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며 마을과 도시에 수북이 쌓인 함박눈 저게 다 쌀이라면 사람들은 만족해할까 아닐 거야 쌀만으로는 살 수 없다면서 김치며 고기도 그 외 다른 반찬도 내려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다 다행이지 뭐야 저게 쌀이 아니고 함박눈이니 사방이 고요하고 사람들도 조용하게 있는 거야 조성내 / 시인·의사문예마당 함박눈
2025.12.11. 18:16
어두워지는 하늘을 잠재우고 소리 없이 눈물 흘리고 있다 갈 길 돌부리에 채여 그냥 지켜보고 선 내게 저물어가는 이 하루 하릴없는 눈물일 수밖에 겨울 버팀목으로 처연히 서 있는 나무처럼 한 해의 소매 끝을 잡고 안으로 거두어야 할 눈물일 수밖에 그 눈물 씻김굿이라도 내림 받아 새벽 안개 걷어 내듯 매듭진 가슴 풀어내고 우리네 소박한 마음 담아 환한 빛 내일을 열어 줄 그런 눈물이었으면… 양기석 / 시인문예마당 겨울 버팀목 새벽 안개
2025.12.11. 18:15
요즘 한국에서는 혼밥을 둘러싼 갈등이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외로움은 팔지 않는다’며 혼밥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 안내문이 온라인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한 네티즌은 어느 짜장면집 출입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며, 안내문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사진 속 안내문에는 “혼자서 드실 땐 2인분 값을 쓴다, 2인분을 다 먹는다, 친구를 부른다, 다음에 아내와 온다”라는 문구와 함께 “외로움은 팔지 않습니다. 혼자 오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왜 혼자 먹으러 가는 사람을 외로운 사람으로 치부하는 거냐” “요즘 세상에 혼밥족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나”등의 거센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나 역시 “외로움은 팔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처음에는 장난스럽고 좀 생뚱맞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 여름에는 한 여성 유튜버가 홀로 2인분을 시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빨리 먹으라고 식당 주인이 면박을 주는 영상이 공개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유튜버는 여수의 한 유명 맛집을 방문, 2인분을 주문하고 식사 중이었으나 식당 주인은 “아가씨 하나만 오는 데가 아니거든” “얼른 먹어야 한다, 예약 손님을 앉혀야 하거든” 등 식사를 재촉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유튜버가 항의 하자 주인은 “고작 2만원 가지고” “그냥 가면 되지 왜 저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며칠 전 남편과 한인타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들렸다. 아침을 늦게 먹어 1인분만 시켜서 둘이 먹어도 되는데 눈치가 보여 2인분을 시켜서 하나는 집에 가져왔다. 한국도 아니고, 식당 주인이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마도 한국에서의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외국에서는 업주가 손님을 거부할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손님은 왕’이라는 오래된 관념 때문에 손님을 거절하는 일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진다. 그 식당 주인은 그런 낯선 방식 때문에 온라인에서 불친절로 뭇매를 맞은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혼밥은 식사라 하지 않았다. 밥상은 밥상머리 교육의 자리였고, 가족간의 대화의 자리였다. 외식은 가족의 특별한 날의 행사이거나 교제의 수단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흔한 일이고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일반인이나, 직장인, 여행자 등 너무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그저 평범한 풍경일 뿐이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우리는 그 자유로운 풍경 속에서 자주 외로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래서 짜장면집 식당 주인도 단순히 ‘혼밥은 외로움’으로 단정 지었을 것이다. 식사는 음식보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데 그 안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는 지금 혼자이다.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메신저 알림은 끊임없이 울린다. 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앞에 없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많은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1인 가구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33%를 훌쩍 넘겼다. 서울에서는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혼자 산다. 혼밥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혼밥이 아니라면, 그건 외로움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혼자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외로움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혼자 밥을 먹으며 느끼는 쓸쓸함도, 사람이기에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마음이 살아 있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외로움을 인간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연구가 있다. 그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을 견디고 표현한다고 한다. 