 타당하고 시의적절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 AI 경쟁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해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생각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사회 전반을 국가 개조 수준으로 혁신해야 한다. AI는 국가의 모든 것을 결정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산업·경제·문화·국방 모두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AI를 이용하여 국가 산업과 서비스를 효율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우리 경쟁국들이 모두 AI로 산업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경쟁에서 낙오하여 AI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과거 30년 전에 전 세계에는 디지털 혁명의 물결이 밀려왔다. 이때 김대중 정부는 ‘산업화에서는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가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디지털 전환에 집중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속에서 출발한 김대중 정부는 컴퓨터를 값싸게 만들어 초·중·고교에 보급하고, 전국을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했다. 모든 국민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게 했다. 이러한 디지털 물결에 올라탄 우리나라는 오늘의 디지털 선진국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모든 나라가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던 일본·영국·프랑스·독일은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 나라는 디지털 혁명에 낙오하여 산업과 사회 시스템의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검색할 때 네이버를 사용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는 카카오를 사용하고, 물건을 살 때는 쿠팡을 사용하고, 운전할 때는 티맵을 사용한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국가들은 미국의 구글(검색)이나 페이스북(SNS)·아마존(온라인 쇼핑)·구글맵(자동차 운전) 등을 사용한다. 이것이 디지털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자적 AI 모델 개발의 중요성 앞으로 펼쳐질 AI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잘 대응하면 AI 독립국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AI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AI 모델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외국이 만들어 놓은 AI를 이용하여 그 위에서 비즈니스를 일으키는 것이 좋은지 갑론을박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새 정부는 이를 명확히 해주었다. 소버린 AI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AI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 고유의 AI 모델을 만들고, 그 위에서 응용 비즈니스 사업을 펼쳐 나가는 전략이다. 아주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응용에는 외국 AI를 사용해도 되는 것이 있지만, 외국 것에 의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국방과 교육이 그것들이다. 미래 전쟁에서 작전사령부는 AI가 맡을 것이다. 인간이 전쟁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결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국방 AI는 외국이 대신해 줄 수 없다. 교육은 미래 국민을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는 AI가 교과서가 되고, AI가 교사 역할을 할 것이다. 외국 AI를 이용하여 교육하면 학생의 머릿속은 외국인으로 변해갈 것이다.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머릿속에는 외국의 정신이 자리 잡게 된다. AI 인력 대폭 양성해야 정부의 AI 정책에 맞추어 대학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본다. 첫째, AI 인력을 대폭 양성해야 한다. 양성 규모를 기존에 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려서 길러내야 한다. AI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AI 연구 인력은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특히 중국은 연간 500만 명의 이공계 인력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중에 상당수가 AI 인력이다. 중국은 초·중·고교에서부터 수학 영재반을 운영하여 AI 영재를 대폭으로 기르고 있다. AI 기술은 수학이 기본이기 때문에 수학 공부는 AI 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각 대학에 있는 AI 학과 또는 대학원에서는 입학 정원을 두 배로 늘려서 교육해야 한다. AI 교육 중에서 AI 응용 분야에 비중을 좀 더 두면 좋을 것 같다. 한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AI를 제조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AI와 제조 공정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서 AI 활용은 모든 학생에게 기본으로 하고 기계·화공·전자·바이오 공정에서 경험을 쌓게 한다. 학생들이 현장 문제에 도전하여 해결하면 그 사례를 전파하여 유사 업종의 회사가 활용하게 한다. 학사·석사 과정의 학생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박사 과정 학생들이 해결하게 한다. 둘째로 대학은 AI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제조 현장의 문제 해결을 본격적으로 지원한다. 이 연구센터는 AI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과제를 만들어 추진한다. 대학과 제조 현장을 연결하기 위해 AI 적용에 관심 있는 회사들을 컨소시엄 형태로 모집하여 연결하고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AI 학과 졸업생의 졸업 논문은 현장 문제 해결로 대신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 졸업을 위한 마지막 학년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말고 아예 회사로 출근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몇 년간 계속하면 제조 현장은 AI 전환이 되어 생산성이 올라가고 우리나라 제조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다. 응용 앱 개발로 생태계 조성 셋째로 AI 창업을 위해서 AI 창업지원센터를 설립하여 학생과 교수 창업을 열심히 지원해야 한다. 모든 연구는 사업화를 통해서 부를 창출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큰 보람을 얻는다. 그리고 AI 관련 회사가 많이 성장해야 AI 생태계가 형성되어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AI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25년 전에 디지털 전환 성공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부는 그 당시에 인터넷 응용소프트웨어(앱)를 개발하는 기업에 3000만~4000만원씩 나눠줬다. 그러나 그 앱들은 대부분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중에 몇 개가 살아서 오늘날 인터넷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에도 AI 응용 앱을 개발하는 회사들에 돈을 주면 좋겠다. 매년 약 2000개의 회사를 선정한다. 회사당 5000만원을 지급하면 1000억원이 든다. 이렇게 매년 2000개의 AI 앱이 나오면 그중에 10%인 약 200개만 살아남는다. 이렇게 5년을 지속하면 1000개의 AI 앱이 살아남아 AI 생태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적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AI 전환 프로젝트를 충실하게 수행하면 제조 현장의 생산 효율이 되살아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제조 경쟁력이 올라가면 일자리는 늘어난다. 또한 제조 분야뿐 아니라 서비스와 건강관리 분야에도 AI가 적용되면 효율이 올라가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AI 전환이 이루어지면 일자리가 감소하여 유휴 인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도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결국 AI 강국이 되면 제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실업 문제도 해결되고, 인구 감소의 문제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의 중요한 부분을 대학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이광형 KAIST 총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

