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후회와 고통…자식 지키지 못한 벌”
너무나 허망하게 떠났다. 자식이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다. 단순히 시간만 흘러간 게 아니다.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후회와 고통의 나날이었다. 교육 컨설턴트인 양민(사진) 박사는 지난해 5월 2일 경찰 총격에 둘째 아들 양용(당시 40세)씨를 황망하게 보냈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부모로서 가슴이 먹먹하다. 아직도 그의 쓰라린 심정은 ‘2024년 5월 2일’에 멈춰 있다. 양 박사는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슬픔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벌”이라고 자책했다. 만약 그때 정신건강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경찰을 돌려보냈더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지만 죽은 아들을 살릴 수는 없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도 외롭고 고단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지난 2일 양 박사를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아들이 숨진 곳이다. 아들의 총을 맞고 쓰러졌던 소파도, 손길이 닿았던 가구도 모두 그대로다. 부모는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라도 안 싸우면 억울한 죽음 잊혀져” 한인사회의 침묵…너무나 섭섭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 안해 보상 바라며 싸우는 게 아냐 LAPD 반성·재발방지 나서길 양민 박사는 아들을 할리우드힐스 포리스트론에 안치했다. 생전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포리스트론 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양 박사는 “용이가 하이킹을 즐기던 곳이라서 그곳의 풍경이 익숙할 것”이라며 “무덤 옆에 개울이 흐르는데 용이가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잘 자면 좋겠다”고 했다. 1년이 지났다. “아직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못 밝혔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난 1년 동안 매일매일 아들이 죽은 ‘그날’을 살았다. 그동안 LA경찰국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정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내게 분노와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럴수록 아들을 잃은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어떠한 문제점인가. “용이가 죽기전에는 몰랐다. 무고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이 이 사회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당국의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단,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다. 검찰은 LAPD의 사건 보고서와 징계 여부 등을 참고해서 기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LAPD와 경찰위원회가 제 식구를 감싸는 구조에서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가. 실제로 지난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발생한 경관 총격 사건(OIS) 가운데 단 한 건도 경관이 기소된 적은 없다.” 사건 기록물을 아직도 보나.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쓰라린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또 진실과 정의를 위해 억지로 참고 사건 당시 총을 쏜 경관의 보디캠 영상, 관련 문서들을 아직도 매일 보고 있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일부러 아들의 모습보다는 사건 시각, 경과, 연루된 인물의 행동을 집중해서 본다.” 지역 사회의 반응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해 주고 목소리를 내줘 감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인 사회의 침묵이 너무나 섭섭하게 느껴진다. 이런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 떠들면 패배감만 더 느낄 것 같았다.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다. 용이는 한국 국적자인데 총영사관에서도 보여주기식 대응만 있었고 실질적인 도움은 하나 없었다.” 왜 무관심한 것 같나. “초기 한인 사회는 삶의 터전이 한인타운에 집중돼 있어서 결속이 강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이 다양해지고 거주 지역도 흩어지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다. 또한, 이민 1세대, 한국 국적자, 미국 태생 한인 등 서로 다른 정체성이 섞여 있다 보니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은 ‘제도에 맞서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듯하다.” 외로운 싸움에 대한 주변 반응은. “많은 변호사가 경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싸움은 힘들다고 했다. 오히려 보상을 최대한 받아내는 게 현실적인 목표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며 싸운 게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하고 비참하다.” 비판 여론도 있는데. “아들 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총 맞을 짓 했네’, ‘경찰이 잘 죽였다’ 등의 댓글을 보면 웃어넘기려고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한다. 사건의 본질과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아들을 비난하는 건 너무나 경솔한 일이다. 