긴 세월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는 주인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과 분리불안을 겪고, 코끼리가 짝을 잃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서성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고래, 침팬지 같은 사회적 동물도 무리에서 떨어지면 식사량이 줄고 행동이 무기력해지는 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외로움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감정이 아니라 사회성을 가진 생명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를 ‘고독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영국에서는 아예 ‘외로움 장관’이 있을 정도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이 혼자서 조용히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루어야 할 문제로 확장되었다. 외로움은 고독사 등 다른 사회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외로움을 완전히 피하며 살 수는 없다. 강인한 사람도, 밝아보이는 사람도, 늘 곁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도 어떤 순간에는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외로움은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된다.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또 다른 사람은 독서로, 견디고 달래고 때에 따라 외면하면서 넘길 뿐이다. 독서광인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 1주일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백악관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고 밝혔다. 오바마 전대통령처럼 홀로 풀 수 있는 외로움도 있지만 홀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 외로움도 있다. 그런 외로움은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영국처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혼밥은 손님과 식당 주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과도 관련이 있다. 흔히 혼밥이라면, 그냥 한끼를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대충 때운다. 그러나 건강을 생각해서 혼밥을 하더라도 영양을 생각해 이것저것 챙겨야 하겠다. 요즘 식당 주인들 중에는 손님을 사람보다 ‘돈’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자영업의 현실이 그만큼 팍팍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장면집 주인에게 말한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돈으로 사고파는 감정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외로움’이라고 규정해 버릴 수 있는 감정도 아닙니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외로움 수필 식당 안내문 짜장면집 식당 온라인 커뮤니티
2025.12.11. 18:13
운동을 하는데 낙엽이 뒹구는 길을 만났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낙엽 하나 석류 빛 예쁜 낙엽이 가슴까지 설렌다 그러나 그러나 빛은 고운데 상처가 많이나 있다 잎 하나는 잘려나갔고 군데군데 흠이 박혀있다 아서라! 낙엽 위에 갑자기 떠오르는 인생길 하나 어느 삶이든 흠 없고 상처입지 않은 인생 있으랴 때로 불어오는 태풍이나 모진 비바람 굳이 낙엽에만 할퀴어 가겠는가? 인생도 그러한 것을 상처로 아픈 낙엽 한 잎 부여잡고 마치 내 안의 나를 쓰다듬듯 목메이는 낙엽 하나 처연히 웃는다 내 안의 나도 함께 웃는다. 장정자 / 시인문예마당 낙엽길 낙엽 하나
2025.12.04. 18:53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사람도 하나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 집 한 채 있다 이 집으로 가는 외길 길게 누워 있고 긴 광야를 끝없이 달리는 전선 위에 까만 새 한 마리 홀로 올라앉아 있다 사막 끝자락 빨건 바위 산 낭떠러지에도 소나무 한그루 외롭게 매달려 있다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도 어머니의 장독대 위 정한수도 천지신명께 올리는 기도 소리도 오로지 한 길로 올리어졌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 오로지들이 있어서이거늘 하나밖에 없는 것은 신성한 것이다 잡초 하나도 함부로 뽑을 수 없는 이유이다 묻지 말라 나 홀로 너를 사랑하는 이유 사랑은 그렇게 홀로 서 있는 것이다 이상훈 / 수필가문예마당 사랑 캘리포니아 사막 사막 끝자락 소나무 한그루
2025.12.04. 18:52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앉자,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고국 땅에 발을 딛자 비님이 마중 나와 나를 반겨주는 듯하다. 비가 드문 LA의 건조함과는 달리,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물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의 문을 두드리는 듯했고, 비 냄새 속에는 내가 떠나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조용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창덕궁 비원을 거니는 중, 천둥과 번개를 몰고 온 장대비가 느닷없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며 빗줄기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으며 차갑게 스며드는 촉감을 오롯이 느꼈다. 빗속의 비원은 다른 시대로 잠시 이동한 듯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뜰 옆으로 흘러드는 물이 도랑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니 오래전 고무대야 보트에 올랐던 풍경이 아련히 떠올랐다. 어린 시절, 동네에는 변변한 놀이시설은 없었지만 골목 전체가 놀이터였다. 해질 무렵까지 아이들은 몸을 부딪치며 뛰놀았고 그곳에는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넘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비 오는 날의 기억이다. 빗줄기가 흙길을 두드릴 때마다 빗방울이 튀어 오르고, 어린 우리들의 마음도 함께 들떴다. 