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수형 기자] ‘짠한형’에서 이용진이 신동엽 딸의 대학 합격을 축하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더했다. 16일 공개된 유튜브 콘텐츠 ‘위험수위 수습 불가 조롱 파티-신기루 이용진 [짠한형 EP.132]’에서는 절친 케미로 뭉친 신기루와 이용진의 입담이 이어졌다. 이용진은 “술로는 신기루를 이겨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고, 신기루는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지만 참고 있다. 술·담배·섹스 중 하나 끊으라면 담배는 못 끊겠지만 줄이려고 한다”며 금연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이용진은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박명수, 신동엽 형이 너무 좋다. 유일하게 ‘형’이라고 부르는 선배”라며 “‘신과 함께’로 함께한 뒤 동엽이 형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이용진은 “얼마 전 딸이 서울대, 한예종 합격했다는 소식 축하드린다”고 전해 훈훈함을 안겼다. 이어 “나도 윤재 아빠로서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을 안다. 우리 아이도 이제 초등학교 들어간다, 8살”이라며 공감 어린 마음을 드러냈다. 선후배를 향한 존경과 부모로서의 진심 어린 축하가 더해지며 유쾌한 토크 속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email protected] [사진] 짠한형 김수형([email protected])
2026.02.16. 3:53
오늘 낮에 퇴근하고 집에 와달라는 민정이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타주로 출장을 갔으며 집이 무서워 혼자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번에 그녀의 집을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집이 상당히 컸고 정원도 넓었다. 여자 혼자 자기에는 좀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친척도 아니고 남자인데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지 의아심도 들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평소에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기 때문에 믿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흔쾌히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고 맛있는 것들도 많았다. “이 굴 좀 들어봐 선배. 싱싱하고 맛있어.” 굴은 정력에도 좋은 식품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나는 바다 비린내가 싫고 특히 허물거리는 모양이 징그러워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이다. 그녀가 입에 넣어 주기에 어쩔 수 없이 먹어주었다. “마시다 남은 소주 같은 것 없니?” 비린내가 났었고 아무래도 술이 한잔 들어가야 개운하고 분위기도 좋아질 것 같았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복분자 술을 꺼내왔다. “이 술은 달콤하고 몸에도 좋대.” 이것도 요강을 깬다는 정력에 좋은 술이다. 오늘은 쓸데없이 좋은 것을 먹는 날이다. 집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아내를 안을 수도 없다. 아무튼, 술도 같이 나누어 마시며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거실은 넓고 아늑했으며 커다란 창문 너머로는 푸른 잔디와 크고 작은 정원수들이 밤 조명에 비쳐 한 폭의 풍경화도 같았다. 오늘 이 자리가 그렇게 편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와 둘이서만 밤을 보내려니 기분이 좀 묘해졌다. 민정이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해서 여자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게다가 오늘은 얇고 가슴이 훤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있어 눈길이 자주 갔었고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불빛에 반사되어 몸매도 그대로 보여 지고 있었다. 야릇한 충동을 느껴 잠시 당황했지만 그저 하룻밤 후배 집을 돌봐주는 단순한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잘 시간이 되어왔다. 집이 컸기 때문에 손님용 방도 따로 있었다. “선배, 이 방에서 자. 그 안에 목욕탕도 있어 샤워도 하고” 민정이는 나와 둘이 있을 때는 아예 말을 놓는다. “그래, 문단속 잘했지? 거실에 불은 켜두는 것이 좋아.” 내가 마치 이 집 주인이라도 되는 듯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공연한 오해를 할까봐 사무실에서 야근을 한다고 했으며 종종 있어왔던 일이라 믿어주었다. 나는 낯선 잠자리에 적응을 못 해 침대에서 뒤척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민정이가 베개를 들고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여기서 잘래.” 그녀는 나의 동의도 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어린 딸이 밤에 깨어나 아빠의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20년 넘게 차이가 나는 대학교 선후배 관계이고 나이로 따지면 딸과 아빠와 같은 사이이다. “민정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녀는 대답도 없이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아직 젊은 나이 이지만 나는 몇 해 있으면 환갑을 맞는 나이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사이지만 이런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있었어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밀어내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부딪치는 그녀의 젊고 부드러운 몸이 나의 판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평소에 주장하던 도덕, 윤리 따위의 생각들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마치 맹인이 사랑을 나누듯 아예 눈을 감아버리고 촉감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입술이 닿아졌고 두 몸 사이에는 한 치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느낌으로 그녀를 받아들였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LA한인타운에서 광고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대동문회 총무 직을 맡고 있다. 친한 친구나 친척들이 별로 없는 이곳 생활에서는 학교 동문회 모임으로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젊었을 때는 자식들 키우느라 바빠서 동문회 나갈 생각을 안 했지만 아이들이 커서 대학을 가버린 뒤에는 동문회 일로 작은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동문회 주소가 내 사무실로 되어 있었기에 동문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미대 동문회죠?”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동문회는 오십이 넘은 내 나이도 어린 편에 속한다. 대부분 환갑을 넘은 선배들이라 마치 노인회 모임 같아서 조금씩 싫증이 나고 있었다. “저는 98학번, 미술전공이고 3년 전에 미국에 왔어요.” 딱 부러지고 활기찬 목소리였다. 입학연도를 봐서는 나이가 30대 중반 정도인 것 같았다. “반가워 후배, 사무실에 한번 들려. 다음달에 동문전시회도 있으니까 참가하면 좋겠네.” 나보다 한참이나 후배였기에 말을 놓았다. “선배님은 몇 학번이세요?” 따지는 말투였지만 애교가 섞인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후배님, 너무 반가워서 그만 하하” 그녀의 이름은 민정이었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기고 끊었다. 동문회는 두 번의 공식적인 행사가 있다. 여름에는 전시회를 열고 년 말에는 송년파티를 갖는다. 물론 개인전을 하거나 경조사가 있을 때는 수시로 모임을 가지고는 있다. 오늘은 전시회 준비로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는 민정이를 불러내었다. 그녀가 들어왔을 때 칙칙했던 사무실이 갑자기 밝아져 왔다. 첫눈에 민정이는 무척 예뻤으며 몸매도 날씬했다. 동문은 일시에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인사를 시키고 내 옆자리에 앉혔다. 여자 동문들이 젊은 후배인 그녀를 보고 부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야, 우리도 저렇게 예쁠 때가 있었어.” 아무리 포토샵에서 주름을 없애고 손을 보아도 그림이 안 되는 여자 선배가 말을 했다. “글쎄, 호박에 줄긋는다고 다 수박이 되남.” “둘 다 오래되면 먹을 수도 없는데 뭘 따져 따지기는.” “나는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는데.” 남자 선배들의 짓궂은 농담들이 오갔다. 오랜만에 젊은 후배가 옆에 앉아있으니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전시회를 하려면 준비할 것이 많았다. 카탈로그 제작은 내가 맡았고 다른 일들은 서로 분담을 했다. 회의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을 때도 민정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내가 친근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이고 나이 많은 선배 앞에서 할 얘기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 작품 꼭 내도록 하고, 작품제작은 내 사무실에 와서 해. 언제든지 환영해.” “그래도 돼? 선배.” 그녀가 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싫지가 않았고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예쁜 여자는 무슨 짓을 하여도 용서가 잘된다. 만약에 못생긴 여자 후배였으면 내 성격에 분명히 꿀밤이 날아갔을 것이다. 민정이는 직장을 갖고 있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사무실에 나와 작품을 하면서 동문회 일도 도와주었고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아예 말을 놓은 상태이다. “민정인 아버님한테 말을 놓는구나.” “말을 놓아서 이상해 선배? 나는 아빠 같아 좋은데 호호.” 나는 아버지한테는 꼭 존댓말을 했었고 내 자식들은 한국말로 물어도 영어로 대답하니 이곳에서는 존댓말의 의미는 없다. “아버님은 한국에 계시니?” “응, 아빠가 이혼하고 딴 여자와 살고 있어.” 민정이는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으며 아버지가 큰 사업을 하고 계셨기에 어머니는 충분한 위자료를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미남이셨기에 항상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혼하고난 후에도 민정이는 아버지 집을 들락거리며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버지의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은 후에는 민망스럽고 아버지가 미워져 발길이 뜸해졌었고 민정이 결혼식 날, 손을 잡고 들어가 준 것이 마지막 만남이라고 했다. “민정이는 아빠를 닮아서 예쁘구나. 아빠가 보고 싶지 않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여기 아빠가 있잖아. 호호.” 나를 아빠로 생각해주니 고맙기도 했지만 남자로는 보아 주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그동안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심심했었는데 내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끔 포옹을 해주었는데 딸의 느낌이 보다도 여자의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전시회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민정이는 자기 집으로 동문을 초대해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집도 훌륭했고 정원도 넓었다. 정원에서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음식을 차렸고 일하는 도우미 아줌마까지 있었다. 나는 술 한 잔을 들고 정원의 작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민정이는 예쁜 외모에다 돈 잘 버는 남편도 있고 아이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도 전부 다는 주시지 않는 모양이다. 나에게는 돈을 주시지 않는 것처럼. “선배, 왜 여기 혼자 있어?” 민정이가 옆에 와 앉으며 말했다. 초록색의 잔디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편은 토요일인데도 일하러 갔나 봐?” “아니 골프 치러 나갔어.” 우리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밖에 나가 운동을 하는 것보다 집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민정인 왜 아기가 없어. 결혼 한지 4년이 지났다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공연한 것을 물어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민정이가 나에게 되물었다. “선배는 애들이 어떻게 돼?” “원 스트라이크 원볼, 둘 다 대학생이야 지금.” “어머, 학비가 엄청나게 든다던데. 그 작은 사무실에서 학비가 나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있어.” “어머나, 선배를 닮아 머리가 좋은 가봐. 축하해.” 그녀는 나의 팔을 툭 치며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돈도 못 벌고 다른 재주도 없어 자랑할 거라고는 공부 잘하는 두 자식밖에 없다. 동문전시회가 끝났으니 이제 연말파티 이외에는 공식적인 일은 없었다. 어느 날, 민정이가 식당을 예약해놓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웬일이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방이 단독으로 되어있는 고급 식당이었다. “오늘 우리 딸 생일이야.”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분명 아이가 없다고 했었는데. “하늘나라에 있어.” 민정이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2년 전에 기다리던 아기를 낳았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다운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갖고 태어났어.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 했고 아기는 집에도 와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버렸어.” 너무도 가슴이 아파 따라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고 했다. 만약 지금 그 아기가 있었으면 동문회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즐거웠고 보람되었던 일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었다. 지금은 컸다고 아빠 말을 잘 안 듣지만, 어릴 때 아빠를 기다리고 찾으며 품에 안기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남들은 주렁주렁 쉽게도 낳아 기르는데 왜 민정이한테 그런 일이 생겼는지 하느님이 야속했다. 아기의 질병에는 부모의 유전적인 것이 원인이 있다고 했다. 의사는 확률적으로 몇 천분의 일이기 때문에 다음번의 아기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아직은 두려워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남편하고 같이 해야지.” “남편도 오늘을 기억하고 있어. 그렇지만, 서로 말을 꺼내지 못해.” 남편의 가족 중에 비슷한 사례가 있어 자기 탓으로 여기고 있는데 아기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다고 했다. 유전자의 좋고 나쁜 것을 미리 가려낼 수도 없는 일이고 본인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남편이 무척 안쓰럽다고 했다. “의사 말대로 아기를 가져. 민정이 닮은 예쁘고 건강한 아기가 나올 거야.” “그러기를 바라고는 있는데 아직은 무서워.” “내가 도와줄게. 민정아 힘내.” “도와줘 제발. 호호.” 내가 말실수 한 것 같았는데 그녀는 웃음을 띠며 농담으로 받아주었다. 이렇게 말을 쏟아내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이런 개인적인 일까지 상세하게 말해주니 고맙기도 했지만 내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살짝 안아주었는데 그녀는 한동안 팔을 풀지 않았다. LA에도 연말이 다가왔다. 한국처럼 춥고 눈도 오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면 조금씩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동문회도 연말파티 행사준비로 모임을 가졌다. 연말이라 바빠서 그런지 모임이 끝난 후 회식도 없이 모두 가버렸다. 민정이는 할 말이 있다며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선배, 나는 파티에 참석 못해. 남편하고 여행 스케줄이 있어.” 섭섭한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문회보다 가족여행이 우선이다. 나는 달리 갈 곳도 없어 매년 참석하고 있었다. “괜찮아 참석 안 해도. 우리 둘이라도 밥 먹을래?” 조그만 식당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남편하고는 어떻게 만났어?”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또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학교 다닐 때 남자 친구들은 많았지만 나이도 같았고 하는 짓들이 어려보였어. 그들과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소꿉장난처럼 어렵게 살며 살림을 이루어 나가는 것도 싫었어.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기반이 잡힌 남자를 원했어. 아빠처럼 사업을 하는.” 그래서 아버지가 거래회사의 젊고 유능한 사장을 소개해주셨고 그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라고 했다. 착하고 성실했으며 아버지만큼 잘생기지 않아서 여자문제는 없겠다 싶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회사가 잘되어 미국에 지사를 설립했고 지금은 오히려 본사가 되어 3년 전에 미국에 같이 왔다고 했다. “뭐 하는 회사인데?” “나는 전혀 몰라. 돈 찍어내는 회사는 아닌데 돈은 많아. 선배 돈 필요해? 내가 좀 줄까?” “굶어 죽어도 후배 돈은 안 받아.” 우리는 뼈대 있는 선비집안이므로 절대로 욕심을 부리거나 돈을 탐내서는 안 된다. 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신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그래서 대대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만. 민정은 내 말에 움칠하며 “선배, 연말인데 우리 노래방 가자.” 연말파티에 못 온다는데 둘이서 조촐한 망년회를 갖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래방도 연말 분위기답게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로 장식이 되어있었다. 나는 미국 온 지 오래되어 요즈음의 한국 노래는 모른다. 내가 아는 옛날 노래는 민정이가 모를 것이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망설여졌다. “우리 춤추자 선배.” 뜻밖에도 민정이는 블루스 곡을 틀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고 스텝을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눈동냥으로 추는 것인데 그녀는 아주 잘 추고 있었다. “언제 배웠어 잘 추네.” “아빠가 가르쳐 주었지.” 그런데 춤보다 느껴지는 무엇이 있었다. 안겨진 그녀의 몸이 남자의 본능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정상일지는 모르지만 민정이한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를 아빠처럼 믿고 따르는데 여차하면 입이라도 맞출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냉정을 찾으려 해도 젊은 여자의 향기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될 수 있는 한 몸의 간격을 띄우면서 추었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고 나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민정이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른 블루스 곡을 찾고 있었다. “민정아, 힘들어 좀 쉬자.” “그래, 안마해줄까?” 나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민정이가 정말 나를 남자로 안보고 아빠로 착각하는 것일까? 다시 몸이 짜릿해짐이 느껴졌다. 딸의 성의를 무시하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 남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정아. 그만 됐어, 우리 노래 부르자.” 나는 80년대 유행했던 ‘광화문 연가’를 눌렀다. “어머, 우리 아빠 18번이야 선배, 나도 알아. 같이 불러.” 민정이는 흥겹게 탬버린 장단을 맞추면서 같이 불러 주었고 나는 남자가 아닌 아빠의 위치를 지키면서 조촐한 망년회를 보냈다. 새해를 맞았다. 세월은 쉬지도 않고 어김없이 찾아온다. 또 한 살 먹어가고 있다. 가는 세월 아까워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 거리가 없다. 디자인일 이외에는 다른 재주도 없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 멀리 여행갈 생각도 못한다. 그저 안 아프고 사고 없이 지내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뿐이다. 연휴가 끝나고 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삼월이 되었다. 나무 가지에는 겨우내 매달려 있던 갈색의 늙은 잎 사이로 파란 새잎들이 머리를 내밀었고 눈길도 안 주었던 길거리의 작은 풀에서도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도 봄이 오면 새 피부가 나오고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생겼으면 좋으련만. 마음에는 나이가 들지 않는 것 같은데 외모에는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동문회 모임도 없었기에 민정이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낮, 민정이한테 전화가 걸려 와서 그녀의 집으로 갔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가 먼저 원해서 일어난 일이었고 내 잘못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혼자 허전하고 무서워 단순히 아빠 옆에서 자고 싶었는데 오히려 내가 감정에 못 이겨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을까? 공연히 굴과 복분자까지 원망스러웠다. 아침에 그녀의 얼굴을 똑 바로 볼 수가 없어 간다는 말도 못하고 그녀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 일은 우리 둘만이 아는 사실이고 무덤까지 갖고 가야할 비밀이다. 그러나 그 황홀했던 기억은 영원히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녀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전화하기가 쑥스럽고 민망했다.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분명하지만 남편이 출장 갔다는 연락이 다시 한 번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고도 있었다. 전시회 관계로 동문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민정이 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몸이 아파 못 나온다고 둘러대었다. 공연히 걱정도 되었고 궁금했지만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었다. 동문 전시회가 열리는 날, 민정이 동네에 사는 여자 후배에게 넌지시 그녀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선배님, 몰랐어요? 민정이 아기를 가졌어요.” “정말이야.” 이 기쁜 소식을 나한테 알리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나와의 일로 마음이 편치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 동문회는 못 나올걸요. 아기 낳고 기르려면.” 축하의 전화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비밀스런 일도 서너 달이 지났으니 마음도 가라앉았을 터이다. 나이 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민정아, 축하해. 아기를 가졌다면서.” “응 선배, 미안해 연락을 못 해서.”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주었다. 다행이었다. “몸조심하고 예쁘고 건강한 아기 낳기를 바래.” “고마워 선배. 한번 만나고 싶은데 배 나온 모습 보이기 싫어.” 아기를 가지면 얼굴도 붓고 몸매도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기 낳으면 꼭 연락해."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 공연한 걱정을 했었고 기쁜 소식도 들어서 한결 그녀에 대한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편으로는 그날 일이 생각나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정상적인 아기가 태어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새로운 동문도 들어왔었고 병환으로 돌아가신 동문도 있었다. 오늘 동문회 연말 파티 날이다. 많은 동문이 부부 동반해서 왔었고 나는 총무라서 행사준비에 바빴다. 뷔페 음식을 들면서 파티는 시작되었고 블루스 춤곡이 나오자 부부들이 우르르 나와 춤을 추었다. 나는 아내가 같이 나오는 것을 싫어해서 늘 혼자 참석하고 있다. “선배님, 저랑 같이 춰요.” 민정이와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가 나의 팔을 잡았다. 이 후배도 혼자 왔기에 스스럼없이 따라나갔다. 작년에 민정이와 노래방에서 춤을 추던 기억이 떠올랐다. 손을 잡고 몸을 맞대며 춤을 추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았다. 자석이 서로 당기는 쪽이 있고 밀어 내는 쪽이 있듯이 남녀관계도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즐거운 마음으로 춤을 추고 내려왔다. “참, 선배님, 민정이가 어제 아기를 낳았대요.” “정말이야, 보이야 걸이야?” “보이래요.” “순산했데?” “산모, 아기 모두 건강하대요.” 이런 경사스런 일이, 마치 내 딸이 아기를 낳은 듯 기뻤다. 그녀의 예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도 내 위치를 종잡을 수가 없다. 그녀의 아버지도 되었다가 연인이 되었다 하니 말이다. 나는 혼자 축하의 잔을 들었다. 일 년이 어느새 지나가버리고 오늘은 민정이 아이 첫 돌이다. 호텔 연회실에서 돌잔치가 열린다. 작년 그날 이후로 민정이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아기 낳아 잘 키우고 있다는 전화는 한번 받았지만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서로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울 보는 것이 싫어진다. 