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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이후…농장 노동자의 날] "그를 기리기 어렵다" 배신감에 기념 전무

Los Angeles

2026.03.31 22:46 2026.04.0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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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곳곳 '차베스 흔적' 지우기
퍼레이드, 벽화 셀카도 사라져
특정 인물 영웅화 위험 사례
차베스 길 주민들 심경 복잡
노동운동의 상징, 세자르 차베스(1927~1993)의 이름이 LA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동안 차베스의 생일이자 노동자를 기념해온 3월 31일은 올해부터 ‘세자르 차베스 데이’ 대신 ‘농장 노동자의 날(Farm Workers Day)’로 대체됐다.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LA 보일하이츠의 세자르 E. 차베스 애비뉴에서는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이 농장 노동자를 지지하는 모임을 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차베스 데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와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마리아 델라바리오가 지난달 31일 '세자르 차베스 애비뉴'를 기존 명칭인 '브루클린 애비뉴'로 복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마리아 델라바리오가 지난달 31일 '세자르 차베스 애비뉴'를 기존 명칭인 '브루클린 애비뉴'로 복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이날 마리아 델라바리오는 피켓을 들고 세자르 E. 차베스 애비뉴로 나왔다. 피켓에는 전국농장노동자연합(UFW)의 검은 독수리 로고가 붉게 그려져 있었고, 스페인어로 “농장 노동자 만세, 평화와 사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신을 ‘평화운동가’라고 소개한 델라바리오는 “농장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를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델라바리오는 차베스를 둘러싼 성폭행 논란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울었다”며 “농장 노동자들을 대표했던 인물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 괴로웠지만, 노동자들이 정의를 위해 싸워온 노력까지 폄하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세자르 차베스 애비뉴의 한 병원 건물 외벽에는 차베스와 히스패닉 인권 운동가들의 얼굴이 벽화 속에 그려져 있다. 김상진 기자

세자르 차베스 애비뉴의 한 병원 건물 외벽에는 차베스와 히스패닉 인권 운동가들의 얼굴이 벽화 속에 그려져 있다. 김상진 기자

세자르 E. 차베스 애비뉴의 본래 명칭은 ‘브루클린 애비뉴’였다. LA 다운타운과 보일하이츠를 연결하는 도로로 1994년 LA시 결정에 따라 현재 명칭으로 변경됐다.
 
차베스 애비뉴 인근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호세 곤살레스(58)는 “차베스는 우리 세대의 영웅이었지만, 최근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그의 이름을 기리기 어려울 것 같다”며 “캐런 배스 시장이 도로 이름을 다시 브루클린 애비뉴로 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로사 알바라도(47)는 “이번 논란은 사회운동이 특정 인물을 지나치게 영웅화 시키고 한명의 지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수많은 농장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운동이 한 인물의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와 희생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1 프리웨이 표지판에 표시된 세자르 차베스 명칭. 김상진 기자

101 프리웨이 표지판에 표시된 세자르 차베스 명칭. 김상진 기자

현재 LA 전역에는 차베스의 이름이 붙은 거리와 학교, 공원, 기념관, 벽화, 동상, 프리웨이 표지판 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상당수는 1990년대 이후 그를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그러나 최근 논란 이후 정치권에서는 공공시설 명칭 재검토 움직임이 확산되며 ‘차베스 지우기’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앞서 차베스는 1960~70년대 미성년자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본지 3월 19일자 A-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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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차베스는 당시 미성년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성폭행하고,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 동료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세자르 차베스 데이는
차베스의 노동운동과 농장 노동자 권익 향상을 기리는 날이었다. 가주 정부는 2000년 전국 최초로 그의 생일인 3월 31일을 주 공휴일로 지정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세자르 차베스 데이를 연방 기념일(federal commemorative holiday)로 공표했다. 또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1년 취임 첫날 집무실에 차베스의 초상화를 내걸었다. 대통령 취임 첫날 부터 집무실에 초상화가 등장한 사례는 차베스가 유일할 정도로 그는 진보 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강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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