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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의료제국에서 '건강주권' 찾기

"의사가 된 지 어언 42년, 이제까지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 왔다. 스스로는 옳은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되돌아보면 어째서 그토록 잘못된 의료를 행해 왔나 싶다. 예를 들어 고혈압도 치료를 해야 한다고 여겼고, 콜레스테롤도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등등. 또 건강검진을 통해 '암'은 조기발견, 조기치료하는 게 좋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잘못이라는 것을 갈수록 사무치게 깨닫고 있다." 마쓰모토 미쓰마사. 일본의 내과의사이면서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현대의료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는 인물이다. 마쓰모토는 '검진병'이라는 말도 만들었다. 건강검진을 함으로써 본래는 없었을 질병을 얻는다, 안 먹어도 될 약을 먹는다, 안 해도 될 수술을 하고, 안 해도 될 검사를 정밀검사라는 이름으로 받는다. 불안이 불안을 불러와 새로운 병을 얻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과잉의료의 문제가 종종 지적되지만 의료계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의사의 말이라면 거의 신의 메시지쯤으로 여긴다. 의사가 먹으랬다고 약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이유다. 맹신이 이러하니 일반 환자들은 의사들의 말을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에 대항할 만한 의료지식이 없는 데다 건강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맹신을 해도 좋을 만큼 현대의료는 완벽할까. 그렇게 믿어도 좋을 만큼 의료라는 것이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켜주고 있는가. 많은 의사들은 마쓰모토처럼 '양심고백'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수십년간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면서 느낀 현대의료의 한계를 책과 강연을 통해 '고백'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쓴 저명한 소아과 의사 출신 로버트 멘델존도 그런 의사 중 한 명이다. 멘델존은 "현대의학은 이미 거대한 종교가 되어버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학이라는 종교의 신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자신이 없다. 신자는 긴장이나 불안, 죄의식으로 번민하게 되어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의 생활에 쫓긴다. 건강에 관한 자기 책임과 자기 관리 능력은 마비되어 있으므로, 자기보다 강한 의사라는 존재에게 자신을 맡겨버린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라면 자신의 일을 없애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을 줄여나가도록 지도하고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신앙의 중심이 의사라는 망상을 벗겨줘야 한다." 옛날 조미료가 처음 나왔을 때 제품 포장지에는 냄비 그림과 함께 귀이개 만한 작은 금속 숟가락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은 숟가락을 쓰면 언제 조미료 매출을 올리겠나 싶어 고민하던 차에 구멍으로 뿌리는 용기로 바꾸었다. 필요 이상으로 뿌리면서 조미료 매출이 크게 늘었다. 더 많이 팔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의 구멍을 넓혔다. 매출이 급신장했다. 콜레스테롤, 고혈압 등의 기준치를 점점 낮춰 약 판매를 급증시켜온 제약회사와 조미료 회사의 매출전략이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제약, 보험, 병원으로 이뤄지는 현대의료의 거대한 카르텔 제국 속에 빨려들어가면 내 건강은 '식민지'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아마도 평생 약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몸이 가장 훌륭한 의사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건강주권'을 확고하게 행사하면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만에 죽는다)가 가능하다. 현대인들은 의료제국의 식민지 시민이 되어 있다. 건강주권을 찾는 길은 모태신앙 같은 의료 맹신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걸음이다.

2016.03.01. 23:31

[진맥 세상] "그래, 너 입장에서 생각해볼게"

"옛날 옛적에 화성남자들과 금성여자들은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사랑의 마법에 걸린 듯 그들은 무엇이든 함께 나누면서 기쁨을 느꼈다. 비록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지구에 와서 살게 되자 그들은 이상한 기억상실에 빠진다.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존중해 왔던 사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지면서 그들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지난 25년간 가장 영향력을 미친 10대 서적의 하나로 꼽히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저자 존 그레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남자와 여자의 갈등이 왜 생기고,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명쾌하게 제시한 책으로 남녀관계학의 바이블로 꼽힌다. 내용을 압축하자면 남자와 여자는 원래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고, 서로 언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종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착각하고 서로 자기네 별나라 방식으로 따라오라고 하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갈등을 푸는 방법은 딱 하나다. "아차, 내가 저 사람이 외계인이라는 걸 깜박했다"고 자각하는 순간, 모든 갈등이 스르르 풀리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친한 친구와 심한 언쟁을 벌였다.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성이 오갔다. 며칠 지났음에도 분이 삭지 않았다. 우정에 심각한 금이 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자존심에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 "그래, 너 입장에서 생각해볼게." 그 한마디였다. 얼음처럼 단단하게 응결됐던 가슴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겠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위력적일 줄이야. 그 말로 나는 친구를 향한 전투력을 상실했고, 당장에 술 한 잔 돌리며 우정을 회복했다. 흔히 억울한 심경을 토로할 때 "내 입장 돼 봤어?"라고 한다. 그만큼 내 입장을, 내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호소다. 사장이 박봉에 시달리는 종업원의 입장을, 럭셔리 차 운전자가 노숙자의 입장을, 남자직원들이 여직원들의 입장을, 돈 많은 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젊은이가 노인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평화가 깃들까. 남북한이 70년 넘게 으르렁거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방식만 상대에게 요구하니 매듭이 풀릴 리가 없다. 남이 북의 입장을, 북이 남의 입장을 생각해주면서 대화를 풀어나간다면 그동안 쌓인 앙금도 스르르 풀릴 터인데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이해심이 생긴다. 동정심도 생긴다. 각진 마음이 무뎌지면서 갈등이 풀리고 사랑이 회복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은 악다구니 같은 세상사를 좀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묘약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겪을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마찰의 조짐이 보일 때, 갈등을 풀고 싶을 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연습을 하자. 무엇보다도 자신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게다가 세상을 좀더 평화롭게 만드는 데도 보탬이 된다. 그 마음, 올해 쭉 품고 갈 만하지 않은가.

2016.01.18. 20:08

[진맥 세상]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법

올초 '올해 나를 붙잡아 줄 두 단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한 해 동안 두 단어를 화두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올해의 마지막 달에 다다르니 그때 썼던 글이 불현듯 떠오른다. 두 단어는 '성장'과 '보람'이었다. 몇 구절 반추해본다. '성장'은 나 개인을 향한 것이다. '보람'은 타자, 공동체를 향한 것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 박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실천과 도전정신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보람'의 중요성은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운다. "사람들 행복론의 90%가 복을 받는, 즉 내가 받는 쪽에 치우쳐 있다. 그러면 더 잘살게 되어도 늘 걸신들린 듯 정신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주체적으로 베풀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이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 이런 요지의 글을 쓰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나를 위할 때 오는 성장, 남을 위할 때 오는 보람. 올해를 돌아본다. 성장을 위해서 몇 가지 계획을 했더랬다. 그런데 별로 성취한 것이 없다. 아마도 매년 초에 세운 '성장을 위한 계획'들이 흡족하게 이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지, 하고 자위한다. 돌이켜보면 성장은 못했지만 작은 보람들은 잔잔하게 이어져 온 것 같다. 아침 산책길,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모래밭에 깨진 병조각이 나뒹굴었다. 집에서 청소 도구를 가져와 샅샅이 치웠더랬다. 그날 내가 나를 칭찬했던 흐뭇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몇 차례 김치를 담갔다. 지인들에게 한 포기씩 나눠주었는데, 다음엔 더 맛있게 담가서 주고싶다는 '보람의 욕심'까지 생겨난다. 올망졸망 네 자매를 거느리고 아메리칸드림을 찾으러 온 몽골인 가족과 사고무친의 탈북동포와 밥도 같이 먹으며 그들의 '아는 사람'이 되어준 것도 보람이다. 지나고 보니 나를 위한 성장을 놓친 아쉬움의 크기보다는 남을 위한 자그마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보람이 훨씬 크다. 그래서 행복은 받는 데가 아니라 주는 데서 온다고 하는가 보다. 일본의 저명한 여류 소설가인 소노 아야코는 만 41살 때 '계로록(戒老錄)'이란 책을 썼다.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을 기록함'이란 뜻이다. '살아가는 자세에 있어서 좀 주제넘은 면이 필요한' 소설가였기에 조숙했고,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스로 다짐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40년 넘도록 스테디셀러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언제부터 노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을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상태가 심하면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다. 진정한 성년이란 육체적 연령에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의 말도 인용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고. 결국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행복이요, 잘 늙어가는 비결이라는 게 계도록 첫 장에 나오는 교훈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 나를 위한 성장을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보다는 '주는 행복'의 의미를 새겨보고 새해의 행복설계를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아, '계로록'에 나오는 보너스 하나. '삐딱한 생각'은 곱절의 자부심이 역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교만으로 흠뻑 찌든 냄새를 풍기니 그런 생각이 있다면 품기만 하고 절대 말하지 말란다.