그동안 흰 머리카락이 더 생겼고 주름살도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마치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는 것 같이 민망스럽다. 나는 형제 중에서 아버지와 제일 닮았고 더군다나 오른쪽 눈 밑에 똑같은 눈물점을 가지고 있다. 그 점 자체는 유전인자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체질을 물러 받아서 그렇다고 했다. 가족 중에 누나도 점이 있었는데 결혼할 때 빼버렸다. 눈물점은 관상학적으로 재물이나 이성관계로 눈물 흘릴 일이 많아 좋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별 사고 없이 장수하고 계시지만 물려 줄 재산이 한 푼도 없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지금이라도 점을 빼면 돈이 들어올까라는 헛된 생각을 해보며 웃고 말았다. 다행히 내 아들은 아내의 체질을 더 닮았는지 눈 밑에 점이 없다. 미용실에 들러 안 하던 염색을 하고 머리도 단정히 손질했다. 내가 봐도 몇 년은 젊게 보였다. 시간이 되어 동문과 함께 호텔로 갔다. 홀 안쪽에 돌상이 차려져 있었고 남편같이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동안 남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예쁘게 한복을 입은 민정이가 나를 보고 반가운 손짓을 보냈다. “반가워 민정아.” 너무 오랜만이라 남편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포옹을 했다. “선배님, 우리 남편이에요.” 민정이는 말을 높이며 남편을 소개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빠 같은 선배님이라 그랬는데 무척 젊게 보이시네요.” 남편 인상은 서글서글했고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는 자기 생일날인지도 모른 채 아빠 품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한번 안아보고 싶다. 민정아.” “조금 있다 깨면 안아주세요.” 사람들이 있어선지 민정이는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왠지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동문회 표지판이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잠시 후, 맛있는 음식들이 계속해서 나왔으며 양주도 원하는 대로 마실 수가 있었다. 민정이 부부가 아이의 돌잔치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날의 황홀했던 기억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그날의 일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민정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도해주는 것이 선배 된 도리일 것이다. 앞으로 만날 일도 드물 것이고 동문회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다. 돌잡이 순서가 시작되었다. 큰 쟁반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모두 아이의 손짓에 눈이 쏠렸다. 아이는 서슴지 않고 크레온을 잡았다. 우리 테이블에서 제일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엄마가 미대 나왔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는 돈을 잡아 주기를 바랐다. “사내는 돈을 잡아야 나중에 잘살지, 크레온 잡으면 별 볼일 없어요. 여기 증인들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술김에 엉뚱한 말을 하고 말았다. 선배님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냥 재미있다고 치는 박수지, 그게 무슨 뜻이 있다고 그래, 벌써 취했니? 총무." 그중 제일 못사는 선배가 나를 째려보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그 증인이라 서요. 하하” 내 말에 서로 본인들은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넘어갔다. 돌잔치가 끝나가고 있었다. 민정이는 아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손님들을 배웅하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환한 표정이었다. 동문도 일어나면서 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한번 안아 보고 싶어서 민정이 부부가 있는 쪽으로 갔다. 민정이는 나를 보더니 아이를 안겨주었고 아이는 낯도 안 가리고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엄마를 닮아서 무척 예쁘게 생겼고 마치 친손자를 안은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예뻐, 작품이야. 민정아.”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잡고 아이의 볼에다 입을 맞추었다. 눈 밑에 무엇이 묻은 것 같아 손으로 닦아 주었는데 점이었다. 순간 내 몸은 얼어붙었고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것은 분명히 눈물점이었다. ▶수상소감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오면서 목이 말랐습니다. 태어나 처음 어머니한테 말을 배우며 세상을 알게 해준 모국어로 입상된 기쁨이 단비가 되어 적셔주었습니다. 저는 미술을 전공했고 지금도 광고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과 글은 표현방법이 다를 뿐,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같았습니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글 쓰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첫 소설이고 미흡한 점이 많은데도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중앙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참신한 작품 많았지만 '반소설-반수기적' 한계 못벗어 2014년 신인문학상은 기존의 작품 수준을 뛰어 넘은 새로운 작풍, 새로운 비전과 패기, 독특한 목소리, 신선한 열기로 만남의 문을 연다. 올해 응모작 중에는 축적된 작가적 에너지가 가속으로 배양된 의욕적이고 참신한 작품들이 많아 선자의 마음을 후끈 달게 했지만 아직도 반소설-반수기적 한계에 머문 작품들이 허다하다. 제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끌어 오거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라는 1인칭 하나가 온통 무대를 헤집고 소설의 고삐를 잡고 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50 여편의 응모작 중에서 다음 작품들을 일차적으로 가려내 선상에 올린다. 최연홍의 ‘빙하’, 박이향의 ‘사막의 연가’, 정병규의 ‘눈물점’, 민유자의 ‘거벽’, 이기주의 ‘샌 포인트의 겨울 나그네’, 최지만의 ‘산으로 간 기러기’, 임지나의 ‘텀불위드’, 정혜연의 ‘들어줄게요’를 가려냈다. 하지만 이들 작품 중에는 눈에 번쩍 뜨일 만한 당선작이 보이지 않아 가작 섭렵에 나선다 정혜연의 ‘들어줄게요’ 는 일상의 타성과 권태, 타공간 속에 벽을 쌓고 가는 인간적 이슈를 이동적 피소설체로 써내려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 한다. 300여매의 중편소설로 취지에 맞지않았고 박이향의 ‘사막의 연가’ 역시 단편이 아닌 300매 분량의 묵직한 중편으로 상황 설명에만 그친 감이 있어 도중 하차시켰다. 최연홍의 ‘빙하’는 한편의 서사시적 세련미와 유장한 문체가 돋보이나 굴곡과 반전이 없이 무수한 이야기의 전개로 단편이 갖는 소설적 집약과 사건의 플롯이 미흡했다. 임지나의 ‘텀불 위트’는 낙선시키기에 아까운 작품이었다. 구타했다는 아들의 고발로 구치소에 들어간 아버지와 페인트공으로 전락하는 뼈저린 삶의 리얼한 참경등이소설보다는 논픽션에 어울릴 듯 한 작품이다. 암벽을 타는 두 알피니스트의 기구한 이야기를 담은 민유자의 '거벽'은 암벽에서 추락한 악몽과 병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트, 춤, 스쿠어다이빙, 여인과의 로맨스 등으로 치달리다 종내는 다시 암벽에 도전하는 인간 승리의 거벽 같은 의지가 감동을 불러 일으키나 이 역시 논픽션에 가까운 작품이다. 정병규의 ‘눈물점’은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를 연상케 하는 따뜻하고 애련한 델리켓한 작품이다. 선배와의 하룻밤 정사로 임신하고 득남. 첫돌 잔치에 초대된 노선배. 유전자로 해서 아이의 생산을 기피하고 두려워하던 남편. 소설적 허구와 동인, 갈등, 위기 등 서스펜스의 부족 등이 걸리지만 그런 대로 설정이 무난하고 진행이 순조로운 점을 높이 사서 가작에 천거한다. 최지만의 ‘산으로 간 기러기’ 는 새마을 운동의 성공사례 같은 스토리로 기러기 가족으로 미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며 사는 부부가 남편이 암이 걸렸다는 거짓 전화로 아내를 귀국케 한 후 부부가 화합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농, 귀촌, 귀소 본능의 부활, 신토불이의 무공해 농작물을 도시의 아파트 촌에 직매하는 농촌 지도자의 애환을 수더분한 필체로 재미있고 무리없이 꾸려간 수법이 돋보여 가작에 선정한다. 이기주의 ‘샌 포인트의 겨울 나그네’ 는 단편소설로의 골격이 잡힌 구조이나 ‘에덴의 동쪽’ 같은 10대 소년들의 이유없는 반항, 마약과 섹스. 전위미술에 빠진 소년들과 가정을 이색적으로 표출한 미국소설 같은 인상. 문제아인 한국소년의 부모간의 의사 소통, 갈등, 위기의 조성없이 밋밋한 걸과 서술에만 머물러 가작 문턱에서 내려놓고 이 작가의 후일을 주목한다. <심사위원 홍승주 (소설가·시인) >
2014.05.20. 19:36
중학교 1학년 딸이 2달째 생리를 하지 않자 "임신한 것 아니냐"며 한인 엄마는 아이를 다짜고짜 몰아 세웠다. 딸은 울며 "그런 일 없다"고 하지만 좀 체로 믿지 못한다. 수소문(?) 끝에 청소년 소아과를 찾아와 확인해 달라며 딸을 데리고 왔다. 내진결과 생리불순이었다. "사춘기를 겪는 딸과 아들의 신체적 변화를 부모들이 너무 몰라 아이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는 것이 청소년 소아과의 자넷 김 전문의의 지적이다. 고등학교 남학생은 고환암 때문에 딱딱해진 상태를 본인은 물론 부모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청소년 소아과를 찾아 정기검진을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부모가 단계별 변화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소아과에서는 사춘기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한다. 초기단계가10살~13살(초등학교 5년~중학교 2년) 중간단계 14살~17살(고등학교)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17살~21살로 대학생인데 부모가 신경 써야 할 시기는 처음 두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몸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자신에 대한 자아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부모와 충돌이 심해서 아이들로서는 혼란스럽고 힘겨운 상황"이라 설명한다. 부모가 이 변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앞의 사례처럼 정신적 압박감만 가중시켜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단 아이가 10살 즉 초등학교 5학년 정도가 되면 부모는 "딸이 곧 초경을 하겠구나" "아들에게 성적인 현상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당사자들이 신체 변화에 더욱 당혹스러워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초경은 평균 12살 반에 한다 먼저 사춘기 때 왜 몸의 변화가 오는지를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우리 몸의 사령탑인 두뇌가 이 시기가 되면 집중적으로 생식기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자극을 받으면 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부쩍 몸무게와 키가 자란다. 성장탕을 먹이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몸에 지방이 형성된다. 지방이 신체의 17%가 되야 생리를 할 수 있다. 또 매달 생리를 하려면 몸의 지방이 전체의 22% 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무 마른 여자아이들은 생리가 늦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부모가 정상체중이 되도록 도와야 할 문제"임을 지적한다. 지방은 가슴을 봉긋하게 하고 엉덩이도 나옴으로써 여성다운 몸매의 기초를 형성하게 되는데 엄마들은 티셔츠를 입은 딸의 가슴이 예전과 달리 봉긋해진 것 같다는 감이 오면 "이제부터 사춘기로구나"하는 사인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두 부위가 검게 되면서 제 모습을 갖춘다 싶으면 곧 초경이 시작된다고 보면 맞다"고 설명한다. 엄마들은 앞으로 어떤 신체변화가 올 지를 미리 말해 주고 그 때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됨을 강조한다. 또 이 시기는 자궁과 난소의 크기가 5~7배 커지면서 생식기가 형성되지만 배란이 없기 때문에 임신능력은 없다. "큰 이상이 없으면 10살에서 14살 사이에 초경을 하는데 엄마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초경 후 2년 정도는 배란 없는 생리기간이란 점"이라며 "이 때는 임신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초경이 시작됐다고 당장 임신할 수 있는 걸로 아는 엄마들이 너무 많아 웃지 못할 일들이 한인 가정에서 많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모르면 아이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아들은 어떤가 사춘기 1단계 아들들 역시 몸무게가 부쩍 늘면서 키가 자란다. 목소리가 변하고 겨드랑이와 성기에 체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큰 변화는 고환과 전립선인데 사이즈가 7배로 커진다. 성기는 2배가 된다. 그 다음에 고환에서 정자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단계로 발기가 된다. "이때부터 남자 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달리 임신을 시킬 능력이 생기는 것"이라며 "오히려 아들 가진 부모들이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아들들은 이 같은 신체변화(발기현상과 정자 누출)에 당황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친근했던 엄마를 멀리 하게 된다"며 "이 때 동성인 아빠와의 친밀한 관계가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빠가 같은 남자로서 설득력 있게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여성과 접촉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지(임신)를 가능한 솔직하게 말해 줄 때 아들들은 스스로의 변화를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사춘기 2단계에 생긴다 사춘기 1단계는 신체의 대변화를 맞이하지만 동성끼리 더 많은 유대관계를 갖기 때문에 이성 문제는 신경 쓸 단계는 아직 아니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2단계로 고등학교다. 신체변화는 이미 이뤄졌는데 그 변화를 이제부터는 이성을 향해 과시해 보고 싶어한다. 성 호르몬의 자극이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된다. 화장을 하고 싶어하고 다이어트에 관심갖는다. 섹스를 하는 이유도 ‘그 자체’ 보다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한다. 남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여자아이들에게 남자답게 보이는 것이 최대 관심사이다. 열심히 운동하면서 근육을 만들려 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술과 담배를 시도하는 이유도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지 술과 담배가 좋아서가 아님을 부모가 이해해야 자녀와 소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여자친구하고 성적 접촉을 시도하는 이유도 성 자체를 즐겨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 때문”이라 설명한다. ◇청소년 소아과 전문의를 찾아야 하는 이유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알고 있는 기존의 일반 소아과 의사들에게 변화된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두 번째는 일반 소아과에서는 산부인과 내진(예로 임신 여부나 월경불순, 자궁이나 고환 검사 등)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반 산부인과 혹은 비뇨기과를 찾는 것도 힘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청소년을 전문으로 하는 소아과 전문의들은 신체는 물론 이들의 정신적인 상태도 점검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상담도 병행된다는 뜻이다. ■전문가 어드바이스…일년에 한번씩 '몸·정신 상태' 검진해야 ▶사춘기가 되면 일년에 한번씩 청소년 소아과를 찾아와 몸과 정신 상태가 건강한 지 부모들이 검진해 주길 권한다. 이 곳에서는 초경이 정상인지를 비롯해 청소년 유방암과 고환암 검사(정상 발육 상태를 점검한다) 청소년 성병치료를 한다. ▶15살이 됐는데도 초경이 없으면 필히 원인을 찾아 주어야 후에 불임 등을 피할 수 있다. 16세 여학생은 내진을 해 본 결과 자궁문이 닫힌 상태임을 발견하고 열어주는 수술을 했다. 결과 자궁벽에 쌓인 불순물이 몸밖으로 나왔다. 초경이 늦어지거나 규칙적이지 않으면 자궁근종을 비롯한 질병으로 후에 임신하기 힘들어 질 수 있다. ▶또 초경이나 고환 성장이 늦을 때 검사를 해 보면 원인이 뇌종양 등 뇌에 이상이 있는 케이스를 발견한다. 사춘기 몸의 변화는 모두 뇌의 자극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청소년 소아과에 데려와 정기검진을 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인순 기자
2011.03.28. 15:44
“Daddy I have something to say to you,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2년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딸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머뭇머뭇 거리는 딸을 보면서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하며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딸아이는 “Daddy, I had my first kiss last night! 아빠! 저 지난 밤에 첫 키스했어요!” 라고 말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웃는 그 얼굴에는 행복과 수줍음이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툭 던진 말은 엉뚱하게도 “너 키스한 아이가 한국 아이니”였다. “아니요 Chris 있잖아요. 중국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어떻게 키운 딸인데 첫 키스를 다른 나라애하고 하나’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첫 키스의 추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마음껏 기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키스를 하더라도 한국애 하고 해라!” 대학 1학년 말 딸아이로부터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어서 아빠에게 소개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의 첫 질문은 “한국아이지?”였고, 답변은 “아니요 중국 아이예요!”였다. “한국남자면 더 좋겠는데...” “아빠! 아빠는 목사님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한국 사람이니 한국 사람과 사귀는 것이 좋지 않겠니?”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나는 절대 약자다. 가을이 되면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2 주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자기 나이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는 딸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Daddy! 저 아주 가끔 술도 마셔요!” “그래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맥주 마실 수도 있지!” “맥주 말구요!” “아니 그럼 뭘 마시니?” “술이요!” 맥주는 술도 아닌 모양이다. 자주 마시지는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친구들 생일에 마시는데 두 잔 이상 마시면 자제력을 잃는 것 같아서 그 이상은 안 마신단다. 나는 뭘 마시는지, 두 잔이 뭔지 겁이 나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한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나의 말에 흔쾌히 승낙하는 딸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절대로 마약하지 말고 네 몸을 정결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에 약속하면서도 “만약 아빠와의 약속을 못 지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에게 먼저 말하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 목사님 따님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한 그룹은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 따님들로 그야말로 목사님 따님들답게 조신한 모법생들이고 다른 그룹은 비록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술, 마약 섹스에 노출되어있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묻는 나에게 “저요? 아빠! 저는 중간 이예요”하고 또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2주전 20살 이 되는 생일에 2 shot 을 했더니 친구들이 “너희 아빠가 널 위해 새벽마다 우시면서 기도하시겠다”고 자기를 놀렸다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나는 딸아이가 중국계 학생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 딸이 중국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해서 문제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밤 늦게 공부하다가 한 두 번 주일 예배에 빠졌다고 해서 내 딸을 신앙 없는 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인지 자기 나이에 맞는 폭 넓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을 마치면 한 2년 정도 Peace Corp 과 같은 비영리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겠다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이 아이가 그래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의미 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기뻤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도 존중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자유인으로 떠나보낼 때가 되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문득 ‘고도원의 아침일기’ 라는 글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딸에게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는 사랑의 그늘이 되어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어 잎이지고 가지가 꺾여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조용히 눈물을 쏟으며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도로 자란 딸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훼잇빌 벧엘교회 박덕은 목사
2010.07.28. 7:32
2년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딸 아이가 제법 진지하게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딸아이는 "아빠, 저 지난 밤에 첫 키스했어요"라고 말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툭 던진 말은 엉뚱하게도 "너 키스한 아이가 한국 아이니?"였다. "아니요, 크리스 있잖아요. 중국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어떻게 키운 딸인데 첫 키스를 다른 나라 애하고 하나. 그러나 나는 첫 키스의 추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키스를 하더라도 한국애 하고 해라." 대학 1학년 말 딸아이로부터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어서 아빠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의 첫 질문은 "한국아이지?"였고, 답변은 "아니요 중국 아이예요"였다. "한국남자면 더 좋겠는데." "아빠는 목사님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가을이 되면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2주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아빠, 저 아주 가끔 술도 마셔요." "그래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맥주 마실 수도 있지!" "맥주 말고요!" "아니 그럼 뭘 마시니?" "술이요." 맥주는 술도 아닌 모양이다. 자주 마시지는 않고 1년에 한두 번 친구들 생일에 마시는데 두 잔 이상 마시면 자제력을 잃는 것 같아서 그 이상은 안 마신단다. '절대로 마약하지 말고 네 몸을 정결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에 약속하면서도 "만약 아빠와의 약속을 못 지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에게 먼저 말하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 목사 딸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야말로 목사 딸답게 조신한 모범생들이고 나머지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술마약섹스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나는 딸아이가 중국계 학생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 딸이 중국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해서 문제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밤 늦게 공부하다가 한 두 번 주일 예배에 빠졌다고 해서 내 딸을 신앙없는 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딸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인지, 자기 나이에 맞는 폭 넓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을 마치면 한 2년 정도 평화봉사단과 같은 비영리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겠다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이 아이가 그래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의미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기뻤다. 이제 자유인으로 떠나보낼 때가 되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문득 '고도원의 아침일기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딸에게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는 사랑의 그늘이 되어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어 잎이지고 가지가 꺾여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조용히 눈물을 쏟으며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도로 자란 딸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박덕은 목사 <훼잇빌 벧엘 교회 목사>