2025.07.07.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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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리는 남고 사람은 떠나는 금만평야

‘한반도의 역사는 서해안에 있다’는 말에 서해안의 이곳저곳을 찾는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쯤 내려가면 금강·만경강·동진강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 세 줄기의 강 사이에는 금만평야가 펼쳐진다. 예로부터 금만평야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땅이라고 했다. 해질녘이면 지평선 너머에 윤슬이 반짝이는 수평선도 보인다. 평야가 너르다 보니 저수지와 방죽이 많은 건 자명한 이치다. 이 저수지들 중에는 흔적만 남은 벽골제와 지금도 큰물을 담고 있는 능제가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호수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능제는 산 대신 평야가 둘러서 있다. 넉넉히 물 대주던 능제 저수지 시베리아 철새, 텃새 되어 남고 텅 빈 농촌에 외국인 청년들만 이곳 사람들은 금만 평야에 넉넉한 물을 대주는 능제를 ‘능지방죽’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또 능지방죽에는 구불구불한 주변 귀퉁이가 아흔아홉 개나 된다며 무언가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선지 능제의 한 귀퉁이에서 최고 학승인 탄허가, 근처 마을에선 신통 묘술을 행한 진묵대사가 태어났다. 극진 가라테의 최배달도 조금 떨어진 마을에 태를 묻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능지방죽이라는 말에서 뭔가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면서기들도 능제호라고 쓰고 능지방죽이라고 읽었다. 큰 호수 안에는 으레 섬이 있듯, 능제에도 제법 큰 두 개의 섬이 있다. 이 섬들은 오랜 세월 오리들의 낙원이었다. 이 오리들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를 시켜 새끼를 키운 후, 시베리아로 돌아가기를 수만 년 거듭했다. 자연계에는 언제나 낙원과 지옥이 공존하듯, 평화롭게 보이는 이 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섬에는 머물던 새들이 낳은 알과 새끼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들을 노리는 뱀들도 있다. 사람들은 뱀들이 어떻게 섬으로 들어갔는지 궁금해했는데 언젠가 능제 주변에 사는 한 아낙이 이런 증언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 봤는디, 비얌 한 마리가 물위로 몸뜅이를 꼬부렸다 쭉쭉 피면서 섬 쪽으로 가드만….” 아직 작명조차 안 된 능제의 두 섬이 어쩌다 조류와 파충류의 세렝게티가 된 것이다. 아낙들은 능제에서 빨래를 하고, 사내들은 능제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었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낚시를 하고 투망을 던져 붕어와 피라미인 단치를 잡아 얼큰한 탕을 만들고 그것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재수가 좋아 살집이 좋은 가물치나 장어를 잡으면 얼굴에 마른버짐이 퍼진 어린것들에게 고아 먹였다. 능제 주변 사람들은 ‘스무 근짜리 잉어를 잡았다’고 하기도 하고 ‘달이 뜨는 밤이 되면 과수댁의 죽은 서방이 산 각시에게 퉁소를 불어준다’는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능제는 사시사철 물을 담고, 가지가지 사연도 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여름 해도 겨울 해도 능제를 끼고 뜨고 졌다. 달도 능제 수면 위에 밤새 머물다 갔다. 해가 뜨건 달이 뜨건 능제는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그 시절 독한 겨울 추위는 능제를 꽁꽁 얼게 했다. 만경읍에 장이 서는 날이면 솔가지를 파는 사람들은 솔가지를 새끼로 묶어 꽁꽁 언 능제 위로 끌고 가 장에 내다 팔았다. 얼어붙은 능제에도 얼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능제가 숨 쉬는 배꼽’이라고 불렀다. 그 배꼽에는 청둥오리들이 날아와 유유히 수영을 즐겼다. 동네 사람들은 오리들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해했다. “안 추운가? 몸뚱이에는 털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발이 굉장이 시릴 챔인디….” 그들은 오리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궁금해하면서 나름대로 짐작을 말했다. “쏘련에서 올 거여. 쏘련이 너무 추워서 일로 왔겄지….” 사람들은 ‘쏘련’을 힘주어 말했다. 그때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기 전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짐작대로 오리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몽골과 중국 동북 3성을 거치는 3000㎞를 날아온다. 낱알을 좋아하는 오리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드넓은 금만평야는 먼 길을 온 오리에게 언제나 후했다. 세월이 흐른 능제에는 이제 겨울이 되어도 꽁꽁 언 얼음도,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오리도 볼 수 없다. 적지 않은 수의 오리들이 텃새가 되어 먹이가 풍부한 능제에 눌러앉아 산다. 오리의 삶이 글로벌에서 로컬로 바뀐 셈이다. 오리 떼를 바라보는 나그네에게 중앙아시아에서 온 청년들이 싱긋 미소를 보낸다. 농촌 고령화 탓에 논농사를 도와주러 온 일꾼들이다. 젊은이들이 떠난 논두렁을 걸으니 정겨운 이름 ‘막동이’와 ‘끝순이’가 떠오른다. 적막 속에 그 시절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환청일까? 근처 마을에 사는 유장희 어르신은 마을회관 주변 잡초를 뽑다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훔치며 말씀하신다. “젊은이는 서울로, 늙은이는 저승으로 떠나…. 고향을 지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소.” 어르신은 사람 없는 고향을 두려워했다. 곽정식 수필가