2015.12.04. 17:45

[진맥 세상] 유승준과 김련희

#. 지난 5월 가수 유승준(39)씨가 인터넷TV와 생방송 인터뷰를 가졌다.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국 입국을 금지당한 지 13년 만에 그는 무릎 꿇고 사죄했다. 내내 울먹였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군대에 가겠다고도 했다. 부모의 설득으로 시민권을 취득했고 어린 시절 섣부른 선택이 그렇게 큰 물의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며 절절히 후회했다. 유씨는 군복무를 다시 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한국땅을 밟고 싶다고 했다. 울먹이며 입국을 허락해달라는 모습이 너무 딱했다. 유씨는 잘 생긴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한국 혈통을 가진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도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에 아버지로서 안타까운 심경이 묻어난다. 그는 지금 한국 출입국관리법 11조에 의해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돼 입국 비자를 못받고 있다. 며칠 전 유씨는 LA총영사관을 상대로 비자 발급 거부 취소 소송을 냈다. 변호인은 "이유도 고지하지 않고 비자를 거부하는 것은 평생 입국을 금지시키겠다는 의사로 볼 수밖에 없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 여기 한 여인이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동포 김련희(46)씨다. 그는 지금도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이다. 비록 지금은 남한에 억류돼 살지만 조국으로 돌아가는 날만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의사인 남편과 딸(20) 하나를 둔 평범한 북한의 중산층 가정주부였던 김씨는 2011년 5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있는 조선족 큰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복부에 물이 차는 간복수 병을 치료할 겸해서였다.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포기하곤 선양으로 가 한달 요량으로 조선족 식당에서 일하던 중 탈북 브로커를 만났다. 남한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고 6개월 후 여권이 나오면 중국으로 되돌아 오면 된다는 말에 남한행을 결행했다. 남한에 입국한 김씨는 곧바로 국정원 합동신문센터로 보내졌고 김씨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북송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중국으로 밀항하려 중국주재 북한 대사관에 전화를 걸다가 '간첩'으로 몰려 재판까지 받았다. 자살도 시도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북한TV에 나와 울부짖으며 남한 당국을 원망하고 있다. #. 한번 솔직히 까보자. 대한민국에 유승준보다 더한 철면피 병역기피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과 권력을 이용해 군대 빠지고 호의호식하는 공직자.정치인.기업인들이 부지기수다. 온갖 이상한 병명(참고로 황교안 총리의 병역면제 병명은 만성담마진)을 붙여서 가짜 환자로 병역을 기피하는 예능인.체육인들은 또 어떤가. 그런 인간들이 우글우글한 한국에서 유승준이 죽을 죄라도 지은 건가. 연예인으로서 13년 오명은 충분히 가혹했다. 떵떵거리며 사는 다른 병역기피자들에 비하면 이중잣대가 너무 지나치다. 김련희씨는 어떤가. 한국에 3만 명에 가까운 탈북자들이 산다. 북한 정권이 싫어서였건, 배고파서였건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그들도 일종의 '이민자'들이다. 이민생활이 힘들면 역이민하듯, 탈북동포들에게도 특수한 경우엔 '역이민'을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법적.정치적 문제는 고려해야 하겠지만 김련희씨의 '간첩 행위'가 걱정될 정도로 대한민국이 허약하진 않을 것이다. 정기(正氣)가 튼튼하면 사기(邪氣.나쁜 기운)가 몸을 침범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정기가 튼튼한 사람은 약과 병원을 찾지 않는다. 반면 정기가 부실한 사람은 툭하면 병에 걸리고 걸핏하면 약 찾고, 의사 부른다. 입국을 원하는 유승준씨는 막고, 간절히 내보내달라는 김련희씨는 붙들고있는 대한민국, 꼭 정기에 자신 없는 건강염려증 환자 같다. 나라 품이 이렇게도 용렬하다면 그 국민들은 또 어떻겠나. 통큰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

2015.11.18. 20:55

[진맥 세상] '쓸개 빠진' 나라가 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위험하다. 남중국해의 산호초섬인 난사군도에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고 있고, 이를 두고 미국과 갈등이 첨예하게 치닫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난사군도는 중국영토이기 때문에 엄연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평양 항로의 주요 길목인 난사군도를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고 미국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마찰은 이제 말싸움 수준에서 무력충돌 일보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미국은 지난 27일 전격적으로 인공섬 12해리(국제법상 영해 범위) 안쪽으로 구축함을 들여보냈고 중국은 미사일 훈련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만찬을 하면서 인공섬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혔고, 만찬이 끝나자마자 화가 잔뜩난 오바마가 '구축함 진격'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이 난사군도 영유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은 경제 패권에 이어 태평양 패권까지 상실할 수는 없다는 결기다. 이미 중국은 이 인공섬에 방어용 대포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 아슬아슬한 마찰이 잦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인공섬을 둘러싼 미-중 마찰 속에서 한국은 매우 곤혹스럽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한쪽 편을 들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은 양자택일을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미-중의 패권 다툼이 전방위로 퍼진다면 적당한 '양다리 걸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박 대통령에게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는 데 실패하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인공섬에 대해 한국이 확실한 반대표시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에서 나온 입장은 "남중국해 문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정도다. 곤혹스러운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가진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중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생긴다면 미국은 동아시아에 있는 모든 외교관에게 주재국의 미국 지지를 요구하라는 지시를 내릴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철저한 중립에 서든지 국가의 '담력(膽力)'이 절실한 시점이다. '담'은 쓸개다. 한의학 고전에는 '정부조직에 비교하면 담은 치우침없는 올바른 관직과 같으니 결단(決斷)이 여기서 나온다'고 했다. 담력, 대담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의학에서 쓸개는 정신, 주체, 줏대, 용기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장기로 인지한다. 행동이 줏대가 없을 때 '쓸개 빠진 사람'이란 소리를 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겁을 내고, 잠을 잘 못자고 하는 등의 정신적 측면의 질환은 쓸개를 치료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우리의 역사는 '담력 있는' 나라가 되지 못해 비굴과 사대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았고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왕조 교체기, 일제시대, 남북분단시대를 관통하며 소심하고 초라한 나라가 받아야 했던 아픔과 굴욕을 돌아보게 된다. 담력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남한이 힘을 키우는 길? 남과 북이 손잡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있을까. 미-중 초강대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담대(膽大)한' 통일조국의 모습을 그려보기만 해도 자긍심이 솟는다.