2010.07.26. 7:29
2년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딸 아이가 제법 진지하게 나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딸아이는 "아빠 저 지난 밤에 첫 키스했어요"라고 말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툭 던진 말은 엉뚱하게도 "너 키스한 아이가 한국 아이니?"였다. "아니요 크리스 있잖아요. 중국애." 그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어떻게 키운 딸인데 첫 키스를 다른 나라 애하고 하나.' 그러나 나는 첫 키스의 추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키스를 하더라도 한국애 하고 해라." 대학 1학년 말 딸아이로부터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어서 아빠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의 첫 질문은 "한국아이지?"였고 답변은 "아니요 중국 아이예요"였다. "한국남자면 더 좋겠는데…." "아빠는 목사님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가을이 되면 대학 3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2주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아빠 저 아주 가끔 술도 마셔요." "그래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맥주 마실 수도 있지!" "맥주 말고요!" "아니 그럼 뭘 마시니?" "술이요." 맥주는 술도 아닌 모양이다. 자주 마시지는 않고 1년에 한두 번 친구들 생일에 마시는데 두 잔 이상 마시면 자제력을 잃는 것 같아서 그 이상은 안 마신단다. '절대로 마약하지 말고 네 몸을 정결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에 약속하면서도 "만약 아빠와의 약속을 못 지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에게 먼저 말하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 목사 딸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야말로 목사 딸답게 조신한 모범생들이고 나머지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술.마약.섹스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나는 딸아이가 중국계 학생들과 잘 어울린다고 해서 내 딸이 중국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이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해서 문제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밤 늦게 공부하다가 한 두 번 주일 예배에 빠졌다고 해서 내 딸을 신앙없는 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딸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인지 자기 나이에 맞는 폭 넓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을 마치면 한 2년 정도 평화봉사단과 같은 비영리 국제기구에서 봉사하겠다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이 아이가 그래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의미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기뻤다. 이제 자유인으로 떠나보낼 때가 되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문득 '고도원의 아침일기'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딸에게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없는 사랑의 그늘이 되어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어 잎이지고 가지가 꺾여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조용히 눈물을 쏟으며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도로 자란 딸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2010.07.23. 18:43
타이거 우즈가 필드로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교통사고로 불거진 섹스 스캔들 이후 5개월만의 복귀다. 특유의 환한 미소도 지었다. 그가 앞으로 골프황제로서의 옛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닥까지 추락한 후 재기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즈가 매스터스 대회를 통해 복귀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의 우승 여부라기 보다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골프팬들 앞에 나타날까 하는 것이었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일부 팬들의 사인 요청에 거의 응하지 않던 과거와는 달리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대회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우승을 몇 번 했나 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자신의 실수로 가족과 친구들이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보답하며 살고 싶다"는 고백도 했다. 그의 말을 물의를 일으킨 후 복귀하는 스타들의 모범답안성 발언으로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고백을 하는 우즈의 얼굴 표정은 진심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런 말을 하면 같은 여자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돌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5개월전 우즈의 섹스 스캔들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아쉽기도 하고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다. 왜 당사자인 우즈의 부인은 입을 꽉 다물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부부간의 문제인데 그리고 자신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가 세기의 난봉꾼으로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왜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같은 경우를 당했을 때 아내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한번 통크게 봐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건 부부간의 문제이고 자신이 몹시 상처를 받았지만 우리끼리 해결해보려고 하니 잠시 세간의 관심은 접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비록 나중에 이혼을 결정한다해도 남편을 지켜주려고 한 아내에 대해 그 남편은 당연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크게 신세를 졌으니 앞으로는 정말 잘하려고 노력할 가능성도 훨씬 높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혼외정사로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 그녀는 남편을 죽여버리고 싶은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남편을 옹호했다. 그것이 그녀의 정치적 야심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였건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딸의 아버지를 용서했고 결과적으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던 결혼생활의 위기를 넘기며 깨질 뻔한 부부관계를 축복받은 우정의 관계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가 한 실수라면 한번은 봐주는 마음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참된 부부는 세월의 시련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시련을 넘기다보면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이 부부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무촌이 될 수 있다. 살면서 몸으로 배운 것이 있다. 성질대로 하면 지금 당장은 속이 편할지 모르지만 십중팔구 나중에 후회하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 서로 좀 너그럽게 봐주고 살면 나중에 보람있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신복례/편집부 차장
2010.04.11. 18:44
미국에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부모들의 대리 출산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자녀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2일 미국인들의 대리 출산이 전보다 덜 생소한 현상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미국의 대리 출산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미 생식의학학회(ASRM)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연간 400~600명이 대리 출산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리출산 관련 단체들은 그 수가 이보다 훨씬 많다면서 앞으로도 동성 결혼 커플 등을 포함해 대리 출산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리 출산에는 유명인들도 가세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새라 제시카 파커도 최근 대리 출산을 통해 쌍둥이를 얻기도 했다. 대리 출산을 원하는 커플들을 대리모와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뉴저지주 변호사인 멜리사 브리스먼씨는 미 생식의학학회의 대리 출산 추정치는 너무 낮게 잡은 것이라면서 자신의 고객들만 지난해에 대리 출산을 통해 300명의 자녀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 중 동성커플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대리 출산이 늘어나면서 출생의 일화를 자녀가 충격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지가 이들 부모에게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자신 역시 대리 출산 부모인 브리스먼씨는 딸 시미(6)가 3살일 때부터 출생에 관한 얘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의사 선생님이 엄마와 아빠 일부를 떼어낸 뒤 다른 사람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했다'는 식으로 설명한 것이다. 뉴저지주의 상담사인 주디스 코틱씨는 자녀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들이 부모에게 속해 있는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이라면서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출생의 일화를 얘기해 줌으로써 이를 알고 커 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하고 대리출산을 설명하고 있는 어린이용 서적들도 권장했다.
2009.07.12. 22:48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슬픔은 괴음으로 몸을 빠져나와 거실에 뒹굴었다. 대강 보아도 삶이 초라할 것 같은 얼굴들은, 어떤 무명 화가의 분노가 담긴 스케치처럼 강퍅하고 무미건조했다. 제구실을 못하는 표정들 때문에, 괴음이 거실을 점령한 이유를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네 자매는 지금껏 견뎌낸 그 어떤 절망보다도, 가장 가혹한 절망이 만들어낸 슬픔과 공황상태에 놓여있었고, 거기다 반평생의 한 까지 들쑤셔져,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요상한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의 제공자인 막내는, 괴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TV를 켰다. 한국 유명 연예인의 죽음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영정사진 속 그녀의 해맑은 웃음은, ‘죽음의 티켓을 받은 여러분, 두려워 마세요. 그리고 어서 이 곳으로 오세요. 이 곳은 새하얀 꽃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진 정말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이 곳엔 슬픔도 아픔도 없어요. 나를 보세요.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뒤를 따르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사람들과 그녀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녀의 하얀 목도리와 하얀 미소, 그리고 수천 송이 하얀 꽃들은, 그들의 발버둥을 의미없는 과장된 행위로 보이게 했다. 어쨌든 TV 화면은, 세상 모든 사람이 울고 있으니, 당신 또한 울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네자매에게 주었고, 비로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구멍을 활짝 열어 슬픔을 토해내게 했다. “엉엉엉, 아이고 아이고, 엄마, 엄마,” 저마다 토해내는 방식은 달랐지만, 통곡의 끝은 없을 것 같았다. 막내만이 단정하게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좋겠다. 저 여자는 제 목숨을 자기 의지로 거뒀네.” 막내의 한 마디는 절망의 핵을 터트렸고, 우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고, 거실바닥을 긁으며, 그 절망을 표현했다. “딩동 딩동 딩동….” 경쾌한 기계음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통곡을 한 순간에 멈추게 했다. 집 주인인 막내가, 문 쪽을 흘낏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TV로 돌렸다. 우리의 통곡도 계속 이어졌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초인종이 연이어 울렸다. 무엇이던 세 번이 넘어가면,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가시를 돋게 한다. 동생이 거칠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Are you ok? What happen?” 옆집 사는 백인 노인이 부인과 함께 놀란 눈을 말보다 먼저 안으로 들이밀었다. “I am ok. We watching tv drama. Sorry.” “Oh, I understand.” 백인 노인은 자신과 아내도 슬픈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둥, 한참을 떠들다, 계속 시청하라는 말을 남기고, 문까지 닫아주는 친절을 보였다. “미친놈 오지랖도 넓어.” 작은 언니가 닫힌 문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백인 노인의 방문은, 우리의 울음을 울음 끝도 남기지 않고 멈추게 했다. 우리 모두는 TV 속의 죽음으로 슬픔을 이동했다. 망자의 남동생이 가슴 깊숙이 사진을 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남자이기 때문에, 소리 내지 못하고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더욱 애처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우린 우리들 가슴에 안긴 막내의 영정사진을 떠올리며, 또 다시 통곡했다. “언니, 나, 영정사진 무엇으로 하지? 저 여잔 영정사진도 예쁘네.” 이미 화면 속으로 들어간 막내가 힘없이 말했다. “야,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울어주니까, 네가 정말 내일 당장이라도 죽는 줄 알아?”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나는 친구도 없고, 남편도 없는데, 박 서방, 나 죽으면 와주기나 할까?” “미친년, 요새 세상에 암이 병인 줄 알아? 암 걸리고도 팽팽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 놈은 또 왜 찾아?” 그래도 작은 언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나와 큰 언니보다 덜 감지한건지, 동생의 말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뿌릴 땐, ‘사람과 시간과 바람소리’ 틀어줘. 아주 크게. 애들 말고, 내가 이 세상에 한 순간 머물렀었다는 증거가 또 뭐가 있을까. 저 여잔 이름도 남겼고 필름도 남겼는데. 세상에! 나는 뭘 하며 산거야 지금껏. 사는 게 죽는 거라는 걸, 왜 생각 못하고 살았지?” 막내는, 행운보다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삶에서 제외시킨 자신의 미련함을 힐책했다. “암을 정복한 사람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란다. 그러니 너도 정신 줄 놓으면 절대 안돼.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야무지고 독하게, 네 몸에서 쫓아내버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니? 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기검진을, 계획도 없이 갑자기 하게 됐겠어? 너 살리려고 그런 거야.” 큰언니가 애걸하듯 말했다. “우리 아이들한테 뭘 해주고 죽을까? 애들 아빠한테 아이들 뺏어서 벌 받았나봐. 내 자존심 살리겠다고 천륜을 갈라놓았으니? 그렇다면 신은 누구 편인거지? 간통 한 자를 벌해야지, 정숙하고 모범답안처럼 산 나를 벌하고 있잖아?” 막내는 항상 성경책을 손에 쥐고 있는 큰언니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큰 언니는 고통스런 눈으로 대답할 뿐 이였다. ‘아니란다. 사랑하는 동생아.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 너를 벌하는 게 절대 아니야, 기다리자, 기다려보자’라고. 죽음은 오디션에서의 ‘땡’ 소리와 같다. 기회를 잃은 자와 얻은 자의 대화는 절대 합쳐질 수 없었다. 막내와 우리의 대화가 그랬다. 한 달 전, 가구점을 운영하던 둘째언니가 파산했다. 몽땅 털어 넣고 시작한 가구점이 2년도 안돼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가공할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언니가,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미안함과 막막함으로 연락도 못하고 있을 때, 작은 언니로부터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금식이야. 꼭 지켜야 돼.” 금식기도의 참여로 면죄부를 받은 우리는, 금식 뿐 아니라 철야기도까지 했다. 우리의 합심기도가 가구점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다음날, 작은 언니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종합병원이었다. “뭐야? 너 왜 우리를 여기 데리고 온 거야?” 겁 많은 큰 언니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장만은 지키겠다는 듯, 거친 손을 심장에 갖다대며 물었다. “언니!” 나는 더 이상의 절망적인 소식은 전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함을 담아, 작은 언니를 나지막이 불렀다. 막내는 이 상황을 빨리 해명하지 않는 작은 언니에게,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야, 야 놀래지들 마, 그런 새가슴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우리 한 번도 건강검진 안 해 봤잖아. 물론 그럴 형편도 못 됐지만. 이번에 우리 사총사 건강 검진하자.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우리가 누구야? 옛날 용산 땡땡거리 주름잡던 골목대장들이잖아. 가진 것 없이, 부모 없이 살아왔으니, 목숨만은 세상사람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작은 언니는, 너무 가냘파 자신의 의도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불끈 쥔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건강 검진 받는데, 운명과 투쟁까지 선포하는 언니의 허전한 마음이 전해졌다. “비싸잖아? 얼마나 비싼데. 언니 미쳤어?” “어차피 파산이야. 남은 카드로 기분 한번 내려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거든. 여행을 갈까 했는데, 각자 생활도 있고 해서, 그것보다 이것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이걸로 했어. 내가 이 짓 안하면, 우린 병으로 죽어도 왜 죽는지, 언제부터 죽음을 달고 살았는지, 모를 거야. 하자, 하고, 건강하게 남은 인생 즐겁게 살자.” 작은 언니는 언제나 그랬다. 어릴 적부터 우리보다 생각과 행동이 앞섰다. 섭섭할 만큼 무관심하며 자신만 챙기다가도, 굵직굵직한 결정은 도맡아 처리했다. 큰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부모님은 지독한 가난만 남겨놓고 한달 간격으로 돌아가셨고, 우린 큰 언니를 엄마 자리에, 작은 언니를 아빠자리에 앉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작은 언니는 지금껏 자신의 삶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챙겼고, 중요한 결정을 주도했다. 우리 집에는 항상 학교에서 주는 급식 빵이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학용품이며 수건, 비누 등 생필품이 모자람 없이 쌓여있었다. 작은 언니는 새들이 먹이를 나르듯, 생필품을 집안으로 날랐다.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 어린이날이면 언니는 더욱 바빴다. 공짜로 배급이 시행되는 어떤 곳이건 달려가, 수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기어코 작은 가슴 가득, 물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자존심, 큰 언니의 부끄러움, 막내의 철없음을 대신하기 위해서, 작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되어야 했다. 남자들과 주먹싸움으로 세력을 장악하고, 부모의 부재와 가난이 만들어낸 선생님들의 지독한 괄시와 편애에도, 거침없이 저항하며 투쟁했다. 운동회 날에는 제일 앞에서 목청 터져라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고, 어떤 행사건 우리를 끌어다 맨 앞에 세웠다. 지금껏 작은 언니는,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가 뒤집어씌운 ‘아비 부’의 의무를, 처절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계획 또한 낯설진 않았지만, 언니의 표정에 무언가 단호함이 엿보여,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싫어. 난 안해.” 큰 언니가 몸을 돌려 차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언니가 큰 언니를 쫒았고, 그 뒤를 막내와 내가 따랐다. 큰 언니가 몸을 돌린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겨워서 그래. 참 열심히도 산 우리 자매. 그런데 누구 하나 내 놓으란 듯, 잘살지 못한 게 억울해서 그래. 나까지 이렇게 됐으니, 속상해서 그런다구.” “내 기분 모르겠어? 언닌 동생들 몸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걱정도 안돼? 그러다가 동생들이, 무슨 병이라도 걸려 치료도 못 받고 죽으면, 원통해서 살 수 있겠어?”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작은 언니 말에, 거친 언니의 발걸음이 멈췄다.
“하자. 어차피 없어지는 돈이야. 이제 내가 뭘 더 해 줄 수도 없어. 응? 언니.”
“그래 하자. 하지만 내가 낼 거야. 네 말대로 동생들 건강 챙기는 건 큰 언니인 내 몫이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바보로 만들래? 내가 변변치 못해서겠지만, 나한테 상의라도 했어야지. 왜 금식하는지, 어디로 끌려오는지도 모르고, 이 자리에 섰어야 하겠니?”
큰 언니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엄마와 아빠 자리에 큰 언니와 작은 언니를 구별해 앉혔는지, 그 현명함에 감탄하며 살고 있다. 큰 언니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지만, 작은 언니는 섬뜩할 만치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자리가 바꾸어졌더라면, 성격도 바꿔졌을까? 모두의 머리가 주저없이 흔들릴 만큼, 가능성은 희박했다.
“미안해 언니. 내가 생각이 짧았어. 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서다보니.”
“가자, 가서 샅샅이 검사 맡자, 잡초처럼 살아온 우리한테, 감히 어떤 병균이 들어와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 속 시원히 해보자.”
말을 끝낸 큰 언니가 다시 거친 발걸음을 병원으로 옮겼다. 우리는 그 뒤를 또 다시 뒤따랐다.
“비쌀 텐데. 큰 언니가 무슨 돈이 있다구.”
“얼마 정도 될까? 우리도 보태자.”
막내와 나는 숨죽인 소리를 주고 받으며 잔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언니는 가방을 열어 카드 세 장을 내밀었다. 하나로는 한도가 안 되리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작은 언니가 재빨리 자신의 카드를 간호원 손에 쥐어줬다.
“아니요, 이것으로 결제하세요.”
큰 언니의 성난 목소리에 간호사가 어리둥절해하며 작은 언니의 카드를 내려놓았다.
“이걸로 하세요.”
작은 언니가 또 다시 카드를 간호사 손에 쥐어줬다.
“왜 들 이러세요. 저기 가서 의논하고 오세요. 왜 여기서 이래요. 카드로 내면서.”
간호사가 날카롭게 쏘아댔다. 작은 언니가 “뭐 이런 게 있어?”하며 자신의 카드를 그녀 앞에 던졌다.
싸움이 날 것 같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큰 언니가 당황해하며 자신의 카드를 손에 넣고, 작은 언니를 뒤로 잡아끌었다.
그렇게 해서 작은 언니의 카드가 미끄러지듯 카드기에 그어졌다.
“내가 계산해서 둘째 줄 거야.” 큰 언니는 못내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중얼거렸다.
“그래 언니 우리 각자 것 계산해서 작은 언니 주자. 그러면 되지?”
“얘들이 왜 이래, 내가 낼 거라니까.” 큰 언니는 금방이라도 한 바가지 쏟을 듯,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며 화를 냈다.
“알았어, 알았어. 큰 언니가 내. 고마워 언니.”