누구나 제2의 ‘양용’이 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생각을 같이 모아주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LA카운티정신건강국의 한인 직원인 윤수태 씨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내게 아들에 관해 어떤 정보도 묻지 않았다. 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 현관 앞 내 뒤에 숨어 권위적인 태도로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정신건강국 직원이라고만 밝혔다. 매우 비전문적이었다.” 당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원래 후회하는 성격이 아닌데 모든 게 후회된다. 사건 전날 아들 집에 간 일, 아들이 지갑을 찾으러 내 집에 왔을 때 집에 있다가 가라고 한 일, 정신건강국 직원을 부른 것까지 전부 다 후회된다. 심지어 ‘LA에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또 사건과 별개로 과거 타인의 아픔에 내가 얼마나 공감했는지도 돌아보게 됐다. 신문에서 볼법한 일을 내가 직접 겪어 보니 그동안 타인의 슬픔이나 힘든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죽은 집에서 계속 사는데. “슬프다는 이유로 아들이 죽은 현장을 뒤로하고 떠나는 건 용이한테 못 할 짓이다. 자식이 죽어 힘들다고 떠나는 게 부모가 할 도리인가. 지금 사는 집 거실에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슬픈 감정이 많이 북받쳐 오르지만, 슬픈 감정을 많이 억누른 채 살고 있다. 아직도 사건이 발생한 집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퍼하며 사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들이 주로 언제 생각나나. “매일 생각난다. 아들과 함께 자주 갔던 그리피스 파크 하이킹 코스, 인앤아웃, 한식당 모두 지금은 일부러 피하고 있다. 또 용이가 생전에 LA 하이스쿨 인근에 살았는데 지금은 웨스턴이나 피코 인근을 일부러 안 가려고 한다. 아들과의 추억이 너무 선명해서 마음이 무너질까 봐 그렇다.” 아들 유품은 다 정리했나. “못 볼 것 같아서 거의 다 버렸다. 일부는 쌍둥이 형이 가져갔는데 성경 구절 카드나 일부 옷가지가 전부다. 쌍둥이 형이 동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용이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한다.” 아들 지인들과는 연락하나. “용이에게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에게 세상은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두려워했는데 죽기 얼마 전부터 친구를 많이 사귀려고 노력했다. 한인 테니스 동호회도 가입했었다. 지금은 용이 여자친구만 가끔 만나고 있는데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만나면 일부러 다른 대화를 한다.” 언제까지 싸울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는 기한이라는 게 없다. 계속하는 거다. LAPD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의 경우 최소 2~3년은 걸리는데 다른 방식의 행동이 필요하다면 계속 이어갈 것이다.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일모레면 일흔인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부모라도 안 싸우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은 잊혀질 수 밖에 없다. 용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제가 승리인가. “승리는 없다. 용이를 살려낼 수 없지 않은가. 우리 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 LAPD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당국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은 용이 사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인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중의 목소리를 규합하고, 한인 사회를 결속 및 대변할 수 있는 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한인 단체들은 충분한 힘이 없는 것 같다. 또 한인 사회에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가족이나 사람이 많다. 그들을 돌보기 위한 열린 공간과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아들로 기억하고 싶나. “가엾지만 대견한 아들이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과 실행력이 있었다. 죽기 전날에도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이다.”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 양 박사는 지난달 29일 아들 양씨의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자신의 소회를 작성해 본지에 보내왔다. 다음은 전문. *아들 양용(Yong Yang)의 죽음과 아버지의 기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지난 2024년 5월 2일, 제 아들 양용은 LA경찰국(LAPD)의 총격으로 생을 잃었습니다. 당시 용은 평범하지 않은 정신적 상태 속에서 불안을 겪고 부모의 곁에 있고자 저의 집을 방문 중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최근 몇 년간 용이 기적적으로 회복 중인 과정에서 흔치 않은 증상들을 보며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 의학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마침 정신건강의 달인 5월을 맞아 핫라인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던 LA카운티정신건강국(DMH)에 전화해 병원이송 지원 서비스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아들을 혼자 집 안에 남겨두고, 밖에서 DMH팀을 기다렸습니다. 