2015.10.28. 21:13

[진맥 세상] 목표로 사는 삶, 뜻으로 사는 삶

A씨는 유명인사다. 20대부터 사업에 매달렸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며 허파에 바람도 잔뜩 들었다. 사업은 점점 규모를 키웠고, 성공의 단맛에 취했다. 재미를 붙인 A씨는 점점 목표를 올렸다. 100만 달러,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40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누가 봐도 성공한 기업가인 그는 나이 60을 넘기며 고민에 젖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달려야 하나. 그는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남들은 다 나를 부러워 해. 사장님, 회장님 소리도 오래 들었어. 그런데 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않아. 평생을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고, 이루면 또 목표를 세우고, 그런 삶의 반복이었어. 물론 희열도 있었지. 그런데 허전해. 내 삶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내 인생이 송두리째 의심돼.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야. 이젠 차분하게 내 인생을 리셋할 거야." A씨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리셋해 줄 나침반은 '가치'와 '뜻'이라고 했다. 목표를 위한 삶에서 뜻으로 사는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 A씨는 요즘 묵상을 즐긴다. 그리고 뜻으로 사는 삶의 기쁨과 충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서독 광부 출신으로 대단한 부를 일군 한인사회 올드타이머 박형만씨가 사재의 절반인 5000만 달러를 쾌척해 자선복지재단을 만들겠다는 뉴스가 화제다. 박씨 역시 찌들게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서독 광부를 자원했고, 미국으로 이민해서도 악착같은 삶을 살았다. 그 역시 A씨와 같이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목표지향적인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자린고비, 구두쇠 소리를 듣고 본인 말대로 '욕도 많이 먹었던' 그가 복지재단을 만들겠다며 한 말이 의미롭다. "나와 내 가족만 보고 한눈 팔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60을 넘기니까 이웃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채워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개인의 목표를 이루는 삶에서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뜻을 펴는 삶으로 인생을 클릭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목표로 살 것인가, 뜻으로 살 것인가. 중요한 화두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 수도 있고 두 가치를 함께 품고 갈 수도 있다. 문제는 현대 물질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목표 지향적인 삶에 대해서는 관심과 박수가 뒤따르지만, 뜻으로 사는 삶의 중요함을 말하는 이는 극히 적다는 점이다. A씨나 박씨처럼 인생 후반기에 접어 들어 비로소 뜻으로 사는 삶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도 물질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 때문이리라. 최고의 주역 전문가로 인정받는 김승호는 '돈보다 운을 벌어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만사에는 뜻이 있고 이유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모든 게 시시하고 재미없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시켜주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다." 의미(뜻)가 없는 삶은 동물의 삶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승호의 해석을 빌리자면, 목표를 좇는 삶은 항상 피곤하고 허전하고 조마조마하고 시시한 반면, 뜻으로 사는 삶은 순간순간을 충만함으로 살 수 있다. 그러기에 뜻으로 사는 삶에 수명의 길고 짧음은 큰 의미가 없다.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빠진 경제 탓이 클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2015.10.16. 19:43

[진맥 세상] 탈북 여성 S의 아메리칸드림

최근에 탈북동포 여성 S를 알게 되었습니다. 40대 중반 나이에 미혼이더군요. 허드렛일을 하면서 힘겹지만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탈북한 지 10년 정도 되었고, 미국에 들어온 것은 6년 전쯤이라고 합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중국에서 3년을 떠돌고, 태국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며 갖은 고생을 다 겪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간다고 했으면 수용소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미국을 택했기에 오래 걸렸다고 합니다. 한국행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 정착한 탈북동포들의 곤궁한 삶을 익히 들어서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꿈에 그리던 미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지만 그것도 중간에 떼먹히기 일쑤였습니다. 아는 사람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땅에서 '북한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진 의지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S는 "탈북 과정에서 고통스러웠지만 미국에서 살아남는 건 더 힘들다"고 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동부쪽으로 행선지를 택했던 탈북 출신 두 사람은 미국생활이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합니다. LA쪽에 30~40명 정도, 미 전역에 100여 명 정도의 탈북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들이 미국생활에 정착하도록 체계적으로 돕는 단체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북한출신'이라는 딱지를 달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미국땅에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들까,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아직도 북한 사투리만 들려도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한인들이 있을 정도이니까 말입니다. 그런 악조건이지만 S의 미래는 밝을 것 같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겪어온 내공이라고 할까요, 그런 강인함이 있습니다. 게다가 '아바이, 아바이'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출신 지역도 당당히 밝힙니다. 집주인은 그의 딱한 사정도 그렇지만 붙임성에 반해 월세를 반만 받는다고 합니다. 밤낮으로 토막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 학교에 다니며 영어공부를 합니다. 북한에서도 배고픔을 면하려 일찌감치 장사에 눈을 떴고 남들보다 돈도 더 잘 벌었습니다.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더 큰물에서 놀겠다는 꿈을 안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S에게 작은 선물이 안겨졌습니다. 신문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었지만(그는 북에서 교사를 지낸 인텔리다) 구독료가 부담이었던 차에 어느 독지가가 선뜻 1년치 구독료를 내준 것입니다. 광명을 찾았다며 너무너무 좋아하는 S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S가 중국과 수용소를 떠도는 동안 부모님은 세상을 뜨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북에는 동생들이 어려운 경제 형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S는 요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후면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시절이 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가족.친지들과 감격적인 해후를 할 날을 그리면 오늘 고생쯤은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S를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밥 한끼를 함께 먹었습니다. 한 식탁에 둘러 앉아 즐겁게 먹으며, "요것이 바로 통일이단 말입니다, 통일이 뭐 별겝니까", 하며 파안대소하는 그의 표정에 공감하며 가슴이 짠 했습니다. S를 몇차례 만나며 그의 굴하지 않는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주변의 따뜻한 인정도 확인했습니다. 사회가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눈길을 주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능히 견딜 만한 곳이 되겠지요. 천성이 밝은 '악바리' 그녀의 아메리칸드림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2015.09.08. 20:28

저유가에 셰일가스 업체들 기진맥진

미국 셰일개스 업체들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상반기 32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보도했다. 상반기 적자로 인해 셰일가스 업체들은 파산을 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설명했다. 글로벌 정보업체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셰일가스 업체의 상반기(1~6월) 적자액만 약 320억 달러로, 2014년 한해 적자액인 377억 달러를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연방 에너지관리청(EIA) 자료에 따르면 지난 5~6월 미국 원유 생산량은 감소했는데, 셰일업계의 적자로 인한 설비투자 축소로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그 동안 셰일업체들은 주식과 자본을 매각하고 은행 부채를 통한 자금 조달로 생산량을 증가시켜왔다. 그 결과 미국 원유와 가스 생산회사들의 순부채는 2010년 말 810억 달러에서 올해 6월 말 현재로 169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셰일업체들의 자본 조달을 위한 주식과 채권 매각액은 감소세를 보이며 자본 흐름은 둔화되고 있다. 셰일업체들의 주식 매각액은 1/4분기 108억 달러에서 2/4분기에는 37억 달러, 그리고 지난 7~8월에는 10억 달러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딜로직 리서치는 밝혔다. 그러나 향후 셰일업체들의 자본 조달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이 셰일업체들에 대한 대출 심사 기준을 내달 1일부터 석유와 가스 매장량에 기반해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큰 폭의 유가하락세가 반영되어 지난 봄에 비해 대출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FT는 설명했다.