모든 풍요를 완벽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라면, 우리에겐 재물이나 행운이 없는 대신, 차고 넘칠 만큼의 우애와 사랑이 있었다.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서로 뭉쳐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 몸살이라도 나면, 모두 모여 그 집에서 밤을 지새웠고, 자신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니나 동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더 만족스러워했다.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의 소요는 지나가고, 우리는 즐겁게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작은 언니는 열 다섯 가지가 되는 정밀검사를 신청해 놓았다.
각자 다른 검사를 시작으로 돌아가며 검사를 받았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당연해 하며, 승리자처럼 미소를 주고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우리를 함께 불러 앉혔다. 그리고 성적을 불러주듯, 한 명씩 건강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잘 보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성적표를 기다리듯, 가슴이 조였다.
큰 언니는 류마티스 증상이 있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외에는 아주 정상이라며 ‘정상’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언니의 논바닥처럼 갈라진 혈색으로 보아, 비정상이 정상이지 못한 것에 아쉬워 하는 듯했다.
작은 언니는 맥박수를 포함한 모든 수치들이, 일반적인 기준보다 약하지만, 별 문제점은 없다고 했고, 나 역시, 쓸개에 작은 혹이 있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막내였다. 막내 차례가 되자, 그의 심각한 표정의 이유가 막내로 인한 것이라는 듯, 역설적인 온화함으로 표정을 전환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자궁경부에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상태로 보아 암일 확률이 큽니다. 어떤 방법의 치료가 가능할지,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지금 바로 정밀검사를 합시다.”
소리가 귓속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귀는 소리를 차단했다. 의사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그저 입을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 귀에서는 지독한 이명음이 계속됐다.
큰 언니는 얼굴에 회칠을 해놓은 듯했고, 작은 언니는 표독한 얼굴로 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막내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진료카드를 넘겨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큰 언니가 부들부들 떠는 손을 겨우 합장시켜 가슴에 올리며 물었다.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쇠꼬챙이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침착하게, 작은 언니가 말했다.
불행의 바람이 불어오면, 작은 언닌 숨을 참는 고통을 견디고라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큰 언닌, 입을 벌려 그 바람을 전부 들이쉬고, 끝도 없이 비틀거린다.
나는 막내의 몸에서 희망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내 손을 힘껏 쥐었다.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닌가요. 정밀검사도 해보지 않고 암이라고 단정짓고 있잖아요,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거라는 것 쯤은 잘 알고 계실 텐데, 확실하지도 않은 확률로, 환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암이 아니면, 암이 절대 아니겠지만, 제 동생이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겪게 될 정신적인 충격, 생각해 보셨나요?”
작은 언니는 제 정신을 차린 듯, 침착함을 벗어버리고 언니 특유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병을 감추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암 같은 건 본인이 빨리 알고, 낫겠다는 의지와 신속한 치료가 중요한 겁니다.”
의사는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암이라고 확정짓는 겁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작은 언니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나, 그를 내리칠 것처럼 한 걸음 다가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궁경부암은 골반까지 전이되지 않으면, 자궁만 절제하면 되고, 연세도 있고 하니 크게 심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당황한 의사는, 자기 나이의 여인들 앞에서 세우고 싶었던 권위를 내던지고, 내뱉은 말을 추스르기에 바빴다.
“막내 재검사 받아야 한다잖아.”
나는 작은 언니를 밖으로 끌어냈다.
“아무 것도 결정난 것 아니야, 막내야, 마음을 다잡고 먼저 나가지 말자, 설사 암이라고 하면, 이 언니들이 가만있겠니? 네 몸에서 암 병균들이 처참하게 말라죽게 만들 거야. 언니들 믿지?”
큰 언니는, 막내의 발아래 무릎 꿇고, 자신 입에서 빠져나온 말이 도망이라도 갈 듯,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가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내의 감정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오십대 오십이야, 부정적인 오십을 먼저 생각하면 안돼, 긍정적인 오십으로 부정적인 오십을 쫒아내. 우린 잡초야. 어떤 제초제로도 우릴 죽일 수 없어.”
작은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막내옷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재검사를 끝내고 나온 막내의 얼굴은 도리어 평온했다. 막내를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세상에 내보내 준 것에, 처음으로 부모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희망은, 한 낮의 태양아래 저항도 못하고 녹아내렸다.
병원 문을 나선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찌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동생을 위로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충격으로 위가 뒤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짜증났다.
“나이가 들면 생각의 뿌리에 접근하지 못해, 그게 두려움으로 인한 자의적 현상인지, 아니면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우리는 울 때 울지 않고, 웃을 때 웃지 않는, 감정 장애자들이 되는 거야, 그런데, 한 가지 더 왕성해지는 게 있어. 식탐이야 식욕. 조각난 욕망들이 그 쪽으로 모여드는 거지. 우린 그 마지막 욕망에 충실해야 돼, 그리고 사랑해야 돼. 절대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 안돼, 알았지?”
막내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었다. 삶에 지친 언니들이 끼니라도 거를까봐, 이뤄 논 것 없이 아귀처럼 먹는 것에만 신경 쓰는 스스로를 부끄러워 할까 봐.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굶고, 오후 세 시가 지나가는데도, 막내는 평상시처럼 언니들 먹을 것을 챙기지 않았다. 허기가 맹렬히 고개를 들며, 절망까지 덮쳤다.
속이 느글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리 나지 못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배에 힘을 주었다. 언니들도 그런가, 세심히 살폈지만, 배가 고파 창백한 건지, 충격으로 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다니, 배가 고프다니… 동생 말대로 나는 감정의 장애자인 거야.’
“언니, 배고프다. 떡 보쌈 먹으러 가자.” 작은 언니가 말했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들 이래, 우리 엄청나게 배고프잖아, 막내가 죽어? 막내 너 배 안고파?”
“고파, 누가 먼저 밥 먹자고 하나,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나 내가 먼저 먹자고 했잖아. 이젠 안 그럴 거야. 언니들 위장 언니들이 챙겨.”
‘아, 다들 배가 고팠구나.’ 그때서야 나는 배에서 힘을 뺐다.
식당에 도착해 삼겹살을 시킨 동생은, 짜증날 정도로 얇게 편 떡에, 삽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파김치와 마늘 그리고 매운 소스를 듬뿍 올려 한동안 게걸스럽게 먹기만 했다. 그저 귀엽게만 보이던 동생의 입이, 그토록 커다랗고 탐욕스러운지 그때 처음 보았다.
먹어도, 먹어도, 어딘가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막내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동생의 입이 잠시 쉴 틈도 없이,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쌈을 동생에게 연거푸 안겼다.
우리는 동생 입에서 새어 나올 슬픔을, 꾸역꾸역 떡보쌈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들 해. 암으로 죽기 전에 배 터져 죽겠어. 나한테 해 줄 말들이 그렇게도 어? 뭐가 그렇게 당당치들 못해? 이집 삼겹살 전부 동내고 가겠네.”
동생의 핀잔에, 어릴 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동작이 재빨리 멈춰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래? 네 배가 이제 불렀다 이거지? 그럼 이제 우리도 배터지게 먹자. 언니 먹어, 셋째 너도 먹고.”
작은 언니는 막내 입에 들어가다 만 것을 큰 언니 손에서 빼앗아, 자신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언제나 어정쩡한 상황을 무마시켜 주는 작은 언니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보쌈이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막내의 말을 흘려버리고, 우리는 막내 집까지 따라 온 것이다.
‘가엾은 것, 혼자되어 오기와 악다구니만으로 세상 버텨 온 것도 억울한데, 이게 무슨 날 벼락이야.’ 차라리 이렇게 쏟아내고, 막내와 함께 신을 저주하고, 직무유기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터를 잡은 절제된 감정은, 이런 원초적인 감정 폭발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유는, 험난한 인생의 반복, 혹은, 오래된 좌절로 인한 충격의 자정작용이었다.
“암은 모르면 그냥 지나간다고도 하던데, 내가 검사를 괜히 하자고 했나봐.”
작은 언니가 울음 끝을 참지 못하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되로 막을 것, 말로도 막지 못하는 게 병인데. 천만다행이지 미리 알았으니.”
이미 노안이 시작된데다, 퉁퉁 붓기까지 한 눈으로 인해, 사물의 초점을 맞추기 힘든 듯, 큰 언니는 연신 눈을 비벼대며 말했다.
“야, 그 TV 꺼버려.”
작은 언니가 계속되는 장례행렬의 반복된 화면으로 인해, 동생의 슬픔에 몰입할 수 없다는 듯, 짜증을 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리모콘을 눌렀다. 영정 사진 속에 있는 연예인이, ‘이건 완벽한 연극입니다’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가만 있자,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들하고 얼마나 헤어져 있어야 하는 거지? 언니들 평균수명까지 악착같이 살 거야? 내가 없는데도? 평균수명이 팔십이라고 하니까, 큰 언니는 이십년, 작은 언닌 이십 오년, 셋째 언닌 삼십년. 많이도 남았네. 정말 내가 너무 일찍 죽는 거네. 왜 이렇게 평균수명이 길어진 거지? 그러고 보면 웰빙 타령도 헛짓 하는 거야.
우리 조상들은 모두 웰빙식품 먹고 살았잖아. 그런데도 환갑이면 잔치했는데, 지금은 농약이니 뭐니 해도, 수명이 한없이 늘어나잖아.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야, 그러니 너무 먹거리에 신경 쓰지 마, 죽을 팔자면 나처럼 이렇게 허망하게도 죽으니까.”
“너 말 잘했다. 그래, 놀라운 의학의 발전이지. 네가 걸린 암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이십년 전에 뭘 했지? 직장생활 했네? 즐거웠나? 아니, 즐겁지 않았어. 특별한 일도 없었고, 뭐 죽도록 사랑한 사람도 없었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동정에, 어리석게도 내 인생을 던져버린 실수나 저지르고, 배시시 웃어볼 추억도 없고. 앞으로 이 삼 십년 더 산다고 특별한 일 있겠어?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 억울하지도 않아.
못쓰고 죽을 만큼 벌어논 돈도 없으니 배 아플 일도 없고, 자식들도 베타맘처럼 키웠으니 당당하게 서 있을 거고, 남긴 것이 없으니 치고 박고 싸울 일도 없을 테고, 도리어 우리처럼 뭉치겠지? 가끔 언니들이 들여다 봐 주면되고.
무덤까지 함께 들어간다고 울어댈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쌈박하네,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살았지? 이렇게 될 운명인지 알고 산 것 같지 않아?”
속마음이 정말 어떤 걸까. 실제로 저렇듯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막내의 지나칠 만큼 차분한 감정과 말투는,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고 인물 났네. 암 선고 받고, 내 동생처럼 쿨한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쿨하지 않을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언니? 다 죽을 거잖아.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억울한 건 내 목숨 내가 거두지 못하고 뒤통수 맞았다는 거야,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지각한 것처럼 뛰어가야 하잖아.”
“이리와 폼 잡지 말고. 이제부터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
큰 언니가 동생의 공허한 말들을 허공에서 끄집어 내렸다.
“일단 검사결과를 보자. 너도 들었지만, 상황이 안 좋으면 자궁을 들어내면 돼. 애 낳을 것도 아닌데, 우리 나이엔 아무 필요 없는 자궁이야. 너무 앞서나가 소설 쓰지 말자, 더한 병들도 완치되는데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야. 상황이 심각했으면, 당장 입원하라고 했을 거야.
맞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입원하라는 말은 없었잖아? 너도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돌아가신 엄마가 네가 아프기 전에 미리 알려 주신 거야. 치료하라고. 엄마가 우리 넷 중에 너를 제일 예뻐하셨거든?”
“그러니까 나를 제일 먼저 데려 가시려나보지.”
“야, 언니가 말하면 들어.”
날카로워진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너는.” 큰 언니도 소리쳤다.
억장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좀 해보라며 비명도 못 지르고, 어떻게든 혼자 수습하려 비틀거리는 동생, 그런 동생에게 변변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무능한 나. 그래서 나는, 작은 언니처럼 소리를 지를 수도, 큰 언니처럼 자분자분 막내를 달랠 수도 없이, 침묵만을 고집했다.
“언니, 종이와 펜 좀 갖고 와.”
동생은 나한테 갖다 줄래? 가 아니라 갖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건 죽음을 가까이 둔 자의 특권이었다.
“뭘 하게?”
“정리 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 것 적을 거야. 먹고 싶은 것, 더 사랑하고 싶은 것, 용서받고 싶은 것들 있잖아. 나한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도 구하고. 원수도 갚고 가야지.
죽도록 뛰어왔는데, 결국은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앞이고, 나에겐 그냥 뛰어내려야하는 선택만이 주어졌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지 궁금하지? 기분 같은 건 없어.
도리어 살아 오면서 이렇게 명확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정리가 잘돼. 타고난 수명의 반 정도 되서, 사람들을 이런 죽음의 기로에 의무적으로 서게 한다면, 그 후의 삶은 아주 선하고 겸손할 거고 욕심 없는 삶이 될 거야.”
“죽음은 사람들이 어찌해볼 영역이 아니야.” 작은 언니가 모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적어봐라.”
나는 아직 며칠이 남아있는 달력을 찢었다. 찢겨진 며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잔돈 몇 푼과 같다. 요즘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그랬다.
“언니, 커피도 한 잔 타.”
큰 언니가 나에게 얼른 시키는 대로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저게 자기만 죽나.’
얼마나 인간이 이기적인지. 깍듯하게 언니 대접 받아왔던 습관이 깨지자, 동생의 죽음이 화두인 이 상황에, 자존심이 꿈틀대다니 말이다.
“샌드위치라도 만들까?”
부끄럼을 숨기기 위해, 동생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그럴래? 그럼 양배추 썰어 넣고 계란에 풀어서, 왜있지? 우리 한국 갔을 때 명동거리에서 먹었던 샌드위치? 그거랑 똑같이 해. 버터 듬뿍 넣어 빵 구워.”
끝까지 명령조였다. 그래도 동생의 주문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동생이 원하는 맛을 살리기 위해, 이년 전, 거센 늦가을 바람 속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던 억센 여인의 손을 떠올렸다.
그녀의 손이 어디로 갔었는지, 무엇이 들려졌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그 때 동생은,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두 개를 먹어치웠었다.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같은 재료로, 같은 맛을 낼 수 없다는 것. 그건, 수 십 년을 살아왔음에도, 매번 허우적거려야하는 안타까움과 같았다.
이것이 동생에게 해주는 마지막 음식? 자꾸 불경스럽게 앞서 나가는 생각을 잘라내기 위해, 채썰어야 하는 양배추를, 잔인할 만큼 토막내고야 말았다.
결코 위로되지 못할 말과 표정으로, 죄인처럼 동생 앞에 있지 않고, 각자 어디론가 숨어들어, 마음껏 통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막내가 커다란 달력 위에 힘있게 써내려가는 의미 없는 단어들을, 언니들은 심각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지 마.” 동생이 명령했다. 재빨리, 작은 언니는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고, 큰 언니는 카펫 위에 떨어진 먼지들을 집어 올렸다.
가끔 고개를 들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생의 눈은, 죽음으로의 여행에 대한 호기심까지 담고 있는 듯 반짝거렸다.
사인분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질 때까지도, 동생의 쓰기는 끝나지 않았다.
샌드위치가 동생 앞에 내려져도, 쓰기는 계속됐다. 동생은 두껍고 약간은 번질거리는 희고 넓은 지면에서, 많이 채울 수 있다는 넉넉함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막내는 하고 싶은 일, 즉 행동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기록으로만 남기려는 듯, 작은 기울어짐도 없는 고딕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가고 있었다.
커피향기는 온기를 쫓아 우리를 벗어나고, 버터가 빵의 숨구멍을 완전히 막았을 때, 막내의 기록은 멈췄다.
막내가 샌드위치를 빨리 입 속으로 집어넣어 주기를, 나는 조바심으로 기다렸다. 식게 되면 막내가 원하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인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던 이유가, 갓 후라이팬에서 집어 올려진 데 있다는 사실을 막내는 기억하지 못할 거며, 더구나 이미 자신의 미각이 슬픔과 좌절로 인해 유기되었다는 것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쓰기를 멈춘 막내가, 한 손에는 빼곡히 채워진 달력을, 다른 손에는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샌드위치의 모양이 어떤지, 양배추가 어떻게 썰려졌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비로소 두 언니도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언니, 그 맛이 아니잖아. 그렇게 간단한 것도 못 만들어?”
한 입 깨어문 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식어서….”
“그만둬. 언니는 항상 변명이야. 자신이 잘못한 거는 하나도 없어. 설탕을 약간 뿌려야지.”
“설탕이 들어갔었나?”
“그래 셋째야, 그때 그 아줌마는 설탕을 약간 집어넣더라.”
큰 언니가 더 이상의 말의 번짐을 막기 위해 동생 편을 들었다.
“못 먹겠네. 맛이 없어. 커피가 식었네. 따뜻한 걸로 갔다 줘.”
작은 언니가 다시 일어나려는 나를 주저앉히고, 부엌으로 갔다.
그렇게 심통을 부려서라도, 정신을 허물어뜨리지 말아주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뭐 다른 것 먹고 싶은 것 없니?” 작은 언니가 냉장고를 열며 막내에게 물었다.
“글쎄, 아주 맵게 떡볶이가 먹고 싶긴 한데. 떡이 없어.”
큰 언니가 다시 일어나려는 나의 무릎을 내려 누르고, 자신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사러 가게?” 막내가 태연스럽게 ‘사러 갔다 와’ 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맛있게 해줄게. 오뎅도 넣을까?”
“마음대로.”
큰 언니는 무릎을 완전히 펴지도 못한 채, 절뚝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는 큰 언니를 도망시켰다.
작은 언니가 커피를 들고 동생 앞에 앉았다. 동생이 한 모금의 커피를 입에 담고, 종이를 작은 언니에게 내밀었다.
한참을 읽어 내려간 후,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미친년’이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막내가 종이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았다.
“자 읽어봐 네 동생의 소망사항.”
빼곡한 글씨 뒷면은, 뭉크의 ‘절규’였다. 작은 언니는 자신의 비명을 들으라는 건지, 아니면 동생의 비명을 들으라는 건지, 그림 쪽을 내게 내밀었다.
‘눈도 좋지 않은 큰 언니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이제, 삶보다 죽음과 더 가까운 동생이 갑자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니 나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1. 남은 내 인생만 생각하기. (이것엔 세 줄의 검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2. 내가 벌어 논 돈, 내가 다 쓰고 가기.
3. 사고 싶었는데 비싸서 못 샀던 것들, 기억해내서 사기.
4. 다른 남자와 적어도 열 번 섹스하기.
5. 카지노에 가서, 행운에 목매지 말고, 무조건 질러보기
6. 개고기 먹어보기
7. 낚시 해보기.
8. 유럽 가는 크루즈 간판 위 달빛 아래서, 왈츠 추기.
9.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 내려다보기.
10. 정민 엄마 뺨때리기
11. 세 언니 부려먹기
12. 꿔준 돈 모두 받아내기 (언니들 포함).