우리 집은 약간 높은 지대에 있어 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물이 들지 않았지만 바로 아래 골목은 장대비가 몇 시간만 내려도 금세 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 골목은 어느새 우리들만의 또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골목은 다르게 보였고, 밋밋하던 길은 새로운 모험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큰오빠는 김장철 배추를 절이던 큼직한 고무대야를 꺼내 와 나를 태웠다.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대야를 끌며 골목을 헤쳐나갔다. 나는 언니의 쪼리 슬리퍼를 양손에 쥐고 노처럼 저었다. 둥둥 떠 있던 그 순간만큼은 어느 호화 유람선도 부럽지 않았다. 물살을 스치는 고무대야의 둔탁한 소리와 내 웃음이 뒤섞여 빗속 골목을 울렸다. 고무대야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균형을 조금만 잃어도 금세 뒤집혔고, 나는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곤 했다.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위험하게 논다며 꾸짖다가도 이내 따뜻한 물로 씻겨주고 마른 수건으로 감싸주셨다. 꾸중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손길엔 걱정과 사랑이 따듯하게 묻어 있었다. 장마가 지나면 어김없이 방역차가 나타났다. 붕붕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골목마다 하얀 연기를 토해냈다. 얼굴조차 분간할 수 없는 희뿌연 연기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녔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 사이로 터져 나오는 웃음은 허공을 타고 메아리처럼 번져갔다. 안개에 잠긴 듯한 그 세상은 꿈결처럼 몽롱했다. 지금 그 골목은 카페와 공용주차장으로 변했다. 더 이상 물이 차오를 염려도, 대야를 띄울 자리도 사라졌다. 하지만 젖은 옷깃의 물비린내, 희뿌연 연기 속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젖은 몸을 닦아주던 엄마의 손길까지, 이 모든 것들은 유년의 한켠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모습을 바꿨지만, 마음속 골목은 여전히 그 시절의 빗물을 머금은 채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삶은 때때로 물살에 흔들리는 고무대야처럼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출렁임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는 법을 배워간다. 흔들림은 어쩌면 나를 단련하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러 쌓인 시간들은 기억이 되어 마음의 온도에 따라 각기 다른 빛으로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서늘하게, 그 기억들은 내 삶을 천천히 감싸 안아 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린다. 창가를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머물렀던 시간을 반추해 본다. 빗속의 고국 풍경이 잔잔히 내 안으로 스며들고 오래된 기억이 새 물결처럼 일렁인다. 새로 내리는 비는 오래된 기억 위에 겹겹이 쌓이며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는 나에게 귀향의 징표이자 추억을 적셔 다시 채워주는 선물이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그때의 어린 소녀로 돌아간다. 고무대야가 뒤집혀 흙탕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처럼, 오늘도 나는 내 삶의 물결 속에서 천천히 중심을 찾아간다. 김윤희 / 수필가문예마당 고무대야 수필 오래전 고무대야 마음속 골목 빗속 골목
2025.12.04. 18:48
하늘의 태양빛은 식어지고 비가 유난히 내릴 즈음 양떼를 모으는 소년의 고함에 저녁노을은 몰래 숨고 값없이 얻은 구원의 옷은 영원한 행복함에 가을비로 덮인다 그래도 광활한 자연 앞에는 모진 찬바람 불고 변화한 모진 언덕 길에도 새로운 꽃 피우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리라 인생역전 부서진 생각 깊은 마음 채우고 세워둔 기둥마다 기억에의 흔적을 감사의 기도와 기쁜 노래로 새 아침을 맞는다 권온자 / 시인문예마당 변화 선물 독수리 날개
2025.11.27. 18:00
별이 보고파 까만 밤길나섭니다 낙엽 떨어지는 이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 높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얼마나 예쁠까 상상을 하며 나서는 길 별이 보고 싶다 끌탕을 하던 차라 퇴근 길 꺾어 가로등 없는 산 길로 시그널을 맞추며 달려갑니다 먼 산에 노을 바라보며 조심조심 산비탈 돌고 돌아 찾아간 개월지 둥글둥글 모여 앉은 이모저모 바윗돌 넘고 지나며 쳐다본 하늘 별 타령 노래했더니 그 소원 이루어지는 날 흥분을 했던 밤인데 귀곡성 들려올 것 같은 산골이 어둡고 떨립니다 우리는 두 손 잡고 서서 바라보았지 얼마나 망설이다 찾아온 날이었던가 무서움은 가득인데 고개 아프도록 올려다보았지만 야광명주는 잠들고 시그널은 대답이 없습니다 조르고 졸랐던 꿈 같은 시간, 시간 낭비로구나 차가운 밤바람으로 움츠러드는 등에, 물만 들이고 돌아왔던 스페셜 나들이 길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스페셜 나들이 스페셜 나들이 가을 천고마비 시간 시간
2025.11.27. 18:00
예전에 우리 민족은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이웃 간에 가까이 지냈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안녕하세요?” “식사하셨어요?” “어디 다녀오세요?” 하며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그런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정은 이웃 사이의 거리를 더욱 좁혀줬다. 하지만 요즘의 도시 풍경은 다르다. 이웃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이웃이지만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을 마주치고도 인사를 망설인다.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는 점점 낡은 추억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남편이 미국보다 한국에 더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나는 LA에 살면서 한국을 자주 방문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LA에서 겪는 일처럼 느껴져 글로 쓰곤 한다. 