2015.09.08. 19:07

[진맥 세상] '궁즉통' 진리 확인한 남북회담

다행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남과 북이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전쟁 불안감이 엄습한 것과 지금 안도의 분위기는 극적 반전이다. 남북 당국자가 3일 6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여 극적인 6개항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국회담, 북한의 지뢰사건 유감 표명, 남한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북한 준전시 상태 해제, 추석 이산가족 상봉 추진, 민간교류 활성화 등 내용도 좋다. 북한의 유감 표명 및 남한의 대북확성기 철수는 양측이 절대로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 원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당국회담, 이산가족상봉, 민간교류 등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디딤돌까지 마련했다. 1과 1일 맞부딪쳐 0이 될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3을 만들어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합의문을 이끌어낸 양쪽 회담 당사자들, 뜨거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합의 직전까지 남과 북이 한 치 양보 없는 무력 시위로 치달을 때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궁극까지 가다보면 통한다'는 말이다. 남북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궁극으로 달리고 있지만 결국은 그 궁극이 손을 잡게 만들 것이란 믿음이었다. 이 말은 주역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사물의 이치는 궁-변-통-구의 과정으로 변증법적 변화를 이뤄나간다는 의미다. 극한 상황에 부닥치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이는 주역의 핵심 사상이다. 남과 북은 70년간 분단의 질곡에 갇힌 채 그 고통이 궁극에 다다르고 있다. 북한의 고통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도 북한과 돌파구를 뚫지 못하면 국가 성장엔진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순조로울 때는 변화에 대한 의지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도달할 때 변화는 필연적이다. 이번에 남북이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 바로 '궁즉변'이다. 벼랑끝 궁극에서 변화를 택함으로써 6개항의 해결책이 나온 것이다. 남북이 합의사항을 잘 이행하면 서로 이해심이 높아지고 신뢰가 쌓이며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변즉통'의 단계로 가는 것이다. 여기선 상대를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수다. 이 단계가 완성되면 평화로운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통즉구'로 접어드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평화가 지속되는 '통즉구'의 단계에 탐닉하다보면 썩고 안이해져서 다시 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평화 그 자체보다도 평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번 6개항 합의문 중에서 백미는 북한의 유감 내용이 담긴 2항이다.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고, 남한은 사과를 하라고 하고…. 회담 처음부터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상황을 그런 문장으로 해소했다.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다. 각자 편하게 해석할 여지를 뒀다. 이것이 타협이다. 남북 간에 평화의 시기는 언제올까. 요원해 보이지만 궁-변-통-구의 순환원리에 주목하면 남북은 결국 화해.협력의 상생시대를 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어서 앞으로 희망을 더 갖게 한다. 위기의 '궁(窮)'이 평화의 '구(久)'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임을 믿고 싶다.

2015.08.24. 22:26

[진맥 세상] 광복 70년, 분단 70년

오늘 신문 1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LA한인들에게 광복 70년을 맞는 소감을 한마디씩 적어달라고 해서 만든 지면입니다. 한 줄 메시지를 남긴 분들의 마음이 그대로 읽히는 듯합니다. 많은 분들이 광복의 감격과 함께 분단의 역사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메시지 중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조국, 하나 되는 조국 파이팅'(김대성), '나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통일의 소망을 가지며 함께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최정선), '나의 희망은 남북통일'(한하영), '광복정신 이어받아 통일조국 이루자'(김혜숙)…. 예전의 광복절은 '해방'을 축하하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광복절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은 식민지 나라에서 독립한 조국을 생각하며 감격해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광복과 함께 그어진 38선에 대한 인식도 많아졌습니다. 많은 언론에서도 광복과 함께 분단의 역사와 통일의 염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나라가 남북으로 갈린 지 어언 70년이나 되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인식하고 통일의 절실함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광복 70년의 의미는 더욱 각별합니다. 한국 중앙일보는 창간 50주년과 광복.분단 70주년 기획으로 '평화 오디세이'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한국의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지성인 30여 명이 함께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을 따라 순례하며 분단 조국의 현실을 체험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이벤트였습니다. 이홍구 전 총리, 이어령 전 장관, 고은 시인, 정운찬 전 총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등 쟁쟁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1주일을 함께 하며 통일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행사였습니다. 참가했던 분들은 기고를 통해 느낀 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분단의 현실을 목도하고 큰 충격과 함께 통일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북한이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도록 지원하자'는 제목의 칼럼을 쓴 나경원 의원은 글 처음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땅덩이였다.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북중 접경지대는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내게 각인되었고, 백두산 천지와 북녘땅을 마주한다는 설렘으로 시작한 여정이 가슴에 새긴 것은 결국 '통일'이라는 두 글자였다." 북한 땅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그저 중국 땅에서 바라볼 뿐이었지만 오디세이 참가자들마다 가슴에 뜨거운 통일 열정을 품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오디세이 행사는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마무리되어 그 의미가 더 극적으로 돋보입니다. 저는 2010년 내려진 5.24 대북 제재조치 이후 한국 언론 기자로는 처음으로 2012년 10월 방북취재를 했습니다. 돌아와서 쓴 칼럼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평양 거리를 걸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겨운 한글 간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이 쏙쏙 귀에 꽂히는 우리말, 같은 생김새, 착착 감기는 우리 음식, 가무를 좋아하고 정이 많은 민족성…도착 첫날 낯선 반쪽 조국의 모습에 막연히 근육이 긴장되고 표정까지 굳어졌지만 풀어지는 덴 하룻밤이면 족했다. 그리고 분단과 대치의 현실이 떠올랐다. 아, 우리는 지금 같은 민족끼리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잊고 지내던 '잃어버린 반쪽'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낀 솔직한 심경이었습니다. 보고 느끼면 그 만큼 비전도 생기고 소망도 생깁니다. 올해 해외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오디세이 순례자들처럼 압록강.백두산.두만강 여행을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요. 평생 잊혀지지 않을 광복 70년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요.