13. 아이들과 정 떼기.
14. 바이올린 배워 한 곡이라도 연주하기.
.
.
.
30. 죽는 날, 내가 정하기.
“너 지금 장난하니? 셋째야, 우리 괜히 벌벌 떨었나봐 애 앞에서.”
“장난이라니?” 동생이 발끈했다.
“삼십년 두고 해도 될 일을, 몇 달, 아니 며칠 만에 해치워야 될지도 모르는데, 장난 이라니?”
장난은 아니다. 심각하면 어김없이 왼쪽눈썹 끝이 샐쭉 올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유난히 진하고 숱이 많은 막내 눈썹은, 약간만 모양이 변해도 금방 표시가 났다.
“써 놓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도 많았어. 제대로 해 본 것도 없고.”
이제, 삶보다 죽음과 더 가까운 동생이, 갑자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나한테 꿔간 돈들 모두 내놔야해. 그래야 빨리 정리될 수 있거든.”
동트기 전 겨울 하늘의 단정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막내가 말했다.
“언니들은 나보고 돈, 돈, 돈, 한다고 핀잔했지, 그러면서 많지도 않은 푼돈을 언제나 나에게 꿔갔고. 나는 그 푼돈을 언니들에게 꿔 줄 때마다, 잔돈 부스러기 같은 언니들 인생이 서러워 울었어. 어쩌면 나는, 언니들에게 돈을 꿔주기 위해 악착같이 쓰지 않고 모았는지도 몰라.
얼마 모이면 언니들 어디 데리고 가야지, 무엇을 사줘야지, 어떻게 하면 언니들이 행복할까? 아비 없는 내 자식들보다 더 신경을 썼어. 믿던지 말던지.”
언니들 속에 묻혀 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죽기 전에 찾고 싶은 것이었을까. 막내는 어제의 막내가 아니었다. 막내 입에 담길 말들 또한 아니다.
“그래, 그래.”
작은 언니는 동생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며, 힘겹게 큰 언니의 자리를 대신했다. 평심을 깨고라도 우리들 속에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막내의 처연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도 큰 언니는 오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제일 먼저 수선을 피웠어야할 막내는, 한 번도 큰 언니를 들먹이지 않았다. 도리어 걱정을 하는 우리를 향해, 눈으로 핀잔을 건넸다.
‘자, 나를 걱정해줘. 가슴이 찢어지도록 나를 걱정해야 돼.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각자의 머릿속엔 나만 존재해야 돼. 언니들은 당연히 그래야 돼.’
그러기를 동생은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놓고 큰언니를 걱정하지 못했다.
얼굴과는 반대로, 두 귀는 문 쪽을 향해 활짝 열려, 바람에 농락당하는 나뭇잎 소리까지 끌어들였다.
“그래, 이것을 모두 너 혼자 해볼래?”
“어떻게 나 혼자 해. 언니들이 함께 해야지. 당연한 것 아니야?”
“음, 그럼 남자와 섹스 하는 것, 이거는?”
“언니.”
동생은 종이를 집어던지며 소리 질렀다.
“기껏 죽음 앞에서 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건가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것아.”
그 때 큰 언니가 발로 문을 밀며 들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지, 숱도 없는 파마머리가 수십 마리 새들이라도 품을 듯 부풀어 있었고, 노안의 눈을 얼마나 부릅떴는지, 흰자위에 붉은 수채와 물감이라도 엎질러 놓은듯했다.
언니는, 넘치는 슬픔을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는지, 손가락마다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재빨리 뛰어나가, 대중없는 언니를 나무라며,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옮겼어야 할 막내는, 큰 언니를 힐끗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자신의 글을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그 넓은 매장을 돌아쳤을 것을 생각하니, 울컥 설움이 솟아올랐다.
“막내가 좋아하는 것 전부 사오느라 늦었어.”
비닐봉지 안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나는 막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막내가 저렇듯 써내려가지 않았다면, 그 애의 상처가 무엇인지, 무엇에 갈급해하는지, 알 수 있었을까. 봉지 안에서 꺼내진 물건들은, 언니에게서 빠져나온 슬픔을 나에게 집어넣고 있었다.
“언니, 마켓 청소해주고 왔어?”
농담이라 느낄 수 없는 말투로 작은 언니가 물었다. 우리의 말은 답답하고 찐득한 슬픔이 점령하고 있었다.
큰 언니는 대꾸 없이 막내에게 미소 지은 후,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시래기처럼 바싹 마른 입술은, 오가며 얼마나 울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언니 계란도 넣어줘.”
언니의 부스스하고 안정되지 못한 행동에, 작은 보상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그로 인해 더 심통이 난건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가 부엌으로 날아왔다.
“왜? 이왕이면 라면도 넣어 달라지.”
작은 언니 또한, 동생의 행위를 비꼬는 건지, 아니면 맛을 더하기 위한 팁을 주려는 건지, 애매모호한 어감을 부엌으로 던졌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은, 도리어 인간들을 단순하게 만든다. 오로지 그 충격으로 인한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동생=죽음’ 에 대한 충격이 없었다. 다만 죽음에 통상적으로 따라다니는 슬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말에, 자신을 베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큰 언니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가슴 높이의 칸막이로 거실과 구분되어졌기 때문에, 동생의 미세한 표정까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바깥바람을 털어내지 못한 언니의 손에서 떡을 뺐고, 엉덩이로 큰언니의 허리춤을 밀어, 거실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언니의 허리춤을 세차게 밀었다.
떡을 내려놓은 언니가 냉장고 문을 열려고 했다. 나는 얼른 냉장고 손잡이를 먼저 점령했다. 그리고 내가 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기위해 고개를 끄덕였고, 떠나길 명령하며, 세차게 거실 쪽으로 머리를 휘저었다.
인간에게 차라리 언어가 없었다면, 지구 곳곳이 이렇듯 성이 나 있지 않을 거란 생각이, 순간 들었다.
감정의 바닥까지 긁어내 언어로 만들어내면서도, 인간들은 아쉬워하고, 답답해하고, 억울해하며, 소금 뿌려진 지렁이처럼 온몸을 뒤틀고 있지 않는가.
마지못해 거실로 향하는 언니의 얼굴은, 초생달보다 창백하고 여렸다.
지금 이 집안에 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막내 뿐이었다.
“내가 박하고 결혼하려고 했을 때, 언니들이 막았어야 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파에 않기 위해 엉덩이를 낮추는 큰언니를 향해, 막내는 불판이라도 밀어넣듯 말했다. 큰 언니는 재빨리 엉덩이를 다시 세우고, 얼굴을 창 밖으로 돌렸다.
“어린 내가 사람을 알아야 얼마나 알았겠어. 나보다 더 산 언니들이라도 그놈의 인간성을 헤집어 옥석을 가렸어야지. 그저 무조건, 응 응. 귀찮고 짐이 되는 동생, 하루 빨리 남의 어깨에 올려놔버리고 싶었던 거지. 내가 그놈만 만나지 않았었다면, 이런 병도 걸리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놈 때문에 오죽 속을 썩었게. 내가 애들한테 강파르게 구는 것도 그 놈 때문이야.
언니들은 나보고 아이들한테 정스럽지 못하다며 지겹게 말했지? 언니들이 그래야 하는 내 속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려 애쓴 적 있어? 아이들이라면 끔직한 언니들은, 도리어 자신들과는 다르게 태어난 모양이라며, 혀나 찼지.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먹고살기에 급급했더라도, 나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나만이라도 대학을 보내 전문직업인으로 키웠어야지. 언니가 셋이야. 어떻게 셋이 힘을 합쳐 동생 공부 하나 못 가르쳐? 그저 함께 뒹굴자는 사고방식이야. 언니들은 공부를 못했으니까, 공부 잘한 내가 느꼈던 절망감을 알기나 할까?
지혜와 야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했었을 거야. 그렇게 해서, 나를 변호사나 의사로 만들어 신분상승을 노렸어야 해.
도대체 언니들이 트이질 못했어. 숨겨진 먹이는 도대체 찾을 생각도, 노력도 하지 않아. 언니들한테는 보이는 것만이 세상이고, 존재하는 거야. 물론 그것조차 능력이 닿지 않아 이렇게 살지만 말이야.
언니들은 그런 삶을 나한테도 강요했어. 언니랍시고 동생이 설치는 꼴을 절대 보지 못했잖아. 자신들처럼 지지궁상으로 살아라. 운명에 역행 하지 말고, 남편하고 자식에게 희생하며, 때 되면 밥 차리고, 남편을 하늘같이. 이조시대에 태어났어 야 돼, 언니들은.
이게 뭐야? 내놓으라 하는 인맥도 학맥도 없이, 그렇다고 돈도 없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우리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겠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건데, 마냥 우리 타령이겠지.”
“야!”
결국 참다 못한 작은 언니가 소리를 지르자, 큰 언니가 황급히 몸을 돌려 가로막았다.
나에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은 척했다. 나는 동생 입맛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떡볶이를 만들 뿐이다.
“언니들은 항상 나를 끌고 다녔어. 목줄 맨 강아지처럼. 언니들과 떨어져 내 시간, 내 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어. 그러면 언니들이 슬퍼하니까. 지겨워 그 처량한 얼굴들.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밤마다 다짐하지만, 날이 밝으면 다시 언니들과 섞여버려. 일대 삼이잖아.
똑똑한 언니들 같으면 싹수가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박 서방과의 관계도 일찍 정리해줬어야지. 내가 그만 살고 싶다는데, 나한테 대단한 허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치더니, 결국 시간만 낭비하고, 서로 저주까지 퍼부으면서 헤어졌잖아. 헤어진 후에는 또 어떻고? 새 생활을 찾게 돕기는커녕, 자신들 손에 있는 목줄을 더 잡아당겼지?
애당초 이민오기 싫다는 나를, 혼자 놔둘 수 없다며 끌고 오고, 애 낳고 싶지 않다는 내게 애 낳는 한약이나 들이대고.
언니들은 태어난 환경에서 벗어나려거나, 그 환경을 증오하는 대신,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철저히 인생을 그 속에 끼워 넣은 거야. 나는 싫은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언니들은 내 팔과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잖아.
내가 언니들 앞에 순종해야만 언니들은 웃고 행복해 했어.
"자, 눈물부터 그렇게 쏟아내 봐 안으로 삼키지 말고. 다 토해내"
남편한테 순종해라. 아이들한테 희생해라. 먹지도 사지도 말고 아껴라. 화장 진하게 하지마라. 정숙하게 행동해라.
정말 지겨워. 물귀신들처럼 나를 잡아끌었어.
아마 언니들이 없었으면,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 쟁반에 구슬 구르듯 그렇게 살았을 거야.
그랬다면, 지금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문구들을 써내려가지 않아도 됐겠지.”
동생을 부모 대신 키워온 큰 언니의 어깨가 쉼 없이 들썩거렸다.
고작 십년의 세월을 먼저 산 것 뿐인데, 언니의 어깨에 지어진 짐은 너무 무겁고 잔인했다.
언젠가 언니가 말했다.
“바람이 불어, 아주 세찬 바람이 말이야. 나를 산산 조각내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 바람의 힘을 빌리면, 나도 가볍게 날아 갈 수 있을까?”
사그라지는 햇빛을 받으며, 내장이 전부 날아가 버린 듯 서있는 큰언니가,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투명해보였다.
혼자서는 설수 없었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합침만큼 불행도 비껴가려니 믿었다. 그래서 각자의 정체성은 희생되어져야 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데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힘을 합쳤다.
우리가 안정이라며 둘러친 울타리 밖으로, 막내를 나가지 못하게 했고, 누구도 막내의 손을 붙잡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사랑이고 보호며, 우리들의 의무라고 믿었다.
“언니들이 죽은 후, 남은 인생 내 멋대로 살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내가 먼저 죽어야 되잖아.
아니, 어떻게 이혼한 동생을 칠년 동안 혼자 살게 놔 둘 수가 있어? 자기들은 믿던 곱던 남편이 있으니 외롭지 않겠지. 자신들한테 싫증나고 귀찮은 남편이라고, 나또한 그러리라 생각한 거야? 그런 이기주의적인 사랑이 어디 있어?
내가 언니들하고 있으면, 행복과 안정을 얻는다고 믿은 거야, 안 그래?
천만에, 언니들 사랑은 가짜야. 아주 질 나쁜 모조품이었다고.
자기들 설움에 나를 옭아매고, 자기들 행복에 나를 승차시키고, 자기들 감정 뒤치다꺼리나 하게 하고.
내가 왜 암에 걸렸겠어? 그렇게 행복한 동생이 말이야. 언니들 동생이 아닌, 여인으로 나를 봐 준적 있어? 없을 걸,”
결국 큰 언니는 버티지 못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센 불에 보글거리며 끓고 있는 떡볶이는, 어느 영화가 그려낸 지옥의 불구덩이 같았다, 나는 불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일은 절대로 빗겨가는 일 없고, 좋은 일은 번번이 슬쩍 지나쳐버렸던, 우리의 인생으로 본다면, 이번 막내의 암 선고를, 이웃집 이름 모를 여인의 불행 쯤으로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죽음을 사실화시켜, 저렇듯 억울함을 호소하는 막내를 보며, 더 이상 투정이라 밀쳐놓을 수 없었다.
“나도 저 나무들처럼 다 떨어내버리고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가벼울까?”
창쪽으로 돌아 앉아 동생의 하소연을 듣던 작은 언니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파를 썰어 넣고, 가장 화려한 접시를 찾아 떡볶이를 올려놓았다.
통깨를 뿌리고,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폈다.
동생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동생은 떡볶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전원이 나간 텔레비전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생은 검은 화면 속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화면 안에서 동생의 표정과 마주쳤다.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얼른 동생을 외면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떡볶이는, 갓 봉우리를 열기 시작한 순한 장미색을 버리고, 썩은 핏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도록 동생은 포크를 집지 않았다.
나 또한 동생이 고맙고 맛있게 떡볶이를 먹어 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떡을 사러간 큰 언니나, 그것을 만든 나나, 모두 동생의 아픔에 대한 속죄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그렇게 말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입 언저리에 붙어 있는 종기딱지를 세차게 잡아 뜯었다. 선홍색 피가 뚝, 하얀 카펫트 위에 떨어졌다.
“언니 피나잖아? 카펫트에. 어머머 지워지지도 않는데.”
동생은 민첩하게 걸레와 락스를 가져와, 필요 이상의 힘을 주며, 한 방울의 피를 제거했다.
“도대체 내 소리는 누가 듣고 있는 거야? 모두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어? 어떻게 자신의 몸에 난 딱지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있으며, 창밖 풍경을 눈에 넣을 수 있는 거야? 정말 끝까지 이기적이야. 내가 이런 언니들을 위해, 서커스단의 아기 곰처럼 재롱을 떨고 산 거야.”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손가락으로 내 몸에서 탈출하려는 또 다른 피를, 힘주어 막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울어야했다. 나는 울었다.
눈물이 되어 쏟아져야 할 슬픔을, 억지와 심통으로 풀어내려는 동생의 입을 막아야했다.
아니, 그것은 나의 울음이 이미 터지고 난 후, 떠오른 생각이였다.
큰 언니가 울었고, 이어 작은 언니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내의 눈은 도리어 기다렸던 먹이감이라도 포착한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수십 년 세월만큼 깊어진 막내와의 감정의 골은, 끝도 없는 평행선이 되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니들 동생이었어? 스스로들 생각해봐. 큰 언니는 언제나 서럽고 슬픈 모습을 들이대며, 자신을 동정하라고 명령했어.
작은 언닌 ‘욕망의 전차’에 나오는 불랑쉬처럼, 불안과 허세로 항상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 서 있었고, 셋째 언니는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에 포박당해, 현실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잖아.
나는? 언니들 말해봐. 나는 언니들에게 어떤 동생이었어? 나를 보호했다는 말은 하지마. 나는 단연코 언니들에게 보호받은 것 없어.
나는 인생과 투쟁해보지도 않고 지쳐버린 언니들을 위해, 노래하고 춤췄어.
내 생활은 언제나 뒷전이고, 언니들이 부르면 달려가고, 언니들이 부르지 않아도 달려가야 했어. 그래서 나에겐 남편이 있으면 안됐지. 언니들은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이혼 후, 나에게 남자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와야 하거든.
내가 언니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했던 것 같아? 천만해, 나는 언제나 허전했어. 너무 허전해서 밤에 울기까지 했어.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 주지? 누구한테 내 가슴 속을 들여다 봐 달라고 하나. 어째서 자신들의 불행은 힘들어하면서, 동생의 불행은 보지 못하나, 하면서.
나는 언니들 때문에 친구도 없어. 친구 사귈 시간이 있었어야지.
자, 이제 내가 죽을지 몰라. 아니, 죽을 거야. 그러면 언니들은 어떻게 할까?
큰 언니는 자기 탓이라고, 그 탓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울어대겠지? 지금도 아마 쉼없이 마음 속으로 울고 있을 거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까지 끄집어 올리면서.
작은 언니는 더 불안해하겠지. 손은 더 떨리고,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지겠지. 화장은 더 진해져 화장하는 시간이 늘어날 거고, 수시로 쇼핑몰을 돌며 사지도 못할 것들을 기웃거리다, 그것들을 거친 욕망으로 만들어 가슴속에 집어넣겠지. 언니는 관에 누워있는 나와 마지막 작별 인사할 때에도, 그 화장을 지우지 않을 거야.
셋째 언닌? 제일 문제가 언니야. 언니는 칩거하겠지. 자신의 인생도 다 살지 못했으면서, 지구상의 모든 인생을 허무하다, 싸잡아 슬퍼하겠지.
허무는 허무를 낳고, 결국엔 그 허무가 인생을 어둠 속으로 끌고 내려가, 파멸시키는데 말이야. 그까짓 글 나부랭이로, 어떻게 땀 흘리는 사람들의 진실된 하루를 표현할 수가 있다구.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려봐. 개미행렬 같은 전조등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져. 다시, 어둠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 차 위에 무엇이 올려져있을 것 같아? 하루 양식인 빵 한 조각.
그 빵 조각이 의미하는 게 뭔지 알아. 단지 위장만 채워주는 탄수화물 같아? 아니야, 그 빵은 희망이고 정열이고 투쟁이야. 살아가는 이유인 거지.
언닌 이 때가 기회다 싶겠지. 언니의 허무주의를 증거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니까. 살아보려고 애쓰던 어린 동생이, 속절없이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흔적조차 없이 소멸된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부질없다고 단정짓겠지.
내가 마음 편히 죽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들이야. 언니들은 나를 편히 죽지도 못하게 하잖아.”
죽음이, 가슴 바닥까지 긁어낼 수 있는 용기를 준걸까.
우린, 어쩌면 이토록 동생에게 낱낱이 해부되었을까.
소위 글을 쓴다는 나는, 어째서 도를 넘고 있는 동생의 감정을 잘라 낼 수 있는, 말 한 마디 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글로는 수도 없이 죽고, 수 천 년 살아온 듯 멋을 부리고. 인생살이에 도통한 사람처럼 온갖 척을 다했으면서 말이다. 나는 너무 답답해 가슴을 쥐어 잡고 끙끙거렸다.