2025.07.07.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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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해발 1400m 소백산의 밤,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살롱이 되다

검은 비 내리는 칠흑 같은 밤, 해발 1400m 산 정상에서의 얘기다. 혹시나 불빛이 새어 나올까 암막 커튼을 친 ‘회의실’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년 전 칠순을 넘겼다지만 도무지 70대로 보이지 않는 탄탄한 몸매의 남자가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누구나 다 아는 국내 최고의 로봇공학자이지만, 자신의 취미이면서 일의 일부가 된 천체관측과 사진의 세계를 말했다. 회사 건물 옥상에 마련한 천문대에서 찍은 태양계와 그 너머 먼 우주의 사진들. 지난 20년간 터키·호주·멕시코·미국 등 세계 곳곳에 다니며 찍은 화려한 일식 사진과 동영상들…. 이 남자의 이름은 오준호. 휴머노이드 휴보의 아빠로 알려진 인물 맞다. 그는 KAIST 석좌교수이면서,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다. 과학과 문화예술 소통워크숍 소백산천문대서 14년간 진행 유럽 살롱식 교류문화 한국판 “서로의 언어와 논리 이해해야” 과학자 앞에서 영화 이야기 오 교수에 이어 나온 50대의 남자는 영화에서 많이 본 인물이다.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소개한 그는 요즘 만들고 있다는 영화 얘기를 했다. 지구에서 105억 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의 소녀를 만난다는 내용의 SF 장편영화 ‘미트 세이비카(Meet Saybika)’ 제작 스토리다. 지난 5월 원로배우 박정자씨가 지인들을 초대해 미리 치러 화제가 된 ‘1박 2일 장례식’이 실은 자신이 기획해서 제작 중인 영화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배우 겸 감독이라는 이 남자의 이름은 유준상. 그는 뮤지컬로 시작해 영화배우를 거쳐 감독이 된 자신의 인생을 풀어놨다. 감독이 된 배우와 별을 보는 로봇공학자가 왜 비 오는 6월의 밤 해발 1400m 산, 캄캄한 정상에서 만나 삶의 보따리를 풀었을까. 이들이 모인 곳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의 경계, 연화봉 정상에 있는 소백산천문대. 지난 6월 12일부터 2박 3일간 ‘과학과 문화예술 소통워크숍’이란 이름의 행사가 진행된 곳이다. 천문대엔 오 교수와 유 감독 외에도 생물학자·기업인·작가·촬영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23명이 함께 했다. 첫날인 12일 저녁에는 소백산에서 남쪽으로 144㎞ 떨어진 경북 영천의 보현산천문대에서 30년을 지내온 전영범 전 보현산천문대장의 천체사진 이야기, 황나래 천문연구원 박사의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인공위성과 이 때문에 생기는 관측 천문학의 위기 강연, 양유진 천문연구원 박사의 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 이야기,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은 우주 이야기 등의 아카데믹한 강연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2박 3일간 이어진 워크숍에선 우주과학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 SF 동화를 쓰는 작가, ‘DBR 스페이스 챌린지’란 이름의 달 기지 연구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 중인 중견기업의 이야기 등 우주와 과학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주제가 ‘소통’인 만큼 이틀 내내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열기도 뜨거웠다. 소백산천문대 소통워크숍은 올해로 14년째 열리는 범(凡) 학문·직업 간 소통의 장이다. 과학자와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만나 과학과 예술·문학·언론·사회 등 경계를 넘어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게 하자는 게 목적이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와 한국천문연구원 주최하고 있다. 2012년 5월 1회를 시작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던 2020~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두 차례씩 총 21회나 열렸다. 공상과학(SF) 전문가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지금껏 19차례나 참석한 소백산 워크숍의 터줏대감이다. 베스트셀러 『떨림과 울림』의 저자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도 17차례나 참석한 단골 인사다.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단체 SETI와 같이 활동해 온 이명현 갈다 책방 대표도 15차례 소백산 워크숍을 찾았다. 이외에도 소설가 은희경,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 팝아티스트 마리 킴, 과학 유튜버 ‘안될과학’의 궤도(김재혁)와 과학쿠키(이효종), SF영화 승리호의 시나리오 작가 유강서애·윤승민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사와 전문가들이 다녀갔다. 소백산의 ‘소통 경험’은 웹소설로 나오기도 했다. SF 작가 김창규가 2015년 공개한 『소백산 천문대 연쇄살인사건』이다. 소설 속에는 실제 워크숍에 참여했던 천문대장·작가·평론가·천문학자들의 이름과 소백산 워크숍 행사 중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가상의 얘기가 추리소설처럼 버무려져 있다. 소백산천문대 소통워크숍은 문과 이과가 서로 ‘공돌이’, ‘문돌이’로 비하하며 담쌓고 살아온 우리 근현대 문화의 탈출구 같은 곳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17~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퍼졌던 ‘살롱’ 문화와 닮아있다. 상류층 귀족 부인이 주최한 사교모임이 시작이지만, 살롱은 당시 서유럽의 문학·예술·철학·정치뿐 아니라 과학계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과 소통이 이뤄지던 공간이었다. 살롱 문화 속에 근대 서양 문명은 융합하면서 발전을 이뤄간 셈이다. 살롱·카페서 교류한 유럽 지식인들 18~19세기, 유럽 미술계는 살롱과 카페를 통해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전환점을 맞았다. 세잔·모네·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서, ‘빛’ 그 자체를 화폭에 담으려는 실험에 나섰다. 그들의 작품은 살롱과 비공식 지식 모임에서 광학·색채이론, 시각 심리학에 대해 과학자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태어났다. 이 같은 살롱 문화는 20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역시 과학과 예술이 교차하던 살롱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대표작 ‘키스’에 등장하는 화려한 금빛 문양과 꽃 같은 장식은 정자·난자·수정란·적혈구 등 인체 내부 구조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클림트는 당시 빈 사교·문화계의 중심이었던 베르타 주커칸들의 살롱을 찾으며 해부학자·철학자·생리학자들과 교류했다. 『클림트를 해부하다』의 저자인 유임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해부학자의 관점에서 클림트의 그림은 단순히 두 연인의 에로티시즘만을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다”라며 “1900년대 전후의 과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피부 밑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낸 의과학적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소백산천문대 소통워크숍을 이끌고 있는 손승우 한양대 응용물리학과 교수(APCTP 과학문화위원장)는 “소통워크숍의 발단은 2009년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에 맞춰 한국천문연구원 등이 마련한 작가 창작 워크숍”이라며 “과학자는 예술가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예술가는 과학자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한 네크워킹의 장소가 모임의 취지”라고 말했다. 최준호([email protected])