한국의 주거 문화가 아파트 중심으로 변하면서 사생활 보호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주차,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이웃과 마주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이웃포비아’라는 말도 등장했다. 올 추석 연휴 기간 한국 TV에는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 ‘앞집에서 받았다는 쪽지’라는 제목의 글이 퍼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글을 올린 사람은 앞집으로부터 받은 손으로 쓴 쪽지 내용을 공개했다. 쪽지에는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인기척이 있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주세요. 이 정도는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저런 쪽지까지 쓸 정도로 마주치기 싫으면 본인이 기다렸다가 나가야 한다” “이상한 룰 혼자 만들어서 남들에게 강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사회성 없다”, “단독 주택에 살아라” 등의 댓글을 남겼다. 반면 공감이 간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본인이 나오는 타이밍에 계속 앞집에서 나와서 그런 거 아니겠느냐” “내가 나오는 타이밍에 앞집에서 기다렸다는 듯 나온다고 느낀 적이 있어서 신경 쓰인 적이 있다” “나가려고 신발 신다가 문소리, 사람 소리 들리면 숨죽이고 기다린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편, 이웃과의 교류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에도 가끔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 잘못 배송된 택배를 직접 가져다주는 이웃도 있고,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기다려 주기도 한다. 그런 순간마다 이웃사촌의 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느 아파트의 따뜻한 축하’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그걸 본 주민들의 열렬한 격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공개된 사진은, 해당 아파트에 사는 한 부부가 새로 태어난 아이 울음소리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을 걱정해서, 정성스럽게 적은 손편지였다. 이들 부부는 “지난 9월, 선물처럼 아기 천사가 태어났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면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요즘 아기와 같이 생활하면서 저희 부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울곤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혹 시끄럽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며 “죄송하다. 한 분 한 분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마땅하나 그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지혜롭고 현명하게 아기를 키우겠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손편지를 본 이웃들은 편지의 여백에 “축하합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세요” “우리 모두 울면서 자랐습니다. 두 분 다 파이팅 하세요” “아기들은 다 울죠. 다 이해합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요즘입니다” 등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윗집에선 “아기 울음소리는 반가운 소리. 얘기해줘서 고맙고, 건강하게 잘 키우라”는 쪽지를 남겼고, 아랫집은 직접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고, 옆집에선 아기 내복을 선물해 줬다고 한다. 정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다리다.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강해진 시대에도 한국인의 ‘정(情)’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다. 이웃끼리 반찬을 나누는 문화, 밥 한번 먹자는 말 속의 따뜻한 배려, 이 모든 것이 따뜻한 정의 표현이다. 장편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 작가 펄벅은 한국을 유난히 사랑했다. 유서에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다”라고 적을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인의 정과 한국 문화를 깊이 사랑했다.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는 한반도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펄벅 여사는 60년대 늦가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황혼녘에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었다.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갔다. 달구지에는 가벼운 볏단이 실려 있었고,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볏단을 지고 있었다. ‘소달구지에 자기 짐을 싣고, 자기도 거기에 타면 편할 텐데…’ 이상히 여긴 그녀가 통역을 통해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농부는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했지만 소도 하루 힘들게 일했으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펄벅 여사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스마트폰 화면 속의 세상이 더 가까워지고, 사람의 온기는 멀어지는 듯하다. 스마트폰 화면을 스치듯 넘기며 수많은 얼굴을 본다. 반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이웃과의 인사는 알림창에 밀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나 인사는 문자 속 이모티콘으로 대체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배려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문예마당 이웃사촌 이웃 아기 울음소리 이웃 사이 아기 천사