동생이 갑자기 일어나, 나의 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울어, 울란 말이야. 그렇게 말고 엉엉 소리 내서. 언니가 우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야. 언니는 한 번 쯤 이렇게 울고 싶었어. 도대체 지성적으로 보여지길 바라는 이유가 뭐야? 그게 세상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데? 돈 없는 사람은 감정에 충실해야 편한거야. 언니가 그랬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사람들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다고.
자, 눈물부터 그렇게 쏟아내 봐, 안으로 삼키지 말고. 다 토해내.”
동생은 다시 한 번 세차게 등을 내려쳤다.
엉엉엉, 건전지를 집어넣은 것처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안해, 미안해, 너를 힘들게 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 불안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 만들어 낸 가식적인 나를, 문학으로 포장해 거리에 내놓고, 누군가 쳐다봐주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밀랍인형 같은 나.
동생은 세상에 보여 지지 못하는 나의 글이, 나의 목을 조이고, 나의 삶을 황폐화 시킨다고 말했다. 숨길 글이라면 도대체 쓰는 이유가 뭐냐며, 종 주먹을 들이대기도 했다.
그 말들이, 무수한 아픔 속에서 잉태되어 나온 말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오래된 무성영화가 끝도 없이 내 머릿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자신이 찔러 터트려버린 나의 눈물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 언니가 무릎을 힘겹게 끌고 내게로 와, 함께 울기 시작했다.
“다, 내 잘못이야. 너희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내가 똑똑했다면, 너희 가슴에 접혀진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도록….”
이제와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언니는 말을 삼켰다.
“너희들을 의지하면 안됐는데, 너희들 보다 강해져, 힘차게 끌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나약함이 동생들 인생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에, 큰 언니는 슬퍼했다.
“그래, 큰 언니도 울어. 단 한 번도 촉촉함을 느낄 수 없는 언니 얼굴, 자신이 살아온 희생적인 삶을 세상이 알아주길 애원하는 그 비루한 모습, 동생들에게 줬으면 그만이지, 그 시간들을 보상해내라는 듯, 확인하고 확인하는 언니.
그래서 우리가 항상 언니 앞에서 죄인이 되어야하는 거지같은 기분. 큰 언니 알아?
나에겐 24시간이 짧았어. 나에게만은 48시간이 하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니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웃을 수 있게 재롱을 떨었으면 좋겠다.
누가 알까, 동네방네에 알려진 우리 사랑이, 이렇게 고통의 덩어리라는 걸”
정수리 한가운데 무리지어 솟아오른 흰머리가, 사그라지는 언니 몸의 무언가를, 사악하게 빨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니? 듣자듣자 하니까 얘가 끝이 없네.”
작은 언니가 끼어들었다. 참 오래 참고 있었다. 동생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잠깐씩 작은 언니를 훔쳐보며, 말을 이어나갔었다.
진하게 바른 마스카라는 작은 볼을 점령했고, 유난히 앙상한 두 손은, 존재만으로도 버겁다는 듯, 연거푸 떨고 있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공통된 설움 앞에서, 작은 언니의 천방지축 감정은 아직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작은 언니는 접시에 떡을 하나 건져 올려놓고, 포크로 잘게 토막을 내는 것으로, 분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쥐색에 은빛이 묻어나는 브라우스 칼라가 형광등에 반사되어, 빼곡히 자리 잡은 목주름을 잔인하게 비추고 있었다.
말을 던진 작은 언니가, 이제 내 차례이니 해보라는 듯이, 동생을 향해 저돌적인 고개짓을 던졌다.
잠깐 숨을 고른 동생이, 자세를 바꿔 앉으며 공격태세를 갖췄다.
“언니는 그 화장 좀 지워. 절대 못 지우지? 동생 죽음과도 바꾸지 못 할 거야. 언니 화장은 언니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니까.
언니 알아? 그 화려한 화장이, 큰 언니 후줄근한 것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 왜 맨 얼굴로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해? 언니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왜 허전한 마음 가리려고, 예쁜 얼굴에 가면 쓰고 다녀야 되는데?
그런다고 가려져? 천만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거든.”
“또, 내화장이 문제니? 내버려두라고 했지?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 해라. 응?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뭐 어쩌라고. 화장 안하던 사람도, 관 속에 들어갈 때 화장하는 것, 너 모르니? 마지막 가는 길, 화장하고 가잖아, 나는 매일 죽는 날을 기다리는 거야.
너, 죽는 것 그것 아무 것도 아니야. 너무 위세 떨지 마라. 나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니,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너무 확실하니까, 일상 속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 뿐이지. 살기만도 정신이 없는데.”
“언니!”
큰 언니와는 달리, 자신의 공격을 가벼이 받아치는 언니를 향해, 막내는 앙칼지게 소리질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동문서답이야 지금? 언니의 그 도가 지나친 화장은, 다른 사람들 화장과는 의도가 다르잖아. 언니는 얼굴에다, 설움, 불안, 욕망, 조급함, 그런 것들을 범벅으로 칠한 거잖아.”
“너, 너무 비약한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만해라.”
그래도 설움만 삼키는 큰 언니와는 달리, 작은 언니답게 막내의 말끝마다 딴지를 걸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니화장에 대해 말한 적 있어? 사실 매일 하고 싶었지. 어떤 때에는 락스를 갔다가 언니 얼굴을 싹싹 문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죽음을 목에 건 자의 특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 전부 할 거야.
죽고 나서 할 말 못해, 귀신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보단 낫잖아?”
“그래, 귀신으로 나타나지 말고 할 말 다 하고 가라.”
비로소 떡볶이가 눈에 들어왔는지, 막내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포크가 떡을 찌르기 전에, 내 눈이 먼저 떡에 닿았다. 떡볶이는 내버려진 것에 대한 원망처럼, 마른 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동생은 한 번에 막을 걷어내더니, 가지런히 정돈된 떡을 사정없이 흐트러트린 뒤, 포크를 떡 사이에 밀어 던졌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나 죽는 날을 시점으로, 화장을 지워. 언니 얼굴이 저 찬란한 태양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마스카라도 칠하지 말고, 늙은 산딸기 맆스틱도 칠하지 말고, 코 양 옆에 기둥도 세우지마. 한 번 그렇게 해봐.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나. 궁금하지 않아?”
누렇고 둥근 보름달이 음흉스럽게 거실 안을 드려다 보고 있었다.
창백한 초생 달이었으면, 우리가 좀더 이성적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울음을 끝낸 후, 나는 보름달을 피해 부엌으로 갔다.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애처로운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엌으로 오자, 동생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위장이 채워지면 좀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혹여 더 하고 싶은 말이, 부질없다 느껴지지 않을까, 무엇이 먹고 싶을까. 이 순간 동생이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나는 모르는 것일까.
나는 두 손을 성경책 위에 올려놓듯, 커피포트에 올려놓고,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언니, 커피 타려구.”
“응” 나는 반가움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리, 다방커피 타먹자. 아주 진하게, 커피도 많이 넣고, 프림도, 설탕도, 듬뿍듬뿍”
“그래”
‘듬뿍듬뿍’ 이란 단어에 동생은 필요 이상의 액센트를 집어넣었다.
우리 네 자매의 삶에는 ‘듬뿍듬뿍’ 이란 없었다. 바닥에 흩어진 볍씨를 긁어모으듯, 그렇게 살았다.
노력과 수고만큼, ‘듬뿍듬뿍’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우리도 예외 없이, 궁핍이란 단어를 삶 속에 박음질한 채 살아오고 있었다. ‘듬뿍듬뿍’이란 단어에서 이토록 다정스럽고 풍요로움이 흘러나오는지,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능력있는 여자와 결혼 시킬 거야. 살림 잘하는 것, 나는 원하지 않아.
아이들? 내가 키워 줄 거야. 현모양처의 기준이 달라졌어.
"살려 주세요. 우리 언니들 모두 보낸 후 나를 데려가세요"
옛날 초등학교 책에 나오는 영희는 더 이상 이 시대에 없어. 만약 있다면, 그영희는 무능한 거야.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돈 없으면 행복을 지킬 수 없어. 이 시대는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대거든. 욕망이 뭐야,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 더 멋있는, 더 행복한 것을 추구하는 거잖아.
옛날에는 비교할 수 있는 행복의 기준이 적었지. 하지만 요즘은 어때? 모든 상품가치나 삶의 질이 돈에 의해 정해지잖아. 옛날에는 제주도지만, 지금은 하와이로, 티코에서 벤즈로, TV는 어떻고 돈에 따라 선명함의 차이란, 옛날에는 차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핸드폰이 있었나, 여행? 고작 내 나라였지. 교육은 어떻고, 한글이나 한문이면 됐지. 예능교육? 절대적 교육은 아니였지.
돈에 노예가 됐다고 어떻게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
얼마 전에, TV에 나온 젊은 여자연예인은, 상대 남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 남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래. 얼마나 솔직한 거야.”
막내가 영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도, 역시 우리들이 있었다. 무능한 영희들인 우리를 더 이상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능한 형부들을 내치고 힘차게 삶을 개척하기는커녕, 도리어 동정과 연민으로 붙들어 매고, 웰빙과 여행과 여가가 화두가 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 그 끝자락도 붙들지 못하고 사는 언니들의 삶에, 더 이상 그 어떤 동정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무능한 언니들 누가 지키라고, 우리 언니들 누가 웃게 하고, 누가 데리고 다녀? 안돼, 나는 절대 죽을 수 없어. 죽기 싫어. 살려 주세요. 우리 언니들 모두 보낸 후, 나를 데려가세요.’
동생은 지금,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 중이였다.
나는 커다랗고 새하얀 머그잔에, 넘칠 만큼 커피를 담아 동생에게 내밀었다.
“음, 맛있어.”
“어디 봐.”
작은 언니가 동생의 커피를 빼앗아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 나도 한 잔 타줄래?”
“큰 언니는?”
“나는 밤에 커피 못 마시잖아.”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것조차 무능하다는 듯이, 큰 언니가 구슬프게 말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더 타서 작은 언니에게 건넸다. 언니 입술에 묻어있는 붉은 맆스틱이 하얀 머그잔에 옮겨졌다. 그래도 언니의 작은 입술은 여전히 붉었다.
떡볶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려는 나를, 막내가 주저앉혔다. 나에게 건너올 말이 남아있다는 듯이 숨을 골랐다. 이미 거실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 만들어낸 횡포만 있을 뿐이었다.
“언닌, 말을 해.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큰 언니 넉두리나, 작은 언니 진한 화장처럼이라도. 언니 글쓰기는, 언니를 외지고 어두운 곳에 고립시키고 있어. 언니를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긴 커녕, 언니가 쓴 소설 속 주인공에 갇혀, 현실과는 자꾸 담을 쌓고 있잖아. 언니 소설 주인공들은 현실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야, 다 정신병자야. 그런 사람들과 살고 있으니, 현실이 두렵고 무섭지.
그리고 썼으면 세상에 내보내야지.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갖가지 공모전에도 보내보고, 정성 들여 가꾼 언니자식을, 세상에 내보내야 성장할 거 아니야. 맞고, 터지고, 짓밟히더라도, 그 이유를 알아야 발전이 있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자신의 글이, 자신의 숨통을 틀어쥐는 거지. 그리고 언니는 너무 고상해. 그래서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내가 그런데 남들은 어떻겠어? 언니 앞에선 춤도 못 추겠고, 섹스 이야기나, 저질스런 농담도 못하겠어. 언니와 대화를 하려면 미리 말을 정돈시켜야 돼.
그 말은, 언니 가슴에 철퍼덕하고 안길 수 없다는 말이야. 그러면 언니가 외롭게 세상을 살아야 돼.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 누가 복잡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겠어. 그러니 적당히 풀어놓고 살아.
칭찬할 것도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방법이, 현실과는 맞지 않아.”
나를 이제껏 지탱하고 있던 동아줄이 맥없이 올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질 몇 초의 순간만 기다리면 된다. 차라리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보이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포장하고 포장해 논 나의 정체성이, 막내에 의해 한 순간에 발가벗겨진 것이다.
비록 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없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으로, 남과는 다른 사람으로 비쳐지길 원했다. 그것마저 없다면, 평범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쓴 글마다 동생에게 내밀었는지도 모른다. 막내가 나를 차별화시켜 주고, 막내의 입을 통해 주변사람들이 차별화시키도록 말이다.
나는 웃었다. 웃지 않고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도 죽고 싶다. 저 계집애보다 먼저 죽고 싶다.’
끈끈이에 유인된 파리처럼 허우적대는 언니들의 모습, 그것이 막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큰 언니와 작은 언니의 성난 표정이 막내를 쏘아보고 있었다. 분위기에 전혀 맞지 않는 나의 웃음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죽음으로 무장한 특권이라도, 심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막내가 두 언니의 눈길을 피했다.
“역시 너는 섬세하고 똑똑해.”
웃음을 멈추고, 두 언니의 시선을 막내에게서 거두기 위해, 나는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나의 감정을 숨기는 일, 그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아, 배고프다. 우리 뭐 먹을까?” 막내가 만족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막내의 식욕을 반기며, 큰 언니가 재빨리 일어섰다.
“새우 사왔는데 볶음밥해 줄까?”
“좋아 맛있게 만들어줘. 우리 밥 먹고 다시 의논하자.”
우리는 동생 말에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보았다. 창밖, 사라진 보름달이 동생 얼굴위로 옮겨 앉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볶음밥을 탐스럽게 먹고, 파인애플로 후식까지 끝낸 동생은, “그까짓 12월 달 달력도 뜯어. 이리 줘. 달력이 무슨 소용 있어. 어차피 경계선이 무너져 버린 시간에 살고 있는데” 하며 볼펜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며 부엌으로 몸을 피했다.
“언니들 다 이리와 앉아. 설거지가 뭐가 그렇게 급해? 나 죽은 다음에 해도, 언니들에겐 시간이 남아돌잖아.”
동생이 더 세차게 우리의 목줄을 잡아끌기 전에, 순순히 동생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도대체 세상 사는데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소용인가.
동생은 하얀 종이 위에 ‘경비’ 라고 썼다. 뒷면에는 20세기 천재화가 달리가 애증으로 그려낸 프로이트의 초상화가, 죽어있는 시체를 일으켜 앉혀 논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생의 감정이 불안했기 때문에, 셋은 숨죽이고 동생이 써내려갈 다음 활자를 기다렸다.
‘비행기표, 호텔비, 교통비 음식값….’
아! 여행을 가려나 보구나. 신상 공격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감지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라. 어디든 갔다 와라. 사채를 끌어서라도, 너의 여행은 호화스럽게 보내주마. 그렇게 속죄할 양이었다.
“자 언니들, 우리 어디로 갈까?”
“우리도?”
“우리도? 그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생을 혼자 보내려고? 정말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아니, 아니, 우리도 가야지.” 큰 언니가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언니! 직장은 어쩌고?” 큰 언니의 현실을 작은 언니가 일깨웠다.
“언니! 지금 직장이 문제야? 평생 다녀 지금 떼부자 됐어? 행복해?
우리가 한 달 여행 떠난다고, 길에 나 앉지 않아. 다들 직장 그만둬. 내일 병원 결과 보고 바로 떠날 거야.
어디 가고 싶은지 말들 해봐. 나는 한국은 싫어, 너무 가고 싶지만, 이런 기분으론 가면 안돼. 추억이라곤 모조리 처량한 것들이라, 기분을 도리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새로운 곳으로 가자, 멋진 곳으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곳으로.
세계 불가사의로 지정된 곳들 1위에서 10위까지 돌아볼까? 그래, 그 앞에서라면 아마 살고 싶은 욕망 따윈, 이슬로도 목이 꺾기는 가냘픈 풀꽃처럼 생각될지도 몰라.
어때 언니들은?”
어차피 동생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조금 나아진 듯한 동생 기분을 지속시키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과장된 흥분을 담아 말했다. “와, 환상적인 계획인데.”
“비용은 모두 내가 댈 거야. 언니들은 한 푼도 안내도 돼. 아, 내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을 그 오랜 세월 한 건지.
톨스토이 작품 중에, 자신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영원히 헤지지 않는 가죽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한 작품, 기억나? 내가 그 짓을 한거야.
노후에 애들한테 손 내밀지 않으려고,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거든. 아무리 쪼들려도 그 돈은 건들이지 않았어. 우리 넷이 여행하기엔 충분한 돈이야.
그러니 우리 생애 처음 호화스러움을 느껴보자.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좋은 호텔에서 묵을 거야. 하루 온 종일 행복해하자. 작은 언닌 화투도 꼭 챙겨야 돼. 셋째 언닌 여행 떠날 때까지 고스톱 배워야 하고.
우선 옷과 신발을 사야겠어. 우리 모두의 옷을.”
아, 이럴 수가! 동생 죽음을 위한 마지막 여행 소나타에, 내 마음이 춤을 추고 있다니.
더군다나 재빨리 어두운 옷장 속을 뒤집고 있으니 말이다.
‘저런 여우같은 것. 그렇게 돈을 짱 박아 놓다니’ 작은 언닌 분명 이렇게 되뇌이고 있을 거란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얼굴은 소낙비에 말끔히 씻긴 동백나무 잎처럼 찬란한 빛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번엔 그 누구도 청승떨지 마. 여행지까지 몸에 밴 궁상을 떨어내지 못하고 온 사람은. 차비도 주지 않고 어딘가에 버리고 올 거야.”
앞서가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유치원생이 된 듯, 우리는 말 잘 듣겠다는 의지를, 의연한 눈빛으로 동생에게 전달했다.
잠시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동생이 모아 둔 돈이 얼마인지 의견을 주고받았고, 대략, 여행 규모로 미루어, 삼만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잠정 결론을 내렸다.
동생의 여행계획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돈은 누구를 위해 모아 두었는지.
어째서 우린 막내 앞에서, 언니이길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동생의 힘이 죽음으로 얻어진 것이며, 우리는 그 힘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끝’ 이 될 수 있는, 그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병원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너무 묵혀 썩기 시작한 진실을 모두 꺼내, 우리에게 내보인 동생의 발걸음이 가벼워서인지, 아니면 어제 하루, 죽음의 공포와 처절하게 싸운 결과 얻게 된, 면역체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한, 여행에 대한 들뜬 기분에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뿔테안경 너머로 우리를 건너다 본 의사는, 자신이 동생을 죽음에서 건져올린 듯,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도, 자궁만 절제하면 별 문제는 없습니다. 전이가 되기 전에 발견된 것을 천행으로 여기십시오. 수술날짜는 다음주 월요일입니다.”
“너, 여행은 가야 돼. 계집애, 시건방지게 언니들이 어떻고 어째? 말 못하다 죽은 귀신이 들어 왔었나.”
“막내는 한 번 말한 건 꼭 지키는 애잖아.”
“자, 우리 옷사러갈까?”
“아직, 더 모아야 돼. 신나게 놀려면 충분치 않아. 누가 어제 뭐라고 했어?”
부서지는 태양 속으로, 겨우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고, 하지만 아주 가볍게, 동생은 뛰어갔다.