2025.07.07.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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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미 야당 원내대표가 보여준 ‘의회 투쟁의 정석’

불에 타는 성조기, 뿌연 최루가스, 진압 작전에 투입된 해병대. 불법 이민자 과잉 단속으로 촉발된 지난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사태 때 전 세계에 노출된 장면들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지난달 1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열병식. 같은 날 생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예포 21발이 발사됐고 사람들은 “USA”를 연호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노 킹(No King·왕은 없다)’이란 이름의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렸다. LA 사태와 ‘노 킹’ 집회 등을 접하며 미 국무부 베테랑 외교관 출신 한 인사는 며칠 전 기자에게 “미국은 준내전 상태”라고 했다. 극단과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한 말이었다. 이러한 살풍경 속에서 지난 3일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원내대표의 ‘8시간 45분 연설’은 유독 신선하게 느껴졌다. 미국의 의회 정치만큼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고나 할까. 제프리스의 마라톤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의사 진행을 막기 위한 목적의 필리버스터(무제한 연설)는 상원에만 있지만, 하원에서 당 원내대표에 한해 사실상 시간제한 없는 발언권을 인정해주는 의회 관행을 활용한 지연 전술이었다.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4시 53분 “이 법안이 미국인들 삶에 얼마나 큰 해악이 될지 분명히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연설을 시작해 오후 1시 38분까지 연단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감세 항목이 부자에게 유리하며 연방정부 부채 부담을 키운다는 점 등을 하나하나 짚었고, 사회안전망 예산 삭감으로 앞날이 막막해졌다는 지역 주민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법안은 민주당 의원 전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 예상된 패배였다. 그럼에도 제프리스 원내대표의 ‘품격 있는 저항’은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줬다. 상대를 비방하기보다 논리로 설득하려 했고 민주당이 무엇에, 그리고 왜 반대하는지를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제프리스의 8시간 45분은 한국 정치에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난무하는 고성과 욕설에 육탄전, 한때 빠루와 망치까지 등장했던 ‘동물국회’는 과연 졸업했나. 공수만 바뀐 채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여야를 보면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제프리스가 보여준 ‘의회 투쟁의 정석’을 제대로 배웠으면 한다. 김형구([email protected])