2015.08.14. 20:08

[진맥 세상] '갑질'하는 업체에 희망이 있을까

1970년 대 한인 이민사회가 맹아기에 있을 때는 한인업체가 별 게 없었다. 종류도 십 수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젠 셀 수 없을 정도의 업종에 한인업체가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는 초창기 구멍가게 수준에서 시작해 주류사회에서 어깨를 겨룰 만한 대단한 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부지기수다. 이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한인 비즈니스도 견고한 성장을 이뤄온 것이다. 그 이면에는 한인이 한인업소를 이용하는 '동족 프리미엄'이 큰 역할을 했다. 새 이민자들은 언어와 물정이 어설퍼서 한인업소를 찾았고, 기존 이민자들은 편익성, 상부상조, 인적관계 때문에 역시 그랬다. 이처럼 '동족 프리미엄'을 등에 업은 한인업소들은 비교적 손쉽게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알게 모르게 한인고객들은 '봉'이 되어갔다. 별로 대접해주지 않아도, 서비스가 부실해도 어차피 제발로 찾아오는 고객으로 인식됐다. 이런 관계가 계속되다보니 고객이 갑이고, 업체가 을이어야 할 관계가 거꾸로 되어 버린 희한한 풍경도 자주 발생했다. 한인사회를 향해 사과를 해야 할 사안인데도 '내가 뭘 잘못했는데…' '싫으면 안 오면 될 거 아니냐' '당신 말고도 손님은 얼마든지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업체도 적지 않다. 신문사에는 각종 불법.부당.부정의한 사례들이 제보된다. 신고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사회를 위해 언론이 저널리즘 정신을 발휘해 부당한 사례들을 철저히 고발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 언론은 이런 제보를 바탕으로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취재 당사자가 꺼려하더라도 보도를 강행한다. 예를 들어, 마켓에서 식품을 샀는데 유효기간이 지났다든지, 이물질이 들어있다든지, 가짜를 속여 팔았다든지 하는 제보를 받았다치자. 취재에 돌입하면 마켓 측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확인되고 보도가 되면 업소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고 판단해 어떻게 해서라도 보도를 막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회유와 공갈도 따른다. 언론에 대한 공갈의 대표적인 방법이 '광고 협박'이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공익을 추구하는 진정한 저널리즘이라면 당연히 기사를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다시는 그 업체에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업체에도 교훈을 주기 위해 보도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나갔을 때 마켓 측이 신문사에 항의를 하고 '광고 중단' 등으로 '보복'하려 든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처사로 비칠까. 한인 고객들 때문에 성장했고, 지금도 한인 고객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마켓으로서 먼저 머리 숙여 한인사회에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많은 비리 제보와 그에 따른 보도가 있었지만 그런 성숙한 대응을 보인 업체를 많이 접하진 못했다. 많은 한인업체들이 오랫동안 한인사회의 '갑'으로서 행동해 오는 동안 겸양과 사과, 헌신의 정신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구심점 없는 한인 이민사회에서 모국어 언론의 의미는 크다. 사기업이긴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공공재'로서의 성격도 갖는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많은 독자들이 신문을 믿어주고, 제보를 하고, 언론이 사회 계도 기능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인사회의 체질은 크게 바뀌었다. 한인 고객들을 아직도 '봉'으로 알고 '갑'이라고 착각하는 업체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할 것이다. '동족 프리미엄'을 업고 성장한 업체들은 이제 한인사회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지, 어떤 서비스로 감동을 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야할 때다.

2015.07.09. 20:17

[진맥 세상] 동네 공원 '철책 사건'

집을 나서면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있다. 이른 아침이면 이 공원을 산책하는 이웃들이 꽤 많다. 그런데 지난 6개월 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시설을 업그레이드 한다고 빙~둘러 철책(왼쪽 사진)을 치고 공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흉측하게 서있는 철책 옆으로 산책하는 기분은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공사가 길어지면서 부자연스러웠던 철책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산책을 나갔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철책이 싹 없어진 것이다(오른쪽 사진). 오프닝 행사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어제까지 있었던 철책, 그거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랐다. 탁 트인 느낌, 무엇인가 없던 것이 새로 창조된 느낌, 똑같은 공간인데 훨씬 확장된 느낌…. 글로 묘사하기 어려운 무척 좋은 감정이 솟구쳤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다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예외 없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선뜻 말을 건네며 "펜스 없애니까 너무 좋지 않아요?" 하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렸다. 평소 때는 낯선 사람들과 스쳐지나며 '굿모닝' 하는 정도였는데 이 날엔 무려 세 사람과 명함까지 주고 받는 깨알 대화를 나눴다. 없어진 펜스가 소통의 봇물을 이루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체조하는 몸동작에도 흥이 실린다. 수개월 동안 밟아보지 못하던 펜스 안쪽의 잔디를 걸으며 사람들은 장벽이 있다가 없어진 기쁨을 만끽했다. 갇힌 것이 열리고, 막힌 것이 뚫리는 소통과 해방, 자유의 감정이 그날 작은 공원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물리적으로는 공원에서 펜스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펜스가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없애고 보니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 그렇게 좋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제거된 철책으로 공간은 한층 넓어졌고 공원에 노니는 사람들의 동작은 더 커졌다. 확 트인 풍경은 이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아마 사람들의 꿈과 희망도 변화되지 않았을까. 이번 작은 '철책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살면서 부닥치는 수많은 장벽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장벽들이 가로놓여 있는가. 직장에서는, 교회에서는, 그리고 가족 간에는 또 어떤가. 이뿐이랴. 내 스스로 넘지 못해 도전을 훼방하는 마음의 장벽도 있을 것이요,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을 방해하는 인공과 물질문명이라는 장벽도 있다.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장벽은 불통을 부르고 지속되면 병이 생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고 했다. 그런 불통의 장벽이 있다면 그것을 걷어냈을 때 다가올 영혼의 고양, 비전의 확장, 마음의 평화를 그려보자. 집 앞 작은 공원에서 펜스 하나 없어진 '소형 사건'이 이렇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데 70년을 이어온 조국 분단의 장벽이 스러지는 '대형 사건'이 발생한다면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와 행복감은 얼마나 대단할까. 한반도를 분단하는 큰 장벽이 없어지면 남과 북에서 생겨난 작은 장벽들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김대중.김정일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고 통일 로드맵을 담은 6.15선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에 화평의 기운이 넘실댔던 게 불과 15년 전이다. 거꾸로 되돌아간 지금의 현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남이나 북이나 펜스에 갇힌 채 옹졸하고 강퍅한 심성만 키우지 말고 장벽을 걷어냈을 때 발현될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상상해보라. 제발.

2015.06.09. 23:07

[진맥 세상] 데이비드 류의 '코리아타운 스피릿'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은 더 짜릿한 것인가. 데이비드 류 후보가 165년 LA시의회 역사상 최초의 한인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이 바로 그렇다. 지난 3월 초 예비선거에서 2등으로 통과했을 때만 해도 백인 유권자가 62%나 되는 선거구에서 이름을 훨씬 많이 알린 백인 후보를 꺾는다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됐다. 한인들은 온 힘을 다해 응원은 했지만 설마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매일 선거판을 관찰해온 기자들도 투표 당일 "40대 60"이라며 패배 쪽에 무게를 둘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였는데 막상 개표가 시작되니 처음부터 류 후보가 현저한 리드를 보였다.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된 우편투표함을 먼저 개봉한 결과여서 뒤집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류 후보는 줄곧 7%포인트 이상의 득표율 격차를 유지하면서 완승을 거두었다.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대단하네"를 연발했다. 아무도 낙승을 예상치 못했지만 류 후보는 달렸고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표 현장에서 류 후보와 기쁨을 나눴던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은 "기적이 아니다. 필연적인 결과다"고 했다. 그 역시 백인 지역에서 발품을 팔아 극적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던 때가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뚝심, 자신감, 열정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것을 두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류 당선인에게 오늘의 극적 승리를 안겨준 키포인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코리아타운 스피릿'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39세인 류 당선인은 6살 때 LA코리아타운으로 이민을 왔다. 코리아타운에서 살고, 학교 다니고, 라티노 친구들과 어울리며 청년기를 보냈다. 대부분 한인 부모들이 코리아타운의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며 자녀 교육을 이유로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하는데 류의 집안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2베드룸 아파트에서 부모와 동생 둘, 외할머니 이렇게 여섯 식구가 복닥복닥 살았다. 부모도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고달프게 일했다. 이런 험한 '바닥 생활'은 류 당선인의 살이 되고 피가 됐다. 시끌벅적하고, 치안 불안감이 상시 감돌고, 마약과 술판의 냄새가 가득했던 코리아타운. 류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 익숙해졌고, 가정 환경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고충과 아픔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부모가 원했던 의대 진학을 포기한 뒤 학생회장, 한미연합회, 시민권 수수료 인상 반대 시위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쪽으로 열정을 보이게 된 것도 그가 살았던 환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류 당선인은 여느 1.5세들보다 한국말을 훨씬 유창하게 잘 한다. 선거 캠페인 때도 만나는 한인들마다 두 손으로 악수를 하고 허리를 크게 굽히며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그를 처음 접한 한인들은 "젊은 친구가 대단히 한국식"이라며 대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면모들은 그에게 '코리아타운 스피릿'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류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환경 좋다는 지역, 무슨무슨 학교에서 곱상한 친구들과 사귀며 다양한 스펙을 다져 세칭 초일류 대학을 다녔다면 그는 단순히 많은 봉급에만 만족하는 소시민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류는 큰 정치인이 될 자질을 두루 갖췄다. 한인 특유의 친화력, 스피치, 낮은 곳을 살피는 배려심, 친근감 주는 소탈한 외모 등이 모두 큰 정치인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줄 자산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터프한' 환경에서 들풀처럼 자라면서 몸에 담은 '코리아타운 스피릿'은 가장 귀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2015.05.20. 20:57