어제 하루 동안 쏟아낸 만큼,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어야 된다고 다짐하며, 우리도 동생이 뛰어들어간 빛 속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우리가 빠져나온 어둠의 동굴이 자폭하고 있었다.
<끝>
2009.05.04. 17:12
크리스티 브링클리 법정 공방 "아빠 자격 없다" 맹비난 빌리 조엘의 전 부인인 크리스티 브링클리의 이혼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모델 출신인 브링클리(54.사진)는 건축사인 피터 쿡과 지난 96년 결혼을 했지만 쿡의 외도로 4번째 결혼 생활에 파경을 맞았다. 7일 롱아일랜드에서 열린 2차 이혼 공판에 출두한 브링클리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쿡이 30만달러를 뿌리며 미성년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러 했다고 폭로했다. 또 쿡이 포르노 소지.온라인 섹스 혐의를 밝히며 '아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브링클리는"남편은 생각없는 행동으로 더이상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갈 수 없다"며 "행복한 가정을 파괴한 전 남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 이 커플은 자녀의 양육권을 놓고 또 한번의 마찰이 예상된다. 80년대 수퍼모델로 이름을 날린브링클리는 '피아노 맨' 빌리 조엘과 1985년 결혼한 10년 가까이 '잉꼬부부'로 널리 알려졌으나 94년 파경을 맞았다. 81년 첫 결혼 뒤 한 차례 이혼을 하고 조엘을 만났던 브링클리는 94년에도 재혼했다가 1년만에 헤어졌었다. 정승훈 기자 [email protected]
2008.07.08. 18:41
타운의 한 임상심리 전문가와 얘기를 나누다가 한인 틴에이저 중에 의외로 섹스 중독이 많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여학생이 대부분이란 소리에 충격이 더 했다. 심한 경우 16살 소녀가 수십명과 관계를 맺을 정도라 한다. 더욱 뜻밖의 사실은 이들과 상담을 해보면 그 원인이 '아빠의 외도'인 케이스가 많다는 점이다. 10대의 성문화는 '캐주얼 섹스'다. 말그대로 부담없이 걸쳤다가 벗어 던지는 티셔츠처럼 몇번 만난 다음 기분내키면 망설임없이 성관계를 맺는다. 과거 부모들이 '사랑해요'라고 하는 말이 이들에겐 '우리 섹스하자'와 동급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표현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자는 것을 부추기는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험이 많을수록 또래사이에서는 '여왕'이 될 정도다. 이 틈속에서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 수 밖에 없다. 이 때 부모까지 외도를 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더욱 지탱키 어렵다. 특히 아빠의 바람은 아들보다 딸에겐 더 치명적이다. 더욱 헤어나지 못하게 악화시켜 놓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닌 다른 파트너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들은 엄마를 객관적인 피해자로 본다. 감정적으로 자신을 엄마와 분리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은 자신을 엄마와 동일시 해버린다. 아빠가 배신한 사람은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도' 해당된다. 세상에 태어나 첫 이성 대상인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분노가 오빠나 남동생보다 더 격렬하다. 그래서 반작용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찾아 보이헌팅을 하면서 몸을 내던지는 행위다. 순결해야 할 사춘기 딸이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복수란 생각에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자학적인 성적 문란을 '정신적 자살행위'라 말한다. 그 만큼 아버지의 부도덕성이 딸을 완벽하게 파괴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만연해있는 청소년들의 '프리-섹스(Free-Sex) 문화'에 아빠들의 외도가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러니 딸을 바르게 키워 보려는 부모들로서는 더욱 좌불안석이다. 딸 다섯을 둔 콜로라도의 윌슨씨가 사춘기 딸들이 '성의 범람' 속으로 휩쓸려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 시작한 것이 '아빠와 딸의 순결 운동'이다. 지난 달 콜로라도에서 9번째 행사를 가진 그는 "처음엔 딸들이 정결한 생활을 약속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참가자의 반 이상은 그것을 지켜내지 못하더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아빠의 순결 서약'을 했다. 극도의 문란함에서 이들을 지킬 수 있는 길은 '하지 않겠다고 아빠에게 약속하라'가 아니라 '아빠도 정결한 생활을 할테니 너도 나처럼 하라'며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중고등학교 두 딸 앞에서 서약을 마친 미국인 아버지는 모든 것이 결국 "아빠인 내가 이 아이들의 엄마에게 하는 행동에 달려 있음"을 인정했다. 최근 미국의 인기스타 셀레나 고메스(15세)가 결혼할 때까지 정결을 지키킬 것을 선언하자 팬들은 '신선한 충격'이라고 반기고 그녀의 아버지는 자랑스럽다며 약속 꼭 준수하라는 의미에서 반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세상의 아빠 치고 소중히 키운 딸이 아무하고나 만나서 문란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아버지의 날을 맞아 과연 내 행동이 내 딸들을 그 같은 혼란 속으로 몰아 넣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2008.06.13. 16:34
지난 크리스마스때 빅뉴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16살 짜리 연예인 여동생이 임신해서 당시 3개월째라는 소식이었다. 아기아빠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18살 남학생인 것이 밝혀지자 미디어들은 '충격'이라며 앞다퉈 대서득필했는데 이들이 미성년이란 사실보다는 '인기 스타의 반가운 임신 소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언제부터 사회분위기가 '성'을 연령구분없이 기성세대와 똑같이 다루게 됐나 싶었기 때문이다. 첫 눈에도 "부모되는 것이 뭔지 알까"할 정도로 어린 10대들의 임신 낙태는 더 이상 쉬쉬할 대상이 아니다. 이같은 청소년 성문제를 풀고자 부시는 취임 직후 보수주의자들이 착안한 '순결 교육'을 채택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순결 교육은 말그대로 '금욕'이 핵심이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부시 대통령답게 '노-섹스'만이 근본적 해결이라 믿었다. 그래서 공립 중고등학생에게 '성관계는 18세 이후로 미루라'고 가르치게 했다. 이제까지 프로그램에 투입된 정부 예산만 13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 이 정책이야말로 시대에 뒤처진 '전혀 효과없는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부시를 맹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 여학생 4명 중 1명이 성병에 감염돼 있고 2명 중 1명이 성경험이 있다는 연방질병통제국(CDC) 통계를 증거자료로 들고 나왔다. 특히 가장 많은 예산을 들인 텍사스주의 10대 임신율이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지적하면서 '불필요한(?)' 예산은 삭감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나아가 시대에 부합된다며 피임교육의 강화를 주장했다. 이미 17개주에서 '금욕 교육'을 포기했고 메인주에서는 11세 여학생들에게 부모허락 없이도 학교재량으로 교내 클리닉에서 피임도구 및 피임약을 공급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보다 현실적인 학생 보호처럼 들린다. 그러나 오히려 성을 부추겨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피임이란 성관계를 기정사실화 할 때 나올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것을 공식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학생들의 섹스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일종에 '순결 지킴이'에 대한 포기 선언이다. 아직 여성으로서 자신의 생체조직도 이해 못하고 있는 어린 중학생에게 피임약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자극제와 같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남학생에게 '콘돔을 사용하면 안전하다'며 나눠주는 것은 아예 고삐를 풀어주는 격이다. 불보듯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부모입장은 더욱 당혹스럽고 갈등에 빠지게 된다. 의회에서 '순결교육 그만둬라'하고 학교에서는 '(하되) 이렇게 하면 안전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가정 성교육은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이다. 앞으로 등교하는 아들에겐 "콘돔 잊지말라" 딸에겐 "피임약 꼬박꼬박 먹냐"고 해야 할 판이니 아찔할 뿐이다. 최근에 만난 한 고등학교 한인교사가 "프롬파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 손목을 끌고 억지로 집으로 데려가는 한인 부모들이 요즘 세대에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털어 놓았다. 아직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강하게 말할 때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선택의 여지를 남길 때 나타나는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의회에서 공격받고 있는 부시의 '노-섹스 온리(NO-SEX ONLY)'의 금욕 정책이 반대파를 물리치고 존속돼야 할 이유다.
2008.05.02. 16:48
이른바 '9번 고객'으로 알려진 엘리엇 스피처 뉴욕 주지사의 '콜걸 스캔들'로 연일 시끄럽다. 뉴욕의 고급 매춘조직을 소탕 '미스터 클린'이라 불린 장본인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보다는 이같은 섹스 스캔들 때마다 남편 곁에 서는 부인들에 대한 비판이 더 뜨겁다. ABC의 토크쇼 '더 뷰'에서 공동 호스트로 출연한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와 유명 앵커 바바라 월터스는 대형 화면에 비친 뉴욕 주지사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그녀는 왜 저기 서 있는 거죠? 잘못은 남편이 했는데!"하며 화두를 던졌고 이어 CNN.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에서 계속 이슈로 다룸으로써 정치인 아내들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불륜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부인을 대동하고 공개적 사과를 하는 것은 미국의 도덕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관행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87년 민주당 대선후보인 게리 하트의 불륜이 보도되자 마자 부인은 남편의 유세장으로 단숨에 달려갔고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사건'때 힐러리도 남편 옆에 섰다. 이들 정치인 아내들의 '스탠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이 이번에 새삼 부각된 이유는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자아의식이 강한 변호사 출신의 뉴욕 주지사 부인이 남편 옆에 서서 너무도 슬픈 표정을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해 결국 '저러면서 왜 나와 섰지?'하는 생각을 갖게끔 했기 때문이다. TV에서 기자 회견을 본 중년의 한 미국인 남성은 "스캔들 자체는 사실 새로울 것 없다. 나의 충격은 그 옆에 선 부인의 얼굴을 본 순간"이었다며 그렇게 까지 하면서 나올 필요가 뭐냐고 반문했다.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관례로 문제삼지 않았다가 이번에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면서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냐'는 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피하면? 한 정치가 아내의 말처럼 온갖 억측으로 기자들이 가족까지 추적해 그 자리에 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약자를 보호해 주려는 미국인들의 '기사도'적인 정서가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인에게 '약한 자'란 비록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로 인해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고 괴로운 처지에 놓이면 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된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먼저 구해 놓고 시시비비는 기운을 회복한 다음에 따지는 것이 신사다운 것이다. 게임할 때 상대가 넘어지면 기운차려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과 같다. 대상이 가족일 때는 더욱 그렇다. 섹스 스캔들로 국민의 집중 포화를 받는 공직자 남편은 '나를 배신한 미운 남편'이기 이전에 쓰러져 힘들어 하는 '약자'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그 옆에 서서 모멸의 순간을 함께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4년 전 뉴저지 주지사가 '동성애 스캔들'로 사임할 때 옆에서 미소로 일관했던 부인은 후에 자서전에서 "딸이 커서 신문사진을 보고 아빠가 가장 힘들었을 때 엄마는 어디 있었냐고 물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그 자리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스탠 바이 유어 맨'을 감행한 정치인 아내들이 "마치 본능으로 남편 옆에 서야 할 것 같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정서로는 바람 핀 남편을 '보호 대상 0순위'로 받아들여 먼저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자신도 카메라 앞에서 치욕을 견딘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지금 일부 여권운동가들은 '이같은 관행은 없어야 하다'고 하지만 미국의 '좋은 것' 중에 하나란 생각이 든다. 뉴욕 주지사 부인은 힐러리처럼 완벽한 표정관리(?)에 실패해 비난을 받고 있지만 자신의 틴에이저 세 딸들에게는 미국의 '신사도' 정신을 훌륭히 보여 준 셈이다.
2008.03.14. 17:51
스포츠가 할리우드와의 밀월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일까. 불륜은 아닌가. NFL 스타 탐 브레이디(29)가 수퍼모델 지젤 번천(27)과 한판 싸움을 벌인 가운데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빗 베컴은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메이저리그 사커에 데뷔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배리 본즈가 중심에 서 있는 금지 약물 스테로이드 파문이 사이클의 투르 드 프랑스까지 발칵 뒤집어 버렸고 NBA에서 벌어진 심판의 도박 연루 스캔들 NFL 스타 마이클 빅의 개싸움까지 어우러져 실로 미 프로 스포츠계는 현재 '개판'이 돼버렸다. 이런 와중에 진행된 스포츠와 할리우드의 동반 관계를 소개한다. ▶탐 브레이디의 아이 문제 아무리 뉴잉글랜드 패이트리어츠를 세차례나 수퍼보울 우승으로 이끈 명 쿼터백이라고 해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NFL에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페이튼 매닝과 쌍벽을 이루는 뉴잉글랜드의 브레이디가 약혼설까지 유력하게 나올 정도로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출신의 수퍼모델 지젤 번천과 엉뚱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그가 풋볼 시즌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지 걱정될 정도이다. 문제는 번천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사귀어 자신의 아이를 임신시킨 전 여자 친구 브리짓 모이나한이 출산 초읽기에 들어가며 붉어졌다. 번천은 지난 20일이 27번째 생일이었다. 이에 그녀는 브레이디와 코스타 리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둘만의 특별한 생일 파티를 열고 싶어했다. 그러나 모이나한의 브레이디의 아이 출산 시기와 맞물려 무산됐다. 브레이디가 어쨌든 출생에 맞춰 모이나한을 찾을 예정이기 때문에 코스타 리카까지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둘은 뉴욕시의 프랑스 레스토랑 AOC에서 조용하고 간단하게 점심을 하는 것으로 생일 파티를 대신했다. 그러나 번천의 친구에 의하면 "코스타리카에서 가질 파티 준비를 모두 끝내 놓았던 번천이 정말 화가 났다. 브레이디가 아이 출산을 보러가야 한다고 미국을 떠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브레이디가 이미 헤어진 모이나한과 아이로 연결되고 있는 것도 번천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서로 이 메일이나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에 그쳤으나 아이 출산이 임박해지면서 둘이 계속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번천은 아울러 아이의 출산이 둘의 약혼에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이디도 번천과 모이나한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와의 사이에서 새로운 풋볼 시즌을 맞게 됐다. 그러나 준비가 잘 될지는 의문이다. ▶크루즈 딸 수리 '베컴 잘한다' 탐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의 딸로 이제 겨우 한 살인 '수리(Suri)'가 22일 데이빗 베컴의 LA 갤럭시 데뷔전 때 홈 디포 센터 귀빈석에서 엄마인 홈스의 팔에 안겨 다양한 표정 응원을 펼쳐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할리우드에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베컴이 기록하지 못한 데뷔전 골을 '수리'가 웃음으로 넣었다고 호평했다. 수리는 필드에서 펼쳐진 아빠의 친구 베컴의 화려한 플레이에 완전히 매료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베컴의 세 아들 가운데 맏이인 브루클린(8)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브루클린은 벌써부터 수리의 미래의 남자 친구 1순위라는 예상이 나왔다. '라이프 앤 스타일'지 최신호에 게재된 수리의 베컴 응원 표정 화보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리가 상대 팀 첼시의 플레이에 야유를 보내고 있다. 베컴 의 화려한 플레이에 반한 수리가 좋아하는 모습. 수리가 베컴의 골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엄마인 홈스도 같은 표정이다. 수리는 베컴의 큰 아들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최고 스포츠-연예 커플 어쨌든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파파라치를 몰고다니는 스포츠-연예 커플은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빗 베컴과 팝 그룹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이다. 메이저리그 최다인 56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조 디마지오와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급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둘 사 이에는 세 아들이 있다. 빅토리아가 쇼핑에 돈을 물쓰듯 써도 순전히 할리우드와 명예욕 때문에 자신을 축구 후진국인 미국의 LA 갤럭시로 끌고 와도 베컴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이유는 자식 때문인 것 같기는 하다. 갤럭시 유니폼을 입은 베컴은 22일 LA 홈 디포센터에서 열린 첼시와의 미국 데뷔전에서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16분을 뛰었다. 후반 마지막에 출장한 그는 유니폼 가슴에 인쇄된 소속팀 갤럭시 명칭보다 더 큰 광고를 달고 다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장윤호 기자 [email protected]
2007.07.27. 18:31
10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인근의 한 회원제 골프장. 평일 오전 골프를 치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 여성이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골프 차량까지 구입해 평일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독수리 엄마'라고 한다. '독수리'는 남편의 경제력을 가리키는 메타포다. 언제든 태평양을 건너올 수 있는 '부자 남편'이 독수리,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평범한(?) 남편이 '기러기'다. 한국에서 고단하게 살면서 생활비만 부치는 남편은 '펭귄'이란다. 도깨비뉴스가 미국과 캐나다 의 '기러기 엄마'들에 대한 르포기사를 실었다. "평일 오전에 백인들은 시간을 낼 수 없어요. 죄다 독수리 엄마예요. 아예 오자마자 고급 골프장 회원권부터 산다니까요. 애들 학교 보내고 허구한 날 골프만 치니 핸디가 다들 싱글이지."(오렌지카운티의 한 교민) 경찰과 정보기관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사립탐정(PI)으로 일하는 Y씨는 "교민들은 남편이 보내준 돈으로 호화생활을 하는 일부 조기유학생 부모들을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Y씨는 얼마 전 캐나다 서부의 최고 부촌인 웨스트밴쿠버의 한 아파트를 임차했다. 웨스트밴쿠버는 캐나다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독수리 엄마'가 대거 둥지를 튼 곳이다. 그런데 왜 한국계 탐정이 이 도시의 아파트를 빌린 것일까? "아내가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무슨 사정인지 알아봐 달라." Y씨에게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한 사람은 한국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A씨. Y씨는 착수금을 받은 뒤 A씨 아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집을 임차하고, 밴쿠버에서 활동하는 탐정 1명을 고용했다. A 씨 아내의 승용차에 부착한 GPS 추적기는 아파트, 골프장 그리고 또 다른 아파트를 가리켰다. "골프 선생하고 바람이 났더군요. 남편이 보내준 돈으로 골프 선생 용돈 주고 아파트까지 구해줘 가면서 연애를 했더라고. 기러기 아빠만 불쌍하지, 뭐." 10월1일 LA국제공항 톰브래들리 터미널. 긴 추석 연휴 둘째 날로 인천발 비행기에서 내린 기러기 아빠와 마중 나온 기러기 엄마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6개월차 기러기 엄마 길지현(41) 씨는 "3개월 만에 남편을 보는 건데 신혼 때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아빠!" 초등학생 딸이 아빠를 먼저 발견했다. "우리 딸,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물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아빠의 표정이 정겹다. 경기 과천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박준모(44) 씨는 "아내가 해주는 밥부터 먹고 싶다"면서 활짝 웃었다. 그렇다면 기러기 엄마들은 모두 길 씨처럼 남편과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까? 취재 중에 만난 10여 명의 기러기 엄마 대부분이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데면데면해져요. 아이들은 더 빨리 아빠를 잊고요."(광역 밴쿠버 서리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 P씨)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자주 나오면 나중엔 귀찮아진다고 하잖아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처음엔 남편을 반기다가도 1년이 넘어가면 무덤덤해지죠.