2025.07.07.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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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생존 게임의 마지막 단계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은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456억원 상금이 걸린 살벌한 게임이 벌어지는 설정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놀이를 그 게임 방식으로 만든 점은 단연 흥미로웠다. 이런 놀이들, 그리고 동화 속 공간을 연상시키는 형형색색 게임장 세트는 탈락이 곧 죽음인 이 생존 게임의 잔혹성과 기막힌 대비를 이뤘다. 더구나 한국어 드라마임에도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초단기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냈다. 한국 중장년에게 친근했던 놀이가 세계인이 알아보는 게임이 되었고, 승자독식의 비정한 규칙과 결과는 오늘날의 사회에 대한 비유로도 풀이됐다. 시즌3은 이 놀라운 성공의 결과물이다. 알다시피 ‘오징어 게임’은 당초 시즌제가 아니었다. 2021년 9월 공개 직후부터 세계적 열광이 속편 제작을 이끌었다. 지난해 12월 나온 시즌2가 속편의 전반부라면, 이번에 공개한 시즌3은 속편의 후반부이자 완결편. 처음 게임에 끌려온 참가자라면 몰라도 다시 게임에 참가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처럼 관객 역시 이 게임의 전반적 규칙을 잘 안다. 한편이 될 수밖에 없는 참가자들도, 선의로 한편이 된 참가자들도 잔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시즌3의 마지막 게임은 특히 비정하고 간교하다. 언뜻 강자가 연합하면 약자를 손쉽게 희생양 삼을 수 있는 게임 같지만 이 게임 설계가, 황동혁 감독이 쓰고 연출한 각본이 그렇게 순진할 리 없다. 마지막 게임은 그 무대마저 전보다 한결 거칠고 위험해 보인다. 아찔한 높이의 기둥 사이를 건너는 다리가 비계를 닮은 것을 비롯해 동화 속 공간 대신 공사장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 시즌3은 시즌1·2보다 힘든 관람 체험이었다. 어쩌면 이게 이 시리즈가 전하는 생존 게임의 본질 아닐까 싶기도 하다. 놀이인 양, 누구라도 상금을 가질 수 있는 양 현혹하는 대신 그 무자비함을 처절하게 드러낸다. 참가자들은 통과 기준 이상으로 게임에 열심이다. 약 빠른 척,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척 비정한 짓을 마다치 않는다. 그래도 소용없다. 이 게임 속 세상은 선의든 악의든 누구를 믿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일로 만든다. 마지막 회의 후일담을 보며 생존 게임 과몰입에서 빠져나왔다. 게임판을 벗어나 게임의 규칙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꿈을 좇는 모습들이 이 게임이 이 세상의 절대적 축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맨 마지막, 해외 스타의 카메오 출연은 게임이 지구촌 어디선가 계속되리란 여운을 주지만.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은 아마도 앞으로 없을, 적어도 한동안은 없을 것 같다. 새로운 화제작을 만들 역량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극적인 묘미도, 잔혹함도 세 시즌의 게임으로 충분히 맛본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후남([email protected])

2025.07.07.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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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돌 맞은 푸바오 동생들, 이젠 홀로선다

국내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이언트 판다 자매 루이바오(睿寶)와 후이바오(輝寶)가 7일 두 돌 생일을 맞았다. 지난해 4월 중국 쓰촨성 워룽선수핑 기지로 간 푸바오(福寶)의 동생들이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는 이날 오전 판다 월드에서 쌍둥이 판다의 생일잔치를 열었다. 주키퍼(사육사)들은 대나무·죽순·꽃 등으로 만든 가로 1m 크기의 대형 케이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얼음 바위’ 등을 선물했다. 쌍둥이는 2023년 7월 7일 에버랜드에 사는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 사이에서 각각 180g, 140g으로 태어났다. 두 돌이 된 현재 체중은 각각 약 70㎏으로 440배나 늘었다. 이번 생일은 쌍둥이가 엄마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생일이다. 판다는 보통 태어난 지 1년 반에서 2년이 지나면 독립한다. 에버랜드는 쌍둥이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차차 늘려가다가, 오는 9월부터 새 보금자리에서 둘만 지내게 할 예정이다. 최모란([email protected])

2025.07.07.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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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 읽기] 연예인과 온라인 괴롭힘

‘러브 아일랜드’는 2005년 영국에서 시작된 연애 리얼리티 쇼다. 지금은 한국에서 제작하는 ‘솔로지옥’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지만, ‘러브 아일랜드’는 그중에서도 장수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미국, 호주, 프랑스, 독일 등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판 러브 아일랜드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출연진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삼가해 달라”고 호소한 일이 있었다. 연애 리얼리티 쇼 출연진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출연자 두 명과 진행자 한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인기를 끌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남녀의 연애를 보면서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기뻐하거나 분노한다. 그러다가 출연자의 과거를 캐내고, 온라인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일이 흔하다. 리얼리티 쇼는 이름과 달리 제작진의 설정과 연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미움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출연자들도 사실은 그런 역할을 연기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리얼리티 쇼를 둘러싼 온라인 괴롭힘은 프로그램을 흥행시켜야 하는 제작진의 의도와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 논란이 생길 때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러브 아일랜드’의 미국 제작진은 촬영 동안 출연자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시청자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촬영 중에는 출연자들을 온라인 괴롭힘으로부터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소셜미디어는 친구나 가족이 대신 운영한다. 온라인 괴롭힘은 연예인이 감당해야 할 인기의 대가가 아니며, 당하는 사람이 혼자의 노력으로 극복하게 해서도 안 된다. 연예계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2025.07.07.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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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야호! 방학이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시작

7일 부산 동래구 명륜초등학교 2학년 3반 학생들이 여름 방학식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밝은 표정으로 하교하고 있다. 여름 방학은 내달 31일까지 55일간이다. 송봉근([email protected])

2025.07.07.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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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송참사, 잊지않겠습니다

사망자 14명이 발생한 오송참사 2주기(15일)를 앞둔 7일 충북도청에서 유가족과 생존자협의회, 시민대책위원회가 추모 주간을 선포하고 있다. 김성태