[진맥 세상] 혈압약, 그 불편한 진실

저명한 정치활동가였던 리처드 최(전 한인민주당협회 고문)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두 사람은 십수년간 정치적 동반자로 식구같은 사이다. 최씨의 비만했던 몸이 연상돼 직감적으로 '고혈압'이 떠올랐다. 강 시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혹시 최씨가 혈압약을 복용해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혈압약을 먹어왔고, 최근엔 당뇨 때문에도 고생했다는 답이 왔다. 주변에 고혈압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을 경고하는 의사의 말에 주저없이 약을 먹는다. 눈 딱 감고 믿는 것을 '맹신'이라 한다. 의료 영역에서 맹신하다간 건강을 되레 망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2, 제3의 소견을 들어 맹신에서 벗어나야 현명해진다. 고혈압에 관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들어보자. -고혈압은 없애야 하나. "혈전으로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을 막기 위해 몸은 혈압을 높이고 있는데 혈압약을 먹으면 혈류가 떨어져 뇌경색 가능성을 높인다. 일본의 2006년 통계에 의하면 뇌졸중 중에서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은 13%에 불과하고,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 거의 대부분(84%)이다."(마쓰모토 미쓰마사, '건강의 배신' 중에서) -정상혈압이란 뭔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혈압은 몸이 설정해준다. 필요한 혈압을 낮추면 혈전(피떡)으로 뇌혈관이 막힌다. 혈압약 먹는 사람이 안 먹는 사람보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에 두 배나 더 걸린다."(오구시 요이치, 도쿄의대 교수) -약을 장기복용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리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먹음으로써 두뇌에 혈류가 감소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뇌조직이 손상될 수 있는데 이때 생기는 것이 치매다. 고혈압을 유발하는 식생활을 바꾸는 게 최선이다."(신우섭 의사, '의사의 반란' 저자) -다른 부작용도 있나. "고혈압약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칼슘 길항제는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혈압을 내리는 작용을 하지만, 심장의 근력을 약화시켜 심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어떤 혈압약도 장기복용할 경우 그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김진목, '의사가 된 후에 알게 된 위험한 의학, 현명한 치료' 저자) -약이 돌연사를 예방하나. "혈압을 낮추었더니 사망률이 하락했거나,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질환이 감소되었음을 검증해주는 실제 데이터는 아직까지 없다."(곤도 마코토, 방사선전문의,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저자) -진정한 치료란 무엇인가. "진정한 의사는 실력있는 원예사와 같다. 갈색으로 시든 잎을 녹색으로 칠해 눈속임한다고 식물이 살아나겠나. 진정한 의사는 식물의 뿌리를 다뤄 살리는 진정한 원예사가 되어야 한다."(알레한드로 융거, 심장전문의, '클린' 저자) -현대의학이 나갈 길은. "진실한 의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일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로버트 멘델존, 소아과의사,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저자) 이런 주장을 펴는 의사들은 무수하게 많다. 다만 주류 의학계의 목소리에 가려 일반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조차 별로 없다. 이런 의사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은 한 가지 견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명한 자기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라는 취지에서다. 뇌졸중이 무서워 혈압약을 찾을 것인가, 뇌졸중이 무서워 혈압약을 끊을 것인가. 판단은 본인의 몫이다. 멘델존의 말이다.'책임을 지는 쪽은 언제나 환자다. 의사는 실패를 관속에 묻는다는 낡은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의학 박사>

2015.04.28. 23:00

[진맥 세상] '가족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지난해 말 고향 부산에 살고 있는 여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올해 설날에는 형제들이 오랜만에 다 한번 모여보자는 제안이었다. 아버지 팔순 생신 행사도 당겨 함께 하자는 거였다. 우리 네 형제는 멀리 떨어져 산다. 부산, 서울, 중국 칭다오, 미국 LA 그렇다. 한번 모이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딸린 자식들까지 빠짐없이 모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까지 식구들이 죄다 모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 꼭 빠졌다. 이번에도 서울에 사는 동생이 대학 시험 준비로 바쁜 '고3' 아들을 남겨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머지 형제들이 '예외 없다'고 압박했다. 그래서 진짜 '다' 모였다.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한국행을 망설였다. 할 일이 지천이었다. 가족이 한번 나가자면 돈은 또 오죽 많이 드나. 이 핑계 저 핑계 대자니 휴가 낼 형편이 안 됐다. 그렇지만 이게 마지막이 될지 어찌 아나 싶은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고향서 닷새를 보내고 돌아왔다. 지금 심정은? 너무너무 잘 했다, 스스로 칭찬을 듬뿍 해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떨어져 사는 부모, 형제, 자매를 거의 잊고 산다. 그냥 한 지붕 아래 있는 가족이 모두인 것으로 안다. 멀리 있는 가족을 가끔 생각하지만 그저 희미한 이미지로만 떠오를 뿐이다. 아마도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1세 이민자들도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고국에, 타주에 가족들이 있어도 여건이 안 된다며 차일피일 하다가 십수년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고국 여행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강렬했다. 특히 가족에 대한 느낌이 그렇다. 가족은 에너지요, 힐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아무리 티격태격해도 금세 풀어질 수 있는 혈연의 정,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서로 기댈 수 있다는 느낌, 그런 것이 서로 에너지가 되고 힐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실상은 가족이 무너지는, 무너진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흩어지고, 지리적으로도 여기저기 떨어져 살게 되고, 얼굴 보고 손잡아보는 것보다는 그저 전화 한 통, 카톡 교환으로 만족하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가족의 눈빛, 목소리, 흰 머리칼, 주름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어찌 전화 목소리 듣는 것과 손 잡아보는 것이 같을까. 그럼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게 흔한 모습이다. 가족이 아니라 '웬수'가 된 관계도 있다. 아예 가족이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관계가 무너졌다면? 만나서 손잡으면 다시 세울 수도 있다. 가족이 없다면?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면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족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가족을 너무 잊고 사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결코 잘 사는 방식이 아닌 것 같다. 이웃 민족인 라티노들을 보면 꼭 우리네 옛적 오손도손 했던 가족애를 떠올리게 한다. 공원을 뒤덮는 라티노들의 모임을 보면 가족이 주는 에너지를 느낀다. 가난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우리보다 웃음이 더 많이 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진다 해도,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임계점도 따라서 높아질까. 아닐 것 같다. 행복은 잊었던 것, 소홀했던 것, 작은 것 그런 데 숨어 있을 것 같다. 걸출한 신학자이자 영성가인 현경 교수(유니언 신학대)가 쓴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결국은 가족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로 바꿔 읽어 보자. 그러면 아마도 내가 '구원'해 줄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을까.