(오렌지카운티에 사는 기러기 엄마 K씨) 기러기 부부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잠자리다. 외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사라진다지만, 섹스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도시락 싸고, 학교와 학원에 아이들 태워다 주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골프를 배우는 게 대다수 기러기 엄마들의 일상이다. 영어가 서툴다 보니 생활도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기러기 엄마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캐나다 시민권자 H씨는 일부 엄마들이 일탈하는 이유로 짧은 영어실력과 외로움을 꼽았다. "캐나다인 학부모들과 어울리는 건 고사하고 담임 선생님이 필기체로 흘겨 쓴 편지도 읽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영어를 못하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죠. 애인이 생기는 것은 부적절한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기댈 언덕을 찾은 거죠. 골프 강사나 카딜러 등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인을 만나 도움을 받다가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9월27일 광역 밴쿠버 화이트록에서 조기유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이민자 G씨 집에 이웃에 사는 기러기 엄마 5명이 모였다. 기러기 엄마가 워낙 많다 보니 학교별로 혹은 동네별로 조기유학 가족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혹시 바람난 기러기 엄마 취재하러 온 건 아니죠?" 2005년 초 강원도의 한 도시에서 이주해 온 기러기 엄마 K씨는 바람난 기러기 엄마 얘기를 꺼내며 웃었다. K 씨가 기러기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지방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워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조기유학생 부모 중엔 K씨 같은 지방 출신이 의외로 많다. "지방은 교육 인프라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알아봤는데, 집값하고 물가가 캐나다보다 오히려 비싸더라고요. 인터넷 서핑으로 배경 지식을 쌓은 뒤 한 달간 캐나다에서 민박하면서 꼼꼼하게 현지 조사를 했어요." K씨의 일과는 단출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익히고 골프를 배우는 게 거의 유일한 개인생활이다. 주말엔 축구팀에서 뛰는 아들을 응원하는 '사커맘' 노릇을 한다. K씨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요리, 운전은 꼭 배워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K씨는 "섹스요? 바늘로 허벅지 쿡쿡 찌르면서 살죠"라며 웃었다. 대다수 기러기 엄마들의 삶은 K씨와 비슷하다. 별다른 개인생활 없이 아이들의 '로드 매니저' 역할에 전념하는 것이다. G씨 집에 모인 기러기 엄마들이 한 달에 쓰는 돈은 아이들 과외비를 포함해 평균 5000캐나다달러(약 425만원) 정도. 대부분의 기러기 엄마들이 '영어 회화', '한국 논술', '한국 수학', '악기' 등 아이들에게 2~4개의 사교육을 시킨다. 기러기 엄마들의 애로 사항은 하나같이 본인과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다. 사춘기 이후에 온 아이들은 영어를 익히는 속도가 더딘 경우가 많다. 처음엔 2~3년을 계획하고 왔다가 '장기전'(대학까지 외국에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으로 바꾸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애들 선생님을 비롯해 캐나디안을 만나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늘 웃는 표정만 짓죠. 억지로 웃다 보니 얼굴에 근육통까지 생겼어요."(서리에 거주하는 한 기러기 엄마) 1~3년의 단기 유학을 온 기러기 엄마들 중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이 '한국 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공부가 '무섭다'는데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죠. 그래서 귀국을 포기하고 세컨더리(중.고등학교)는 미국의 사립학교로 보낼까 고민 중이에요."(광역 밴쿠버 노스밴쿠버에 사는 기러기 엄마 C씨) "한국 교육을 아이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돌아갈 생각이 없어졌어요. 아이들도 한국에서 공부하기 싫어하고요."(화이트록에 거주하는 J씨) 가디언들에 따르면 기러기 아빠가 한국에서 '참고 버티는' 시간은 대체로 1년 6개월이 한계라고 한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아빠들이 아내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하기 시작한다는 것. 반대로 기러기 엄마와 아이들은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외국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 취재진이 만난 기러기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뒷바라지에서 해방돼 오히려 자유롭다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죠. 엄마들이랑 얘기해보면 부부 갈등에서 벗어나려고 조기유학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아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외국생활을 즐기는 거죠."(서리에 거주하는 P씨) 노스밴쿠버에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7년째 살고 있는 한 기러기 엄마의 말이다. "기러기 생활이 길어지면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 거라고 봐야 해요. 초등학교 때 유학 와 사춘기를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려고 하지 않아요. 아빠가 이민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버지 부재'가 평생 이어지는 거죠." 디지털뉴스[[email protected]]
2006.11.01. 0:09
어린 딸을 매일 밤마다 아버지가 강간한 비인도적인 사건에 대해 10일, 이 어린 딸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를 보도한 덴버 포스트지는 이 여자아이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소녀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가 딸을 밤마다 부부 침실로 데리고 간 다음 딸의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옷을 벗긴 다음 아버지가 강간하도록 도와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할 때마다 소녀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는 계속되었다. 이 소녀의 어머니(40)는 성폭행과 근친상간 등을 포함해 24개 죄목으로 기소되었으며, 이 여성의 남편(59)은 아동 성폭행에 대한 두 가지 죄목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종신형에 직면해 있다. 이 소녀는 이러한 행위가 자신이 7살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행위가 끝나면 엄마가 자신을 욕실로 데리고 가 씻긴 다음 안아주고 키스해주었다고 증언했다. 현재 대리 양육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소녀가 증언하고 있는 동안 소녀의 어머니는 덴버 구역 법정의 다른 방에서 이를 비디오로 지켜보았다. 이 어머니는 또한 딸의 배다른 오빠에 대한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되어 있다. 현재 18세인 이 소년은 5살 때부터 여학생 교복을 입히고, 얼굴에 화장을 한 다음 의붓아버지에게 데리고 가 성추행을 받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 부부는 어린 딸에게 오럴 섹스를 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아이가 거부할 경우 딸과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소녀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BB총을 쏘고 엄마의 머리에다 다리미를 던지기도 했다고 증언했으며, 엄마는 아빠의 폭행으로 인해 항상 눈에 멍이 들거나 무릎에 부상을 입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어머니의 변호사는 이 여성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남편으로부터 만약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죽인 다음 조각조각 내어 냉동실에 넣어둘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5.08.16. 14:05
▷쉬조(Schizo.사진)=실업자에게 접근해 불법 격투기 경기를 할 선수를 구해오는 10대 소년. 경기 도중 죽은 선수의 유언대로 돈을 선수의 여자친구에게 전해주다 사랑에 빠져 남자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여자는 소년이 거짓말을 한 것을 알면서도 돈을 받고 소년과 잠자리를 함께 한다. 고아원에서 발탁된 올자스 누수파에프의 연기가 압권이다. 러시아어 대사에 영어자막.등급없음. ▷멜린다와 멜린다(Melinda and Melinda)=두 명의 뉴욕 작가가 인생은 비극인가 희극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인다. 이들의 논쟁은 멜린다라는 여자의 삶을 비극과 희극으로 나누어 진행시키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우디 앨런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앨런의 전성기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작품 가운데는 가장 뛰어나다. 등급 PG-13. ▷잭과 로즈의 발라드(The Ballad of Jack and Rose)=세상과 결연하고 딸과 단 둘이 사는 말기환자. 아빠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는 딸의 말에 섹스 파트너인 여자에게 딸을 부탁한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통해 위태로운 삶의 순결함을 다뤘다. 아버지 역의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연기가 탁월하다. 등급 R. ▷D.E.B.S.=미국정부는 10대 소녀 4명을 특수요원으로 발탁한다. 표면상 이들의 임무는 세계를 구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관객들에게 MTV식 볼거리를 주는 것. '미녀 삼총사'의 10대판. 등급 PG-13. ▷귀여운 릴리(La Petite Lily)=체홉의 희곡 '갈매기'를 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각색했다. 원작의 젊은 작가는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무난하다. 등급없음. ▷노웨어 맨(Nowhere Man)=약혼녀가 과거 포르노 배우였음을 안 남자가 결혼을 취소한다. 화가 난 신부는 남자의 성기를 절단해 도망가고 남자는 이를 되찾기 위해 여자를 쫓는다. 재미를 잃지는 않지만 특별한 매력은 없다. 등급없음.
2005.03.25. 10:24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인간의 생명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성행위가 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몇만 년이 되는지 확실치 않으나 지금까지 지켜 온 상식이었다. 그러나 인공임신 기술의 개발로 이 오랜 상식이 무너졌다. 성행위를 거치지 않아도 모태 채용이나 시험관 수정으로 생명의 탄생이 가능해졌다.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전이 생명을 다룰 경우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떤 부인이 "셋째는 실수로 낳은 딸년이어요"라고 예사롭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피임 과정의 실수라는 뜻이겠지만 탄생된 생명을 놓고 쉽게 '실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성행위는 임신의 수단 뿐만 아니라 쾌락의 방법 사랑의 표현 심지어는 부부간의 의무감 등 복잡한 동기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능을 넘어선 도덕성이나 사랑의 윤리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인공수정에도 사랑이 들어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경우는 자식을 갖고 싶다는 일방적인 애착심이지 '나누는 사랑'이 아니다. 임신을 쾌락의 결과로 보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 다루는 것이며 마땅히 사랑의 결합으로 보아야 그 열매로 태어난 생명이 사람다워진다. 부부간의 엄연한 성관계가 강간으로 고소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섹스를 마음의 문제와는 별도로 기계적 수단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인 포 보발리는 "눈으로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다면 거리는 임산부로 가득 찰 것이며 눈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거리는 시체의 산을 이룰 것이다"라고 욕정과 미움을 갖는 인간의 속성을 고발하였다. 한국의 한 총각이 뒷동산에 누워 동네 처녀 전부와 공상의 정을 맺으며 하루 종일 자위행위를 하는 단편 소설이 있었다. 이런 식의 욕정을 사랑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임신을 욕정의 씨앗으로 만든다면 불행한 일이다. '맥콜(McCall's)' 잡지가 성생활에 충분한 경험이 있는 중년 여성 2만명에게 "성행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는데 61%가 '가깝다는 느낌'에 체크했다. '플레이보이' 잡지의 야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도 남성을 상대로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역시 같은 응답을 받았다. 가깝다는 느낌은 마음의 결합을 뜻한다. 그것이 아마도 성행위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생긴 불꽃이 임신이라면 무척이나 당연하고도 다행한 일이다. 토머스 버니( Thomas Verny) 박사는 그의 명저 '태아의 숨겨진 생명(The Secret Life of the Child)'에서 "아직 모태에 있는 생명일지라도 부모의 포옹이 필요하다. 사랑은 정서적인면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태아에게 절대 필요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태아도 부모의 사랑에 영향을 받으며 특히 엄마와 아빠 사이의 사랑이 태아를 행복하게 성장시킨다는 버니 박사의 주장은 성행위에 의한 임신의 출발점부터 태아기에 걸친 새 생명에게 외부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스마일리 블랜턴(Smiley Blanton)은 성행위에 대해 정의하기를 "상대방에 대한 열렬하고 긍정적인 관심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자기 본위적이어서도 안 되고 쾌락 충족만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상대와 주변에 대한 파괴적인 행위여서도 안 된다. 인류학자 언윈(J. D. Unwin)은 "인류가 겪어온 88개 문명의 흥망사에서 재미있는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어느 문명이나 그것이 일어나는 시대에는 성도덕이 건전했고 그것이 쇠망하는 시대에는 성도덕이 문란했다"라고 말하였다. 아동의 10%가 13세에 섹스의 경험이 있고 10대 소녀의 10%가 해마다 임신하여 대학생의 66%가 혼전 정사를 체험했고 혼전 정사가 부도덕하지 않다고 80%가 생각하는 미국의 성문제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넘어 문명에 관계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5.01.27. 17:54
▶비밀결사 The Order ·감독 브라이언 헬거랜드, 주연 히스 레저·베노 퍼만, 등급 R. ·천주교내 비밀결사의 수장이 로마에서 피살된다. 현장으로 급파된 알렉스 버니어는 사체의 가슴에서 이상한 문양을 발견한다. 죽음의 배후를 캐던 버니어는 교회조직 밖에서 죽은 자의 죄를 주는 의식이 행해지는 걸 알게 되고 토마스 신부와 구마 의식 경험자와 함께 비밀세계로 뛰어든다. 설정에 비해 끌어가는 힘이 약하다. ▶디키 로버츠: 왕년의 아역스타 Dickie Roberts:Former Child Star ·감독 샘 와이즈먼, 주연 데이빗 스페이드, 등급 PG-13. ·평범한 30대 남자가 된 왕년의 아역스타는 옛날의 인기를 되찾기로 결심하지만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할 뿐이다. 스타숭배를 은근히 비꼬며 예전의 인기 TV드라마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지만 코미디로서는 흔쾌한 웃음을 주지 못한다. ▶파티 몬스터 Party Monster ·감독 펜턴 베일리·랜디 바바토, 주연 매컬리 컬킨, 등급 R.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장편영화로 만들었다. 디스코가 유행하던 1980년대 맨해턴의 클럽 문화를 스타일 넘치게 재현했지만 마약과 폭력, 섹스 묘사가 과도하다. ▶옛날 옛적 미들랜즈에서 Once upon a Time in Midlands ·감독 셰인 메도우즈, 주연 로버트 칼라일·캐티 버크, 등급 R. ·지미는 캐롤을 버리고 떠난다. 어느날 덱이 TV에 나와 캐롤에게 구혼하고 캐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본 지미는 다시 고향으로 와서 캐롤의 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삼각관계. 작은 영화지만 따뜻함이 있다. ▶모래폭풍 Sandstorm ·자그 문드라, 주연 난디타 다스, 등급없음. ·성폭행 당한 인도 시골의 천민 여자가 신분제도에 항거하는 운동가로 변신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이를 옹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한 정치 드라마. ▶아메리칸 웨딩American Wedding ·감독 제시 딜런, 주연 제이슨 빅스, 등급 R. ·전작인 ‘아메리칸 파이’ 1·2편보다 화장실 코미디의 강도를 높였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 ▶매그댈린 수녀 The Magdalene Sisters ·감독 피터 물런, 주연 노라-제인 눈·에일린 왈시, 등급 R. ·사촌에 강간당한 여자와 사생아를 낳은 여자, 남자를 유혹한다는 누명을 쓴 고아 등은 수녀원에 오지만 수녀들에게 학대받고 강제 노역에 시달린다. 분노로 가득한 영화로 가톨릭의 항의를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 ▶스파이 키즈 3D:게임 오버 Spy Kids 3-D:Game Over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주연 데럴 사바라, 등급 PG. ·꼬마 첩보원이 어린이의 영혼을 조종하려는 음모를 막기 위해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게임 세대인 어린이 관객을 유혹하는 입체영화. ▶무서운 금요일 Freaky Friday ·감독 마크 워터스, 주연 제이미 리 커티스·린지 로한, 등급 PG. ·티격태격 싸우는 엄마와 딸이 어느 날 몸이 바뀐다. 엄마는 결혼을, 딸은 록밴드 공연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모녀는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소재나 주제는 특별하지 않지만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고 주연의 콤비 연기가 좋다. 가족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검은 진주의 저주(Pirates of the Caribbean:The Curse of the Black Pearl) ·감독 고어 버빈스키, 주연 자니 뎁·키라 나이틀리, 등급 PG-13. ·영원히 죽지 못하는 해적들이 사람의 몸을 되찾기 위해 항구도시를 공격한다. 모험을 꿈꾸는 총독의 딸과 해적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받은 대장장이는 이들의 음모에 휘말린다. 그리고 이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매력적인 해적 한 명. 낭만과 모험의 해적 이야기에 컴퓨터 특수효과를 입혔으며 자니 뎁의 연기가 압권이다.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 ·감독 앤드루 스탠턴·리 언크리치, 등급 G. ·소심한 아빠 물고기 말린은 몇 분 만 지나면 모든 걸 잊어버리는 도리와 함께 인간에게 잡혀간 아들 물고기 니모를 찾아나선다. 등장인물의 관계보다 화려한 바닷속 풍경이 재미를 준다.
2003.09.05. 14:11
한 소녀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앳된 얼굴은 서서히 요부처럼 바뀌더니 나를 때리라고 소리친다.
카메라는 각도를 바꿔 두 소녀가 마주 앉은 모습을 보여준다. 두 소녀는 본드를 흡입하며 서로를 때린다.
곧바로 영화는 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첫 장면에서 앳된 얼굴이 자기파괴적인 표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열 세 살’(Thirteen)은 여러 면에서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10대 영화와 거리를 둔다.
우선 적당히 갈등을 만들고 적당히 화해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LA 포톨라 중학교에 다니는 트레이시(이븐 레이철 우드)는 공부 잘 하는 착한 딸이다. 그러나 불량기 있는 이비(니키 리드)와 어울리고 싶어 지갑을 훔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이비와 단짝이 된 트레이시의 변화는 10대의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혀와 배꼽, 엉덩이를 뚫는 피어싱에서, 흡연, 음주, 마약, 부모에 대한 반항, 또래 끼리의 섹스 실험까지 고통스런 현실을 모른 척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트레이시의 엄마 멜라니(홀리 헌터)는 알콜중독을 고치려 애를 쓰고 엄마의 남자친구는 마약중독자였다. 친아빠는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다.
사태가 악화 뒤 뒤 찾아 온 친아빠는 자꾸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무서운 금요일’(Freaky Friday)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면 해결을 눈 앞에 둔 상황이다. 하지만 트레이시의 오빠 메이슨(브래디 코벳)은 이 질문을 듣자 마자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등을 돌린다.
사실 10대를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몇 마디로 설명하겠는가. 아니 알콜중독이 되고 마약중독이 되고, 실수하고 잘못하고 거기서 벗어나려 애쓰고, 혹은 일어서고 혹은 쓰러지는, 사는 것의 고통을 어떻게 간단하게 설명하겠는가. ‘열 세 살’은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웃음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원인도 해답도 모호한 현실을 아프게 지켜본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는 멜라니는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무너져 있는 트레이시를, 몸부림치는 트레이시를 안간힘을 쓰며 껴안는다. 가위로, 칼로 자해해 흉터가 무성한 딸의 손목에 입맞춤하며 “너는 나의 심장”이라는 말을 쏟아놓는다.
사실적인 10대 묘사는 캐서린 하드윅과 니키 리드의 스크립에서 시작해 카메라 워크로 완성된다. 스크립을 쓸 당시 13세였던, 이비 역의 리드는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털어놓으므로써 10대의 현실에 사실감을 더했다. 코미디를 목표로 시작한 스크립이 강렬한 현장 보고서가 된 것은 리드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촬영감독 엘리엇 데이비스(아이 앰 샘)는 들고찍기(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해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불어넣는다.
‘바닐라 스카이’(Vanilla Sky)와 ‘스리 킹스’(Three Kings) 등의 제작 디자이너로 유명한 캐서린 하드윅은 감독 데뷔작 ‘열 세 살’을 탄탄한 스토리와 안정된 흐름으로 빚어낸다. 그 안에서 우드의 연기는 보석처럼 빛난다. 우드는 나이에 걸맞기 않게 복잡한 감정선을 들뜨지 않게 차분하게 표현한다.
22일 개봉. 등급 R. Laemmle Sunset 5(323-848-3500), Laemmle Monica(310-394-9741) 상영.
안유회 기자
2003.08.22.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