2025.07.07.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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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여름의 빛

더위에 취약한 사람에게 쥐약 같은 계절이 왔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포함된다. 이름이 암시하듯 추위를 비교적 잘 견디고 더위에는 맥을 못 추린다. 7월 즈음이 되면 체력이 절반 정도로 깎여나가기 때문에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집 안에 있을 때는 커튼을 쳐두고 나갈 때는 신발장 구석에 놓아둔 양산을 꺼낸다. 햇빛을 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름의 햇빛은 잔인하고, 사람을 탈진시키거나 건강을 위협한다. 비단 여름이 아니더라도 한낮의 햇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에게 『빛과 실』(2025)이 말한다. “햇빛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 정원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은 정원을 돌보기 위해 여덟 개의 탁상용 거울을 산 이야기를 한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남쪽의 정원에 빛을 쐬어주기 위해, 어떤 날엔 글을 쓰다가도 15분마다 일어나 거울의 각도를 조절하고 사흘마다 거울의 위치를 옮긴다. 거울에 반사된 빛을 받은 잎들이 투명한 연둣빛으로 빛날 때면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을 느낀다.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과 사는 일이 자신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노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얼마 전 영월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이 구절들을 떠올렸다. 초록의 파도 소리가 들릴 것처럼 산과 숲이 새파랬다. 햇빛 아래서 산을 걷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무성한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기뻤다. 남은 계절 내내 여전히 해를 피해 다니면서도 슬쩍 그림자 너머를 엿볼 것이다. 빛을 흠뻑 머금고 자라나는 식물들을 훔쳐보며. 하루하루 다른 모양이 되고 꽃을 피우고 향을 만들고 다른 생명체의 쉴 자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도 탈진하지 않고 식물들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여름이 되기를, 그래서 조금 너그러운 여름이 되기를 바라본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2025.07.07.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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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새콤달콤 제주 감귤…‘하하’ 축제서 맛보세요

제주산 하우스감귤이 무더위 속에서 출하돼 소비자의 입맛을 공략한다.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나오는 하우스감귤은 10월부터 12월까지 나오는 노지감귤(일반 감귤)과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나오는 황금향·한라봉 등의 빈자리를 채우는 귤이다. 농협 제주본부는 7일 “제주도, 제주감귤연합회,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 등과 함께 7월부터 8월까지 ‘하.하. 온 국민 페스티벌’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하.’엔 온 국민이 제주산 ‘하’우스 감귤을 ‘하’루에 ‘하’나씩 맛보자는 의미가 담겼다. 오는 11일에는 서울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제주 하우스감귤 페스티벌이 열려 가격할인과 시식 행사 등을 진행한다. 또 전국 하나로마트, 대형마트, 농협몰, 홈쇼핑, 라이브커머스 등을 통해 하우스감귤 소비 확대를 위한 홍보와 판촉 행사를 연다. 제주 하우스감귤 재배 면적은 경영비 상승과 소비 부진 등 여파로 2010년 312㏊에서 2015년 250㏊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품질 향상과 함께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재배 면적이 46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하우스감귤 생산량은 2만6600t으로 전년(2만7036t)과 비슷한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생산량이 1.6%가량 감소한 것은 지난해 가을 고온, 올봄의 저온 현상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가격은 3㎏ 기준 2만5111원 선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판매되고 있다. 올해 하우스감귤 당도는 10브릭스(Brix) 이상, 최대 14브릭스까지 나오고 있다. 농가에선 보통 10브릭스가 넘으면 맛있는 귤이라고 말한다. 고성진(서귀포시·67)씨는 “올해 봄철 저온 이상기후 탓에 생육이 늦어져 첫 수확 시기가 좀 늦었지만, 당도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제주 하우스감귤의 약 75%는 농협과 감귤농협 등을 통해 전국에 유통된다. 농·감협 유통은 비파괴 선과기를 이용해 고품질의 감귤 선별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고우일 농협 제주본부장은 “감귤철이 아니더라도 소비자에게 새콤달콤한 생귤의 맛을 선사할 수 있어 농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하우스감귤 재배에 나서고 있다”며 “이상기후와 재배환경 변화 속에서도 소비자와 농민을 잇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최충일([email protected])