2025.11.27. 18:00
캄캄한 밤 별을 세며 대서양의 밤을 가른다 모두들 잠들고 선박은 이름 없는 춤 밤이 새도록 추었다 음과 양의 경계선 수평선을 떠난 태양의 축 밤과 낮을 잊은 물꽃놀이 바다의 노숙자들 곤한 숨을 감추며 바다의 미사일을 만나는 깊은 파도 24시간의 기 싸움은 대서양을 흔들어 깨웠다 생과 사의 밧줄을 풀고 당긴 싸움 먹이 사슬을 꿀꺽 삼킨 채 갑판을 때리는 꼬리의 마지막 고별 대서양이 울었나 오광운 / 시인문예마당 허드슨 사의 밧줄 양의 경계선 마지막 고별
2025.11.20. 18:44
지내온 세월, 버리기엔 아깝고 짊어지긴 버거운 11월 새해를 계획하기엔 뜸이 덜 든 시간이다 깊은 인연 끊지 못해 힘겹게 매달린 몇 개 남은 잎새 끝까지 괴롭히는 차가운 삭풍 세상은 점점 힘들어지고 인정은 들풀같이 메말라 추수감사절 귀향길 선물가방 무게도 가벼워진 11월 산다는 건 항상 기쁨과 고통 번갈아 오는 것 희망 뒤엔 후회도 있다는 걸 훤히 보여주는 11월 홀로 하늘을 바라보면 한 개 남은 홍시처럼 괜히 부끄러워지는 계절이다 강언덕 / 시인문예마당 추수감사절 귀향길 선물가방 무게 세월 버리기
2025.11.20. 18:43
잭키와 빅키는 시댁 조카 수잔이 입양한 딸 쌍둥이 이름이다. 20년 전 만났던 두 아이가 벌써 대학을 졸업했단다. 나는 지금 그들을 만나러 센디에이고 큰댁에 가는 길이다. 동부에 사는 수잔 가족을 샌디에이고 큰댁에서 초대한 모양이다. 쌍둥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친척 간의 모임이 잦은 히스패닉 가족의 일원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모 아들인 조카 대니얼이 중국에서 입양한 아이를 가족에게 소개한다는 날이었다. 이모댁에 도착하니 집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서투른 영어로 낯선 얼굴들과 마주하는 일이 서먹했지만 극복해야 할 일이기에 사람 속에서 머뭇거리던 시절이었다. 잠시 후, 백인 여자가 연약한 동양 여자 쌍둥이를 앞세우며 나타났다. 사촌 대니얼의 아내 수잔이라고 남편이 말했다. 모인 사람들의 눈은 두 아이에게 쏠렸다. 수잔은 웃으며 잭키와 빅키라며 쌍둥이를 소개했다. 곧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는 딸 쌍둥이의 검은 머리칼은 셀 수 있을 정도로 듬성듬성했다. 윤기 없이 거무튀튀한 피부에 바짝 마른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아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사람을 살피고, 다른 한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나이 오십이 되어 만난 남자의 가족을 처음 마주하던 날 긴장했던 내 모습이 되살아났다. 아기들이 낯선 사람들의 관심과 인사를 받으며 불편해질 마음이 헤아려졌다. 녀석들이 보아왔던 익숙한 얼굴 모습인 내가 있어 마음이 좀 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인 잭키와 동생인 빅키를 마음에 담고 그들의 앞날이 밝고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수잔은 결혼 15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은 채 사십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는 NBC 경제 프로그램을 맡은 기자로 중국 출장 중 길가를 헤매는 고아 실상을 들었단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입양을 결정했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 중 수잔은 임신 증세를 느꼈단다. 입양자의 임신이 확인되면 허가는 무효가 된다. 수잔은 임신 사실을 숨기고 입양을 진전시켰고 두 아이는 무사히 미국에 올 수 있었다. 수잔 부부는 영양실조가 초래한 쌍둥이의 신체 발육을 위해 병원 출입이 잦다고 했다. 아이들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남자아이 출생 사실도 전해졌다. 남자아이는 면역성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일 년 사이에 수잔 부부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가 마켓에 가게 되면 ‘Sunset’ 잡지를 사보라고 했다. 수잔 스토리가 실렸단다. 즉시 마켓에 들러 잡지를 샀다. 여러 내용과 함께 수잔 아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아들은 쌍둥이로 잉태되었지만 한 아이가 태아 상태로 유산이 되어 혼자 태어났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무면역 증세로 태어난 아기의 방은 몇 해 동안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누구든 집 바깥에서 있다 집 안에 드는 사람은 즉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은 가족 친척 간에 잘 알려져 있었다. 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외부 음식은 절대 삼가며 집에서 준비한 음식만 먹는다는 이야기 등, 쌍둥이 안부를 가끔 들으며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해 봄, 딸들이 가주에 있는 대학 견학을 원해 샌디에이고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 나면 다녀가라고 수잔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다는 잭키와 빅키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수잔 가족이 머무는 집에 도착해 문을 노크했다. 안경 쓴 아가씨가 문을 열어 반겼다. 어릴 때 만난 쌍둥이 중 하나였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수잔이 반겼다. 아이들 키우느라 애쓴 때문인지 수척해 보였으나 지적이고 고운 얼굴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무릎 관절이 아파 걷는 일이 힘들다며 수술 후에는 괜찮을 거라 했다. 다행히 카메라 앞에서 행하는 직무는 말하는 모습만 담아내니 화장을 하면 아직 쓸만하다는 말에 우리는 웃었다. 곧 현직을 은퇴하지만 딸들의 대학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며 강연이나 컨설팅, 칼럼 기고 등으로 수입을 만들 예정이라 했다. 쌍둥이 형제를 배 속에서 잃고 태어난 제이도 건강한 소년이 되었다. 엄마의 파란 눈과 하얀 피부, 아빠의 검은색 머리를 닮은 모습이 핸섬했다. 제이는 토론을 좋아하고 잭키는 수학에 천재라며 어느 대학이든 입학이 가능할 것이라고 수잔이 자랑스럽게 전했다. 빅키는 빙긋이 웃으며 자신은 문학과 역사를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만남은 4년 만이다. 다시 만날 두 아이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큰댁에 도착했다. 대가족이라 오랜만에 만나 시끌벅적했다. 