2015.02.25. 21:28

[진맥 세상] 치매 예방에 왜 신문이 좋을까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LA한인타운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아들 마모씨와 부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동반자살로 보고 있다. 이들 가족은 청소용역 사업을 해오다 마씨의 80대 부친이 치매 증상을 보이면서 사업이 기울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수개월 동안 마씨는 부친의 치매 간병에 매달리면서 무척 힘들어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치매의 한문뜻을 보면 '치'자는 정신에 병이 들었다는 뜻이고, '매'는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있는 형상 글자로 어리석다는 뜻이다. 정신에 병이 들어 어린아이 같이 되어버린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치매가 오면 정상적인 지적.인지 기능을 잃어버린다. 인격에도 변화가 온다. 그 때문에 사람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헝클어진다. 평생 맺어온 친밀감이 절연되는 것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 가족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래서 간병 도중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종종 발생한다. 치매는 아직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는데 발병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나이 들수록 자기, 또는 가족 중에서 치매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통계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9.18%에서 치매 증상을 보였다. 10명 중 한 명이 치매란 얘기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치매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54만 명에서 앞으로 15년 후인 2030년엔 127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견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80세 이상 노인의 20% 정도가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치매는 정작 걸린 본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지적 능력을 상실하기에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질 수도 있다. 문제는 가족들에게 말못할 심적.육체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기억력 저하, 동작 둔화, 적응력 감소, 의존성 심화, 고집 등은 치매의 전조 증상으로 보이는 행태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전조 증상은 '자기 중심적인 완고함'이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경험,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기는 그런 성격은 치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치매를 불러오기 쉬운 노인의 '고집증'은 왜 생길까. 노인 정신의학 전문의로 수 천명 노인의 뇌사진을 판독해온 와다 히데키 의사는 뇌의 '전두엽'이 파괴될수록 망령과 고집이 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전두엽은 대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것으로 사고.의욕.감정.성격.이성을 담당한다. 완고한 영감, 고집쟁이 노인이란 말은 전두엽이 파괴되기 시작한 노인이란 뜻이다.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해 새로운 것, 다른 사람의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유일한 잣대인 양 설교하는 사람도 전두엽 파괴형 인간이다. 결국 전두엽의 파괴가 계속되면 치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참고로 고혈압 등 약을 장기복용하는 것이 전두엽 파괴와 치매의 원인으로 보는 전문가도 많은데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전두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속칭 '뇌섹남'이 되면 가능하다. '뇌가 섹시한 남자(사람)'란 뜻이다. 주관이 뚜렷해서 할 말은 하되, 의견이 대립되면 유연하게 논리적으로 설득하며, 신문(책)을 많이 읽어 지식과 언변이 좋고, 호기심과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을 지칭한다. 요즘 그런 '뇌섹남'이 인기다. 육체적인 섹시함을 지키는 건 한계가 있다. 뇌를 섹시하게 유지하는 것, 치매 없이 건강하고 인기 있는 삶의 비결이 아닐까. <한의학 박사>

2015.02.04. 21:14

[진맥 세상] '원씽'을 생각하며

매년 똑같은 생각. 1월 1일 저녁이 되면 '새해 첫날도 결국 없어지는구나.' 1월 말이면 '벌써 한 달이 지났네.' 새해가 되면 마음을 다잡기 위해 훈계(?)하는 책을 습관적으로 읽는다. 뻔한 내용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맹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좋아서다. 이번엔 '원씽(The One Thing)'을 읽고 여기저기 떠들고 있다. 제목만 보고도 내용이 짐작 되는 책이다. 인생을 관통하는 '단 하나'를 위해 집중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면 행복과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적게 성취하기' 때문에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된 인생에서 그것을 너무 넓게 펼치면 종잇장처럼 얇아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성과를 내려면 삶의 더하기가 아닌 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 클리포스 나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태스커'들을 존경했고, 자신은 그런 능력이 형편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멀티태스커들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는지 파악하기 위해 학생 260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멀티태스킹을 자주 하는 그룹과 못하는 그룹 둘로 나눠 여러 미션을 수행토록한 뒤 결과를 살폈다. 나스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멀티태스커들은 모든 면에서 성과가 떨어졌다. 쓸데없는 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보기엔 그들이 다방면에 뛰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성과는 기대와는 반대였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정말 열심히 산다고 살지만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타고난 환경과 팔자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원씽'은 성공과 평범을 나누는 차이는 바로 '단 하나(원씽)'를 팠느냐, 아니면 여러가지에 시간과 정력을 쏟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일생의 원씽이 정해지면 그것을 위한 10년의 원씽을 세울 수 있다. 그 다음 1년의 원씽, 한 달의 원씽, 오늘의 원씽까지. 이처럼 '원씽'의 도미노가 이뤄지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것이다. 2006년 미국기억력대회에서 챔피언을 땄던 조슈아 포어 기자는 원래 기억력이 형편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년도 대회 우승자가 "난 천재가 아니다. 그저 하루 한 시간씩 연습한 것 뿐"이라고 한 말에 자극받아 그때부터 하루 한 시간씩 연습한 뒤 딱 1년만에 챔피언이 됐다. 무작위로 섞인 52장의 카드 순서를 1분 40초만에 읽어낸 것이다. 조슈아는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OK 고원'에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과에 대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족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 그 지점을 'OK 고원'이라고 불렀다. 책 '원씽'은 말한다. "목표가 없는 삶은 더 오를 수 있는데도 OK 고원에서 멈추고 만다. 성공과 행복은 OK 고원을 뚫고 올라가는 데 있다"고. 행복? 열심의 대가로 나중에 손에 쥐는 무엇이 아니라 "(큰 원씽의)목적의식을 갖고 (작은 원씽의) 매일 하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했다. 직장에서의 단 하나는 무엇일까. 가정에서는? 그것을 위한 오늘의 단 하나는? 올해는? 그 하나가 당장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만으로도 시야에 안개가 걷히고 길이 어스름히 보이는 느낌이 든다. 하나라면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지나간 1월을 아쉬워하기보단 2월의 단 하나를 잡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 동심을 품고 밑줄 그으면서 일독하면 마음도 많이 젊어지겠다. 강추!