2025.07.07. 8:06

[민주영의 마켓 나우] 퇴직연금 개혁, 기대-현실 간극 메우려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절대적 결과보다 기대와의 차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른바 ‘기대 불일치’ 이론의 핵심 원칙으로, 고객 만족은 실제 경험이 사전 기대를 얼마나 넘어서거나 밑도는지에 좌우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이 원리는 한국 퇴직연금 시장의 고질적 문제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많은 가입자는 금융회사가 자신의 노후 자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해 주기를 기대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금융회사는 상품 설명과 일반적인 투자 조언만 제공할 수 있으며, 최종 투자 결정은 가입자 본인의 몫이다. 전문적 관리를 기대했던 가입자들이 실질적으로는 투자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상당수는 적극적 자산 운용 대신 예금 등 안전 자산 위주의 수동적 전략을 택한다. 그 결과, 장기 수익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도입된 ‘디폴트 옵션’ 제도도 동일한 한계를 드러낸다. 미국 등 연금 선진국에서는 디폴트 옵션이 전문적으로 설계된 포트폴리오를 자동 적용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지만, 한국에서는 가입자가 직접 투자 유형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약화시키는 구조적 제약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최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금형은 기존의 계약형과 달리, 독립된 기금을 설립하고 전문 운용조직이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가입자의 ‘전문 운용 기대’와 ‘자기 책임 현실’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일반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형 금융회사일수록 기금형 도입에 소극적이다. 제도 전환이 기존 시장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입자의 불신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변화 회피는 오히려 시장 전체의 신뢰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 기금형 제도가 실질적인 수익률 개선과 제도 활성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조건이 있다. 첫째, 공적 기관의 참여는 제한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광범위한 개입은 민간의 경쟁과 자율성을 저해하고, 연금시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 공적기관 참여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처럼 30인 미만 기업에 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기금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불필요한 중복 비용은 결국 가입자의 수익률을 잠식한다. 퇴직연금은 국민 노후의 보완적 수단이지만, 공적연금과는 달리 민간의 자율성과 경쟁을 전제로 한다. 시장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가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경영학(연금금융) 박사

2025.07.07.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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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가득한 ‘순천만정원’ 이젠 K-디즈니 캐릭터도 즐긴다

두 차례의 국제정원박람회가 치러진 순천만국가정원이 지난해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에 이어 전국에서 5번째로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관광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순천만정원·습지 입장객은 430만4733명으로 집계됐다. 경복궁(644만3600명)과 킨텍스(585만42명), 에버랜드(559만7998명), 롯데월드(525만6920명) 등에 이어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 순천만정원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년간 386만5945명이 입장했고, 덕수궁(340만2284명), 대구 이월드(314만6076명), 과천 경마공원(252만2289명), 강원랜드 카지노(237만3346명) 등을 기록했다. 순천시는 순천만정원에 지방 도시 최다 관광객이 찾은 것은 국제정원박람회 효과가 큰 것으로 본다. 순천만정원은 제2회 국제정원박람회를 치른 2023년에는 778만여명이 입장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박람회를 전후로는 정원 조성 및 산업화 비법 등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전국 810여개 기관·단체가 다녀갔다. 당시 국제정원박람회는 순천만정원에 한정됐던 박람회장을 도심권까지 확대한 게 호평을 받았다. 순천만정원 앞 홍수용 저류지(貯留池)에 만든 ‘오천 그린광장’과 4차선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잔디를 깐 ‘그린 아일랜드’ 등은 정원의 트렌드를 바꾼 콘텐트로 꼽히기도 했다. 순천만정원은 5㎞ 거리의 순천만습지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정원이다. 순천만 보호를 위해 도심 외곽 부지 111만2000㎡를 꽃과 나무로 차단한 게 ‘제1호 국가정원’이 됐다. 순천만은 22.4㎢의 갯벌과 5.6㎢의 갈대 군락지에서 조류 252종과 동식물 1600여종이 살아가는 세계 5대 연안습지다. 순천만정원은 두 차례 국제정원박람회를 치른 후 또 한 번 변신을 시도 중이다. ‘우주인도 놀러오는 순천’을 테마로 한 순천만정원에는 지난해 4월 재개장 후 8개월간 4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순천시는 기존 ‘아날로그 정원’에 디지털을 입히는 ‘K-디즈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순천만정원 안팎에 AI(인공지능)와 체험형 디지털 콘텐트 등을 도입해 ‘즐기는 정원’을 만드는 게 목표다. 기존 순천만정원의 랜드마크인 ‘꿈의 다리’를 우주인의 착륙을 구현한 ‘스페이스 브릿지’로 꾸미고, AI 캐릭터 체험 공간인 ‘두다 하우스’ 등을 조성한 게 시작이다. ‘K-디즈니’는 순천만정원을 기반으로 순천시가 월트디즈니 본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젝트다. 해외 기업 유치를 비롯해 순천만정원 내 국제습지센터를 창의적 기업공간으로 전환하고, 원도심 일원에는 타운형 제작공간을 구축한다. 순천시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전국 유일의 ‘문화콘텐트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바 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만정원은 어떤 자원과 시책을 연계해도 성공 가능성이 큰 황금알과 같은 콘텐트”라며 “순천시가 추진 중인 문화콘텐트 산업을 촘촘하게 연결해 100년의 먹거리 곳간을 채워가겠다”고 말했다. 최경호([email protected])

2025.07.07.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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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1994년 김일성 사망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일찍 끝나버린 장마 후 온 나라가 불구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날씨만 그런 게 아니었다. 북한 핵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미국은 선제 폭격을 검토했다.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핵개발을 중단하고 핵사찰을 허용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합의를 받아낸 것이다. 역사의 주사위가 뜻밖의 방향으로 굴러갔다. 7월 8일 오전 2시, 김일성이 사망했다. 그 소식은 다음날인 9일 정오 북한의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인은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 그는 묘향산에 마련된 별장 향산특각의 침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17일 앞둔 시점이었다(사진). 일각에서는 김일성 사망 원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그 후의 역사를 알고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버텨냈다. 후계자 김정일은 안정적으로 권력을 움켜쥐었고 손에 넣은 핵을 내놓지 않은 채 아들 김정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었다. 그때 남북정상회담을 했다고 해서 북핵 포기와 평화 통일이 절로 이루어졌을 리는 없다.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해 한반도의 역사가 비가역적인 변화를 겪게 된 것 또한 분명하다. 결국 북한은 3대 세습 체제를 완성했다. 2023년 12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두 개의 국가’를 선언했다. 그토록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조차 북한과의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태도를 바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통일부 명칭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94년의 뜨거운 여름은 현재 진행형이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5.07.07.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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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따오기, 한반도 멸종 46년 만에 자연 번식 성공