용은 조용히 집 안에 있었고, 전날 저희 부부 집 방문 시부터 당일 사망 시까지 소란을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혼자 집안에서 무서워하며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우리 가족이 마주한 미국의 경찰 시스템과 공공의료 시스템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시스템의 무책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조 그 자체였습니다. ▶DMH의 직무유기 DMH 직원 윤수태 씨는 현장에 도착하고 1시간 3분 동안 아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의료적 개입은 없었고, 불안한 환자가 있는 공간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진입을 시도해 오히려 환자의 불안을 증폭시켰습니다. 현장 도착 직후, 그가 한 것은 소리 지르며 아들을 불안하게 한 것, 딱 그것뿐이었습니다. 용은 낯선 이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가라”고 소리치고 몸짓으로 거부 의사를 보인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윤씨는 이를 “폭력적이다”라고 단정하며 LAPD에 신고한 것이 이 끔찍한 결과의 시작이었습니다. ▶LAPD의 과잉무력과 작전 수행 LAPD는 신고를 받은 후 현장에 출동하여 총 47분을 머물렀지만, 아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단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35초, 47초 등 총 1분 20여 초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설득도, 비폭력적인 중재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수행을 지휘한 아라셀리 루발카바서전트는 생애 첫 현장 지휘라는 상황 속에서도 상관의 조언 없이, 무력 진입을 즉각 지시했습니다. 현행 범죄가 일어나고 있지도 않았으며, 이전에 범죄가 일어나지도 않아 체포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아이를 체포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경찰은 아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환자의 안전과 생명은 무시하고, 무력을 무리하고 신속하게 실행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 발생한 살상 무기 사용과 살해조차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저는 물론 일반적인 시민들의 생각입니다. 총격을 가한 안드레스 로페즈 경관은 이미 지난 2021년에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리한 대응으로 경관 총격 사건(OIS)을 일으킨 전력이 있으며, 당시에도 처벌 없이 넘어갔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앞장서 작전을 주도했습니다. 경찰들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움직였으며, 비치명적 무기를 가진 경찰들은 모두 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경찰은 사전에 조율된 작전처럼 단 6초 만에 진입했습니다. 진입 후 단 8초 만에, 그 중 1.19초 사이 3발의 총알을 발사해 용의 심장, 폐, 척추, 위, 췌장, 간, 장 등 주요 장기를 손상시키며 확실한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LAPD가 부른 응급구조대는 전문 응급의료서비스가 아닌 일반 소방관들이었고, 그마저도 총격 발생 8분 30초 후에나 도착했습니다. 현장에서 의료적 응급조치는 전무했고, 생명은 방치된 채 오직 작전 수행 통제만이 우선되었습니다. ▶구조적 문제 – 헌법과 현실의 괴리 수정헌법 제4조는 모든 시민이 불합리한 수색과 체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은 이러한 권리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찰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람 중 약 3분의 1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실제로 경찰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시민을 무력화하고, 사법체계는 이를 정당방위로 간주하며 거의 기소하지 않습니다. 특히 LAPD는 OECD 국가 중 민간 살상률 1위, 경찰의 치사율 최고 수준, 기소율은 사실상 0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총기 소지를 헌법이 보장하고, 시민들도 경찰을 만나면 무서워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시되는 미국 사회에서 경찰은 시민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통제를 우선하는 구조에 깊숙이 안주하고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이어진 싸움, 그리고 지치고 있는 가족들 아들 용이가 세상을 떠난 직후, 미국과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을 최소 1회 이상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용의 죽음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제 가족은 침묵 속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 동문과 한인 사회가 중심이 된 시민 모임 JYYPC (Justice for Yong Yang), 이경원리더십센터, 젊은 NPO 활동가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휴고 소토-마르티네스(13지구) LA시의원도 저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고, 함께 집회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서 앞 시위, LA 시청 광장 집회, 지역 언론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9월 이후 우리 가족은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관심, 편견, 그리고 이중의 고통 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저희는 또 다른 고통을 마주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정부 기관들, 그리고 수많은 한인 단체들조차도 이 사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많아서", "잘했으면 그런 일 없었겠지", "오죽했으면 경찰이 그랬겠어". 