수잔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두 동양 아가씨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잭키는 동부에 있는 어느 과학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한단다. 빅키는 대학원에서 중국 역사를 공부할 예정이라며 중국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톰보이 같은 잭키와 다르게 머리를 예쁘게 다듬고 엷은 화장을 한 빅키는 막 피어난 꽃처럼 예뻤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혹시 입양을 망설였을까, 궁금해 수잔에게 물었다. 이미 가슴으로 품은 두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했다. 딸들에게 그들의 뿌리를 이해시키며 키워 왔단다. 두 딸이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피는 언제나 물보다 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입양아로 살아가며 양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추억이 피보다 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가깝게 지내는 서양 친구가 한국인 입양 조카를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입양에 대한 편견을 가졌던 내가 참 부끄러워진다. 살펴보니 중국 정부는 계속되는 인구 감소로 2024년부터 자국 아동의 해외 입양을 중단시켰단다. 한국도 이제 해외 입양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두 아이 입양을 선택했던 수잔 부부의 바다 같은 삶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닐까. 잭키와 빅키가 있어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들의 가족 풍경을 다시 떠올린다. 이정숙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수잔 가족 입양 절차 수잔 아들
2025.11.20. 18:42
아침 산책길 한 남자가 개를 끌고 가고 있었다 굿모닝, 인사했다 개 주인은 들은 척 하지 않았다 개는 돌아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개가 사람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최복림 / 시인문예마당 무제 아침 산책길
2025.11.13. 18:49
유럽을 여행하면 그 화려한 흉터 뒤에 갇혀 있는 단단한 슬픔을 본다 그 찬란한 흔적 뒤에 숨어있는 고통의 잔해를 듣는다 우리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다 종교의 역사다 힘의 역사다 한번 전쟁을 치를 때마다 팔뚝은 굵어지고 다리는 단단해진다 물기 하나 없이 단단해진 슬픔은 돌이 되고 초석이 되어 성을 쌓고 성전은 치솟고 처절한 역사를 올린다 오늘 나는 수많은 관광객에 밀려 황홀한 상처를 우러러보고 지하에서 울려 나오는 신음에 다리가 멎는다 겉은 아름답고 속은 슬픈 제곱을 듣는다 정명숙 / 시인문예마당 슬픔 제곱 물기 하나
2025.11.13. 18:48
“글을 쓰게 된 나의 이야기, 시간은 2분 드리겠습니다.” 문학회 야외 워크숍에서 사회자가 던진 화두였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하늘에서 감아내린 무지갯빛 타래를 풀어내며 고요히 반짝였다. 저편 등대 불빛이 오랜 기억의 장을 비추고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시던 한 분,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 시절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직 삶 곳곳에 남아 있던 때였다. 가난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골짜기 돌 틈에서 스며나오는 샘물처럼 맑고 따스했다. 그 해 여름,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선생님께 편지 쓰기’라는 방학 숙제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어린 마음에 신기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선생님이라니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지만, 알 수 없는 설렘에 마음을 얹어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생애 첫 글쓰기였다. 편지를 다 쓰고 난 뒤엔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학습장 갈피에 꼭 끼워두었다가 개학 날 함께 제출했다. 며칠 뒤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얘들아 방학 숙제로 선생님께 편지를 써온 친구는 전교에서 김영신 한 명뿐이란다. 그 편지가 얼마나 예쁘고 감동적인지, 선생님은 읽으며 참 기뻤단다. 지금 너희에게 읽어주려고 해.” 낭낭한 목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 퍼질 때 내 가슴에 감동이 파문처럼 번졌다. ‘내 글이 아름답다니.’ 처음 들어본 칭찬이 자긍심에 심지를 세우고 불을 지펴 주었다. “이 글은 전교에 돌려 읽힐 거예요. 모두에게 큰 배움이 될 거예요.” 그날 선생님은 방과 후 교실에 남으라고 하셨다. 수업이 끝난 뒤 혼자 앉아 있던 내 책상 위에 선생님은 하얀 묶음지 한 권을 내미셨다. “영신이 글 솜씨는 참 특별하구나. 오늘부터 이 노트에 매일 글을 써보자. 편지를 썼듯이, 네 마음을 글로 옮겨보는 거야.” 그 말씀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로의 초대장이었다. 책이라곤 교과서뿐이던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생소하기만 한 일이었다. 멍하니 연필만 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다정히 일러주셨다. “편지를 처음 써봤다고 했지? 그게 바로 글이란다. 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적어보렴. 너의 글에는 특별한 감성이 있어.” 그날부터 나는 방과 후 교실에 남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한 번도 글의 방향을 지시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셨다. 그저 창가 책상에 앉아 자신의 일을 하며 내가 글을 마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셨다. 이제는 안다. 그 침묵 속에 한 아이를 향한 믿음과 애정, 인내와 격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것을. 