경남 창녕군에서 종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야생 따오기가 첫 자연 번식에 성공했다. 창녕군은 7일 “유어면 대대리 일대에서 야생 따오기 새끼 3마리를 자연 번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979년 한반도에서 따오기가 멸종된 지 46년, 2019년 첫 자연 방사를 한 지 6년 만에 첫 자연 번식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 자연 번식에 성공한 따오기 부부는 2022년(암컷)과 2023년(수컷)에 태어난 2세대 따오기다. 이 부부는 지난 3월쯤 짝짓기를 한 뒤 둥지를 틀고 3마리의 새끼 따오기를 부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화한 새끼 따오기들은 약 6주간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둥지를 떠났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는 원래 논과 같은 습지에서 미꾸라지와 개구리 등 양서 파충류를 잡아먹으며 생활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1979년 비무장지대(DMZ)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뒤 우리나라에선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8년부터 창녕군 유어면 우포따오기복원센터(이하 센터)가 따오기 종 복원 사업을 추진해왔다. 2008년 한중 정상회담 당시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기증한 한 쌍과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기증한 수컷 두 마리를 가지고 인공 및 자연부화를 거쳐 현재까지 390마리의 따오기를 야생에 방사했다. 방사된 따오기의 등에는 태양광 충전 기능이 있는 위치추적기(가로 63㎜ 세로 35㎜ 높이 14㎜)를 달아 2시간마다 2 년간 위치를 파악한다. 또 우포늪에 수시로 촬영 가능한 드론을 띄워 관찰하고 있다. 성낙인 창녕군수는 “야생 따오기가 자연 번식에 성공한 것은 따오기의 완전한 자연 정착이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며 “야생에 방사된 따오기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환경 보전과 생태계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욱([email protected])

2025.07.07. 8:02

“월 80만원 우째 내라꼬” 새 자갈치시장 거부한 노점 할머니

“하루 5만원치 팔아서 만원도 채 못 버는데 월세 80만원을 우째냅니꺼. 못 드가예.” 지난 1일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이모(86)할머니의 한탄이다. 52년째 노점상을 하는 그는 “사람들 눈에 띄는 길바닥에 있어도 하루 5만원치 파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장사가 더 안될 게 뻔하다”고 했다. 부산시가 불법 노점(露店)을 정리하기 위해 2014년부터 235억원을 들여 지난해 말 자갈치아지매시장 신축건물(1동 면적 2441㎡·2동 면적 1827㎡, 각 3층)을 완공했지만, 노점 상인 200여명은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매장 면적은 좁아지고, 월세를 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 말 개장하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올해 추석 연휴 전 개장도 물 건너간 상태다. 2015년 노량진 현대화 수산시장에 상인들이 입점을 거부하며 4년 넘게 수협과 갈등을 빚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부산시가 상인회와 지난 4월부터 ‘소통 TF’를 구성하고 4차례 회의를 한 결과 시설 문제는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유재인 자갈치아지매시장 상인회장은 “해수 수압 상승, 화장실과 화물용 엘리베이터 추가 설치 등 상인회 요구사항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며 “지난 4월 입점 추첨에 아무도 응하지 않자 부산시가 많이 양보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용료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자갈치시장 노상 약 300m 구간에서 영업하던 상인들은 한 달 전기사용료로 5만원 정도 내는 게 전부였다. 자갈치아지매시장에 입점하면 사용료와 관리비로 월 53만원~18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30년째 꼼장어집을 운영하는 오모(72) 할머니는 “자갈치시장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는데 월세를 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날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와 부둣가에 정박한 선박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매연 냄새 탓에 자갈치시장은 한산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구경만 할 뿐 생선을 사거나 꼼장어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은 드물었다. 40년간 노점을 한 강모(83)할머니는 “자갈치시장 인심이 야박하다는 인식과 제사를 안 지내는 문화 등이 겹쳐 생선을 사 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며 “월세를 낮춰주지 않으면 입점을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인회는 노점상인 200여명 중 40여명은 입점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다른 자갈치아지매 상인회를 맡은 정재우 회장은 “상인 70%가 70대 이상인데, 장사를 포기하고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게 낫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시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사용료를 낮추려 해도 노점 상인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며 “한시적으로 사용료를 낮춰도 될지 인근 상인들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와 상인회는 올해 말 입점 추첨을 마무리하고, 내년 설 연휴 전에는 개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부산시는 내년 초 자갈치아지매시장이 개장하면 홍보를 강화하고, 주변 도로 정비사업으로 상권 활성화를 꾀할 방침이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크루즈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고, 정비된 도로에 버스킹 공연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자갈치아지매시장이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지([email protected])

2025.07.07.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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