2015.01.28. 20:41

[진맥 세상] '반퇴 시대' 한국 얘기만이 아니다

LA에 사는 40대 후반 후배 K가 겪은 에피소드다. 어느 날 부산에 있는 아버지가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을 다 소집했다. 이유는 몰랐다. K는 내심 아버지가 여든을 넘기셨으니 재산 정리를 미리 하시려나 생각했단다. 빠듯하게 살아온 K는 살짝 미소를 흘렸다. 기꺼이 부산으로 날아갔다. 형제들이 아버지 앞에 둘러 앉았다. 형제들의 표정을 보니 K와 비슷한 마음이 읽혔다. "내가 너희를 부른 것은…"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지금 같아선 앞으로 20년을 더 살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너희에게 당장 줄 게 없으니 기대하지 말거라. 그리들 알고 각자 기대지 말고 알아서 살자." K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런 에피소드는 100세 장수시대가 빚어낸 수많은 이야깃거리 중에 하나다. 중앙일보 본국지는 새해 들어 연중기획으로 '반퇴(半退) 시대'를 화두로 던졌다. 퇴직을 했지만 완전히 은퇴하지 못하는,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린다. 퇴직은 할 수밖에 없고, 살아야 할 날들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현명하고 능동적으로 새 시대에 대처하자는 것이 이 기획기사의 취지다. 5회에 걸친 장문의 기사를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요지를 정리해본다. 한국 인구의 가장 많은 부분(14.3%)을 차지하는 1차 베이비부머(55~63년생) 세대는 71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퇴직하기 시작했다. 인구 12.1%를 구성하는 2차 베이비부머(68~74년생) 세대의 퇴직도 뒤를 잇는다. '퇴직 쓰나미'가 앞으로 30년간 이어진다. 벌써 관청 재취업센터엔 50대 구직자가 북새통을 이룬다. 퇴직 후 30년은 더 살아야 하기에 노후 수입을 '가늘고 길게' 설계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거의 안 되어 있다. 서울(수도권)의 집을 팔고 외곽(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 필수가 됐다. 60, 70대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경력 리모델링'을 하지 않으면 곤궁한 노년이 불가피하다. '반퇴 시대'에는 돈 뿐만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도 큰 과제다. 봉사나 취미생활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나온 '반퇴 시대' 기사지만 미주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다. 80세에 이르도록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던 어느 원로 인사 P는 활동을 접고 한적한 곳으로 이사한 뒤 대외접촉을 중단했다. 몇 달 후 그의 지인이 전한 말인 즉, P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요즘 가장 힘들다고 한다. 집안 물건을 여기 놓았다가 다시 저기로 옮기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도 많단다. 이렇듯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것도 노후에 닥칠 수 있는 고역 중 하나다. 건강한 노후생활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일본의 곤도 마코토(65) 박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예순을 넘기면서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부터 30년 후에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가 70만 명에 달할 것이란 기사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40년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기엔 너무 긴 시간이란 생각이 들면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은퇴 후 삶을 이렇게 조언한다. 이전의 지위나 자부심에 연연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건강 그 자체보다 계속 일(봉사)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궁핍하지 않을 정도의 돈 관리,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 결국 돈.시간.건강은 노후 생활의 질을 결정짓는 키워드인 셈이다.

2015.01.21. 21:03

[진맥 세상] 서초동 강씨, '국제시장' 덕수

새해 들어서자마자 뉴스가 줄잇는다. 급기야 이런 사건까지 터지는구나, 싶다. 그 좋다는 서울 강남 서초동에 사는 48세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 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앞날이 막막해서'가 범행 동기의 전부다. 드러난 개요는 이렇다. 범인 강씨는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외국계 정보통신 회사에서 임원까지 일하다 퇴직했다. 여기저기 재취업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마음은 다급했지만 더 이상 취직할 데가 없었다. 집을 담보로 5억원을 빌렸다. 아내에게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본인은 고시원으로 출근(?)했다. 낮시간은 온라인 주식투자에 매달렸다. 수억 원을 날렸다. 초조했다. 벌이는 없고, 돈은 매달 필요하고, 가진 것이라곤 아파트 한 채.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급기야 가족들의 불행한 미래를 용인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을까,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발동해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한때 잘 살다가 실직한 다음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고 생활은 점점 추락해가는 것을 느끼다가 결국은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의 집은 시가 11억원(약 120만 달러)에 달하는 강남의 아파트였다. 5억원을 빌렸다지만 여전히 6억원의 자산이 남았다. 아내 통장에 3억원이 있다는 말도 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부자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는데도 강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요즘 히트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렸다. 영화 속 주인공 덕수는 평생 '덕수'라는 인격체로 살지 못한다. 그는 '가장'이라는 허명(虛名)의 짐을 지고 평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국 현대사 속 서민을 대변한다. 6.25 흥남철수, 서독광부 파송, 월남 파병 등을 거치며 덕수는 오로지 '가장'의 인생을 산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그 어느 늙은 날, 가족들이 한쪽에 모여 왁자지껄 즐겁게 놀 때 덕수는 다른 방으로 혼자 들어가 독백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서초동 강씨의 범행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강남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 추락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것도 이유가 됐겠지만 '가장의 무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쪽에 더 수긍이 간다. '흥남철수' 출신 덕수는 온갖 밑바닥 인생을 다 이겨내며 가장의 무게를 견뎌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러나 서초동 강씨는 그 젊은 나이에 가장의 무게에 눌려 압사하고 말았다. 덕수는 '절대적 빈곤' 속에서도 힘든 인생을 헤쳐냈고 그 결실로 아름다운 노년을 맞는다. 반면 서초동 강씨는 좋은 조건의 삶을 살았지만 '상대적 빈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했다. 영국의 언어심리학자 대니얼 네틀 박사는 책 '행복의 심리학'에서 대규모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을 7~12년에 걸쳐 행복심리지수를 조사했다. 그 기간에 소득이 늘고 줄어든 경우, 생활이안정되거나 격변을 겪은 경우 등 다양했다. 결론은 처음과 나중의 행복지수가 비슷하더라는 것이다. 살면서 겪는 갖가지 인생사가 행.불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네틀 박사는 "행복과 불행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서초동 강씨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를 만나 보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2015.01.14. 22:13

[진맥 세상] 올해 나를 붙잡아 줄 두 단어

나이가 들면 한국으로 역이민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비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갈수록 양극화로 치닫고,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해서는 흡수하거나 배척하려는 두 가지 마음만 팽배한 것 같습니다.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다양한 가치관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고,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야단치고 배척한다면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정치나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적 혹은 아군으로 딱 갈라집니다. 친구나 가족 간에도 이 문제로 의절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눈길을 주는 너그러운 분위기가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가 있더군요. 새해에는 '네 말 좀 들어주마'라는 말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남북관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남북 정상들이 신년 메시지를 통해 관계 개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신뢰와 화해는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잘 풀려나갈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퍼지고 증오의 감정이 사그라진다면 분단 때문에 생겨난 날선 감정들도 부드러워지겠지요.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두 단어를 붙잡고 한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성장'과 '보람'입니다. '성장'은 저 개인을 향한 것입니다. '보람'은 타자, 공동체를 향한 것입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 박사가 쓴 책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통나무 위에 개구리 다섯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중 네마리가 뛰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남은 개구리는 몇 마리?" 아들이 "한 마리"하고 소리치자 아버지는 "아니지. 다섯 마리지. 마음 먹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라고 말합니다. 실천의 중요성입니다. 맥스웰 박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서는 '성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실천과 도전정신이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가로막는 타성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꾸짖습니다. '보람'의 중요성은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웁니다. "사람들의 행복론은 90%가 복을 받는, 즉 내가 받는 쪽에 치우쳐 있다. 그러면 더 잘살게 되어도 늘 걸신들린 듯 정신적 빈곤을 벗어날 수 없다. 주체적으로 베풀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이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행복은 잠시 기쁨을 줄 지는 모르지만 지속가능한 행복을 만들 수는 없다고 스님은 설파합니다. 새로운 한 해의 처음에 섰다는 것은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장 순결할 때도, 가장 견결할 때도 지금입니다. 그런 마음이 스러지지 않고 토실토실 과실이 영글면서 한해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성장'과 '보람'이 함께 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려다 빈손 털지 말고 복을 많이 '만드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015.01.0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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