햇살이 가득하던 창가, 두 사람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내 안의 작은 우주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배우기 전에 ‘듣는 법, 느끼는 법, 기다리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때 쓴 글 중 하나는 선생님이 공모전에 내주셔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 가장 빛나는 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방과 후의 시간 그리고 선생님이 내어주신 마음의 자리였다. 그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을 지나 처음 내디딘 새로운 세상처럼, 내 안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첫 여정이었다. 그 시간이 더 오래 지속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 학기가 지나 이사를 하게 되어 전학을 갔다. 새 학교에서의 첫 작문 시간, 담임 선생님이 내 글을 반 친구들 앞에서 읽어 주셨다. 잘 쓴 글이라는 칭찬의 말이 이어질 때, 창가에서 미소 짓던 옛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그리움의 반향이었을까, 아니면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사의 투영이었을까. 이후 중고교 시절 전국 백일장에 참가해 상을 받기도 했고, 대학에서는 학보사 기자로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글은 삶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생계와 자녀 양육, 낯선 땅에서의 삶은 고되고 숨가빴다. 그렇게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살기에만 바빴던 이민의 세월 끝에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된 지금, 나를 찾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첫 글이 등단이라는 포상으로 돌아왔고, 내 이름 앞에는 ‘문인’이라는 두 글자가 더해졌다. 한 편의 글을 써낸다는 것은 고통이자 눈부신 기쁨의 과정이다. 늦은 나이에 이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건, 그 첫 불씨를 밝혀주신 선생님 덕분이다. 오늘도 나는 선생님께 드렸던 첫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선생님께서 내어주셨던 방과 후 시간처럼 내 인생의 방과 후에 펜을 들었다. 내 마음이 글이 되기까지 기다려주셨던 그분을 생각하며. 들판에 막 움튼 새싹을 찾아내어 살피고 돌보시던 분. 평범한 한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주셨던 그 헌신은 오늘도 내 길을 비추는 등대 불빛처럼 반짝인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셨던 분. 내게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있다면 그 뿌리는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 일찍이 선생님을 만난 일은 한 생애를 비추는 보배로운 축복이었다. 이제, 오래도록 마무리하지 못했던 편지의 끝말을 올린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안에 심어주신 불씨가 긴 세월을 돌아 이제 제 인생의 방과 후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영신 / 수필가문예마당 인생 수필 그날 선생님 마음속 이야기 편지 쓰기
2025.11.13. 18:47
사랑이 부서지고 있었구나 그들이 뛰던 잔디밭 붉은 자국 남겨 놓고 눈가와 양 손톱에 피멍 보며 놀라 우는 손자들 토닥이는 하비 어깨 허리 무거운 통증 참던 밤 고독의 숲으로 빠져들어 매일을 맴맴 잠든다고… 사랑했던 사람, 많이도 웃고 떠들었는데 요즘 왜 안 보이는 걸까 친구였어 라는 말이 맞기나 하는 걸까 멀어짐의 추락을 막아 주시고 외로움이 커지지 않도록 의를 회복시켜 주소서 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말에 우리의 사랑를 위해 위하여 나도 눈 꼭 감고 두 손을 모은다 이 가을에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가을 어깨 허리
2025.11.06. 18:07
바람과 함께 몰려온 단비 저 하늘 구름 머리에 이고 나무에 길위에 비를 기다리는 마음에도 기쁨과 즐거움, 감사를 보태 내립니다 마음에 내리는 단비 맞으러 뒷 뜰에 나가려니 우산 안으로 튕겨든 빗방울 하나 코등을 돌다 눈으로 흘러 눈물이 됩니다 그래도 지금 내리는 비 단비 되어 좋은 것은 우리 모두 기다렸기 때문 그래서 곧, 오실 주님 반갑고 좋은 것도 기다림이 있기 때문 그런데, 우리 모두 기다리는 주님은 단비보다 달고 단비보다 더 오묘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남영한 / 시인문예마당 단비 즐거움 감사
2025.11.06. 18:06
나는 말도 느리고 행동도 어눌해서 언니는 늘 “널 잘 모르는 사람은 네가 국민학교도 못 나온 무식한 바보로 생각할 거다”라고 놀린다. 게다가 자타가 인정하는 기계치에 우리 집도 잘 찾지 못하는 길치다. 유리병이나 깡통도 못 따서 남편이나 아들에게 부탁한다.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을 때, 지금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들이 마우스를 잡고 손을 흔들며 여기를 보라고 하면 모니터 대신 아들 손을 보다가 아들에게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운전 초기에는 운전대를 따라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서 마켓 벽을 들이받고 차를 부숴버린 적도 있다. 운전한 지 35년이 넘은 지금에도 사고를 내지만 남들에게 “또?” 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창피해서 말도 못한다. 나이 들수록 운전 신경이 더욱 둔해져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에선 운전을 못해도 지하철로 다 연결되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다가 LA로 돌아오면 운전대 잡기가 겁이 난다. 함께 사는 작은아들이 “엄마, 걱정하지 마시고 집 근처만 살살 다니세요. 한인타운이나 좀 먼 곳은 제가 모시고 갈게요. 직장에서 안 쓴 휴가가 많이 남아 있어요”라고 안심시켜준다. 최근에 한인타운에 있는 병원에 갈 일이 생겼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아들에게 휴가를 내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었다. 마침 건강 보험사에서 일 년에 몇 번 병원까지 라이드 해주는 지원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험사에서 보내준 우버를 타고 병원에 편하게 갔다. 