심지어는 "죽을 만하니까 죽은 거겠지", "잘 죽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건 그 자체로 충분히 고통스러웠던 가족에게 이런 사회적 무감각과 냉소는 또 다른 폭력이었습니다. 한 생명의 죽음 앞에 공감과 질문이 사라지고, 책임과 성찰 대신 침묵과 판단만 남아 있는 이 구조적 현실이 제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 – 1년이 지나도록 가려진 진실 2025년 4월 29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아들 용의 사망 1주기(5월 2일)를 3일 앞둔 시점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고, 책임은 철저히 회피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LA카운티 수퍼리어법원은 LAPD에게 사건 연루 경관 전원의 보디캠 전체 영상 공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LAPD는 이에 응하기는커녕, 4주에 걸쳐 단 몇 개의 보디캠 영상만을 찔끔찔끔 공개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건의 진상 파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장면들만 남기고 무음 처리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지난 4월 8일 LA시 경찰위원회 회의에서 결정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작전을 지휘한 루발카바 서전트에게는 징계는커녕 다음과 같은 공식 칭찬이 주어졌습니다: "위원회는 루발카바 서전트가 사려 깊고 인내심이 강하며 유연하고 아파트 문을 열기 전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기다렸다는 점을 인정한다". 용이를 사살한 로페즈 경관에게는 총기 사용과 관련해 짐 맥도널 LAPD 국장은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로페즈 경관과 비슷한 훈련과 경험을 가진 경관이라면 상황이 치명적 무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으로 확대되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무력사용검토위원회(UOFRB)는 확인했고, 저도 동의합니다. 따라서 로페즈 경관의 치명적 무력 사용은 정책상 더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찬사를 받으며, 당국은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아들의 죽음은 통계로 치부되고, 정의는 조직의 회의록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마치 피해자마냥 거대한 경찰조직에 의해 보호되고 있습니다. 검찰도, 시 정부도, 카운티 정부도, 주 정부도, 물론 연방정부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마치 범죄자처럼 홀로 내동그라져 있습니다. ▶정의는 무너졌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젊은이가 아무런 위협도 하지 않았는데, 1.19초 만에 3발의 총에 맞아 주요 장기가 파열되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정당하며, 피해자의 죽음은 피해자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전체 영상 공개를 명령했지만, 경찰은 진실을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은 생명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폭력을 감싸고 정의를 비웃고 있습니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제도의 허점을 알리고, 진실을 기록하며, 정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도와주시고 계시는 소수의 지지자 여러분들과, 특히 꾸준히 취재를 멈추지 않고 기사를 써주시고 계신 중앙일보 기자님들이 안 계셨다면 저희도 어쩌면 벌써 나가떨어졌지 싶습니다. 매일매일 용기가 줄어들다가도, 중앙일보 기사를 보게 되면 주먹이 쥐어지고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를 위한, 그리고 변화를 위한 저희의 투쟁의 의지가 똘똘 뭉쳐 방패막이로 서로를 보호하는 제도권의 거대한 힘 앞에는 너무나도 나약해 보입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사법기관의 절차들이 시간도 질질 끌고, 실제로는 편파적이고, 부실하게 처리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 발견하며 '이래서 모두 제도권과의 싸움을 끝내고 억울한 가슴을 부여잡고 공공의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구나'를 알게 됩니다. 통계를 보면 1000명의 경관이 방아쇠를 당겨도 한 명의 경관도 기소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통계와 사법기관은 경관의 총알이 언제나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LA에서는 범죄의 희생으로 죽을 확률보다는 경관에게 죽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OECD에서 경관에게 죽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LA입니다. 전 세계에서 경관의 기소율이 압도적으로 최저인 곳이 LA입니다. 그날 저희 부부가 DMH에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DMH가 윤수태가 아닌 다른 이를 파송하였다면. DMH가 열심히 노력하였거나, 아니면 차라리 손을 놓고 그냥 돌아갔더라면. "환자가 원하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경찰이 그냥 돌아갔더라면. 로페즈 경관이 아닌 다른 경관들이 왔었더라면. 처음으로 지휘해보는 루발카바서전트가 아닌 다른 지휘관이 왔었더라면. 루발카바 서전트가 통화하려고 전화했던 피터 김 서전트(올림픽경찰서 상황반장)이 좋은 조언을 했더라면. SMART팀이 왔었더라면. 우리가 한인타운에 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LA에 오지 않았더라면. 김경준 기자후회 고통 큰아들 양용 생전 아들 한인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