끝나고 집에 올 때도 차편을 부탁했다. 2분 내로 차가 올 거라고 했다. 주차장이 복잡해서 길가로 나가니 금방 차가 도착했다. “우버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타라고 했다. 병원은 3가와 하버드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방향으로 3가를 따라 쭉 가면 되는데, 내가 탄 우버는 곧바로 하버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4가, 5가를 지나 막 달렸다. 기사에게 그리 가지 말고 서쪽으로 가는 게 빠르다고 하니 내비게이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 가는 방법도 있나보다고 생각하며 주의 깊게 보고 있으려니 8가까지 내려갔다. 잘못 가는 것 같다며 우리집 주소를 말해주니 “NO ENGLISH” 라며 또 내비게이션을 툭툭 치는데, 밑에 보니 ‘주소를 변경할 수 없다’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지켜보니 베니스도 나오고 110번 프리웨이도 언뜻 보이는 게 아닌가. 아무리 길치이긴 하지만 35년 넘게 한인타운을 다녀봤기 때문에 대충은 아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낯선 동네였다. 순간적으로 ‘큰일 났다, 납치당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차를 세우라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기사는 빨리 가야 된다는 듯 손목시계를 보여줬다. 두려움에 더 큰소리로 운전을 멈추라며 문을 열려고 하니 그제야 차를 멈췄다.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우버 기사를 바꾸라고 했다. 기사는 영어를 못한다며 스패니시 구사자를 바꾸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사는 화가 나서 뭐라고, 뭐라고 막무가내로 자기말만 해댔다. 보험사 담당자는 자기 말만 하는 그에게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영어하는 사람으로 바꾸고, 말이 안 통하니 다시 스패니시 통역자로 바꾸다가 드디어 기사가 차를 돌렸다. 아마도 나를 태운 자리로 돌아가라고 단단히 경고를 한 모양이었다. 보험사 담당자는 내게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버 택시 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병원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알려줬다. 우버 기사는 툴툴거리며 험악하게 운전을 해 사고가 날 뻔 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내리려하자, 그 기사가 “I am sorry!”라고 말하는 게 아닌 가. 아니, 영어를 못한다고 하잖았나! 보험사에서 다른 차를 보내줬다. 차 안에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기사는 “광자 맞느냐?”라고 확인한 다음, 내 얼굴에서 흥분한 기색을 읽었는지 차문 안쪽 포켓에 물병이 있다고 했다. 내가 재채기를 하니까 얼른 휴지도 뽑아서 줬다.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친절함은 먼저 우버 기사에게 받은 공포감을 다 보상받고도 남을 만했다. 내가 “너는 네 일을 참으로 즐기는 것 같구나”라고 하니 “물론 그렇다”고 했다. 며칠 뒤 친구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는 “어머나, 큰일날 뻔했다. 참 무서운 세상이야”라고 했다. 다른 친구도 “그 기사 엉터리네. 기본적으로 승객의 이름부터 먼저 확인했어야지”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요즘 우버 기사들 평판이 안 좋아. 나는 우버를 탈 경우에는 꼭 여자 기사를 보내 달라고 해”라고 했다. 그러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친구가 차분하게 “내 생각에, 그 우버 기사가 너를 속일 생각이었으면 다짜고짜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가다가 네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다른 방향으로 갔겠지. 혹시 다른 곳으로 가는 손님과 널 헷갈렸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들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그런데, 그 사람이 왜 너를 납치했다고 생각했니?”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날 우버 기사 눈에 잘 띄라고 쫄바지에 노란 셔츠를 입고 모자를 썼어. 서양인들이 동양 여자들 나이를 잘 모르니, 우버 기사가 나를 젊은 아가씨로 착각하고 납치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웃으면서 “착각은 자유지만, 네가 아무리 쫄바지에 노란 셔츠를 입었다 한들 노인은 자세부터 구부정한 것이 젊은이 하고는 많이 틀리다”고 했다. 다른 친구도 “너 자신을 아세요”라고 놀려 다들 한바탕 웃었다. 우버 기사는 손님을 확인하지 않고 태운 큰 실수를 했고, 나는 내 나이 생각을 잊고, 흉악한 납치범에게 납치당했다고 생각했다. 피차의 착각과 실수가 빚은 해프닝을 공포의 스릴러로 만든 나의 망상이야말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겪은 그날 일은 당황스러웠지만 돌아보니 확인 안 하고 우버를 탄 나도 잘못이 있다. “정신 차려, 이 바보야.”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스릴러 코미디 여자 기사 택시 기사 기사들 평판
2025.11.06. 18:05
등 푸른 생선이 대세라 카믄서요 우린 참 조상님께 감사하지라 시커먼 피부에 눈까지 몰려 그물에 걸렸다가두 퇴출당해 부러버려 우린 욕도 잘 안 얻어 먹어야아 “눈 똑바로 뜨고 시방 뭐 하는 거여” 우린 생전 못 들어 본 소리랑께 작심하지 않아도 요래 겸손한 자태여 태어날 때부터 본시 납작하당께라 어쩌다 잡히면 발광않고 그대 밥상에 조신하게 오르리라 뼈도 발라 먹기 쉽게 생겼지라이 살도 솔찮이 많고 근디 부탁이 쪼깨 있소 지발 눈만 마주치지 말아주소 민망하다니께네 원래 요로코롬 돌아갔어라 그래서이 우리 가훈은 이것이여 “눈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워메, 겁나 멋져부러 안그러요 눈 때문에 입을 조심하고 살었지라 홍유리 / 시인문예마당 가자미 우리 가훈
2025.10.30. 18:36
잎잎이 나부끼는 나뭇잎들은 가을의 언어 제 하늘 아래 여무는 나무 열매들도 가을의 언어 강물 따라 흘러가는 달빛도 단풍으로 갈아입는 산 빛도 가을로 가는 길 천지의 발걸음이 하나가 되어 가을에서 가을로 이어가는 다스림이다 가을은 오래된 하늘의 언어 저마다 제 하늘의 가을 글을 읽어나가는 소리 외로움과 그리움도 저 혼자 빛이 도는 가을의 언어 유병옥 / 시인문예마당 가을 언어 하늘 아래 나무 열매들
2025.10.30.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